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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안(鬼眼), 천존을 담은 여자
작가 : 적편혈향
작품등록일 : 20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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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는 알고있다. 산자가 덮어버린 진실을.
작성일 : 19-10-05     조회 : 28     추천 : 0     분량 : 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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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당을 차리기 전까지 온가족이 모여 그에대한 논의를 하느라 분주했다.

 제(第)를 지내는것부터 시작해서 절차가 꽤나 복잡했다. 내가 신경쓰였던건..

 이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한국이라는 내 나라에서- 의사집안의 딸이(입양이긴해도)

 무속인이라는것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을거라는걸 생각했던 내 우려가 컸다.

 처음에 달가워하지 않았던 큰오빠와 작은오빠덕에 주눅도 많이 들어있고 피해의식(!)

 도 장난아니게 쩔었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차츰 털어낼 수 있었다.

 

 희민오빠가 떠난 이후로 기태오빠는 정상 컨디션을 회복한 듯 했다. 연주회다 콩쿨이다

 이전보다 바빠진 모습을 보는 부모님의 시선도 흐뭇해보이셨다. 내가 집안의 복이라며

 전보다 더 많이 오구오구-(?!) 해주시는 덕에 집을 나가겠다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기준오빠야 항상 병원에 있느라 어쩌다 집에 오는날이 많았지만, 예의 차갑던 시선-

 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가끔 농담조로 언니가 보이지 않느냐 묻곤 했지만, 이제는

 내 눈에 안보이는게 더 좋은 일이라고 새침한표정으로 오빠를 흘겨봤다.

 

 ***

 

 10월5일- 대무님께서 날을 잡아 이때에 신을 모시는 제(第)를 지내면 길(吉)하다 하여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재계까지 하고 준비해뒀던 무복(巫服)까지 갖춰입고 집을나섰다.

 혼자가는게 맘에 걸리신다며 아버지가 기어코 기명오빠보고 따라가라고 말씀하셔서

 기명오빠와 나, 대무님과 처음 대무님이 신을 모셨던 산에서 축원발원문을 올렸다.

 치성만 정성껏 올려두고 법당에 들렀다 대무님이 준비해두신 신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천존님께서 이 아이의 몸을 빌어 현신하시매, 이 우매하고 모자란 제자를 굽어

 살피시어 저의 눈과 입도 더욱 영명(永明)하게 도와주십사, 언제나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돌보아주심을 간절히 원(願)하옵니다"

 

 신당에 가부좌를 틀고 상석에 앉아있으니 대무님께서 절을 하시며 말씀하셨다.

 

 "그 또한 네 바람이 악(惡)하지 않으니 들어마땅한 원이로고. 항시 축원하고 정성을

 올리니 가히 그 덕(悳)이 천세를 가지 않으랴. 제자의 걱정일랑 접어두고 너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영가들이 이 구천을 떠돌지 않도록 노력하라"

 

 정신은 말짱한데 입은 따로 놀고 있었다. 이게 그 '입이 터진다'라는 건가?

 대무님은 내 앞에서 정성껏 절을 하고 계셨다. 진짜 웬 사극에서나 볼법한 말투로

 근엄하게 말하는데 이게 진짜 내가 맞나 싶을정도였다. 아니지, 지금은 그 천존..

 이란 분이 내 입을 빌어 말하고 계신거지.

 나도 옥황상제상을 정가운데 놓고 땀으로 샤워를 할만큼 절을 했다. 신내림만 안받았지

 과정이 힘든건 여느 무속인하고 똑같은 듯 했다. 그래도 이정도면 절차가 굉장히 생략

 된 것이라고 하니.. 불평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겠고.

 

 "꼭 점사를 보지 않아도 하루에 한번, 그리고 내가 적어준 이 날만큼은 꼭 신당과

 나와 함께 갔었던 산신전(山神殿)에는 꼭 나가 치성을 드려야만 한다.. 네 어미가

 내게 내림굿을 받았던 때가 기억이 나는구나. 갓 낳아둔 널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태어나자마자 운명이 그랬던것을 기구하게 생각해 눈물로 밤을 지샜던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구나. 허나, 이제는 제자의 길로 발을 들인 이상- 돌이킬수도 없고

 후회해서도 안된다. 눈에 보이는것을 거짓으로 말해서도 안되고, 들리는것을 지어내서

 말해서도 안된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어코

 네 능력을 다 써서라도 구제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업을 씻는 길이 될게야"

 

 아..어렵다. 대무님 말씀은 오래듣고 있으면 이해가 잘 안되는 단어들이 쏟아져서

 문맥상 끼워맞추기로 알아듣곤 했다. 여튼 어려운사람 도와주라는 말이겠지.

 앞으로는 대무님께서 종종오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찾아갔다간 경을 칠수도 있다

 하시니-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가? 내가 뭘 알아야 말이지.. 대무님도 돌아가시고

 기명오빠와 마주보고 앉아 아무말 없이 아이컨택만 하고있었다.

 

 "오..근데 좀 뭔가 으스스하기는 하다"

 "음.. 난 엄마가 이런일을 하셨어서 큰 거부감같은건 없어요"

 "그렇겠네.. 나는 난생처음 이런곳에 와봐서. 꼭 무슨 죄짓고 온거같이 뜨끔하다"

 

 설마 이오빠도?!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벌레하나도 손으로 못잡을것 같은 위인인데..

 그리고 그런게 있었으면 벌써 봤겠지 내가. 참 착하게 살았구나 싶어 엄마미소로

 화답했다. 뭐지, 이 애늙은이 같은 모습은.

 

 "이제 오빠도 병원 생활 제대로 해야죠? 대체 몇달이나 지났대..넉달은 된것같은데"

 "괜찮아, 그동안 몇번 빠지지도 않았는데 뭐"

 "엄마? 레지던트가 맨날천날 저녁에 집에오고 아침에도 늦게나가고, 교수님들한테

 안혼나요?? 난 진짜 그거 궁금했어"

 "집안에 일있다고 하니까 다들 암말 없던데?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해주셨고"

 "와.. 진짜 이제 내핑계 대지마요~ 나 완전 괜찮으니까!"

 

 오빠가 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말해놓고 나도 웃기기는 했다. 오빠가 아니었음

 나 참 견디기 힘들었을거라고- 나지막하게 얘기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이제 향이 너도 정리가 됐으니까 하는말인데.. 이제 아버지 어머니 호칭 좀

 고치면 안되냐? 언제까지 그럴거야?"

 

 .. 아?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할말을 잃었다.

 

 "그게.. 아 근데 이건 기준오빠랑 기태오빠 때문인데.. 하도 눈치를 주니까,

 자꾸 주눅이 들어서 그렇잖아요. 나라고 뭐 좋아서 그랬나"

 

 "하긴.. 나도 그건 이해하지. 큰형보다는 기태형이 좀.. 유별나긴했어- 그리고 우리

 부르는 호칭도 누구오빠 하지말고 걍 큰오빠 작은오빠 이렇게 좀 부르자 응?

 한집에 사는데 거리감 느껴져서 미치겠다. 가끔보면 너 나한테도 거리 두는거 같아.

 이게 뭔 가족이냐? 부모님이 군식구 데려와서 부엌데기 만든것도 아닌데"

 

 "아 알았어요! 솔직히 내가 이길로 가야되는거 아셨을때 멀리하실 줄 알았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해해주실줄은.. 그렇다고 갑자기 딱 되는건 아니잖아요?

 나한테도 시간은 좀 줘야죠 솔직히"

 

 "그래.. 언제까지 있을거야? 집에 안갈거?"

 

 "가요, 정리하고 나갈테니까 오빠 먼저 나가있어요"

 

 점사를 안본다는건 말이 안되는것 같다. 선명하게 보이고 들리는데 모른척 쌩까고

 살 수 있다는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밖으로 나오니 벌써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진짜 시간 빨리 간다.. 본가하고는 멀지 않게 신당을 마련했다. 엄마가 준 유산은

 부모님께 말씀 드렸더니 나중에 더 쓰임새 있게 쓰는게 좋겠다며 만류하셨다.

 가는 도중에 기명오빠한테 온 전화, 다 모여있으니 언제쯤 도착하냐며 물으셨다

 

 "어? 엄마 거의 다왔어요- 응응, 들어가서 얘기해요"

 

 집에 들어오니 한상 그득하게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어.. 이게뭐에요 다?"

 

 누가봐도 다 못먹을정도의 양인데.. 언제 이걸 다 준비하셨지? 내가 되물었다.

 

 "오늘은 하루정도 시간 비우고 엄마가 집에서 음식 좀 했지. 아빠도 그러고..

 우리는 그런쪽으론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래서 먹는거라도 좀 챙겨야하잖나 싶어서"

 

 "응, 그렇지. 우리가 딱히 해줄게 것밖에 더 있나 뭐-"

 

 민망하신듯 먼산쳐다보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거기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서있지 말고 와서 앉아, 배고프다~"

 

 기태오빠가 빨리 앉으라며 숟가락을 들고 대기중. 기준오빠는 씨익 웃으며 옆자리

 비어있다고 눈짓했다. 흠..! 음!큼! 속으로 헛기침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럼.. 잘먹겠습니다! 엄..마,아빠"

 

 일순간 정적. 뭐? 맞잖아. 나도 내심 뻘쭘해서 인사만 하고선 밥그릇에 시선고정.

 

 "아..? 그..그래, 이제 엄마..라고 불러주는구나"

 

 그게 뭐라고 눈까지 붉어지세요.. 본의아니게 오빠들 눈치보느라 부모님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네요.. 이제라도 잘 할테니까 좀 드세요 다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는 시선 두개가 내게 꽂혔다. 오빠들은 좀 빠져요 -

 기명오빤 자기가 흐뭇한지 싱글벙글.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 꺼려졌던게 사실이다. 왠지 친부모님 잊을것만 같고, 또 그러면 안될것같고.

 근데 그게 꼭 잊어버리거나 등한시 하는게 아니라는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속으로 참 많이 애태우셨겠지.. 처음으로 참 즐겁게 밥을 먹었다.

 

 "그럼 이제 계속 거기 왔다갔다 해야겠네?"

 

 엄마가 과일을 깎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래야겠죠? 뭐 꼭 돈을 벌려고 하는게

 아니니까 아주 명을 떠받들고 가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람들 돕는셈 치고 가는거니

 꼬박꼬박 나가서 치성은 드려야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씀드렸다

 

 "허허.. 나는 공부가 아니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딸이 이런 능력이 있을줄..

 앞으로 기태는 소향이 앞에서 까불면 안되겠네? 그거 참 맘에 드는구나"

 

 아빠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긴.. 꽤 말썽을 많이 부렸었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건 독으로 하고 다녔으니까. 까불면 혼내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삐죽삐죽거리는 기태오빠. 항상 피하기만 했었던 자리에 내가 중심이 되서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잘할게요. 속으로 몇번을 다짐했다.

 

 

 ***

 

 신당에 새벽같이 나와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걸어와보니 30분쯤 걸리길래 앞으로

 운동삼아 걸어다니는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멀다고 얘기하면 분명히 기명오빠가

 데려다주겠다고 나설게 뻔하기 때문에 부러 네시 반에 일어나 출발했다.

 

 "계세요..?"

 

 이제 아홉시밖에 안됐는데.. 누구지? 뒤를 돌아보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을뻔 했다.

 보기만해도 가녀린 여자가 웬 영가인지 뭔지 모를것들을 주렁주렁 어깨에 얹은채로

 들어왔다. 세상에. 말문조차 막히는 광경이었다.

 

 "..어깨 안아파요?"

 

 다짜고짜 묻긴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어떻게 저걸 다 이고서..

 

 "그걸 어떻게.."

 

 그냥 얼핏만봐도 일가족은 죄다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 사람들이

 전부 자살했다는것도 알만했다. 불쌍해라.. 동정이 아닌 연민으로 바라봤다.

 

 "가족은 혼자에요? 얼마전에 어머니까지.. 마음이 많이 힘들겠어요"

 

 "... 흑...흐흑..."

 

 내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끝내 흐느껴 우는 그녀. 부모님 잃은 슬픔은 나도 아니까..

 아무말 없이 다 울때까지 기다려줬다. 이럴땐 기다려주는것 말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걸 아니까..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갛다 못해 부어오르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저한테 왜 이런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3년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들하고 엄마 아빠까지. 친척들도 다 흩어지거나 죽고.. 저까지 죽는건 아닌지.."

 

 목소리에 두려움이 한껏 묻어났다. 그럴테지, 가족들이 죽어나가는데 자기만

 살아있다면 두렵지 않은게 더 이상하지.. 손을 바들바들 떠는 그녀에게 휴지를

 쥐어주다 손목을 봤다. 이미 그녀도 자살을 몇번이나 시도했던 듯 손목에는 칼자국이

 선명했다.

 

 "근데 왜 동생은 얘기하고 오빠는 얘기를 안해요? 제일 먼저 죽은건 오빠인데?"

 

 "..네? .. 그..그걸 어떻게.."

 

 "숨긴다고 달라질게 없어요. 사실대로 말해줘야죠.."

 

 군복을 입고 있는걸로 보아하니 군에서 죽은거군..

 왜 오빠의 존재를 숨긴건지.. 일가족이 전부 자살하게 된데에는 오빠가 원인인데.

 

 "..오빤.. 군대에서 자살을 했어요. 그런데 그 후로 괜찮으시던 어른들부터 아프기

 시작하시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셨고.."

 

 이어지는 뒷 말을 내가 막았다. 오빠는 자살이 아닌데. 그냥 믿어버렸구나

 자살이 아니라고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아오..!! 알았다고. 막 얘기하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그렇게 떠들면 어쩌자는거야.

 

 "자살이라구요?"

 "네.. 그런데 그 후로 거짓말처럼 가족들이 전부.."

 "오빠가 평소에 자살을 할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그냥 믿었어요?"

 "네..?.."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돈.. 또 돈때문이야?

 

 "보상금.. 받았어요?"

 "..."

 "그래서.. 그냥 묻었어요? 아닌거 알면서?"

 "그건 부모님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살기가 힘들었다는건 알겠지만 자기가 오빠를 더 잘 알면서

 그냥 모른척한걸..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당신오빠는 당신을 믿었다고..

 

 "언제까지 거짓말만할 참이야! 차라리 살고싶다고 할것이지. 죽은 네 오빠가 얼마나

 원통할지는 생각도 안나?! 어찌 이리도 모질고 독할꼬. 그러고도 저 살자고 여기까지

 찾아온걸 보면 낯짝도 두껍구나"

 

 "...흑..흐흑...."

 

 대답대신 흐느낌으로 대신하는 그녀. 억울했던 그녀의 오빠가 집안 사람을 차례차례

 자살하게끔 만들었던 것 같다. 자기가 죽은게 자살이 아니라는걸 알리기 위해서?

 참 풀어내기도 지독할만큼 꼬여버린 집안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떻게 해야하나요..어떻게 하면.."

 

 이미 자살한지 수년은 지난 일을 들춰서 진실을 밝히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풀이라도 하도록 도와줘야 할텐데, 실타래는 하나씩 풀어야겠지.

 

 "내일 여섯시에 오빠 물건이 있으면 전부 가져와요.. 어떻게 할지는 내일 말해줄테니 오늘은 돌아가세요"

 

 그녀가 돌아가고 나서야 무거웠던 공기도 한결 가벼워진 듯 했다.

 일가족이 전부 자살이라.. 아직 점심도 지나지 않았는데 큰 숙제 하날 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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