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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안(鬼眼), 천존을 담은 여자
작가 : 적편혈향
작품등록일 : 20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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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신장 (五方神將) - 염라대왕 (閻羅大王)
작성일 : 19-10-05     조회 : 33     추천 : 0     분량 : 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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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씻고 나왔는데도 찌뿌듯하다. 1층에선 뭐가 재밌는지 시끌시끌- 방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우려다 그냥 협탁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이틀이 십년같이 느껴졌다. 새벽에 가서 떡하고 과일하고 골라야 하는데. 오라는 잠은 안오고 잡생각만 그득하다. 무복이야 그냥 걸어뒀지만.. 한복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손도 까딱하기가 싫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마음이 좀 진정되면 잠이 오려나?

 

 똑똑-

 

 노크소리는 들었는데 대답하기가 싫다. 누군진 몰라도 일단 귀찮다. 격하게 귀찮아.

 

 "저기, 소향아"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기태오빠. 그냥 좀 나가주면 안되겠어? 아 머리아파..

 

 "왜?"

 "어? 아니, 친구들이 너랑 얘기하고 싶대서. 뭐 할거있어?"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근데 왜 오빠친구들이 나랑?"

 "그냥, 너 무슨일 하냐고 계속 묻길래 말해줬더니 그러네"

 "그거 신기해서 그러는거 아냐? 그런거 되게 싫은데"

 "헛소리하면 내가 뭐라고 할게 잠깐 내려올래?"

 

 그래 뭐.. 내려가는거야 뭐 어렵다고. 옷갈아입고 내려갈테니 먼저 가있으라고 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떠들면 좀 나아지려나? 아깐 차 뒷좌석에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못봤는데.. 마주 앉아 보고 있자니 어째 기태오빠랑 다들 비슷하게 뺀질거리게 생겼네?

 

 "기태가 엄청 괴롭히죠?"

 

 지금부터 노란머리 빨간머리로 부르겠어 당신네들..

 왼쪽에 앉아있던 노란머리 오빠가 웃으며 말했다. 괴롭힌걸로 따지면 셀 수도 없달까?

 안 괴롭힌 날을 손에 꼽는게 더 빠를정도니까.

 

 "음.. 지금은 아니구요"

 "근데 막 뭐 보이고 그럼.. 무섭고 그렇지 않아요?"

 

 빨간머리 오빠가 엄청 심각한 얼굴로 묻는다. 나도 사람이라니까? 너네 눈앞에 있는

 난 귀신이니? '막 뭐 보이고' 이러면 안무섭게.. 이상하게 이런 질문 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게 더 놀랍다.

 

 "얌마. 니들은 지금 그걸 사람 앉혀놓고 할 질문이냐"

 

 또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빨간머리 오빠가 어딘가 모르게 심상찮다.

 하아.. 신당밖에서조차 보기는 싫어. 하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건 어쩔수가 없나보다.

 괜한 말 하기전에 올라가야겠어. 기태오빠한테 올라가겠다고 했지만 대답도 없다.

 마침 기준오빠가 들어오면서 상황은 얼추 일단락 되는가 했다.

 

 "막내는 기태랑 같이 왔어? 이 시키들은 한동안 안보인다 싶었더니 또 뭉쳐다니냐?"

 

 잘 아는 사이들인가, 기준오빠가 뭐라뭐라 하는 틈을 타서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막내야!"

 

 에잇 젠장. 거기서 날 부르면 어쩌냐고. 결국은 기준오빠 옆에 나란히 앉았다.

 빨간머리 노란머리 오빠는 맞은편에, 기태오빠는 가운데. 무슨 조직회의하는 것 같아. 갑자기 대무님이 도와줘야 한다던 그 사람이 퍼뜩 떠올랐다.

 아 내가 뭔생각을 하는거야?

 

 "둘 중에 누가 제일 말 안들을 것 같아?"

 

 기준오빠가 회장님자세로 앉아서는 제일 말 안들을 것 같은 사람을 꼽아보란다.

 사실은 기태오빠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선택지는 눈앞의 둘 뿐이니...

 

 "오른쪽에 있는 오빠요"

 

 아까 심상찮다 했던 그 빨간머리 오빠.

 

 "왜? 지원이 보단 생긴건 현우가 더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빨간머리가 지원이고 노란머리가 현우라는 사람이구나. 기준오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현우오빠는 티나게 사고쳐서 혼날 스타일이고- 지원오빠는 뒤에서 사고치다

 한번에 대형타 쳐서 사람 기함시킬 스타일이고.. 뭐 제가 보기엔 그래요"

 

 빨간머리 오빠(지원)가 원한을 더 많이 살만한 스타일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괜한 말 했다가 난리날거 같아서. 기준오빠가 숨넘어가게 웃는데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 자기들끼린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어떻게 그렇게 딱 맞췄냐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근데 큰오빠, 나 오늘 좀 일찍 자야될 거 같아요. 내일 새벽에 나가봐야 해서요"

 "음? 그래? 저녁은, 먹고 자야지 않아?"

 

 지금은 그냥 내 육신도 귀찮아 죽겠슴다.. 가서 쉴래요

 

 "아! 저 그럼 막내동생분- 언제 한번 신당에 들러도 되요?"

 

 현우오빠가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니 당신보다는 그 옆사람이 와야될 거 같은데.

 

 "네, 괜찮으실때 오세요-"

 

 아주 살짝 웃어주고는 방으로 올라왔다. 벗다가 저고리 뜯어버릴뻔 했다. 귀찮음이

 극도로 치달아서 아주 짜증으로 변해버릴 지경이었다. 잠옷으로 갈아입어야지-

 하고 그냥 그대로 엎어져 잠들어버렸다

 

 ****

 

 아~주 경쾌하게 귓전을 때리는 알람소리 덕에 상쾌하게 일어났다. 대무님이 자주 가신다는 청과가게와 떡집을 알아둬서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새벽부터 여는곳은 거기뿐이라니 어쩔 수 없지. 사실 과일은 처음 골라보는거라 꽤 난감했다. 그냥 제사상에 올릴거라 예쁜걸로 골라달라고 했다. 아직 그런것까지 구분하기는 어려운 나이랄까? 신당으로 가면서 음식은 잘 해올런지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까먹고 그냥 온다던가 늦게 오면 어쩌지-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미연언니가 일찍 와서 제단에 먼저 절을 한 후에 상을 차렸다. 조부모님이 좋아하시던게.. 음? 전이나 이런건 알겠는데 바나나가 왜 나오지? 살짝 당황했다. 내가 알던 그 제삿상 음식이 아니라서. 집마다 다르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 가지고 오라고 하기는 했지만 이런것도 올려도 되나? 뭐.. 돌아가신분만 좋아하시면 크게 상관없겠지? 얼추 구색은 갖췄다. 신주에 지방을 써서 상 위에 올렸다. 미연언니가 절을 하고 잔에 술을 따라 향 위에서 세번 돌린 뒤 신주 앞에 놓았다.

 

 ** 영가 발원문

 

 영가시여 저희들이 일심으로 염불하니 극락왕생 하옵시고 모두성불 하옵소서

 살아생전 애착하던 사대육신 무엇인고 한순간에 숨거두니 주인없는 목석일세

 인연따라 모인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걸

 모든업장 참회하여 청정으로 돌아가면 영가님이 가시는길 광명으로 가득하리

 영가시어 어디에서 이세상에 오셨다가 가신다니 가시는곳 어디인줄 아시는가

 태어났다 죽는것은 중생계의 흐름이랴 이곳에서 가시면은 저세상에 태어나니

 맺고쌓은 모든감정 가시는길 짐되오니 염불하는 인연으로 남김없이 놓으소서

 미웠던일 용서하고 탐욕심을 버려야만 청정하신 마음으로 불국정토 가시리라

 육친으로 맺은정을 가벼웁게 거두시고 청정해진 업식으로 극락왕생 하옵소서

 빈손으로 오셨다가 빈손으로 가시거늘 그무엇에 얽매여서 극락왕생 못하시나

 저희들이 일심으로 독송하는 진언따라 지옥세계 무너지고 맺은원결 풀어지며

 아미타불 극락세계 상품상생 하옵소서

 

 발원문을 읊는 나도 부모님 생각이 나서 목소리가 떨렸다. 열두살에 들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거의 울기직전에 발원문을 다 읊었다. 왠지 모르게 나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혼이 났다. 남의 집 조상 성불하는데 이게 무슨 난리람..

 장장 세시간에 걸친 의식이 끝이 났다. 말할 힘도 없었다. 마무리까지 전부 하고 나서야 마음 편히 앉을 수 있었다. 이걸 두번이나 더 해야 하다니. 그나마 빨리 끝날 수 있었던건 조부모님이 굳이 나타나셔서 다른 말씀같은 걸 안하셨다는 거다.

 하지만 부모님이랑 동생은 어떨런지.. 할말이 꽤나 많을 것 같은데. 살짝 아찔해졌다. 나도 이런 마음 먹으면 안되는 건 알지만, 사실 부모님은 하실 말씀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떼같은 자식이 군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었는데.. 대체 보상금이 얼마였기에 진상을 살펴볼 생각도 않고 덮었던 걸까.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일은 많이 들어봤어도 부모가 자식을 버린다는 소리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는데.. 마지막에 자기가 한 짓을 뉘우치고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흑제의 손에 끌려가던 미연언니의 오빠가 생각났다.

 

 "음.. 오빠가 참 많이 억울해 했어요"

 

 어제 하지 못한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그랬..겠죠... 오빠가 날 참 많이 아껴줬어요. 그랬는데 내가.."

 "이제 자책은 하지마세요. 시간이 너무 흘렀어요. 오빠가 좋은곳으로 갈 수 있게 자주 오빠가 계신곳에 들러서 인사도 하시고.. 술도 올리시고 그렇게 해요"

 ".........."

 "후임이 총을 잘못 장전해서 오발사고가 났대요. 그래서 오빠가 돌아가신거구요"

 

 이제라도 왜 죽었는지 알아야지.. 그래야 저승 어딘가에 있을 그 오빠도 원통함이 좀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다. 하긴 나보다 더 힘들겠지-

 이제야 떠나보낸다는 것을 실감하는 듯 했다. 소리내어 우는 것 보다 숨죽여 울며 흘리는 눈물이 더 오래간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참회의 눈물인지.. 얼른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가서 좀 쉬고, 내일 다시 보자고 했다.

 

 음.. 지금 내 기분이 뭔지를 모르겠다. 갑자기 엄마아빠가 생각나서 그런건지.

 평정심을 찾기가 꽤 힘들었다. 가슴 한쪽이 시큰거린다. 거기서 잘 보고 계시겠지..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도 못들을만큼 넋을 놓고 있었다.

 

 "저기.."

 

 아, 신당문을 잠근다는걸 깜빡했다. 잠깐 쉴려고 했었는데.. 누군가 싶어 얼굴을 봤는데 어제 왔던 그 사람이었다. 음..? 분명히 다음주까진 올일이 없을텐데..

 

 "네? 무슨일로.."

 "그게.."

 

 쭈뼛쭈뼛.. 뭐지? 들어오려면 오던가. 갑자기 종이가방을 경상 위에 쑥 내밀었다

 

 "이게 뭐에요?"

 

 약간 멈칫하며 몸을 뒤로 뺐다. 뭐야.. 뜬금없이 와가지곤

 

 "어제 천신장군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도와주기로 하셨다고.."

 

 그..그거야 그렇게 말하긴 했지. 그래도 다음주나 되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네.. 근데 왜.."

 "감사인사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요. 다른분 오시기전에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 할말만 하고 가버렸다. 황당하네.. 종이가방속에 있는 작은 상자를 꺼냈다.

 팔찌? 얇은 체인이 세줄로 꼬여있고, 끝에는 꼬리표같은 장식이 달려있다.

 '이걸 왜?' 당최 이게 무슨 뜻인지? 다시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다음주에

 보게 되면 돌려줘야겠다. 괜히 부담스러운 마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거짓말처럼 손님은 오지 않았다. 그나마 한숨돌렸다 싶어 일찍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학교나 병원에 있을 시간이라 마음편하게 걸어왔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기태오빠가 자고 있었다. 언제부터 와서 자고 있는거지?

 그것도 방문까지 훤-하게 열어놓고서 아주 대자로 뻗어주무시고 계시네. 기태오빠가

 술먹고 왔던날 "팔자 편하다?"라는 소리가 떠올랐다. 진짜 제대로 팔자 편하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밥 먹을 준비를 하러 내려왔다.

 

 ♬♪♬♪♬♬♪

 

 막 숟가락을 들려던 순간 우렁차게 울리는 벨소리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아 뭐.. 당연히 기명오빠겠거니 보지도 않고 전화를 받았다

 

 "막내, 밥 먹었어?"

 

 이제 저녁때인데.. 막 먹기전이랍니다 라고 말했더니 데리러오시겠단다. 아서라-

 일찍 집에 와서 밥 먹으려고 하던 도중이라 했다. 뭔가 되게 아쉬워하는 목소린데

 옆에 기명오빠도 같이 있는 듯 했다. 들어오면 같이 먹자고 말하고는 상을 물려뒀다.

 오는길에 내일 쓸 떡은 미리 주문해뒀다. 새벽에 가서 갓 나온 떡을 사려니 시간이

 너무 걸려서.. 하마터면 늦을뻔했었기 때문에 내일은 그러지 말자 싶어 미리 움직였다.

 

 하아- 쇼파에 앉아서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옆으로 누워버렸다. 폰으로 친구들 어떻게 지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지배들.. 그래도 친구가 학교까지 그만뒀는데 연락한통이 없냐? 나도 연락 안하기는 했지만. 하긴.. 친구들이 신당까지 온다고 생각 하니 그다지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신기해도 할거고 무서워하기도 할거고.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그냥 그런 시선을 받는게 달갑지 않아서 연락해보려다 말았다.

 

 "소향아~"

 

 쇼파에 누워있어 내가 안보여서 그랬나. 기명오빠가 부르는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어헉! 막내 거깄었냐? 놀랬잖아"

 

 뭐 그렇다고 경기할거까지 있어요? 밥만 퍼면 된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내가 할게~"

 

 어제 하루 못봤다고 되게 오랜만에 보는듯한 느낌이 드는 기명오빠다. 무슨 기분좋은

 일이 있는지 연신 싱글벙글. 내가 '무슨일 있었어요?'라는 눈빛으로 기준오빠를 봤다.

 

 "야, 자꾸 나사빠진 놈처럼 해실댈래? 오늘 고백했는데 성공했다고 저런다"

 

 헐.. 그거 하나때매 사람이 칠득이처럼 됐다고? 누가봐도 모자라 보이잖아...

 내가 뜨악한 표정으로 서있으니 그제야 기명오빠가 날 보고는 정신을 좀 차린듯 했다

 

 "큼큼, 미안. 근데 진짜 기분이 좋아서 어떻게 표현이 안되네"

 

 네네, 알았으니까 그만 웃으시고 진지 잡수세요 오라버니? 밥 먹는데 하마터면

 광대가 대기권 뚫고 나가는거 볼뻔했다. 저렇게 좋을까? 결국은 기준오빠가 숟가락으로 머리한대 줘 박고서야 진정이 된 거 같았다. 숨만 쉬어도 행복해보이네.

 

 "니가 이러는거 알면 진이가 절대 너 안볼거 같다. 이런걸 몰래 얘기를 해줘야 되는데"

 "형!! 안되지, 와 진짜 그건 아니다"

 

 펄쩍펄쩍 뛰며 손사래 치는데 진풍경이다 정말. 한시간쯤은 기명오빠가 그 언니를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어떻게 친해졌고- 고백하고 오케이사인까지 받은 얘기를 뭔 대하소설읽듯 진지하게 들어야 했다. 진짜 그 언니한테 일러주고 싶네 푼수 여기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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