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시자마자 아빠가 제일 먼저 나를 찾았다.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었는데
기명오빠가 내 방에 와서 잠깐 내려오라는 소리에 그제서야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내려갔다.
"이제 좀 괜찮고? 걱정 많이 했는데.."
"괜찮아요, 근데 저 아빠 있죠.. 드릴말씀이 있어서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고도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니까 이해해주시겠지. 막 말하려던 찰나 기태오빠도 들어왔다. 분위기 왜이리 다운됐냐고
말하면서 눈치를 보더니 그냥 조용히 기명오빠 옆에 앉았다.
"뭔데? 뭐 부탁할거라도 생겼니?"
차라리 부탁할 수 있는거면 엄청 기쁠것 같아요 진심. 신당에 찾아온 사람중에 대무님
하고 관련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직업이 소위 말하는 '조폭'인 듯 하더라. 특별히
같이 가자고 전화까지 해서 부탁하시길래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 가게라는게
나이트라는데 새벽이나 사람 없을 시간대에 드나들겠지만, 혹시나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거 오해하지 마시라. 말하다 보니 왤케 자꾸 부연설명이 길어지는지
한참동안 나 혼자 독백하듯이 설명 하고는 대답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음.. 다른것보다 위험할까 걱정이구나. 그 분도 같이 가신다니 걱정이야 안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좀 꺼림칙한 건 사실이다."
아빠가 꽤 심각한 얼굴로 대답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부탁까지 받은
이상 지금 와서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기명오빠는 탐탁잖은 표정이다. 제일 말 많을
줄 알았던 기태오빠는 조용하고. 엄마도 팔짱을 끼고 계시는데 좋지는 않은 표정이다.
"저 혼자라면 거절했을텐데.. 아무래도 부탁까지 직접 하시는 걸 보니 거절하기가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라서요. 최대한 사고 없이 노력해볼게요. 다른것보다 전 혹시나-
엄마 아빠 아시는 사람이 보고 '저 집 딸이 나이도 어린데 나이트 다니더라' 그런말
듣게 되실까 걱정되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더하지도 보태지도 않고 딱 내가 걱정한 그만큼을 말씀드렸다.
한참 고민하시던 아빠가 대무님과 직접 통화 한번 해보시겠다고 자리를 뜨셨다.
엄마는 가만히 날 보고 계시고. 그냥 안쓰러워하시는 것 같다. '어린나이에..' 뭐
그런 눈빛이랄까.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아빠가 다시 오실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모쪼록 저희 딸 잘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끝내고 나오시는 얼굴이 어둡지 않으셔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대무님이 어떻게
얘기를 하셨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안심할 수 있겠다고 하시길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아빠를 보시고는 들어가서 얘기 좀 하자고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근데, 꼭 거기 직접 가야만 해결이 되는거야?"
기명오빠가 볼멘소릴 하며 말을 꺼냈다.
"그래야죠.. 사람한테 붙은게 아니라 그 장소에 머물러 있는거니까요"
"뭐 얼마나 걸리는 일인데? 하루? 이틀?"
차라리 그정도 걸리는 일이면 좋겠는데 한달정도 걸린다는 소리에 기태오빠도 놀란눈
으로 날 쳐다봤다. 그정도면 누가 봐도 보겠다고. 나도 그걸 아니까 얘기드렸지...
*****
신당에서 대무님을 오랜만에 뵐 수 있었다. 누가봐도 엉망인 내 얼굴을 보시고서는
한참 말 없이 계셨다.
"요즘 꿈자리가 영 좋지 않더니 네게 안좋은일이 있었나 보구나"
"도와주고 싶었는데 끝까지 그러질 못해서 마음이 안좋기는 했어요"
"사람 뜻대로 되는게 어딨겠니.. 나도 처음 이길로 들었을때는 모든 사람을 다 도와
줄 수 있을 줄 알았지. 허나 그건 내 바람일뿐이었어. 그러니 자책같은거 하지말거라"
그 말을 듣는 내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죠 대무님-
뒤이어 할 말을 찾지못해 고개를 떨궜다. 날 보던 대무님은 벌써부터 그러면 나중에 더 큰일 겪었을땐 버틸 수 없을거라고 꾸짖으셨다. 자정 넘어 이리로 편하게 입고
오면 된다고 하셨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보고는 알겠다고 했다. '꽤 멀리 있네..'
데려다 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기명오빠가 문득 생각이 났다. 요즘 오빠들하고는
어떠냐는 질문에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막내오빠는 연애한다고 바쁘고, 둘째오빠는 대회다 뭐다 그거 준비하느라 정신없고. 큰오빠는 원래 바쁜 사람이라 얼굴보고 인사하고 어쩌다 같이 밥먹는 그정도라고.. 대무님도 가만히 듣고 계시더니 다행이라시며 웃으셨다. 그럼요, 다행이죠. 별 탈 없이 지내니까요.
"나는 오후에 일이 있어 이만 일어나봐야겠다. 집에서 출발할때 전화하거라"
차타고 가시는것 까지 보고 신당으로 들어오는 참에 고양이 한마리가 문 앞에 앉아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뭐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 것 보니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누군가 버렸거나 잃어버린 듯 했다. 쓰다듬으려 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살아있는게..맞나?' 이젠 그런 의심부터 하게 된다. 내가 보고 있는게 또 죽은 영은
아닐런지, 막 손을 뻗었는데 고개를 갸웃하더니 어디론가 총총총 걸어가고 있었다.
뭘까? 신기하기도 하고 끌리는 느낌도 있어 뒤를 쫓았다. 꼭 따라오라고 안내하는 것
처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는 고양이 뒷모습을 보니 내가 제 주인이라도 되는 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후미진곳으로 들어간 고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 놓친건가..?"
뭔가 모를 아쉬움이 들었다. 꽤 이쁘게 생긴 고양이었다. 꼭 젖소처럼 얼룩덜룩한
무늬에 코에는 까만 점까지. 살집도 통통하게 올라 뒤에서 걷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을만큼 뒤뚱거리는 모습이 귀여웠기 때문이다. 뭐.. 놓친거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뒤돌아 서는데..
"야옹- 야아오옹.."
성묘의 울음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 골목을 다시 자세히 뒤져봤다. 에어컨 실외기
옆에 다 찢어진 박스가 하나 있었다. 어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새끼 고양이
세마리가 옹기종기 엉겨붙어 떨고 있었다. 하긴 사람도 추운데 니들이라고 안추울까?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지만 함부로 새끼를 만지면 어미고양이가 돌아와서 사람냄새를
맡고는 그 새끼를 버린다는 얘기가 기억이 났다. 꼬물꼬물 서로 체온을 느끼기라도
하듯 붙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어미한테 버림받게는 할 수 없이 쪼그려 앉아
있다 다시 일어섰다. 안 입어도 될 옷 같은게 있으면 그거라도 깔아줘야겠다- 하고
신당으로 돌아왔다. 고양이가 잡귀를 잘 쫓는다는 얘기도 떠올랐다. 키우면 좋을텐데.
손님이 없을 것 같아 점심때까지 앉아있다가 집에가서 옷이라도 가져오자 싶어 문을
열었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야?' 아까 내가 봤던 그 박스에
담긴 새끼들이 문 옆에 오들오들 떨고 있고, 그 새끼들을 끌어안고 있는 어미고양이.
분명 내가 뒤따라갔던 그 고양이었다. 병원에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어미를
들었는데 그 순간 목이 축 늘어져버렸다. 헐떡거리던 숨소리가 잦아들어버린 것이다.
일부러 여기까지 데리고 온걸까. 새끼들과 어미고양이를 안고 병원으로 갔다.
이미 죽은 어미고양이는 화장해달라고 했고, 다행히 새끼들은 건강에 문제가 없다했다.
그래도 그 험한 밖에서 꽤 새끼들은 잘 건사했구나. 내가 기르지 못해도 좋은 집으로 보내줄때까지는 보살피자 싶어 의사의 조언을 받아 필요한것들을 주섬주섬 사왔다.
울타리 안에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손님들이 고양이 키워도 괜찮으냐 묻는데 도통
그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뭐.. 귀신 쫓는다는 그런것 때매 그런건가?
몇몇 손님들이 신당에 있던 새끼들을 보고 놀라는 눈치라 집에 데려가야겠다 싶었다.
아빠한테 물어볼까 싶어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으셨다. 엄마도 그렇고.. 그럼 그다음
집에 어른은 큰오빠니까.. 단축번호를 꾹 눌렀다. 오빠라도 좀 받아봐요-
"응 막내, 무슨 일?"
"아.. 그게 있죠 오빠. 오늘 집에 와요?"
못본지 사흘은 된거 같네, 넘었나?
"안 그래도 잠깐 집에 가야해서 지금 가고 있어. 왜?"
"그럼 저랑 같이 가요"
"그래~ 나와있어 금방 도착할거야"
입고왔던 외투에다 새끼들을 올려서 품에 꼭 안았다.
"근데 왜 옷을 안입고 둘둘 말아놓고 있어? 안추워?"
차에 타서 외투를 꼭 안고 있는 나를 보고 기준오빠가 물었다.
"아니 오빠 그게.. 아까 말이에요"
여차저차 이렇게 된 일이라고 말하고는 외투안에 있던 고양이를 보여줬다
"헉. 엄청 작네? 근데 난 별 상관없겠다만.. 부모님이나 기명이랑 기태가 괜찮을지
모르겠다. 나야 워낙 집에 잘 없으니까 가끔봐서 괜찮겠는데"
"고양이 싫어하거나 무서워해요?"
"아니, 그냥 집에서 동물을 한번도 키워본적이 없어서. 낯설어할걸?"
"저도 키운다기보다는 보살피다 좋은 집 있으면 분양하려구요"
"흠.. 집에 기태는 있을테니까 일단 가서 얘기하자"
신호받는동안 마다 힐끗힐끗 고양이들을 자꾸 쳐다봤다. 처음에는 앙칼지게 울었는데
따뜻해서 나른해진건지 이내 세마리 다 잠이 들어있었다.
"형!! 내가 빨리 오랬잖.. 어? 소향이 너도 같이 왔어? 근데 밖에 추워죽겠는데
외투는 왜 안입고 들고 들어오냐?"
이래서 형제는 똑같나 봅니다. 어째 토씨하나 안틀리고 같은 소릴 하실까나 그래.
"아 임마, 그렇게 급한것도 아닌데 뭘 호들갑이야. 그리고 니가 못찾은거지 내가
숨겼냐? 넌 내가 찾았을때 나오면 오지게 맞을 줄 알아라"
뭔진 모르겠지만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2층으로 잠시 올라갔고 나는 쇼파에 앉아 품에
있던 고양이들을 무릎에 내려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엄마'라는 존재는 정말 대단
하구나 싶었다. 거의 다 죽어가던 몸으로 어떻게 그 거리를 옮겨둘 수 있었을까.
반대만 안하신다면 내가 잘 키워보고 싶었다. 새끼들이 귀를 팔랑거리다 갑자기 깬건
오빠들이 2층에서 쿵쿵거리며 뛰어 내려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야, 넌 진짜 나중에 보자. 찾아보라니까 사람 귀찮게 전화 해대더니"
"아 내 눈에는 안보이더라니까?! 그리고 형 방 뒤지는거 겁나 싫어하잖아. 그래서
밖에 보이는것만 보고 말았지"
"핑계도 좋다. 귀찮아서 니가 나 부른거 모를줄 아냐?"
그 투닥거리던 말싸움은 기태오빠가 새끼고양이들을 보고서 일단락 됐다.
"그건 또 뭐냐? 어디서 주워왔어??"
신기한 눈으로 맞은편에 앉아 물었다. 대강 어미가 죽어서 데려오기는 했는데 허락도
못받았고 혹시 좋은 사람 있으면 분양하려고 한다 했다. 허락받으면 내가 키우겠지만.
"근데 부모님이 어떠실지 모르니까 제 방에 둘게요. 큰오빠 병원가면 물어봐주세요.
집에 늦게 오신다 하셨거든요 오늘"
"오늘 못들어오실지도 몰라, 물어봐줄게. 기태 니가 볼땐 어떤데?"
"나? 내가 뭘 키워봤어야 알지. 근데 고양이는 사납지 않나?"
"오빠가 괴롭히지만 않으면 안사나울걸요?"
기태오빠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래 너 잘났다-하고 삐죽거렸다. 만약에 기르게 된다면
한마리는 자기도 키우고 싶다고 해서 허락부터 받자고 말했다. 기준오빠가 병원에
가고 두시간쯤 지났을때 전화가 왔다.
"집만 안 어지르면 괜찮다시는데? 근데 너도 집에 없고 관리를 누가 하려나.."
"생각해볼게요. 세마리 다 무리다 싶으면 한마리만 키우면 되죠, 오빠 고마워요!"
방에 두고 키우면 집 어지를건 없을거 같다. 기태오빠한테도 얘기했더니 굳이 자기가
한마리 키울거라며 뭘 키울지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가지 신기했던건 어미는 무늬가 있었는데 턱시도 입은것처럼 목주변과 가슴까지만
하얗고 나머지는 전부 검은색인 한마리와, 무늬없이 전부 하얀색과 회색인 두마리.
아빠를 닮았나? 오빠는 하얀 고양이가 좋다고 이름을 나비로 하겠다ㄱ...
왜 하필 하얀색인데 나비야. 어째서 나비냐고? 친구중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있다며
들뜬 얼굴로 새끼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뭐야 진짜.. 방에 데리고 올라와 병원에서
사온 자묘용 이유식을 줬다.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고 있다. 흠.. 좀 있으면
출발해야 할 시간이네. 낑낑거리고 울지만 않으면 참 좋겠는데.. 밤에 고양이 울음소리만큼 소름돋는 소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집을 가든 여기서 살게되든 얌전히만 있어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침대에 올려둘까 했지만 저들끼리 놀다 떨어지면 다칠 것 같아 바닥에 그대로 내버려뒀다. 타닷 타닷- 뛰노는 소릴 눈감고 듣고 있는데 기명오빠가 전화를 했다.
"고양이 있다면서?!"
이게 좋아하는건지 싫어하는건지 모르겠다.
"응응, 누가 그래요?"
"아버지가. 그리고 둘째형이. 형 신났던데? 근데 촌스럽게 나비가 뭐냐 나비가-"
"그러니까요~ 언제적 나비냐구. 그것때매 전화했어요?"
"아! 지금 집에 가고 있거든, 오늘 거기 간다더니 몇시쯤 가?"
"자정 넘어서 출발할거에요"
다왔으니 집에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허락 받았으니 자기도 한마리 키우고
싶다는데 거 당신은 바쁘잖소. 맘에 드는 애 이름만 지으라고 했다. 어차피 관리는 내
가 하는게 현실적이니깐.. 근데 작명센스는 엉망인게 형제가 맞는 것 같다.
난 좀 이쁜 이름으로 하고 싶은데 무슨 이상한 '조로'니 '배트맨'이니... 검은 고양이
가 맘에 든 건 알아들었는데 이름은 그냥 짓지 말라고 했다. 내가 짓는다고.
오빠가 잠깐 방에 간 사이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데려다 줄까라는 오빠
말에 혼자 갈 수 있으니 고양이들 잘 봐달라고 당부를 했다. 시간이 많이 늦어서 그런
건진 모르지만 거리가 좀 있는 동네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SHARP 나이트' 라고 적힌 간판을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는데 어디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사람이었다. 날 보더니 엄청 반가워하며 인사한다. 음.. 네네, 안녕하세요- 저렇게 큰 간판을 왜 못봤을까. 누가봐도 '여기가 나이트입니다' 하고 있는데 말이지.
"아, 잠깐만요"
내가 집을 나올때 챙겼던 종이가방을 건넸다.
"이게 뭐..?"
딱 보면 알텐데, 자기가 나한테 줬던 선물이었다는걸..
"제가 이걸 받을만한 일을 한것도 아니고.. 부담스럽기도 해요. 좋은 사람 생기면
그때 그분한테 선물하세요"
대답은 듣지 않고 입구에 서 계시던 대무님을 보고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뭔진 모르겠지만 희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 거기다 중압감 느껴지는 공기의 무게.
엄마를 가끔 찾아오던 속칭 '어깨'로 불리는 듯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있었다.
'뭐야.. 형님 미친거 아냐? 이제 새파랗게 어린 애까지 불러다가 이게 뭐하는 짓이야?'
'조용히 해 미친놈아, 들리면 우리 모가지야'
남자 서너명이 구석에 모여 수군거리고 있다. 깔보는 듯한 눈빛, 훑어내리는 시선
가히 유쾌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 사람이 대무님 옆에서 뭔가를 상의하는 동안
나는 그 수군거리던 남자무리를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기분나빠.
"그래, 진민아.. 이게 하루이틀 걸릴일이 아니라고 했잖니. 길면 한달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가게를 이렇게 닫아놓으면 나중에 네가 곤란해지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사람들 출입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더니 가게 문을 당분간 닫겠다고 한 모양이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 아무도 없을때 확인하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난감하기 이를데가 없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모님은 그렇다 치지만.. 저기 저 애는 괜찮을까요?"
힐끗 나를 보며 묻는다. 그 시선을 피해 천천히 가게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괜찮아. 나보다 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저번에 네가 하려던 말았던 말이 뭐였니?"
"아.. 제가 여기오기 전부터 여기 있었던 애들이 있었는데.. 귀신이 보인다는 둥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둥.. 그런 얘기를 몇번 듣더니 통제가 잘 안되서요. 요즘 형님도 절 자꾸 의심하시고.. 애들 빼돌려 딴짓하는거 아니냐고요. 오해받아 좋을게 없어서
망설이다가 이번에 말씀 드리게 됐어요"
그렇구나. 아주 구석진 곳에서 오래된 비상구를 발견했다. 안쓰는건가?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는데 수군대던 무리중 한명이 내옆으로 다가와 나를 거칠게 밀쳐냈다
"아, 거 좀 물어보고 만지쇼. 어려서 그런가 겁이없어 겁이."
굉장히 불쾌한 언사다.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데 진민이라는 남자가 다가왔다.
"도와주러 오신분한테 무슨 무식한 행사머리냐"
진민이라는 사람의 타박을 듣더니 '니가 뭔데 나한테 지x이냐' 라는 표정이다.
기분나쁜 듯 나를 몇번 흘겨보더니 혀를 쯧- 차고는 다시 그 무리로 돌아갔다.
"죄송합니다. 근데 여기는 왜.."
이유는 여기 열어보고 설명할게요. 이 남자가 신당으로 나를 찾아왔을때는 분명 여기저기 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여기 직접와서 보아하니 그런게 없어서 의아했다. 내가 잘못 봤을리가 없는데. 끼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쿨럭.."
인상을 찡그리며 그 남자에게 물었다. 이렇게 타는내가 진동을 하는데 냄새 안나느냐고
그 남자는 되려 나를 보며 이상한 사람 보듯 되묻는다. 무슨 소리 하냐고..
그럼 이건 또 뭐지? 눈 앞에 펼쳐진 칠흑같은 어둠과 뿌연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