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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안(鬼眼), 천존을 담은 여자
작가 : 적편혈향
작품등록일 : 20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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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 #
작성일 : 19-10-06     조회 : 29     추천 : 0     분량 : 8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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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향아?"

 

 내가 무슨 에디슨도 아니고 네시간만 자고 일어나야겠냐고.. 잠이 덜깬 눈을 비비고 일

 어나 기태오빠를 보고 되물었다. 근데 그냥 깨워봤단다. 진짜 맞고 싶어?

 

 "오빠, 진지하게 묻는건데 말이지"

 "응, 왜?"

 "딱 한대만 나한테 맞아줄래?"

 

 기태오빠가 몸을 뒤로 빼며 재밌다는 듯 웃는다. 두손엔 새끼고양이가 들려있었다.

 

 "나비 말고 흰둥이라고 짓기로 했음, 귀엽지 않아?"

 

 흰둥이는 또 뭐냐.. 어째서냐고. 그 강아지같은 이름은 뭐냐고 말이다?

 

 "엄~청나게 귀엽네. 귀여워서 기절할뻔"

 "다른 애들은? 이름 지었어?"

 

 지금 이름에 신경쓸 겨를이 어딨었겠냐 라고 말하려다 뒤에서 서계시던 엄마를 보고 말을 멈췄다. 엄마가 기태오빠를 보며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셨다.

 

 "향아, 별일 없지?"

 

 .. 음.. 그 별일이라는게 굉장히 많은 의미가 있지 않나요 엄마?

 

 "네, 근데 안색이 별로 안좋아보여요 엄마"

 ".. 그게 말이지.."

 

 의자에 앉아계시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시고는 무엇인가 고심하는 표정이다. 어제 아빠와 같은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나. 엄마가 다시 말씀하실때까지 아무말없이 기다렸다.

 

 "어제 아빠가 아무말 없었니?"

 "있었..어요."

 

 역시.. 내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건가? 뒷말은 더 잇지 않았다.

 

 "소향이 네 생각은 어때? 변함없어?"

 "어제 아빠한테 말씀드렸어요. 최대한 빨리 끝내겠다구요.. 책임지기로 했던거니까요"

 "그럼 이렇게 하는건 어떻겠어? 앞으로 이런 부탁은 안받겠다고"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너무 풀죽어있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거리시곤 나가셨다. '에휴..' 눈치없는 기태 오빠는 엄마가 나가시고 바로 들어와서 내내 고양이 얘기만 했다. 차라리 딴데 신경쓰게 해줘서 고맙네요. 근데 흰둥이 데리고 나가줘요 좀!

 

 "야야, 너무 기죽지마라. 엄마가 원래 좀 까탈스러운데 너한테만 안그러셨던거야. 인제

 성격나오시는듯~ 그래도 너 이뻐하시는거 같다. 많이 양보하시네"

 "흰둥이 데리고 나가요~ 진짜 맞기전에~"

 

 아주 밝게 웃으며 당장 나가라고 말했다. 그래도 끝까지 나 없을때 잘 보살펴주겠다고 걱정 말란다. 뭐래니.. 다시 자는건 안될 것 같아 신당으로 출발했다. 신당 바로 앞에서 어제의 그 경찰과 마주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 인사도 못드리고 갔었네요. 복채..도 못드렸고 해서 다시 물어볼 것도 있구요, 겸사겸사 왔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물어볼거란게.."

 

 남자 여자 가릴것 없는 사진들을 무더기로 안주머니에서 꺼냈다.

 

 "이 사진들하고 마지막 사진을 잘 봐주십시오. 제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할게 뭐 있나요. 경찰이시면 이게 일 아니에요?"

 

 그 남자가 놀란 눈치였지만 사진을 살피고 있었다. 다들 죽었네.. 후우. 마지막 사진을

 보는데 아직 죽지 않았다.

 

 "마지막 사람은 죽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거 같았는데 아니에요?"

 "맞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거나 어린 아이들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의 집을

 구역별로 나눠봤을때 예상 피해자는 이 사람 한명뿐입니다. 보호관찰중에 사라져서

 지금 현재 찾고 있습니다."

 

 그랬구나, 대답하려고 하는데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보통 겹치는 경우는 잘 없는데..

 

 "아, 손님이 계시군요.. 조금 이따 다시.."

 

 진민씨였다. 좀 쫓기듯 다급하게 들어온 것 같았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아.. 두 사람 직업이 상극인데 마주치면 안되는거 아닌가? 신경이 좀 쓰이기 시작했다.

 

 "너.."

 

 경찰이 먼저 아는척을 했다. 진민씨도 나가지 않고 불편한 표정으로 서있다.

 

 ".. 전화 드리겠습니다. 어제 이모님이 번호 가르쳐주시더군요"

 

 차가운 표정으로 뒤돌아 서더니 나가버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혹시 도움이 될까 말씀드리는건데요.. 어제 저희 오빠가 병원에서 피를 흘리고 들어온

 남자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치료도 받지 않고 그냥 뛰어 나갔다구요."

 "아..!"

 "그런데 모자를 푹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서 어제 봤던 사진 속 얼굴을 설명해도 모르겠다는 말밖에 못들었어요. 혹시나 해서 말씀드려보는거에요. 이 근처에 아직 숨어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큰 도움이 될겁니다. 아 그리고 여기 복채.."

 

 빳빳한 5만원짜리 신권을 두장 올려둔다. 음..

 

 "아뇨 돈을 받자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범인 꼭 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넣어두세요"

 "그래도 이건 예의가 아닌.."

 "범인 잡으면 그때 한번 들러주세요"

 "도움받을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감사합니다. 혹시 연락처를 좀.."

 "명함을 주고 가세요. 신당 마치는대로 전화 한통 드릴게요"

 

 사진을 챙겨서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나갔다. 나가자마자 전화오는거 보니 진민씨겠구나 싶었다.

 

 "여보세요?"

 "네, 저 김진민입니다. 들어가도 되나 싶어서요"

 

 다 보고 있었을텐데 왜 묻는지. 들어오는 그 사람의 표정이 가히 좋지는 않다.

 

 "저.. 이모님이 쓰러지셨어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쓰러지셨다니?!

 

 "그게.. 어제 저 나갈때까지만해도.."

 "괜찮으신게 아니었어요. 얼마 안지나서 바로 쓰러지셨어요."

 "그럼 병원에 계실텐데.. 전화번호도 알면서 전화하면 되잖아요!"

 

 이런 멍청한 인간같으니.. 번호 알았다면서 왜 전화를 안하고 기다리다 이제 말해.

 신경질적으로 그 사람의 말을 받아쳤다. 언제 고였는지 모를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사람의 팔을 잡아 끌어냈다. 당장 병원으로 앞장서라고 소리쳤다. 또, 내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잃을 수 없다.

 이미 부모님으로도 충분한 절망감을 느꼈다. 이 남자가 말하지 않았다면 난 멍청하게

 몰랐을테고, 잘못되기라도 하셨다면 그때서야 또 후회하며 가슴쳤을지도 모른다.

 

 "자..잠깐만요, 차는 반대쪽에 있습니다"

 

 나도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진 모르겠지만 내 완력에 의해 질질 끌려오다시피 한

 진민씨가 가까스로 한마디를 했다. 순간적으로 놓친 이성을 다시 잡았다. '젠장..!'

 그 사람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원무과에서 바들바들 떨며 대무님이 계신 병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 그 환자분은 지금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 뭐라고? 왜 중환자실이야?! 진민이라는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돌아봤다

 

 "......"

 

 이를 꽉 악물고 중환자실로 뛰었다. 아니다, 잘못된걸꺼다. 내가 오기전에 분명 병실은 옮겨졌을거다. 그럴리 없다고 눈물 범벅인 얼굴로 중환자실 앞에 섰다

 

 "보호자 분 소독하시고 캡쓰시고, 그 후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급해죽겠는데...!! 그래도 막무가내로 들어갔다 끌려나오는것보단 낫겠지. 응급실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침대에 적혀있는 네임카드를 보며 찾고 있었다. 젊은남자가 앉아있는 침대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누워계시는 대무님을 발견했다.

 

 ".. 안녕하세요"

 

 힘없이 일어나는 남자, 뒤이어 진민이라는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현우야"

 "아까 나가더니 이 사람 데려오려고 그랬어?"

 

 .. 세상이 빙빙 도는 느낌이다. 왜 나한테만 이런일이 일어나는건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 앉았다. 그냥 오시지 말라고 했어야 했던거였는데...

 스스로 자책만 하는 내가 너무 미련하고 한심했다. 왜 한치앞을 못봤냐고 난..!!!

 

 "진민아, 이 사람 데리고 좀 나가라. 이러다 엄마보다 먼저 큰일 치르겠네"

 

 진민씨가 내 팔을 잡아 올렸다.

 

 "놔봐요. 지금 상태가 어떠신건데요? 뭐때문에 쓰러지신건데요?"

 "급성 심근경색이요. 일어나시면 연락드릴테니까 나가계세요. 제가 보호자거든요"

 

 현우라는 사람의 말투가 꽤나 공격적이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들이라 한소리

 하지도 못하겠고.. 중환자실을 나오자 마자 전화를 걸었다

 

 "큰오빠, 바빠요?"

 "응? 아니 무슨일있어?"

 "급성 심근경색이란거 심각한거에요?"

 "음.. 어떤거냐에 따라 달라. 응급처치를 잘했다면 심각하지는 않지"

 "그럼..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면요..?"

 "어... 흠.. 환자를 봐야 알겠지만.. 그정도면 가망이 없을수도...."

 "오빠 병원으로 옮기거나 그런거 못해요?"

 "그건 보호자가 옮겨달라고 하면 가능하지. 왜? 무슨일인데"

 "...대무님이.. 중환자실에 있어요"

 

 숨가쁘게 대화를 이어가다 결국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전화기를 잡고 있는 손마저 떨리고 있었다. 눈물은 멈출줄을 모르고, 나는 뒷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어.

 

 "........ 일단 보호자가 있으면 그 사람한테 물어봐야해. 아무리 옮기고 싶어도

 그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아냐"

 

 진민씨를 돌아보며 친구니까 물어보라고 했다. 옮기겠다고 하면 당장 옮기자고.

 아빠도 오빠들도 의사니까 뭐든 방법이 있을거라고 다그쳐 재촉했다.

 하지만 무슨생각인건지 옮기지 않겠다고 하는 답을 듣고 반쯤 미친상태로 기준오빠에게로 갔다. 눈에 뵈는게 없었다. 진료중이라고 되어있었지만 밖에 있던 간호사가 막지 않아서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 그러니까 앞으로 식단 조절을.."

 "오빠!"

 

 그때까지 울고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은 분명 엉망이었던게 틀림없지만.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환자를 서둘러 내보내고는 진정하라고 했지만 진정이 될 상황인가 이게. 무슨 방법 좀 찾아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면 안된다는거 알고 있었지만 처음보는 내 모습에 큰오빠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보호자가 안하겠다고 했다며? 그럼 우리도 방법이 없어. 에휴.. 병원이 어딘데?"

 "세진대학병원요. 아는곳이에요?"

 "어.. 아, 그놈이 지금 거기 있는게 맞나.. 전화 한번만 해볼게"

 

 통화가 길어지는 만큼 내 불안한 마음도 점점 커져갔다.

 

 "그래, 교수님한테 한번 물어봐라 그럼. 아니, Transfer는 안되지. 보호자가 안한다고 했대. 어어. 내가 가서 환자 살펴라도 볼 수 있는가 그것만 좀. 그래, 부탁 좀 하자"

 

 전화를 끊자마자 물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이 있는거냐고.

 

 "숨 좀 돌리자 막내야. 원래 이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부탁하시면 모를까 친구가 다행히 거기 있어서 물어봐달라고는 했다. 운 좋게 허락해주시면 가서 내가 상태정도는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은 어려워"

 "그럼 아빠한테 가면 될 수도 있어요?"

 "아니, 어려울거다. 아버지도 지금 바쁘시거든"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처음하는 부탁이니 들어주면 안되느냐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이건 민감한 문제거든, 다른 병원 의사들이 왔다갔다 하는건 흔치 않아. 자기들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서. 나도 그렇고, 우리 병원에 다른 병원 의사가 이런 부탁하면 단칼에 거절하지 싶은데.. 거절하지 않는다면 오빠랑 같이 가보자"

 

 이럴때 천존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야.. 내가 내 한치앞을 못보는데.

 곧이어 울리는 전화. 온통 신경은 통화내용에 쏠려있었다

 

 "아, 네. 그럼요, 김교수님이 거기 계셨어요? 아.. 네네. 죄송합니다. 그게.. 막내동생한테 중요한 분이라서.. 네. 가능하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다시 세진병원으로 가는길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일일이 걸리는 신호등도 짜증났다. 그냥 무시하고 다 지나가버렸으면 했다. 그만큼 내가 제정신이 아니란 반증이겠지.. 중환자실에서 대무님을 한참 살피던 오빠의 낯색이 어두워졌다. 말 좀 해줘요..

 나 진짜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에요..

 

 "일단 나가자, 중환자실에서 시끄럽게 하면 안돼. 나가서 얘기하자"

 

 이미 울만큼 울어버려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어떤거에요? 일어나실 수 있죠?"

 "... 그게.. 그게 그러니까.."

 "왜요, 얘기 좀 해보라구요 오빠.. 네?"

 "이런말 하는게 미안하지만.. 가망이 없어보인다.."

 

 오빠 팔을 붙잡고 묻던 내가 휘청거렸다. 반쯤은 실성했던 것 같다.

 

 "막내야, 일단 집에 가자. 데려다줄테니까 좀 쉬고 있어"

 

 싫다는 말도, 여기 있겠다는 말도, 아무런 말도 할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했을땐 기태오빠가 쇼파에 앉아 고양이랑 놀고 있었다

 

 "어? 형이 이시간에 무슨 일? 넌 또 얼굴이 왜 그렇게 퉁퉁 부었어?"

 

 기태오빠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방으로 올라갔다. 지금 그런 말 따위 상대해 줄 기분이 아니라서. 가망이 없다니.. 애꿎은 기준오빠마저 원망하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거 맞느냐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말도 안되는 억지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무서웠다. 또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낼 생각을 해야 한다니. 그래도 끝까지 정신줄 놓지 않고 있었다. 깨어나셨다는 전화를 혹여나 받지 못할까봐. 이틀밤낮을 꼬박 새워가며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방에 있었다. 장난만 치던 기태오빠도 이틀동안 한번을 들어오지 않을만큼 내 상태는 심각했다.

 

 ♬♩♬ - ♬♩♬

 

 넋나가 있던 정신이 다시 돌아온 건 새벽녘에 경쾌하게 울리던 벨소리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김진민..입니다."

 "깨어나셨어요?"

 "..그게.."

 "빨리 말해요! 깨어나셨냐구요"

 "방금..돌아가셨습니다"

 "..........................."

 

 뭐라는거야 이 미친놈이.. 뭘 돌아가셨다는거야.

 

 "뭐라는거야.. 뭐라그랬어요?"

 "세진병원 지하 영안실입니다.."

 

 전화기를 내려놨지만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저 모자란 인간이 헛소리를 하는거다.

 이틀만에 방에서 나왔다. 마침 나가려던 기명오빠가 날 보더니 내 어깨를 잡는다

 

 "소향아, 괜찮아? .. 쓰러지셨다는 얘기는 들었어"

 

 탁-

 

 "...."

 

 어깨에 있는 손을 쳐내버렸다. 지금 내가 누구한테 화풀이를 하는거지.. 이성이란 놈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버린 거 같다.

 

 "소향아?"

 

 기명오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가족 전부가 밖으로 나왔다.

 

 "안소향"

 

 기태오빠 때문에 난간에서 떨어졌던 그날 들었던 기준오빠 목소리. 이젠 그 목소리조차 우습게 들렸다. 뭐? 내 이름 부르면 뭐 달라지는거 있어? 계단을 내려와 물 한잔을 따르는데 컵에 담긴 물보다 밖으로 쏟아진 물이 더 많았다. 한모금을 마시고는 다시 방으로 향했다

 

 "안소향!"

 

 기준오빠를 돌아봤다. 그래, 오빠는 알수도 있겠네- 그 병원에 아는 사람 있다고 했으니까. 옷 갈아 입고 나오라고 정신차리라며 소릴 질렀다. 오빠가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아버지, 저 소향이 병원 좀 데려다 주고 갈게요. 그.. 신엄마라는 분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아빠도,엄마도, 그리고 그 말을 전하는 기준오빠. 뒤에서 듣고 있던 기태오빠와 기명오빠까지 어느 누구도 말이 없었다.

 

 "정신차려 안소향. 빨리 옷갈아 입고 나와. 계속 그렇게 미친사람처럼 있을거냐"

 

 오빠 일이 아니니까 저렇게 냉정하게 얘기할 수 있는거겠지

 

 "이현언니 죽었을때도 이렇게 냉정하게 행동했어?!"

 

 처음으로 오빠에게, 그것도 큰오빠에게 소릴 질렀다.

 

 "... 알았으니까. 갈아입고 나와. 오빠 차에 있을테니까"

 

 순간 뺨이라도 맞을 각오로 눈을 감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부모님께 다녀오겠다고 간신히 인사를 하고서는 차에 탔다.

 

 "나중에 기태 보낼테니까 병원으로 와."

 

 장례식장이라고 크게 쓰여있는 건물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서있었다.

 내 엄마가 이 길을 걷게끔 도와준 사람. 엄마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 사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몇번이고 숨을 고르고서야 빈소에 갈 수 있었다.

 

 "오셨네요"

 

 표정없는 대무님의 아들. 빈소가 차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영정사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까지 하고서도 믿기질 않는다.

 그냥 소리 지르면 깰 꿈같은 느낌이다. 빈소 밖 의자에 앉아있는데 현우씨가 다가왔다

 

 "엄마가 혹시 안좋은 일이 생기면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건네 받은건 흰봉투에 있는 편지였다. 읽어 내려가다 결국 또 다시 눈물이 터져나왔다.

 끝까지 진민씨를 부탁하시는 대무님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그 사람 부탁때문에

 아프신것도 몰랐을 수 있는데.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당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과, 끝까지 지켜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내가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는 말까지... 그럼 나도 내 마지막을 알 수 있을까? 엄마가, 대무님이 그랬듯이

 나도 알 수 있는걸까.

 

 "소향아, 정신 좀 차려봐라"

 

 언제왔는지 기태오빠가 눈앞에 있었다.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가 조의금까지 챙겨서 가보라고 하셨다고... 빈소에 들어갔다 나온 오빠가 기준오빠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발인날 다시 오면 된다고, 오빠가 억지로 일으키는 팔을 거칠게 밀쳐냈다

 

 "오빠 혼자 가요. 나라도 있어야지. 어떻게 가"

 "형님 오셔야 갈래?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가자고"

 

 내가 여기 있는게 민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우씨에게 다시 인사 하고

 발인날 오겠다했다. 상주보다 더 슬퍼하고 있는것도 남들 보기에 좋지는 않겠지..

 기준오빠 앞에서 한시간째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휴진이라는 팻말을 보고

 들어오기는 했지만..

 

 "오빠도 저녁에 가볼테니까 여기 있다가 기명이랑 같이 집에 들어가. 너 혼자 집에 뒀다가 쓸데없는 짓 할까봐서 불안하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전부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 때를 계기로 내가 완전히 변했다는걸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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