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아 요즘 저 빌라에서 사람들 몇명 죽었다며?"
약간 떠보는 투로 물었다. 어차피 자세한건 모를테니 근처에 떠도는 소문이라도 들어보려고 했던거였다.
"말도 마. 그거때매 나도 무서워 죽겠다니까? 실은 있잖아. 어른들이 그러는데 혼자 있는 사람만 홀리는 귀신이 있다는거야. 원래 어른들이 옛날 귀신 이런거 잘 믿으니까 그런 말 하는것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여튼 그렇대. 저 빌라에서 죽은 사람들 전부 다 혼자 살던 사람들이었다는거야. 이번에 죽었던 아줌마도 혼자사시던 분이고.. 요 앞 상가에서 분식집 하셨거든. 엄청 착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놀랬어"
그래? 근데 홀렸다는건 둘째치고 죄 자살이잖아. 그럼 뭐 스스로 죽게끔 홀린다는건가?
"그렇구나.."
"으~ 우리 이런 얘긴 하지말자. 괜히 무섭다. 근데 너 학교는 다닐만 해?"
아..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었지. 뭐라고 얘기할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답이 없었다.
"아.. 사실 나 학교 그만뒀어"
"뭐?! 집에서 가만히 있어?? 큰오빠 의사라고 너 엄청 공부 열심히 했었잖아. 기죽기 싫다고.. 근데 왜 학교를 그만둬?"
"쉽게 말하면 무병(巫病: 무속인이 되기 전 입무자가 앓는 병. 딱히 밝혀진 원인이 없다. 신병과 같은말로 쓰인다) 그런건데.. 아무래도 학교 다니기가 힘들것 같아서"
"그럼 그.. 왜 무당같은 그런거야?"
"응, 그래서 그만두고 신당차렸어. 검정고시 공부하고는 있는데 쉽진 않네"
"우와!?"
꺼려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해한다. 뭐지?
"우와!?라니?"
"뭐가? 그럼 그 뭐지 티비에서 하던 엑소시스트 뭐 그런것처럼 보이고 그런거야?"
이게 너한테 놀랍지는 않은일이구나?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그렇지"
"신기하다~ 와.. 그럼 내일 신당이란데 가봐도 돼?"
"응?? 상관은 없는데 안무섭냐?"
"별게 다 무섭다. 나야 보이지도 않는데 뭐가 무서워"
맞는말이다. 뭐가 보여야 무섭지. 여튼 얘기가 쉽게 풀려서 다행이다. 내일 저 빌라 가보는것도 어렵지 않겠어. 저녁 차려주겠다며 부엌으로 간 동안 서인이 컴퓨터로 자살귀 같은걸 찾아봤는데 그런 유래나 이름은 없었다. 되려 일본이나 중국 '요괴'에 관한것만 잔뜩 나올뿐.. 대체 뭘까. 그냥 단순한 자살인걸까.. 하지만 혼자 있던 사람들만 죽었다는게 좀 이상하기는 했다. 다른 특징은 없을까? 한참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서인이가 저녁이라고 차려온게 엄청나게 맛있어 보이는 라면이었다. (좀 실망하긴 했음) 그래도 해준 성의가 있지. 궁금한게 꽤 많았는지 지금까지 궁금했던거라며 서인이 질문에 대답하다 늦게서야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엄마께 엄청나게 깨지긴 했지만.. 전화한다는걸 깜빡한 내 잘못이라 딱히 억울한거까진 아니지만 속상하기는 했다.
***
개교기념일이라더니 완전히 퍼져서 주무시는구만~ 새벽이라도 살펴보려고 했었는데 나도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다. 아님 좀 있다 한번 둘러보고 다음에 또 와서 자든지?
(이때까지만 해도 밤에 자살하는걸로 생각했다)
맞은편 빌라를 보고 기지개를 폈는데 옥상문이 열리며 웬 남자가 자박자박 걸어들어왔다. 새벽녘에 부슬비라도 왔는지 약간은 축축하고 물이 고인데도 있었는데, 그 남자는
그런건 개의치 않는듯 했다. 뭐지..? 내가 맞은편 빌라로 뛰어가기 시작한건 그 남자의 팔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자기목을 조르는 사람이 어딨어!!'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옥상은 따로따로가 아닌 일체형 구조로 되어있어 아무곳이나 올라가도 찾아낼 수 있었다. 가운데.. 분명 그 남자는 정 가운데에 있었다. 내가 도착한곳은 왼쪽의 끝.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냅다 중앙으로 뛰기 시작했다. 자기가 목을 조르면 죽지 않는다는것 정도는 안다. 분명 질식하는것 보다 먼저 힘이 풀려 기절할것이 뻔하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때 그 남자는 목을 조른 상태로 난간 위에 서 있었다.
"안돼요!" 라고 소리친게 무색할만큼 내가 난간으로 뛰어가 손을 뻗었을때 이미 그사람은 내게 중력의 법칙을 가르쳐주듯 빠르게 허공에서 지면으로 떨어졌다. 손을.. 뻗었는데.. 대체 이 시간에 왜 뛰어내렸을까. 그것도 뒤돌아서서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는 채로, 얼마나 사람들이 죽는 걸 봐야 할까- 겨우 잠잠해지려하는 대무님의 죽음이 다시금 내 머리를 휘감았다. 괜찮다. 아니, 나도 어쩔 수 없었던 거다 이건. 내가 뻗은 손을 힘없이 떨구며 밑을 바라봤다. 그게 밑에서 올려다 본 사람들의 입장에선 내가 사람을 밀고서 구경한것처럼 보였을것이란걸 그때 깨달았다. 주저앉아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진심 조선시대에서나 볼법한 주젱이(제주도식 '우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괴물같은게 눈에 보였다. 뭐야 진짜...
'흐흐흐흐흐'
기분나쁜 웃음소리다. 주젱이 속 빨간 눈같은게 반짝거렸다. 이 훤한 대낮에?!
그때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 괴물은 사라졌다.
"당신을 살인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현행범이므로 즉각 구속가능하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형사의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소리에도 넋이 나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이게..
대낮에도 돌아다니는 귀신?요괴?괴물? 그딴건 들어본적이 없었다. 하긴 지금 내가 범인으로 의심받는 상황에 그따위게 무슨 상관이냐고. 경찰차로 인도되고 있었는데 반장님이 나를 알아보셨다
"아? 여기까지 무슨일이에요? 얌마- 당장 안풀어?"
"아 반장님! 현행범이라구요. 어떻게 풀어요? 반장님이 책임질거에요?"
"새꺄, 풀라면 풀어 일단! 나랑 같이 서로 갈테니까 늬들 알아서 따라와"
다행히 이 사건이 반장님 관할구역이라 험한꼴은 안봤지만..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그냥 내 눈앞에서 뛰어내렸어요 하하하하. 미친척이라도 해볼까. 사실 약간 정신이
아프다면서.. '하...' 진짜 제정신으로 살 수 없게끔 하는구나- 정말 지친다.
"그런데 어떻게 된겁니까? 둘러본다고 한 것 같았는데.. 혹시 그러다가 마주친거 아니에요?"
"맞아요. CCTV 같은거 있으면 확인 좀 해주세요. 그 남자가 올라가고 전 몇분 있다가 올라갔거든요.. 친구집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라서- 옥상을 보고 있다가 우연찮게 남자 행동이 좀 이상해서.. 쫓아왔는데 이렇게 됐어요"
"하.. 참 진짜.. 일단 서로 가셔서 조서까지는 작성해야 합니다. 그건 절차라서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곤 전화로 CCTV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분명히 시간차가 있었다. 친구집에서 내려와 그 빌라로 뛰어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옥상까지- 옥상에서 그 남자가 있던 중간지점까지. 시간차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면 그 남자가 내가 올라간 직후 떨어진게 아니라는게 되니까.. 내 혐의가 조금은 풀리겠지.. 옥상에 올라간 사람이 몇분동안 나만 기다렸다는게 말이 안되잖아. 서에 도착했더니 안에 있던 형사들이 전부 나만 쳐다봤다. 하긴.. 조막만한 애가 살인으로 의심되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왔으니...
"심문실로 가서 합시다"
주변시선이 의식되서였는지는 몰라도 반장님은 심문실에서 조서를 꾸미자 했다.
"형식적이니까 그냥 대답만 하시면 됩니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매서운 눈빛이던 반장님은 심문실의 문을 닫자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뭔가 엄청 반전 있으신분이네요.
"이름이.."
"박.. 아니 안소향입니다"
"나이는요?"
"17살예요"
"안소..향.. 나이는 17.. ? 네?! 뭐라구요?! 27살이 아니구요?!"
타자를 독수리타법으로 열심히 치고 계셨다. 별안간 나이를 입력하다가 벌떡 일어서셨는데, 제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보였나요.. 뭔가 심각하고 무서운 분위기여야 하는데 반장님이 하도 웃겨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웃어버렸다.
".. 아 흠. 죄송합니다. 주소가..?"
"이문시 인현동 2-341번지요"
"그럼 있었던 일을 차례로 말씀해주세요"
시간 흐름대로 그대로를 말했다. 그 사이 서인이가 전화가 왔고, 잠시 일이있어 그러니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조서가 거의 다 꾸며졌을때쯤 심문실로 형사가 들어왔다.
"반장님, 일단 영상은 다 가져왔습니다. 통화기록은 팩스로 오기로 했습니다. 저 여자랑 죽은 피해자가 주고받은 기록만 나오면 100%..."
저기, 그렇게 확신하지 말라고. 그거 되게 기분나쁘니까...
"영상부터 확인해, 그 남자가 옥상에 올라간 시간하고 이 분이 올라온 시간하고 얼마나 차이나는지 정확하게"
"네?! 아니.. 현장에서 잡았는데 확인까지.."
"아 새끼야! 하라면 좀 해- 넌 무죄추정의원칙 그딴거 다 까쳐먹었냐?!"
감사요 반장님. 반장님이 냅다 소리지르는걸 듣고는 그 사람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심문실을 나갔다.
"일단 조금만 기다려보자구요. 어차피 지금 정황증거뿐이니까 밀었다는 증거도 없고,
죽은 사람이랑 연관이 없다는것만 나오면 금방 풀려날거니까요"
.. 네. 이마를 긁적대며 대답했다. 뭐 부모님 불러라 이런것만 안했으면 좋겠다.
반장님은 아직도 내 나이가 그렇게 쇼킹하신가보다. 몇초 간격으로 고개를 계속 갸웃
거리고 있다. 주민번호를 듣고도 저런 반응이라니. 뭐 별 다른걸 본게 있냐고 물었다.
일단 내가 봤던 그 알수없는(?)것에 대한건 나중에 말하기로 하고 별다른게 없었다고 했다. 이상한건 그 사람이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다가 떨어졌다는 것..
"아, 그러고 보니 피해자들이 전부 목에 손을 올린채로 떨어졌었습니다. 하도 간헐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라 그냥 대수롭잖게 넘겼는데.. 다시 조사해봐야겠네요"
단순 자살로 종결난 네건을 취합해본다고 했다. 비슷비슷한 자세, 그리고 보통의 자살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엎어진 자세가 아니라 하늘을 보고 바로 누운 자세. 반장님은 밖에서 사건 파일들을 몇개 가져오더니 그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까지 다섯명째죠. 다 같은 자세라는건 분명 동일한 범죄패턴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죽은 시체가 떨어진것도 아니고, 산 사람이 자진해서 떨어졌단 거죠. 더군다나 평소에 우울증이나 이상한 증세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유서또한 없었어요. 오늘 이 남자도 마찬가집니다"
"공통점은 하나 있어요. 전부 혼자 살고 있던 사람들이라는거죠"
반장님이 뭔가 놓쳤다는 듯 다시 사건 파일을 보고 있었다. 거의 한시간은 넘게 그 심문실에 있었을거다. 그때 심문실 문이 열리며 아까 그 형사가 들어왔다.
"뭐야?"
"반장님 그게.. 딱히 연관성은 없습니다.. 시간 차이도 설명할 수 없을만큼 나고.."
"그러니까 임마, 엄한사람 함부로 잡아 쳐넣고 그러면 되냐 안되냐? 그리고 막말로
이렇게 작은 여자가 그 남자를 옥상에서 난간에 세우고 밀었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냔 말야"
"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구가동 사건때문에 지금 서장님 히스테리 장난 아니란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저도 수갑까지 채워서 잡았겠습니까.."
"됐어, 일단 이 여자는 조서 다 꾸몄으니까 보내면 되겠네. 내가 보호관찰 할테니까 고인 주변사람들 조사부터 해봐. 뭐 이상한건 없었는지 힘든일은 없었는지"
"알겠습니다.."
어지간히도 해결하고 싶었나보다. 아까까지만해도 자신만만하게 들어와서 말하더니
금세 풀이 죽은 표정을 하고 나갔다. 반장님은 어디로 갈거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서인이집이 낫겠다 싶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자기가 지금까지 형사생활 하며 겪었던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문시로 온게 벌써 8년은 됐지 싶네요. 여기가 강력범죄가 좀 많았던 지역이었어요.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이 시(市)이름이 이문(異門:다른 문)이라고 하더라구요. 맨 처음엔 그게 무슨 상관인가 했었는데.. 강력범죄율이 다른 시보다 월등해요. 원인 모를 사건들도 많고, 미제사건도 전국에서 제일 많고.. 저도 여기서 해결 못한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 소향이라고 했나요? 소향씨 만나고 제일 골칫거리던 그 미친놈 잡는데
성공했지만.. 자꾸 이런일이.. 참 답답하네요"
난 여기서 5년을 살았는데 왜 그런 소문은 하나도 못들었지? 내가 세상사에 신경을
안쓰고 살았었나? 서인이 집앞에서 간단히 인사를 했다.
"조심하시구요.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반장님이 창문틈으로 인사를 하시고는 차를 돌려 가셨다. 나중에 또요?? 에고..
서인이가 나를 보더니 무슨일이냐고 물어본다. 으아.. 뭐 어떻게 설명하지?
"어 그게.. 쩝 뭐.. 사소한 오해가 생겨서 경찰서 갔다 왔어;;"
"엥?! 그게 사소한거야? 뭔 오해길래 경찰서까지?!"
"아.. 아까전에 저 빌라에서 또 사람이 뛰어내렸는데 하필 내가 거기 있는 바람에
의심을 하더라구.."
"헐... 그래서?"
"내가 범인이 아니니까 지금 여기 다시 왔잖아 하하하"
억지로 웃으니 어색해 죽겠다. 서인이가 내 말을 듣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인아! 밥이나 좀 먹자. 아무것도 안먹었더니 배고프다"
"잉.. 그래 알았어. 먹고 너 일하는 신당이나 가보자~"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제 내가 무슨 일 하는지 얘기했으니 그런건가? 싶었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밥 먹자니까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치킨 시켜주겠단다. 맘대로 해~ 서인이가 신당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이후로 서인이와 내가 절친이 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