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귀안(鬼眼), 천존을 담은 여자
작가 : 적편혈향
작품등록일 : 20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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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鬼神)이 지상으로 오는날 # 3
작성일 : 19-10-08     조회 : 47     추천 : 0     분량 : 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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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의 대답을 들은 진달라는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이다. 내가 개의치 않을리가 없잖아! 그나저나 천제님은 왜 저승신장들하고 신이 나신건지요?

 

 "아아, 그래- 저승신장들한테 내가 항상 미안하지. 60년전에 말야,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염라가 솔직히 너무하긴 했어 그지? 다들 살만큼 살았는데 머리박으라고 하고 칼춤까지 출게 뭐야. 진짜 그때 무섭기는 하더라고. 저승에서야 그러면 상관없지만 여긴 인간들이 사는곳이잖아. 그랬다가 엄한 인간 숱하게 잡겠지 싶어서 내가 먼저 사과해버린거지 뭐. 하하하하하"

 

 네? 아니 잠깐만요. 그게 그렇게 호탕하게 웃으실 일이랍니까. 임명장을 쓰신 산신님이 천제님께 건네자 대충 읽어버리고는 궁비라에게 넘겨줘버렸다. 엄청 맘상해하잖아..

 그러면 안되는거라고요 천제님! 궁비라씨(?) 엄청 의기소침해 있어. 산신님한테 천계로 안갈거라고 떼쓰고 계시는 중.. 성진이와 나는 아까 결계를 치던것부터, 저승과 천계의 관계에 대해서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년에 딱 한번, 원래는 저승은 저승대로 천계는 천계대로 천음산을 반으로 나눠서 각자 내려와서 쉬다가 올라가거든. 영혼들한테는 여기가 휴양지인 셈이란 말이야. 이렇게 신장들이 다 같이 모인건 엄마가 말씀하시길 60년만이라고 하셨으니까. 또 저승에서 천계로 보내는 일도 원래는 없는일인데, 이번엔 특별사면(?) 같은거라고 하시더라고. 저기 보이는 산저라 있잖아. 저분이 제일 무서워. 난 12지신은 다 봤었는데 진짜 그중 최고인거 같아. 왜 그런거 있잖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게 호랑이나 용이 무섭지 않냐고 하잖아? 근데 제일 착하셔. 천제님이 윽박지르면 제일 주눅드는것도 그 둘이고 되려 아까 궁비라나 산저라같은 경우는 천제님이 뭐라 한마디 하시면 열마디 받아치시거든. 그리고.. 천제님은 나도 지금 두번째 겪는데.. 뭔가 엄청나게 대책없이 밝으신 분 같기도 하네.."

 

 성진이의 마지막 한마디는 굉장히 모기목소리보다 작게 들렸다. 아무래도..? 나도 슬쩍 눈치를 보며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고, 이 산으로 내려온 영혼들은 서로 쉬어가며 다른 것에 구애받지 않고, 또 하루만큼은 신장들의 감시에서도 벗어나는거라고 했다.

 

 "근데 이승에 있는 영혼들이 여기를 오려면 그 결계를 뚫어야 하지 않아?"

 "아니, 나갈수만 없지 들어올수는 있어. 대신 그런 영혼이 들어오면 결계에서 소리가 나니까, 신장님들이 나가시는거지. 그런 영혼들이 혹시나 천계의 영혼을 물들이거나

 반대로 저승의 영혼들한테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거든. 아직까지 그런 사고는 없었다고 하긴하더라. 그리고 저승신장들보다 천계신장들이 훨씬 더 독하고 무섭다?"

 "그건 또 왜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의외로 저승신장들한테 영혼들이 이런저런 사정을 말하면 되게 약해진대. 그래서 좀 저승이 엉망이라는 얘기도 나오는거 같더라고, 반대로 천계신장들은 천계에서 말썽을 부리면 가차없이 저승으로 보내버리거든. 사정 이런거 하나도 안들어준대. 아! 천계영혼들을 관리하는건 아지라,산저라,미기라,궁비라,벌사라-이렇게 되있어."

 "뭔가 묘하게 조합안되네. 복잡하긴 하다"

 "그리고 천계신장,천제님,저승신장,저승시왕만 자리를 비우는 날이 또 딱 하루가 있거든"

 "어?! 둘다 비게 되면 어떻게 해?"

 "저승에는 야차들이 있어서 괜찮고, 천계는 해태(獬豸:시비*선악을 판단할 줄 아는 동물, 신수로 여겨진다)가 있어서 괜찮아. 그 날이 지금으로부터 딱 일주일후거든"

 

 뭐 휴가 보내주고 자기들도 휴가 오고 그런건가? 와.. 여기 진짜 바글바글 하겠네

 

 "그때 아마 니가 더 많은걸 알 수 있을거야. 대신에 아까 진달라하고 마호라(원숭이) 이 둘 싸우는거 보면 그냥 모른척 해. 매년 그랬거든. 진달라가 마호라랑 싸우다가 털 뽑히고 그랬었어. 말리면 괜히 니가 휘말리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이건 팁이야"

 

 엥.. 견원지간이라고 개랑 원숭이랑 사이 안좋은거 아니었어? 진짜 특이하네..

 

 "근데 내가 얘를(?) 뭐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천존님이 어디서 구해온 술인지 한껏 드시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하셨다. 그러게요..

 전 뭐라고 불려야 할지 도통 모르겠어요. 여기선 제 정체성도 찾기 되게 힘들거 같은데 말이죠. 저번에 궁비라는 봤었는데.. 소멸신장은 또 안계시고. 엄청 복잡하잖아!

 

 "대행인이라고 부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천제님께서 택하신 몸이기도 한데다 인간계에서의 일을 도맡아 하는 인간이라면.. 그정도의 호칭이 적절할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산저라가 쭉 찢어진 눈으로 나를 훑으며 말했다. 아 뭔가 섬짓하면서 무섭다.

 

 "그런가? 그것도 괜찮겠군 하하하하. 그래 대행인, 그거 좋은 호칭이야"

 

 뭔가.. 여기서 긴장을 놓으신건 천제님 뿐이시네요. 산신님은 옆에서 조용히 모두의 얘기를 경청만 하고 계신다. 제일 차분하시네요. 저번에도 느꼈지만 부처님같기도 해.

 

 "그러면 천계로 돌아오실 날은 언제십니까? 대행인에게 통안(洞眼:미래를 내다 보는 눈)도 열어주셔야만 가능하신것이 아닙니까"

 "아, 그래. 근데 인간계에 있어보니 재밌더란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천계는 너무 지루하다고. 죄다 선인(仙人:도를 통달하여 현실의 인간세계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사는 신선과 같은 말)들만 살아서 말야. 요즘은 죄다 나 이겨먹으려고만 하고 말이지. 내가 인간계로 내려온게 얼마만이지?"

 "적어도 반만년은 되셨습니다."

 

 아무 표정변화 없는 산저라. 진짜 이미지 그대로라니까. 싸늘하고 차갑고. 거기다 저 매서운 눈빛까지. 거짓말 안해도 엄청 찔리게 만드는 눈을 갖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심심했겠냐고. 솔직히 마라 그놈도 내가 인간계로 오고 나니까 천옥 부수고 난리잖아? 나 있을때 그랬음 내가 내려오는거 좀 더 늦췄겠지. 그놈이 나 없다고 그런 난장판을 만들어놓을줄 알았나? 어쨌든 아지라(용)가 잡았다고 했으니까 또 한동안 조용할거 아냐. 궁비라는 이제 천옥 수장이니까 앞으로 잘할거고. 그럼 나 여기서 좀 있다가 갈래. 오랜만에 저승신장들 보니 좋기도 하고 말이지"

 

 근데 저승신장들의 얼굴은 그다지 좋은 얼굴이 아닌데요? 식은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는데.. '그냥 천계에 계실때가 제일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거 억지로 참고 있는거 같은데요? 악연(저승제1신장)이 동물에 비유하자면 딱 호랑이 같은 상인데, 지금 천제님 앞에두고 보니 고양이 같네요. 안쓰럽기까지 해 심지어.

 

 "그래도 통안은 빨리 뜨이게 해주셔야 천제님께서 일이 있어도 천계로 돌아오시기 수월하실 것 아닙니까?"

 "그게, 산저라 자네가 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말이지. 인간은 신들과 달라. 자네들과 다르다고. 가르친다고 막 우겨넣어가지고 될거면 내가 뭣하러 일부러 내려오나? 인간은 습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이야. 무작정 가르치기만 하면 죽을수도 있다는거지. 그리고 대행인은 또 아무나 시킬수가 있나?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르고 골랐는데.

 그러니까 자네들이 천계에 있는 동안 수고 좀 해달라고. 그리고 저승에서 요청같은거 오면 내 핑계 대고 미뤄두지 말고 할 수 있는건 해주고, 유도리있게 응?"

 "이건.. 일주일 후 천계와 저승의 신장들과 신들이 다 만나는 날, 그때 다시 논의 하시지요. 지금은 영혼들만 와 있기도 한데다 천계의 신장들도, 저승의 시왕도 없으니 말입니다"

 

 산저라가 혀를 낼름거리며 말했다. 쉬익- 하는 혀가 나왔다 들어가는 소리가 굉장히 기분이 언짢다는걸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물론 표정은 엄청나게 살벌하고 말이지.

 

 "하여튼.. 한 천년만 더 살면 자네들이 옥황상제 하겠다고 하겠어. 무서워서 어디 말할수가 있어야지. 나도 저승으로 갈까봐 아주. 저승신장들은 하나같이 과묵하고 말도 없고 그런데 말야"

 

 천제님의 말에 저승신장들이 할말이 꽉 차있는 듯 했다. 근데 그냥 내가 듣기로도 염라대왕의 성격이 말로 표현해봤자 답 안나온다는거 알만한데.. 과묵하고 말이 없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천제님도 좀 엄하게 해보세요 그럼. 이상하게 신들이라고 그래서 난 되게 긴장하고 그랬었는데.. 갈수록 사람하고 다를게 하나도 없어보여. 그냥 동네 아저씨들 아줌마들 모아논 거 같달까. 내 호칭이 정리되자 마자 신장들이 하나 같이 나를 불러댔다

 

 "이제 대행인이라 부르지요. 하대를 할 순 없으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갑인신장 미기라(호랑이)입니다."

 

 말 끝에 들리는 울음소리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신장이라도 맹수는 맹수.

 지금 여기에 내려온 천계신장들의 인사를 하나씩 다 받았다. 무섭다..

 죄다 현신해놓으니까 엄청 위압감 느껴지고 살벌하고. 아무래도 천제님은 현신하면 내가 여자니까.. 위엄이 안느껴질까봐 현저하신 듯 한데. 이러나 저러나 위엄은 다 떨어지신거 같아요. 편하게 현신하셔도 될 듯 싶은데.

 

 "저는 저승1신장 악연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천계신장들보다는 저희들과 많이 보게 될 겁니다. 통안(洞眼)을 갖게 되면 인간들의 수명이 보일거구요. 지금 설명하면 복잡할테니 일주일 후에 설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행인이시여, 잘 부탁드립니다."

 

 사람한테도 안받아본 부탁을.. 신장들한테 받다니. 무섭게만 느껴졌던 악연(악차,악성과는 친형제관계)이 측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통안이라는게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주는거구나. 사람들의 수명이 보인다니. 뭔가 모르게 무서워. 그럼.. 엄마아빠도, 주변사람들 전부 다 보인다는건데.. 그걸 알면서 살아갈 자신이 있을까 내가?

 천제님께 몇번을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왜 나냐고, 그 대행인이라는게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열여덟살짜리의 몸에 통안까지 부여할만큼의 이유가 뭐냐고.. 아무리 뭘 모른대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럼 언제 죽을지 알고서도 막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한다는 건데. 신장들이 올라가고 나서 산신님과 함께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지금은 천제님.. 상태도 영 안좋으신것 같아 보이니까. (내 눈에는 그렇지만 굉장히 신나하고 계신것만은 확실한 듯..)

 

 "지신장 염찬, 대행인께 인사올립니다"

 "아..네!"

 "하대하셔도 됩니다. 대행인도 천제님과 동급으로 여겨지니까요"

 "..그렇군요"

 "수명을 관장하게 되면 많은게 힘들어지겠지만 천제님께서 선택하셨으니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걱정 좀 해주세요. 전 지금 무지 걱정하고 있어요. 이것도 갑자기 알게 된 사실이라구요. 저한테 뭐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다니까요? 라고 속으로만 열심히 외쳤다.

 답답하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고 내가 그 통안이라는걸 가진다면.. 대무님을 찾아왔던 그 사자들을 막을 수 있었을까? 갑자기 고개를 쳐든 대무님에 대한 생각이 약간은 내 기분을 침울하게 했다. 실수로 데려갔다고 했으니까 분명 막을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성진이가 뭘 아는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근데 있지,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으니까 이게 다 뭔지 정신을 못차리겠어"

 "나도 아는건 여기까지야. 그냥 천계랑 저승과의 관계. 그리고 니가 천제님께 선택받았다는 거기까지. 이후는 엄마도 나도 모르는거니까.. 앞으로 니가 알아가야 하는거지"

 

 하긴 니가 이걸 다 알고 있는것도 이상하기는 하네. 그럼 처음부터 니가 내앞에 나타났어야겠지? 지금은 신장들이 하는 얘기들을 주워들으며 조각들을 맞춰보기로 했다. 기회는 다음주에 다시 생길테니까. 동네 반상회같던 담소들은 진달라의 울음소리에 미루기로 하고, 각자가 다시 원래 있던곳으로 돌아갔다. 60년만의 워프사건이라 혹시나 그때처럼 마라같은 일이 벌어질까 굉장히 긴장했던 신장들도 별탈 없이 천계와 저승으로 돌아갔다. 천제님은 염찬에게 염라대왕의 소식을 꼭 전해달라고 말하고선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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