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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안(鬼眼), 천존을 담은 여자
작가 : 적편혈향
작품등록일 : 20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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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
작성일 : 19-10-10     조회 : 50     추천 : 0     분량 : 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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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오시는 일이 잘 없던 아빠가 오늘 낮에 했던 통화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곱시가 막 지났을 무렵 들어오셨다. 엄마와 기준오빠도. 기태오빠는 축제기간이라서 늦는다고 했다지? 기명오빠는 레지던트 막바지인 해라서 더 이상 눈치봐가며 빠지는것도 힘들다고. 아마 기준오빠가 온데에는 집안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라는 '의미'라는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없을땐 큰오빠가 어른이라고 항상 말씀해오셨던게 있었으니까. 나를 보며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 기준오빠 손길에 제법 어색해 하지 않고 그 손길을 익숙하게 받아냈다. 예전같았음 상상도 못할 일일텐데 말야.

 

 저녁식사땐 아무말 없이 그저 간단한 안부만 물었다. 어제 친구집에서 잘 자고 왔느냐-라는 엄마의 조금 히스테릭한 질문에 '병원에서 안좋은일이 있었나'싶은 정도로 넘길 수 있을만큼 나도 많이 유연해진 탓도 있겠지만, 아빠도 적당히 끊어주시며 요새 통 얼굴을 못 봐 보고싶었다는 다소 민망한 애교(?)에 분위기가 굳어지지는 않았던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과일을 깎아 커피를 같이 내오시는 엄마가 자리에 앉으시자, 아빠가 헛기침을 하시며 뜸을 들이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그래, 아까 통화했던 얘긴 마저해야겠지?"

 "네. 아빠가 괜찮으시면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요"

 

 사과 한쪽을 포크에 찍어 아빠에게 건네시던 엄마가 무슨 말이냐 도로 되물으셨다.

 

 "응, 그게말이지. 당신이 이번 신축공사하는거 때매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애쓰고 있는걸 아는데 말야. 기명이 그놈이 막내한테 얘길 했나보더라고, 나도 막내 고생하고 있는데 부탁하긴 좀 그랬지. 그래도 막내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기준이도 옆에서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설득하기도 하고 말이지"

 "여보, 생각은 하고 말하는거 맞는거죠? 터 알아보고 고사도 지내고, 그게 어디 하루이틀 정성들여야 할 일이냐구요. 신축공사현장은 임원진들도 왔다갔다 할테고 직원들도 볼건데 그게 가당키나 해요? 게다가 고사지낼때 당신 아들도 아니고 딸이 나서서 그런거 하면 뒷말 뻔히 나올거 몰라요? 소향이가 입원했을때 VIP병동 간호사들이 심상찮게 수군거렸어요. 혹시 귀신들린거 아니냐고- 그 뒤론 소향이가 아픈곳도 없고 병원에 올일도 없어 유야무야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아니죠. 나도 우리 딸이 당연히 이쁘고 아깝고 그렇지만ㅡ 난 싫어요. 절대 안돼요"

 

 이렇게 단호한 엄마를 처음봤다. 아빠의 말을 일언지하에 여지도 두지 않으시고 거절하시다니.. 아빠도 내심 서운하셨는지 언성을 조금 높이셨다.

 

 "아니, 수군댈게 뭐 있다고 그래?! 말이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제깟것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어대냔 말이야. 나는 솔직히 소향이 생각을 제일 먼저 했어. 기왕 하는거 집안 사람이 도와주면 믿을수 있고 얼마나 좋냐고. 단지 난 소향이한테 처음 하는 부탁이라는게 이런거라서 말을 안했을 뿐이야.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것도 오해할 소지가 다분한건 알아? 당신이 남들 시선 그렇게 신경쓰는 사람이었는지 오늘 처음 알았네."

 

 세상에, 왜 이게 부부싸움으로 번진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됐길래 이렇게 된거야?

 

 "엄마 아빠! 막내 얼굴은 안보여요? 평소에는 차분하게 말씀 잘 하시던 분들이 왜 이러세요. 그럼 막내는 뭐가 되냐구요. 그리고 싸우실거면 들어가셔서 싸우시지 애 보는 앞에서 그러면 얘가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막내 입장은 하나도 생각안하시네요"

 

 큰오빠가 내 손을 잡고 오빠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버렸다. 아니, 저기 근데 오빠 있죠 아직 저 상황이 마무리도 안됐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오면 어쩌자는거에요?

 

 "신경쓰지마라. 난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걸 어필했을뿐이지, 저렇게 대놓고 엄마가 큰소리 나게 만드실 줄 몰랐어. 그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정색하시며 말하시냔 말야. 나도 처음 알았네. 엄마가 저렇게 남들 신경쓰시는 분인줄"

 

 아니 그렇다고 엄마를 그렇게 몰아가면 어떡해.

 

 "오빠도 그렇게 말하는건 아니에요. 왜 엄마 입장은 생각 안해봐요? 자기 딸이 안좋은 뒷소문 돈다는데 기분 좋은 부모가 어딨어요. 아빠는 그런 소문 못들었나보죠. 그리고 여자들이 그런 소문에 굉장히 민감해요. 혹여나 엄마한테 가서 서운하다 어떻다 그런 소리 하지마요. 진짜 그러다가 엄마랑 나랑 멀어질수도 있어요"

 

 마지막 한마디는 그냥 내가 해본 엄포였다. 아빠가 큰소리내신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히 속상하실테니까. 오빠까지 그러면 좋은 감정이 생길리가 없잖아. 이 사람들은 앞으로 일주일 후에 나한테 무슨일이 생기는지는 알고 있을리가 없으니- 쯧.. 속으로 기구한 내 팔자에 대해 스스로 자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노크하는 소리도 못듣고, 들어오셔서 나를 부르는 소리도 못들었던 것 같다

 

 "소향아?"

 

 아, 네. 깜빡 다른생각하느라 못들었어요. 언제오셨어요?라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엄마 입장을 이해한다고는 해도 서운한건 매한가지였다. '당신 아들도 아니고'라는 말이 폐부에 깊숙히 박힌듯 아팠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보는 눈이 편하지 않았다는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것도 내가 방에 들어와서 무심히 쳐다본 거울속에서.

 

 "많이 속상하시죠? 아빠가 그러신 분이 아닌데.. 너무 맘상해하지 마세요-"

 "괜찮아. 나보다는 소향이 니가 더 서운했을텐데, 엄마가 하려고 했던 말이 그게 아니란건 알아줄래? 어디 내놔도 이쁜 내딸이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게 싫어서 그래"

 

 알아요. '어디 내놔도 이쁜 내 딸'이란건 그냥.. 하, 나도 지금 꼬여있네.

 곱게 듣고 넘기질 못하는거 보니까. 쉬어야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이대론 나도 위험하겠어. 무슨말을 할지 모르니. 아빠가 미안하다며 방에 오셨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냥-

 앞으로 있을 집안일에 끼기가 싫어졌다. 뭔지 모를 분노가 속에서 차오르는 느낌이다.

 

 ***

 

 아침 인사 생략하고 신당으로 바로 나와 항상 그랬듯이 치성을 드리고 진민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천음산으로 출발 전 반장님과도 통화를 했다. 오후에 한번 뵙자고. 성진이 말이 굳이 신경쓰여서 그런건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수도 있으니까(부쩍 그런일이 많았다) 남은 시간은 5일. 당분간은 부탁같은건 받지 않기로 다짐했다. 못지킬 약속같은건 하는게 아니니까. 산 입구에 도착했는데 다른때와 다르게 더 음침해보였다.

 

 "근데 소향아, 다른산도 있는데 여기는 왜 왔어? 사람들 여긴 안온다던데..?"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오해를 어떻게 해야할지.. 일단 올라가보면 알아요. 그렇게 짧게 한마디만 하고서는 내가 먼저 앞장 서 걸었다. 물론 진민씨 손에 있는 팔찌를 확인하고서야 걱정없이 내딛긴 했지만. 확실히 남자라서 그런가 나보다는 덜 버거워하는 것 같다. 집이 보일때쯤 성진이가 앞서 마중나왔다. 숨고르느라 무릎을 잡고 잠깐 고갤 숙였다 들었는데 성진이 얼굴보고 혼절할뻔했다. 귀신이냐?

 

 "뭐냐.. 체력부터 좀 길러라. 아, ..그사람?"

 

 뒤에 따라오던 진민씨를 봤는지 내게 타박하다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래, 그나마 반귀인이라는 저 사람이 알아듣지도 못할 빌어먹을 소린 안꺼내는구나. 이 산을 오르면서 항상 느끼는거지만- 여기는 경사가 높아서 힘든게 아냐. 영들이 워낙 많아야 말이지. 답답해서 숨이 제대로 안쉬어진다고. 근데 왜 진민씨는 멀쩡한건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소향아, 누구?"

 "아, 그게- 여기 사는 친구에요 아주 친한 친구"

 

 진민씨의 말에 어깨동무를 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성진이도 애써 웃으며 맞다고 대답했다.

 

 "오신김에 숨 좀 돌리고 가세요"

 

 성진이 뒤에서 조용히 걸어나오시며 말씀하셨다. 순간 산신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할 뻔했다. 진민씨 눈엔 그냥 평범한 아줌마로 보일텐데 내가 무슨 헛소리를.. 잠깐 얼굴에 비춰졌던 당황한 빛을 읽으신 산신님이 그런 나를 지긋이 보시더니 미소를 지으신다.

 

 "아.. 누구세요?"

 "소향이 친구 엄마에요"

 

 진민씨가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하셨다. 뭔가 되게 어색하고 이상한 상황이긴한데, 내가 오자고 했던 산인데다가 중턱에 사람이 살고 있고, 거기다 친구라고 하고, 30분정도를 빡세게 등산만 했으니 쉬어가라는 말도 의심할 바 없는 평범한 말이 되겠다. 진민씨도 그래도 되느냐 묻더니 집안으로 들어섰다. 잠깐 움찔하는건 봤지만 그래도 크게 문제는 없어보인다. 산신님이 잠깐 들어오라길래 방으로 따라 들어갔더니 기를 완전히 빼내야 한다고 잠깐 기절할수도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씀해주셨다. 성진이가 밖에서 뭐라도 시선을 끌어둘테니 그 뒤엔 내가 끌어야 한다고. 가능한한 부동자세로 시간을 끌어야 빨리 끝날 수 있다고 하셨다. 어째서 단 한번도 평범한 일은 내 주변에서 안일어나냔 말이지. 무사무탈하게 이 일도 제발 마무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방에서 나오니 성진이가 진민씨랑 무어라 얘기하며 즐거워하는 걸 봤는데,산신님이 나오는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끄덕거림은 내가 아니라 산신님한테 한거겠지?

 

 "형, 알겠죠?"

 "응? 소향아, 이거 성진이가 가르쳐준건데 말야"

 

 뭘 가르쳐준거냐. 방에서 나온 날 보며 손짓하길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진민씨 손에 있던 팔찌와 똑같은 모양으로 실을 꼬고 있었다. 기껏 시선끈다는게 이런거였냐.. 너란 놈 참.. 최대한 티나지 않게 나도 시선을 한곳에 묶어둬야 했다. 그러니 같이 웃으면서 따라할 수밖에. 맘에도 없는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그 매듭으로 팔찌를 만드는데 집중시켜두기는 했다. 이제 남은건 산신님의 몫. 그나마 이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게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순간은 말이지.

 

 '산을 수호하는 신령이여, 망자에게도 붙지 않을 귀기(鬼氣:귀신의 기운)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붙어있으니 이치에 마땅하지 않다. 천제님이 인간계에 내려와 '대행인'을 선택하였으니 이 귀기를 신령이 걷어가 완전히 멸할 수 있도록 하라'

 

 산신님이 진민씨의 등 뒤에서 그 말을 외고 있었는데, 당의를 입고 계신 모습이라 아마 뒤로 돌아봐도 진민씨는 볼 수 없을거였다. 거기서 내가 일을 그르칠뻔 했던건 진민씨가 팔찌를 아주 예쁘게 잘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령'이라고 했던 백호가 나타나서였다. 동물원에서나 보던건데 저게 뭐야..? 매듭이 잘 안지어진다며 티안나게 풀고,풀고,계속 풀어대가며 시간을 끌고 있다가 정말로 놀란 맘에 매듭을 짓는다는게 그냥 묶어버려서 영락없이 쓰레기봉투 묶어논것처럼 형편없는 모양이 되버렸다.

 

 "아! 이거 이러면 못풀텐데.. 어쩌지?"

 "응? 아.. 잘하면 풀수 있지 않을까요? 오빠가 좀 도와주면 안되요?"

 

 어디서 튀어나온지도 모를 '오빠'라는 말은 진민씨가 투지를 불태우는데 아주 좋은 불쏘시개가 된거 같았다. 자기가 더 열내서 풀고 있어. 몇번이고 엄지랑 검지에 힘을 모아서 묶인 실을 풀어보려다 순간 그 매듭을 툭 놓으며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성진이가 받아준 덕에 머리를 박는 불상사는 없었다.

 

 "다행이다. 눈치를 채면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난감했을텐데. 되게 단순한 사람인가봐?

 옆에서 팔찌 이쁘다고 너한테 그거 만들어주면 좋아할거랬더니 만드는 법 아냐고 해서 안다고 했더니 냉큼 가르쳐 달라던데?"

 

 성진이가 재밌어 하며 말했다.

 

 "잘했다 잘했어. 단순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

 "뭐 어찌됐든, 앞으로 살면서 이상한 귀신들한테 끌려다닐일은 없을거다. 이제 다른 문제 없는거지?"

 

 그렇네. 나 때문에 집에서 싸우신 부모님 말곤 문제가 없네. 잠깐 정신줄이 나갔었던 진민씨는 자기가 기절했단것도 모르는 거 같았다. 산신님이 끝까지 친구엄마 코스프레를 해주신 덕분에 데이트(??)를 가장한 퇴마같은 일은 잘 마무리가 됐다.

 

 "근데 끝까지 올라가는건 좀 그렇다 그지? 아무도 안오는 산인데 오자고 해서 왜 그러나 했더니 친구가 있어서 그런거였어? 아까 그 애 되게 착하더라. 그리고 이거 선물.

 같이 하자구"

 

 더 올라가지는 말자며 말하더니 내 손을 꼭 잡고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난 당신이 더 순수해보여요. 거기서 그런 매듭을 짓고 계실줄이야.. 상상도 못했어.

 거기다 또 팔찌까지 예쁘게 만들어 줄건 또 뭐야. 고맙다고 팔찌를 차는것까지 보여주고 연락하겠다고 돌려보냈다. 물론 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팔찌를 바로 빼버리긴 했지만. 뭐 사람 마음까지 무시하려고 하는건 아니다. 언제 내려온건지 성진이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야, 그래도 사람이 만들어준 정성이 있는데 너무한거 아냐?"

 "모르면 조용히 해. 그렇게 좋은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이 아냐"

 "왜? 그때 사자가 잘못데려간 무녀하고 상관있는 사람이야?"

 "한마디만 더 하면 천신장이고 뭐고 그냥 계급장 떼고 싸우는 수가 있다?"

 "알았다, 알았어- 그만 넋놓고 올라가자, 이젠 기를 잡는데 집중할 수 있겠지"

 

 오후에 반장님을 만나기 전까지 산신님과 기를 가라앉혀서 자리잡게 하는것만 하다가

 무리를 하지 않는선에서 하기로 했으니 이쯤하자고 하셨다. 한 다섯시간 있었나..

 기를 잡는다는게 빼는건 아니죠? 왜 난 힘이 쭉 빠지는지.

 

 "그럼 내일부턴 아침에 와서 쉬어가며 저녁까지 할게요.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몇일 안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마음이 불안하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좋지않단다. 충분히 잘 해내고 있으니 조바심 낼 필요 없어"

 

 어깨를 꼭 잡아주시는 손끝의 힘에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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