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박웅은 엘윈의 활시위를 턱까지 당기고 조준 자세를 취했다.
이대로 1분을 버티면 자격은 증명 된다.
박웅은 여전히 눈을 감은채 차분히 활시위를 당겨 조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주인님…?'
박웅은 어떠한 생각도, 잡념도 없이 오로지 엘윈의 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첫 화살을 먹이고 활시위를 놓았을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과녁 판 정 중앙을 뚫고 땅에 박혔던 박웅의 화살.
그 뒤로 찾아온 모든 고된 훈련을 잊게 해준 강한 카타르시스의 해소를 느꼈던 첫 활시위 놓기.
박웅은 그 기억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엘윈의 활은 푸른 빛을 머금으며 우우우웅 소리를 내고 있었고, 활시위에 푸른빛 이 영롱한 기운이 화살모양 형태를 갖춰가며 맺히고 있었다.
무형의 화살.
모든 엘프들이 무형의 화살을 보는 순간 모두 탄식을 했다.
“와!”
짧은 탄식.
박웅이 눈을 뜨고 활시위를 놓았다.
슈아아아악!
무형의 화살은 큰 고할나무로 날아가 부딪히며 엄청난 소리를 냈다.
퍽!
곧이어 갈라져 버리는 나무.
쩌적! 쩌저적!
박웅은 기어이 엘윈의 활을 굴복시키고 말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고요한 정원.
엘프들은 모두 갈라진 고할 나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웅도 깜짝 놀라며 외쳤다
“뭐야! 화살이 있었어???????”
박웅의 외침에 그제서야 박웅을 보는 엘프들, 그들은 여전히 말이 없다.
어리둥절한 그를 향해 칼리스가 다가왔다.
엘윈의 활을 다시 제자리에 두려고 하는 박웅을 말리면서 말했다.
“팍웅 고옴, 이제 그 활은 그대의 것이네”
“예에?”
칼리스의 말에 환호성이 터지며 박수를 치는 엘프들.
“와!~!~!~!~!”
엘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박웅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대가 해낼 줄 알고 있었소!”
'거짓말 하시네…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서'
'왜요 엄청 잘생겼는데요'
'자고로 남자는 저렇게 생기면 안돼!'
'노총각인 주인님 보단 훨씬 좋아 보이는 걸요?'
'이이익!!!'
“숲의 여신이 팍웅 고옴을 선택하였다! 이제 팍웅 고옴은 숲의 전사가 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엘리아!!”
“네 왕이시여!”
“축제를 준비하라! 엘윈의 활이 주인을 찾았다! 이제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야!”
“예스! 마이 하이니스!”
“팍웅 고옴, 자네는 나를 따라오게”
박웅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는 칼리스.
세실리아는 너무도 기뻤지만 벌어진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질 않아 우두커니 서있었다.
“세실리아! 너의 링크를 내가 데리고 가는데 가만히 있을 참이냐!”
세실리아가 칼리스를 보며 큰 눈을 끔벅끔벅했다. 그리곤 잽싸게 박웅 옆으로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알프헤임에서는 큰 축제가 열렸다.
거창한 음식이 있는 축제는 아니었지만, 감미로운 음악과 단체 댄스를 추는 엘프들.
그 중 하이라이트는 바로 엘프의 자랑 꽃 맥주!
엘프의 맥주는 꿀이 많은 고할나무의 꽃으로 만들어 진다.
달큰하며, 향긋한 꽃 맥주…고할나무의 부산물이라 마나도 회복 시켜주는 귀한 술이었다.
이 귀한 술을 엘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엘프에게 흔하겠는가.
더욱 신기한 것은 아무도 취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마실수록 술이 깨는 술… 바로 엘프의 꽃 맥주였다.
엘프들은 꽃 맥주를 마치 음료수 마시듯 하고 있었다.
칼리스는 박웅과 세실리아를 데리고 본인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팍웅 고옴, 그대를 몰라봐서 미안하오!”
“아…아닙니다.”
“비록 그대가 테란이긴하나, 엘윈이 선택한 그대를 내 딸의 링크로 인정하겠소.”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헌데 링크가 무엇입니까?”
“……………………”
얼굴이 일그러지는 칼리스.
박웅은 정말이지 장인어른에게 사랑 받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크흐흠…. 팍웅 고옴, 엘프가 테란보다 긴 수명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알겠지? 분명 그대가 내 딸 세실리아보다 먼저 무로 돌아갈 것이오. 그때 세실리아의 슬픔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소.”
“예……”
'호 엘프는 얼마나 사냐…?'
'몰라요 집중 좀 해요! 장인어른이잖아요!'
'뭐….뭐라?????? '
'주인님….바보에요….???'
갑자기 얼굴이 확 붉어지는 박웅, 칼리스는 말을 이어갔다.
“그 슬픔과 아픔은 세실리아의 몫, 허나 살아 있는 동안 세실리아에게 슬픔과 아픔을 준다면.. 나 엘프의 왕 칼리스가 그대를 가만두지 않겠다!”
“엘프의 왕 칼리스, 그렇게 한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호야…..'
'네….'
'세실리아도… 나만큼 바보 같다 그치?'
'예…예… 아주 궁합이 잘 맞네요.'
박웅이 잽싸게 세실리아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장인어른!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세실리아를 행복하게 하겠습니다!”
“크흠흠!”
헛기침을 한 칼리스가 뒤돌아 서서 무기장을 열어 단도를 하나 집어 들더니 박웅에게 주었다.
“자 엘프의 식구로 받아들이는 증표로 이 드래곤 커터를 그대에게 하사하겠네”
로즈커터와 같은 은빛을 내는 단도. 단도에는 용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명검 드래곤 커터. 로즈커터와 드래곤 커터는 사실 용의 이빨로 만들어진 진귀한 검이었다. 용의이빨이 귀해 단검형태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강도와 예리함은 어느 검도 따라올 수 없었다. 이미 로즈커터로 그 진가를 맛본 박웅이었기에 매우 좋아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팍웅 고옴, 거 어르신, 엘프의 왕, 이상하게 부르지 말고 아까 장인어른이라고 하지 않았나? 다시 한번 해보게!”
“아 예예 장인어른!”
“자, 이제 팍웅 고옴도 엘프의 식구로 받아들여 졌으니! 축제의 장으로 가보자!”
칼리스와의 담화를 마치고, 알프헤임의 광장으로 나온 일행.
모든 엘프들의 세실리아와 박웅의 링크를 축하하며, 숲의 전사 박웅을 환호했다.
세실리아는 축제 내내 박웅 옆에 착 붙어 다녔다. 이런 세실리아가 싫지만은 않은 박웅이었다.
성대한 축제가 마무리 될 무렵. 박웅에게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에겐 오늘 하루가 너무도 숨가빴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부터 물에 빠져 죽을 고비를 넘겼고, 세실리아를 만나 링크가 되기 위해 죽을고비를 넘은 박웅이었다.
“저기 세실리아…”
“네 고옴님”
“목욕도 하고 싶고…좀 쉬고 싶은데요… 여긴 호텔 같은 건 없나요?”
'주인님… 알프헤임의 공주와 결혼하셨으면서 호텔이라뇨..궁으로!! 꺄아아 궁전 구경 갑시다!'
'아…또 그렇게 되나..?? '
“아 죄송합니다 고옴님, 힘든 하루를 보내셨는데, 제가 망각하고 있었네요.”
'아!! 드디어 샤워와 편안한 잠자리 인가….'
“고옴님 절 따라 오세요~”
박웅과 세실리아가 이동한 곳은 알프헤임의 왕성 아니 거대 고할 나무 옆 큰 꽃 몽오리였다.
세실리아가 꽃 몽오리에 손을 대자 꽃 몽오리의 한 잎이 한들한들 내려왔다.
꽃잎이 떨어지자 꽃 몽오리의 내부가 열렸는데,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따사로운 방이 나타났다.
온통 붉은 계통인 것 빼곤, 아늑했다.
바닥에는 주황색과 갈색이 섞인 가죽 카페트가 깔려 있었으며, 가구들은 전부 나무 형태가 살아있어, 마치 숲 속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알프헤임 길거리에서 보았던 가로등 꽃대가 집 내부에도 있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포근함을 전해 주는 세실리아의 집이었다.
세실리아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화장실을 안내해 주었다.
박웅이 기쁜 마음으로 화장실을 들어 가려는데, 화장실 문이 없었다.
“저…세실리아 문이 없는데요…”
“문이요? 아까 들어오실 때 꽃잎이 문이었어요.”
“아니…화장실 문이 없다고요.”
고개를 갸웃갸웃 하는 세실리아.
“화장실에 왜 문이 있어야 하죠?”
“!!!!!!!”
“아니…그러니까…. 소변도 봐야 하고…. 또 음…그 큰 것도 해야 하고…씻을 때 벗고 해야 하는데..”
“네 고옴님, 화장실에서 편하게 볼일 보시면 되세요.”
“아니 그러니까…. 창피한데….”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왜 창피한가요?”
“!!!!!!!!!!!!!!”
“고옴님은…제가 소변, 대변 보는 것이 부끄러우세요?”
“!!!!!!!!!!!!!!!!!!!!!!”
말문이 막혀 더는 할말이 없어진 박웅 이었다.
“저기…그럼 저 좀 씻을게요. 잠시 자리 좀”
다시 갸웃 거리는 세실리아.
“몸에 큰 흉터라도 있으세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벗고 하세요.”
“!!!!!!!!!!!!!!!!!!!!!!!!!!”
“저기 이렇게 옆에 있는데 어떻게 벗고 샤워해요…”
잠시 고민하는 세실리아.
'야… 호야 이거 우짜냐….. 미치것다 아주 불편해 죽것어.'
'아니 뭐가 부끄러워요 부부끼리….'
'아니…아니…아놔….부끄럽지! 초면인데!!!'
'왜이리 유난이실까….'
'역시 넌 인격체가 아니야!!'
'……세실리아님이 계시니까 제가 참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순간이지만 강한 한기를 느끼는 박웅이었다.
“고옴님, 제가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하신가요?”
정색하며, 말하는 세실리아.
“아..아니 그게 아니라…그러니까…그러니까….”
“네 말씀하세요”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얘기해 버리자'
“세실리아 앞에서 옷 벗는게 부끄럽습니다….”
“혹시 제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러신 거라면 저도 같이 벗을까요?”
!!!!!!!!!!!!!!!!!!!!!!!!!
'떠어어어억!'
'푸하하하하하하 주인님 너무 웃겨요!!'
'………'
얼굴은 빨개지고, 아무런 말도 못하는 공황상태가 박웅에게 찾아왔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박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 그….그럼 저 옷 벗습니다~~~”
“네 고옴님, 제가 도와 드릴께요”
'히이이이익!!!!!'
'푸하하하하하하하 아 주인님 너무 재미 있어요 이상황이!! 하하하하하'
'닥. 쳐. 주. 세. 요.'
“아…아니…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말도 더듬거리고, 심장박동은 올라가고 미치고 팔짝 될 것 같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음, 그럼 고옴님, 씻고 나오시면 드실 음료를 좀 만들어 볼께요~”
“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아주 좋아요 음료수! 기왕이면 차가운걸로!!”
“네~ 고옴님~”
씽긋 웃으며, 반대편 쪽으로 총총 사라지는 세실리아.
'지금이다! 최대한 빨리 벗고, 후딱 씻는 거다. 뜨거운 물에 찜질을 하고 싶었는데…그런 호사는 내 인생에 없나 보다!!'
집 어딘가에서 터그덕, 터그덕 소리가 나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세실리아.
그사이 박웅은 정말 번개와 같은 속도로 옷을 풀어 헤치고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다급하게 수전을 찾아 헤매는 박웅.
'아!!! 이런 망할!!! 수전은 어디있는 거야! 빨리 빨리!!'
아. 뿔. 싸.
지구에서와 같은 수전은 화장실 어느 곳에도 없었다.
칠흑 빛 얼굴의 그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박웅은 그냥 오줌 지린 저 옷을 다시 입어야 하나…고민하는 찰라..
세실리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고옴님~ 엘프들의 옷이긴 하지만, 맞으실 거에요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옷을 가지런히 화장실 맞은편 나무에 놓는 세실리아.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채 박웅의 두 손과 두 팔만이 의미 없는 저항을 하고 있었다.
'이…이대로 내 모든 것을…세실리아에게….'
'저 주인님 물 어떻게 트냐고 물어보시는게….?'
“세…세실리아…. 물을 어떻게 사용 합니까?”
“아차! 고옴님 제가 설명을 안드렸군요!”
가까이 다가오는 세실리아….
박웅의 두 손, 두 팔의 처절한!! 그리고 의미 없는 저항….
박웅 옆에 서서 세실리아가 손을 위로 뻗어 무언가를 쭉 잡아 당겨 박웅에게 주었다.
그러다 살짝 박웅과 살결이 다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세실리아와는 다르게 박웅의 털이란 털은 모조리 솓구쳐 올라 빳빳하게 서버렸다.
'끼아아아악!'
'시끄러워요! 왜 이렇게 난리에요! 그냥 살짝 손이 팔에 닿았구만!!'
'이…….이…..씽… 난 이런 게 처음이란 말이야!!!!!!!'
두 손, 두 팔이 처절한 저항을 하고 있었기에… 우물 쭈물하는 박웅.
“고옴님 이 수술을 손으로 찢으시거나 입으로 뜯으세요 그럼 물이 나올꺼에요.”
그렇다. 큰 꽃망울로 이루어진 집.
식물로 만들어진 집이기에 물은 꽃의 수술 또는 암술에 상처를 줘 식물이 빨아들인 수분을 활용해야 했던 것이다.
상처 입은 곳은 식물의 회복력으로 곧 원상복구가 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자연친화 아파트.
현재 자유로운 신체는 박웅의 입뿐이었기에, 세실리아가 내민 수술을 입으로 콱! 깨물었다.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물이 졸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오오오오 신기하다.”
“그쵸? 자 이제 똑바로 서보세요 팔 벌리고요 제가 씻겨 드릴께요.”
“아…아니 굳이…그렇게…까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정말 힘든 하루셨잖아요~ 그리고 이제부터 제 링크신데 제가 해드리고 싶어요.”
'코….코피 나올 것 같아…..'
'릴렉스 릴렉스 그냥 샤워입니다. 주인님.'
'야야… 아 내 거시기가 반응하면 어쩌냐 정말 민망할텐데….큰일이다!.....'
아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그..그럼 세실리아, 제 등만 좀 부탁드릴까요? 나머진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세실리아도 피곤할텐데 쉬어야죠!”
한껏 낮고 힘있게 말하는 박웅. 실은 제발 그냥 가라는 간절한 바램이었다.
“아~ 고옴님 그럴까요? 등 씻겨 드리고, 제가 음료 가지고 올께요~”
'예스 지져스 땡큐, 감사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알리신 만만세!'
세실리아는 수술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물로 박웅의 등을 문질러 주었다.
세실리아의 갸녀린 손이 박웅의 등을 훑고 지나가며, 박웅의 등근육을 매만져 주었다.
생각보다 발달한 박웅의 근육. 등을 문질러 주는 세실리아의 두 볼도 조금 상기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음료수를 가지러 다시 사라졌다.
'으아악. 살았다. 정말 동해물과 백두산을 스무번은 부른 것 같다. 이제 빨리 씻고 나가자!'
후다다닥 씻고는 수술을 손에서 놔주었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수술은 이내 우윳빛 액체를 흘리며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앞 나무에는 포근해 보이는 수건과 가죽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