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Catch the hair : side A 학교
작가 : 휘루
작품등록일 : 201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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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나토스 (3)
작성일 : 19-10-21     조회 : 379     추천 : 0     분량 : 5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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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 상태가 안 좋으면 형한테 얘기했어야지!”

 

  “안 좋지 않았어.”

 

  새하얀 침대보가 인상적인 바퀴달린 의료침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심박수와 혈중 산소포화도를 재는 기계- 4인 병실에서 난 형에게 말 그대로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병원에 실려 올 정도였으면서! 뭐가 안 좋지 않다는 거야? 그리고 집에 바로 들어가야지, 위험하게 거긴 왜 가? 지금 상태는 어때? 어디 안 좋은 데 있는 거 아냐?”

 

  “지금 강준휘 환자 상태 양호합니다~ 보호자분.”

 

  쏟아지는 형의 말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무렵, 구원의 한줄기라도 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바로 형의 여자친구다.

  온 관심을 나한테 쏟아 부으면서 일만 하는 줄 알았던 형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이란. 그것도 의사선생님을!

 

  “아무래도 검사를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딱딱한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는 형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내가 하는 것보다 더욱 확실한 사람이 옆에 있었기에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으로 형의 여자친구, 하나누나를 열정적으로 쳐다보았다. 강제로 하루 입원을 시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 검사까지 받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원인불명’이 나올 게 뻔했으니까.

 

  “하루에 두 번이나 쓰러지는 거면 확실히 뭔가가 이상이 있는 거 아니야?”

 

  세 번이었지만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켜주신 보건선생님에게 속으로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선생님이 내가 두 번이라고 말했다면 지금 나는 하루 입원이 아니라 장기 입원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무한정 검사를 더 받아야 했을 것이다.

 

  “사건관련 피해자가 시준이네 학교라면서?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검사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루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면 괜찮아. 오히려 검사를 계속 받다가 컨디션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까 다음에 정 상태가 안 좋아지면 그 때 검사를 받아도 될 것 같은데?”

 

  나는 순간, 하나누나가 하느님으로 보였다. 울컥 감동의 눈물까지 나올 것만 같았다. 하나누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윙크했다.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쁜 누나를 형이 어떻게 꼬신 건지... 게다가 이렇게 유독 나를 챙기는 형이 뭐가 좋다고 만나주는 건지 알 수 없는 커플이었지만 본인들이 좋다면야.

 

  “그런데 형, 일하다가 온 거 아니야? 가봐야 하지 않아?”

 

  윤여진의 시신이 발견되고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 조사할 것이 많을 터였다. 형은 한숨을 내쉬고 나를 가만히 보았다. 조금 전처럼 흥분한 듯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걱정이 한가득한 그 눈빛에 미안함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어렸을 때부터 이 눈빛에 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에 어린 나를 데리고 사느라 고생길을 걸어야 했던 형은 지금도 그 길을 가고 있었다.

 

  “시준이는 내가 돌볼 테니까 그냥 가봐도 돼.”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나 혼자만 두고 가는 것은 불안하지만 다행히 하나누나가 옆에서 나를 봐준다고 하니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형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형보다는 하나누나가 있어주는 게 나의 심신의 안정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

 

  “민혁이가 걱정할 만도하지. 너 실려왔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그 정도였어요?”

 

  “열은 38.7도로 펄펄 끓지, 헛소리는 해대지, 아무리 깨워도 정신은 못 차리지.”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신이 말해준대로 ‘타나토스’라고 웅얼거리며 정신 놓고 안 일어나는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 까.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윤여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팔기로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깊게 따지고 들자면 거저 이름을 파는 것도 아니었다. 내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윤여진이 정말로 학교 뒷골목에서 목격이 되었었다는 건 알 수 있지 않았는가. 게다가 ‘타나토스’라는 이름의 누군가도 보았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학교 친구가 그렇게 죽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요.”

 

  “확실히 그렇지- 안 그래도 너희 학교 학부모 중에 몇 명은 내가 아는 선배한테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고 하더라고. 그저 이름만 알고 지냈다고 하더라도 같은 학교 친구가 죽은 건 예민한 나이 대에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

 

  하나누나가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난 또 가봐야겠다.”

 

  “일하시는 중에 죄송해요.”

 

  “넌 내 환자 1호잖아? 주치의인데 당연히 내가 돌봐줘야지. 푹 잘 쉬고, 이상있으면 무조건 나나 간호사를 불러서 도움을 청해. 알았지?”

 

  “네.”

 

  환자 1호. 오랜만에 듣는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나누나와 형이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나게 된 계기는 나였다. 사이코메트리를 하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형이 안고 부랴부랴 달려온 병원에서 막 의사 가운을 입게 된 누나가 나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병실을 나서는 하나누나의 모습은 늠름해보였다.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는데... 덜렁거리면서 어떤 검사를 해도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는 내 모습에 당황하며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겠다면서 공부에 열을 올리던 그 모습이 다시금 떠올라 살짝 웃음이 나왔다. 어찌보면 형이랑 닮은 부분이 있을 지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병실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이 쳐져있어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간혹 들리던 말소리로 내 또래라는 것만 겨우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조용히 해요. 애 자니까. 나가서 얘기해요.”

 

  훌쩍이고 있던 것은 옆 환자의 보호자인 모양이었다.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명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귀를 간질였다.

  밖으로 나가볼까?

  하지만 이내 단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몸 어딘가가 나도 모르게 고장이 난 것 같아 다시 한 번 불발이 일어난다면 큰일이었다. 내일 퇴원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원대한 소망이 박살나고 검사실에 끌려갈 것이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되지.”

 

  나는 괜히 꿍얼거리며 뒤척였다. 옆의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가서 이야기를 한다던 보호자들이 그냥 병실에 남아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우리 애는 지금 병실에 이렇게 누워있는 데 어떻게 그 새끼는 떵떵거리면서 학교를 잘 다닐 수 있는 거냐고. 봉사시간이라니? 누가 걔 청소하는 거 보고 싶다고 했어? 우리 애는 이렇게 아직도 입원해 있는 데, 퇴학도 아니고 정학도 아니고 그냥 단순 사고로 학교에 다닌다고?”

 

  아버지인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씩 울컥하며 커졌다.

 

  “애 들어요.”

 

  학교폭력인가-

  이야기는 간단했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돈이 있고, 힘이 있는 집 아들이고 피해자는 일반 서민. 결과는 굳이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뉴스에서 수십 번은 봤던 이야기였다. 피해자에 대해 SNS상에서 낄낄거리며 아직 미성년자니까 큰 벌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가해자들의 이야기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전치 8주야. 애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낄낄거리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학폭위는 뭐하러 있는 거야? 돈 많은 애들 감싸주려고 있는 기관이야?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친다는 선생들은 뭐하는 거야? 애가 이렇게 되도록 맞았는데 보고만 있던 거야? 제대로 지도를 하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선생이야. 가해자를 감싸려고 있는 게 선생이야?”

 

  나는 문득 윤여진을 떠올렸다. 선생님들은 윤여진을 감싸지 않았다. 그가 단순히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를 떠올려보면 부잣집 도련님으로 이름이 난 녀석이 하나 있었다. 녀석은 돈도 많은 녀석이 재미로 소위 말하는 삥을 뜯으며 다녔고,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힘없는 학생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알면서도 오히려 가해자를 감쌌다. 그가 돈이 많은 집의 자식이기 때문이었다.

  뉴스의 메인을 도배한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그 녀석은 작년에도 학교폭력을 휘둘렀던 녀석이야. 우리 애가 아니라 다른 애를 이미 때렸던 전적이 있던 애라고.”

 

  보호자분의 분노가 고스란히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눈을 감았다. 진짜로 갱생의 의지가 있는 녀석이라면 애초에 이런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 보통의 평범한 학생이 자신의 학우를 피가 터지도록 때릴까? 그런 행위는 사람의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행위다. 정상인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안정은 못 취하겠네.”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괜히 열이 올랐다. 그러고 보면 여태까지 내가 저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던 이유는 형 덕분일지도 몰랐다. 부모님도 안 계신 나는 그야말로 녀석들의 타겟이 되기 쉬운 먹잇감이다. 고아는 힘이 없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관심 대상에서도 쉽사리 제외된다. 굳이 케어하지 않는다고 해서 항의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이 형사라면? 고위관리직이 아니더라도 형이 형사라는 이유 하나로 굳이 타겟을 나로 정하지는 않는다. 건드리면 소리가 날 테니까. 사이코메트리 덕분에 병약 소년으로 이름이 나있어 매력적인 먹잇감일 터인 나를 건들면 형사인 형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대대로 경찰집안인 신도 매일같이 내 옆에 붙어있으니 매력적이면서도 건들기 쉽지 않은 먹이가 된 것이다.

  강시준- 이렇게 보니 복 받았네. 형한테 불평불만을 갖고 있던 나는 잠깐의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형의 덕을 아주 톡톡히 보고 있으면서 형의 과보호가 어쩌구저쩌구 한 자신이 복에 겨웠었다고 성찰했다. 물론 과보호는 여전히 싫지만.

 

  “잠이 안 오네.”

 

  눈을 떴다. 덩달아 열이 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타나토스’를 검색했다. 자꾸만 그 이름이 걸렸다. 그저 ‘죽음의 신’의 이름을 댄 것이겠지만 왜 그 이름을 댔는지 신경 쓰였다.

 

  [프로이트는 죽음의 본능을 타나토스(Thanatos)라고 했다.]

 

  죽음의 본능?

  무슨 말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상처주고, 벌을 주고, 상대방과 싸우는 행동을 하게 되는 본능인 것 같았다. 스스로를 죽이기 위한 행동을 한다는 건가? 자살 희망자 같은? 그런데 상대방과 싸우고 벌을 준다는 건 뭐지? 독특한 방법을 취한다는 건가?

  학교 공부도 하기 싫은 나에게 더 이상의 지식은 무리였다.

 

  “죽음의 본능이라...”

 

  중얼거리며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니 조금 전까지 잠이 오지 않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의식이 저 아래로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설마... 누구든 좋으니까 아니라고 말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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