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Catch the hair : side A 학교
작가 : 휘루
작품등록일 : 201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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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건으로 한 발짝 (2)
작성일 : 19-10-24     조회 : 411     추천 : 0     분량 : 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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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실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감독관 선생님이 돌아다니고 창문 너머 교실 속의 학생들은 단합이 잘 되는 하나의 조직으로써 그런 선생님의 눈을 피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소리 하나 나지 않게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그 모습에 우리 반도 밖에서 보면 이런 모습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두었다가 나중에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꼭 저렇게 움직여야 하는 지 의문이 가는 행동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교실 안에서 몰래 저렇게 움직였었기에 가만히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보건실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꽤나 멀게만 느껴졌다. 보건실을 내 발로 정상적으로 찾아간 적은 적었기 때문에 어색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보건선생님께 형에게 제발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찾아갔을 때를 제외하면 아마 두어번 정도가 다일 것이다. 시력검사하고 몸무게, 키를 재는 간단한 신체검사를 할 때였던가.

  어쨌든 보건실 앞에 서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원과는 다르지만 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알코올 솜 냄새가 정겨웠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보건선생님을 향해 인사했다. 살짝 눈동자를 굴리니 여전히 커튼이 쳐있는 침대하나가 눈에 보였다. 아마 3반의 서도우일 것이다. 저 자리가 그 녀석의 지정석인 것 같으니까.

  전보다 시들은 해바라기가 축 쳐져 있었다.

 

  “요즘엔 괜찮아? 그 후로 한 번도 보건실에 안 왔지?”

 

  “네, 요즘엔 괜찮아요.”

 

  “형이 걱정 많이 하는 거 알고 있지? 아무래도 몸이 약하다보니 정신적으로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몸이 금방 반응해서 그럴 거야. 입원도 했었다며?”

 

  “딱히 사건에 충격 받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피곤했나 봐요.”

 

  “고2라서 시험이다 뭐다 신경 쓰는 것도 많은데 동급생이 죽어서 스트레스 받은 게 겹쳐서 몸이 평소보다 더 피로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어. 혹시 꿈을 꾸거나 하지는 않니?”

 

  나는 망설였다. 사이코메트리는 어찌보면 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니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저는 사실 사이코메트리 때문에 쓰러진 겁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지금 당장 이 상담은 중단되고 형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연락을 할 것 같았다.

 

  “가끔 꾸기는 하는데 괜찮아요. 요즘에는 영양제도 잘 챙겨먹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 후로 보건선생님이 묻는 것들은 간단했다. 윤여진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라던가 최근 다른 학교 학생의 자살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 병원에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혹시 우울하지는 않은지, 최근 몸 상태는 어떤지...

  교실을 나서면서 예상했던 질문들과 별다르지 않은 물음에 나는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미리 답을 준비해서 그런지 수월하게 답한 나는 조금은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심리상태는 양호한 편이라고 대답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안도했다. 이제 선생님은 형에게 ‘강시준 학생의 심리상태는 양호하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라는 연락을 할 것이다. 걱정이 많은 형에게 그 연락이 가면 걱정이 조금은 줄겠지.

 

  “끝났나요?”

 

  내 물음에 보건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리스트에 몇가지를 체크한 선생님은 이내 가봐도 좋다고 말하였다. 다시금 침대를 흘깃 쳐다보았다. 서도우가 자다가 뒤척인 것인지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보건실을 나서려 문에 손을 대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들어오며 나를 통과해갔다.

 

  “젠장.”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과거에 들어와 있었다. 내 몸은 지금쯤 뻗어서 보건선생님이 침대에 잘 눕혀놓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이거 드릴게요.”

 

  “해바라기네?”

 

  서도우였다. 서도우는 보건선생님에게 해바라기화분을 건네고 있었다. 활짝핀 해바라기가 시원스러우니 보기 좋았다.

 

  “그런데 웬 해바라기니?”

 

  “지난번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요.”

 

  정말이지 시덥잖은 대화다-라고 생각했다. 지루한 과거를 억지로 봐야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내 이어지는 대화에 귀가 트였다.

 

  “아- 타나토스?”

 

  타나토스?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다시금 그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선생님께서 지난번에 심판자 타나토스의 이야기를 해주신 게 마음에 들어서 저도 이야기를 선물해주신 답례로 해바라기를 준비해봤어요.”

 

  “이거 꽃말이 일편단심이던가?”

 

  “‘기다림’이요.”

 

  “기다림?”

 

  “제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거든요. 그래서 그것도 기념할 겸 답례도 드릴 겸 준비해봤어요.”

 

  “김영란 법에 걸리는 건 아니겠지?”

 

  “제가 보건실에 자주 오잖아요. 그냥 제가 보고 싶어서 갖다 두었다고 하죠. 그리고 이거 1000원밖에 안 하는 거예요.”

 

  “그럼 저기에 놓아두자. 네 침대에서 잘 보이겠지?”

 

  보건선생님이 화분을 놓아두고 서도우가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런 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윤여진이 사망한 시점과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보건선생님이 ‘타나토스’라는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이 중요했다.

  이 과거는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간단했다. 내가 선생님들의 대화를 들을 목적으로 사이코메트리를 쓴 날, 나는 해바라기를 보았다. 서도우가 가져다놨다는 그 해바라기는 싱싱했다. 윤여진이 습격당해 살해당한 날과 비슷한 시기다.

  나는 생각을 멈췄다. 보건선생님이 왜? 그가 그럴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새로 부임해온 보건선생님과 문제아 윤여진. 윤여진은 보건선생님이 부임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당했다. 둘의 접점은 거의 없었다. 건강체질인 윤여진은 나와 달리 한 번도 보건실에 들르지 않았다. 다른 학교 학생과 싸워 상처가 났을 때에도 그는 보건실에 가지 않았다.

  정신없는 생각을 정리하려는 데 이내 선생님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가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구나. 선생님은 신들 중에서 ‘타나토스’가 가장 좋거든.”

 

  보건선생님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사이코메트리는 끊겼다.

  눈을 떴을 땐 언제나 보아 와서 이제는 정겹기 그지없는 보건실의 천장이었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게요.”

 

  꽤나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는 보건선생님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나가려는 순간 쓰러지다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나 멀쩡해보였는데... 사실은 상태가 안 좋았던 거니?”

 

  “아뇨. 엄청 괜찮았어요.”

 

  너무 괜찮아서 탈일 정도로. 건강하다 못해 날아다닐 수 있는 컨디션이었다. 너무나도 멀쩡해보이던 학생이 쓰러져서 선생님도 꽤 놀라셨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기다려주면 알아서 정신을 차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냥 침대에 눕혀두셨던 것 같았다.

 

  “인수인계할 때 전에 계시던 선생님이 신신당부하던 이유를 알겠더라고. 매번 119에 실려가기도 뭐하니까 말야.”

 

  맞는 말이다. 쓰러질 때마다 119를 부른다면 이 동네 소방관분들의 블랙리스트로 찍힐지도 모르겠다. 그 분들이 출동할 때마다 ‘아, 또 이 녀석?’ 하실 지도. 구급차에 가장 많이 실려간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지도...

 

  “처음에는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정신이 아예 없어서... 원래 매뉴얼을 따르자면 119를 불렀겠지만 전임 선생님이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신신당부하셔서 긴가민가했었어. 지금은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네,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사이코메트리 능력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여기저기 걱정을 일으키고 다니는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드는데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시들시들한 해바라기- 나는 다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병원에 있었을 때 불발로 사용되었던 사이코메트리에서는 ‘타나토스’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지만 골목과 보건실- 불발로 사용된 이 두 곳에서 ‘타나토스’라는 이름이 중복되어 나오니 뭔가 찜찜했다.

 

  “쓰러지고 싶어서 쓰러지는 건 아니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그렇게 갑자기 쓰러지는 거라면.. 위험한데... 지금도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으니까. 쓰러지면서 책상 모서리나 이런데에 머리를 부딪치면 큰일이니까.”

 

  “아, 평상시에는 신이랑 같이 다니니까 괜찮아요.”

 

  내 말에 선생님은 머리를 긁적이셨다. 쓰러지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신과 함께 다니는 것과는 별개라고 말하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 보였지만 난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네?”

 

  갑작스런 선생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안도했다는 듯 미소를 짓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는 의문을 표했다. 학생이 지금 쓰러졌었는데 다행이라니? 이런 신선한 반응은 처음이었기에 어째서 선생님이 저런 말씀을 하는 건지 신경쓰였다.

 

  “아, 네가 쓰러져서 다행이란 소리는 아니니까 걱정마.”

 

  순간 선생님을 괴짜로 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선생님이 미소 지었다. 나는 뜨끔해서 눈을 피했다.

 

  “학교폭력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했거든.”

 

  “학교폭력이요?”

 

  “학교폭력 때문에 일부러 보건실에 오는 학생들도 간혹 있거든. 뭐... 보건실까지 찾아오는 것도 나은 편이지만.”

 

  맞는 말이다. 보건실에 도착도 하기 전에 잡혀서 두들겨 맞거나 욕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훨씬 많다. 게다가 요즘엔 보건선생님도 별로 없어서 문을 잠가두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 학교가 형편이 굉장히 좋은 편인 것이다.

 

  “이렇게 쓰러지고는 하지만 그래도 형이 경찰이라서 그런지 건들지는 않더라고요. 괜찮아요.”

 

  “혹시 괴롭히는 녀석들이 있다면 형한테 일러. 아니면 보건실로 와도 좋아.”

 

  “네.”

 

  “그것도 방법이 되지 않는다면... 타나토스에게 부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르고.”

 

  “타나토스요?”

 

  사이코메트리를 하면서 서도우에게 말을 했던 ‘심판자 타나토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타나토스는 죽음의 신 아닌가요?”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있었던 도시전설이야. 어른들이 해결을 못해주니까 자신을 도와주는 가상의 영웅을 만든 거지. ‘저 녀석은 언젠가 타나토스의 심판을 받을 거야!’라고.”

 

  “그런데 왜 타나토스예요?”

 

  타나토스는 말 그대로 죽음의 신이다. 다른 신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타나토스였을까?

 

  “글쎄? 아마 피해자 학생들은 바랬던 게 아닐까? 저 가해자 녀석들이 죽었으면 좋게다고. 개과천선할 일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고 하더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가해자들이 갑자기 새사람이 된다는 건 어느 동화책에 나와도 믿기 힘든 일이잖아?”

 

  납득이 갔다. 한 번 가해자는 영원한 가해자다. 해병대의 말을 빌려오기는 했지만 피해자에게 있어서 가해자는 영원히 난폭하고 나쁜 사람이다. 가장 빛나야 할 시간을 더럽히고 끔찍하게 만들었으며 꿈을 꾸어야 할 나이에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면서 본인들은 ‘장난’이라고 치부하니 사탄도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보면 금방 손절하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 등받이 뒤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강산은 변해도 가해자들은 변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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