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나와 죽마고우지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는 한다. 우리 형에게 혼이 날까 내가 위험한 짓을 하지 않도록 돌봐주면서도 내가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해서 사건에 뛰어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이 궁금한 것이 생기면 나에게 부탁을 한다거나 중학교 때, 도둑을 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팀을 이루어 탐정이 되어 손발을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실상은 별거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는 것이다. 처음에는 제재를 가하지만 정말로 내가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거나 해야만 한다고 판단하면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부추기지.
“갑자기 서하람은 왜?”
“수상하니까.”
“수상할 것도 많다.”
서하람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부잣집 도련님이 공부까지 잘해 생긴 것도 잘 생겨 운동도 잘해 교우관계 좋아... 와... 이렇게 보니 완전 엄친아를 넘어선 신의 아이였다.
“신이 서하람한테만 스탯을 몰빵했나...”
“그러니까 더 수상하잖아. 완벽한 사람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윤여진 사건에 서하람은 관계없지 않아? 타나토스가 한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학교폭력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서하람은 아니잖아? 애초에 서하람이 피해자였다면 가해자들은 싸그리 우리 학교에서 강제 전학됐을 걸? 걔네 집 파워가 장난이 아니잖아.”
내 말에 신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이면 윤여진이 죽은 산으로 맑은 공기를 쐴 겸 산책을 나왔다는 게 찝찝하기는 했지만 단순한 우연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보다도 나는 ‘심판자 타나토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타나토스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걸렸다.
“옛날에 있던 뜬소문이라도 인터넷에 한 줄 정도는 나와 있지 않을까?”
“음... 그런 거라면 도시괴담을 올리는 사이트가 몇 군데 있기는 한데...”
신이 눈동자를 굴렸다.
“나는 네가 원하는 타나토스에 대해서 조사를 할게. 너는...”
“알았어, 알았어. 내일 서하람한테 접촉해서 사이코메트리를 하면 되지?”
그제야 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거래는 깔끔하게 성립이 되었다. 내가 직접 찾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검색엔진에서 주는 대로 받아먹기만 하는 전형적인 수동적인 검색인이기 때문에 검색엔진에서 해당 사이트가 나오지 않으면 찾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신에게 얘기하지 않고 검색해봤던 적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를 다루거나 검색하는 것에 있어서는 신이 빠삭하기 때문에 나는 심판자 타나토스의 조사 건에 대해서는 신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서하람도 참 불쌍하다. 난데없이 사람이 쓰러지는 걸 봐야 하잖아.”
“그 능력을 쓸 때마다 쓰러지는 그것 좀 어떻게 안 되려나? 정신을 유지하면서 쓸 수 있으면 좋잖아.”
“그런 훈련이 가능하다면 진작에 했겠지. 나는 내가 쓰러졌다는 자각도 없어.”
신의 투덜거림에 나는 너털웃음으로 답했다. 고칠 수 있는 거였다면 진즉 고쳤을 것이다. 그러면 형의 걱정을 사지 않아도 됐을 거고, 학교에서 병약소년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조금 양심에 찔리네.”
“뭐가?”
“그 동안에 눈을 돌리고 있었던 거.”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난 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동안 우리는 엮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약자가 아니므로 우리를 건들지 말라는 행동을 취하면서도 나쁜 이들과도 엮이지 않기 위해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해왔다. 관심 없이 있었다.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가해자던 피해자던 엮이면 피곤해진다. 선생님들은 공공연하게 알면서도 눈을 감는다. 도와주지 않는다. 게다가 학교가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승자는 가해자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눈을 돌리고 있었다.
“그 양심에 찔리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범인을 잡아야지.”
내 말에 신이 가만히 침묵했다. 동의였다.
나는 신과 내가 왜 이 사건을 그토록 놓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는 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손에서 떠나보내기엔 양심이 아팠다.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말을 한 마디라도 걸어주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신과 나는 침묵했다. 신이 열심히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조사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지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가뜩이나 무거워진 분위기에 또다시 사건 이야기를 얹어 더욱 무겁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거다!”
집에 다 와갈 때 즈음 신이 돌연 소리쳤다.
“찾았어?”
신이 보여준 것은 도시괴담을 올리는 사이트였다.
“요즘엔 잘 알려지지 않은 괴담이라서 여기 이외의 다른 사이트에는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아.”
꽤나 많은 괴담들이 즐비한 사이트 내 게시판에는 ‘심판자 타나토스 아는 사람 있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몇 년 전 글로 조회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제목 : 심판자 타나토스 아는 사람 있어?
말 그대로 심판을 하는 죽음의 신이라는 뜻인데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죽이러 돌아다닌다는 괴담인데 학교폭력은 옛날에도 엄청 심해서 당시 피해 학생들이 만들어낸 괴담이라고 함.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인과응보로 언젠가 꼭 심판자 타나토스가 와서 죽인다고. 심판자 타나토스는 가해자가 잘 사는 집안이던 공부를 잘하는 녀석이던 그 녀석의 과거가 어떻든 상관없이 무조건 정의의 철퇴를 내린다고 함. 그리고 가해자들을 벌하기 전에 자신의 과오를 적게 한다고 함.
제발 부탁이니 그만 좀 괴롭히라는 피해학생들의 절규가 만들어낸 괴담이라 꽤 씁쓸한데, 실제로 이 괴담이 돌던 때에 가해학생들이 몇인가 자살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함. 학생들끼리는 심판자 타나토스가 죽인 거라는 이야기가 무성했는데 한창 괴담이 성행하려고 할 때 갑자기 사라짐.
가해자들이 그딴 거 없다고 죽일 테면 와서 죽여보라고 피해자들을 더 괴롭혀서 없어진 걸로 앎. 그 때 인터넷에 인증했던 가해자들 중에 몇 명은 죽었다고 하는 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함.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꽤 유명했던 괴담 같은데 아는 사람 있어?]
내용은 그게 다였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는 취득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의 편에 서서 가해자들을 혼내준다는 타나토스의 이야기에 가해자들이 더욱 코웃음을 치면서 피해자들을 더욱 괴롭혔다는 것. 그래서 돌아다니던 심판자 타나토스의 이야기가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하기사, 이런 이야기에 겁을 먹을 나이가 아니긴 하지.”
“그래도 옛날학생들은 지금보다 순수했다고 하지 않았나?”
“순수는 개뿔. 지금 정치인들도 옛날에는 다 순수했다고 할 걸? 살인자도 착한 사람이고.”
아.
나는 신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옛날 학생들이 순수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미화된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옛날에는 그렇게 순수했다던 어른들이 현재 우리가 마주한 상황들을 가볍게 보고 넘기지는 않을 테니까. 옛날에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던 어른들이 우리가 당하는 폭력에 쉽사리 눈을 감지는 않을 테니까.
“요즘이 더 지능화가 되어있기는 하겠다.”
“뭐가?”
“지능적이잖아. 어차피 벌이 가벼울 걸 알아서.”
“아, 인정.”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에 나오는 극악무도한 10대들은 자신들이 큰 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악용하고 있었다. 어차피 사람하나 죽여 봤자 소년원이다. 그들에게 어린 나이는 특권을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훈장이다.
“어쨌든 윤여진을 죽인 녀석은 이 심판자 타나토스로 가해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의도가 있을 지도 몰라.”
“진짜로 죽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실제로 벌을 받은 사람을 등장시켜서 가해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거구나?”
신의 말에 나는 동의했다.
심판자 타나토스는 지금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들이 죽은 다음 남긴 반성문- 심판을 하기 위한 절차였던 거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해자들을 죽이면서 다른 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다음은 네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심판자 타나토스에 대한 괴담은 요즘 알려지지 않아서 메시지는 전달되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신이 한숨이 섞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윤여진 사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사건은 현재 자살이잖아.”
“하나같이 자신의 과오가 적힌 유서와 윤여진의 반성문. 다 왜 비행기를 접어놨을까? 동일범이라는 걸 알리는 건 아닐까?”
“아니면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어서 종이비행기를 접어놨을 지도 몰라. 과거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을 상기하라는 의미에서 접었을 지도...”
“웬일로 머리를 다 쓰냐?”
놀랍다는 듯 말하는 신의 말에 울컥했지만 꾹 눌러참았다.
“얼른 이 사건을 끝내야 하잖아.”
더 길게 끌면 또 죽는 사람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말에 동의하는 듯 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타나토스의 의중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또다시 다른 가해자를 죽일 거야. 타나토스가 죽이려는 대상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학교마다 적어도 한 명씩은 있지.”
질량보존의 법칙도 아니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가해자는 학교에 꼭 서식하고 있다. 어찌나 분포도가 좋은지 멸종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가는 게 있기 마련이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버스 안내양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없어진 것처럼 학교폭력 가해자들 역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졌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더욱 비상해진 머리로 법을 갖고 놀고 있었다.
“우리나라 학교에만 있냐?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잖아. 아마 분포도 만들면 대단할걸?”
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냥 살아가기에도 하나한 경험해 보려면 시간이 부족한데, 도대체 누군가를 시간을 내서 괴롭힌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를 할 수 있는 범주라면 그나마 사람이겠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에 도착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정리하고 싶었다. 윤여진이 죽어가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를까 싶어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은 푹 쉬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내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이라 더 뭐라고 말을 해줄 수가 없네...”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너야말로 더 알아볼 수 있는 거 있으면 알아봐줘.”
내가 집의 문을 열자 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집인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여태까지 외면했던 사실들에 대해 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이코메트리는.. 내 능력은 내가 사건을 해결해주었으면 해서 발현하는 게 아니라 혹시 벌을 주는 건 아닐까? 신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그 동안 눈을 돌려왔던 것에 대해서 제대로 잘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