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내 반가운 인사에 라형사님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더니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우리형이나 진우형이나 둘 중 한 명이라도 함께 왔다간 라형사님에게 고백을 하려는 풋풋한 고등학생이 되어야 하니 닭살이 올라와 미칠 것처럼 보였다. 나는 키득이며 역시 함께 주변을 살폈다.
“저... 혹시 형들은 같이 안 왔나요?”
“선배님들은 지금 서에 일이 많아서 못 왔어.”
“그럼 형사님이 저희 만나러 오신 거 형들도 알아요?”
“당연하지.”
축하한다. 나는 따뜻한 눈길로 신을 쳐다보았다. 굳이 형들이 같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신은 라형사님에게 고백을 하는 풋풋한 고등학생이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사건을 조사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형들에게 들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 형들한테는 얘기하면 안 되는 거였어?”
해맑은 라형사님의 물음에 우리는 그저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형들이 요즘 바쁜 것 같은데,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된 거예요?”
“음~ 그건 말해줄 수 없는데...? 일반인에게의 사건공개를 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되거든.”
그렇댄다.
나는 신을 쳐다보았다. 자랑스럽게 라형사님을 불렀으면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 방책을 세워뒀을 거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리고 신은 나의 믿음에 훌륭하게 답변을 해내었다.
“형이 너무 집에 안 들어와서 걱정이 돼서요... 물론 여태까지 다른 사건들을 맡았을 때에도 집에 잘 안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저희 학교 학생한테 일어난 사건이잖아요... 뭐랄까 좀 걱정돼서요.”
얼씨구.
진심으로 형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 가식적인 표정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평상시의 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가식적인 것인지 알 터였다. 입에 침은 바르고 저런 말을 하는 거인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걱정 하지마. 이래봬도 선배님들은 에이스거든. 금방 사건을 해결하고 집으로 귀가하실 거야.”
그 사실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경찰은 다른 지역의 학생들은 자살로 규정하고 윤여진 하나만 타살로 보고 있었다. 연쇄살인이라는 게 밝혀지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막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린 사건들이 사실은 타살이었다? 언론들이 올타구나 달려들어 경찰 초기대응이 어땠다고 마구 떠들어댈 터이니 더욱 말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타나토스... 아세요?”
내 말에 라형사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타나토스? 그걸 너희가 어떻게 알아?”
나는 신의 눈물겨운 연극을 바라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신이 팔로 나를 툭 쳤지만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거라면 여기서 정보를 던져주면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형들에 대해서만 묻는다면 라형사님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었다. 형들에게 연락하지 않고 따로 만나서 이야기할 것이 고작 우리 형 언제 집에 오나요?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사실 저희 학교 커뮤니티에 오늘 아침에 글이 올라왔거든요.”
학교의 커뮤니티는 재학생들만 볼 수 있는 학번과 비밀번호를 쳐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컴퓨터의 천재라 불리는 5년 전 졸업한 선배가 만든 커뮤니티는 선생님들도 들어갈 수 없는 단절된 재학생들만의 공간이었다. 1년에 한 번씩 매번 비밀번호가 바뀌기 때문에 졸업하면 학교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경찰들은 이 글에 대해서 알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나는 라형사님에게 커뮤니티의 페이지를 켜서 보여주었다.
“저거 보여줘도 되는 거야? 경찰들의 정보는 못 가져 오잖아.”
“방금 반응 못 봤어? 경찰들도 타나토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알아냈잖아. 이걸로 수사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는 알 수 있을 거 아냐.”
우리는 복화술로 소리를 낮춰 둘이서 소근거렸다. 글을 읽고 있는 라형사님이 혹시나 우리 대화를 들을까 눈치를 보아가며 수군거리던 우리는 글을 다 읽은 듯 한숨을 쉬는 모습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거 누가 올린 건지는 모르는 거지?”
“여기는 재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라서 아마 지금 현재 학교 다니는 학생들 중에서 올린 걸걸요?”
신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우리 학교에 다니는 재학생은 자그마치 800명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인원 중에 한 명이라는 이야기에 라형사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번을 치고 들어가기는 하지만 커뮤니티에 작성된 글들은 전부 익명이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범인이 타나토스예요?”
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불쑥 물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라형사님을 만만하게 봤던 것 같았다. 라형사님은 꽤나 입이 무거우신 분으로 만화에서 어린 아이에게 술술 사건에 대해서 말해주던 여느 형사와는 달랐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줄 수가 없어. 수사 중인 사건은 밖으로 발설하면 안 되거든.”
쳇-
나는 고개를 돌리고 표정을 구겼다. 우리 쪽에서 정보를 넘기면 하나라도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쓰기 싫은 방법이지만 그 방법 밖에는 없나... 오늘 한 번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했던 터라 더 이상은 쓰기 싫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신.”
짧은 부름에 신이 나를 흘깃 보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눈짓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안 신은 내 어깨를 턱 붙잡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루에 여러 번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아는 탓이었다. 하지만 라형사님까지 어렵게 불러냈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라형사님을 보내는 건 뭔가 억울했다. 나는 걱정말라며 고개를 한 번 끄덕거리고는 라형사님의 팔을 붙잡았다.
*
경찰서는 분주했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도, 받는 사람의 주소도 써있지 않은 편지 하나가 경찰서에 도착해 있었다.
“그냥 단순 광고지인 줄 알았는데...”
우편을 꺼내온 것으로 보이는 형사 한 명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어라?”
그 뒤로 보건선생님이 앉아있었다. 보건선생님은 의자에 가만히 앉으셔서 다른 형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지? 윤여진 사건으로 선생님이 불려온 건가? 아니면 뭔가 제보할 게 있어서 온 건가?
“여태까지 자살이라고 결론내린 학생들까지 지가 죽였다고 편지까지 보낸 새끼가 있다는 걸 기자들이 알아봐. 당장에라도 경찰들을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길텐데!”
지당하신 말씀.
그 이유 때문에 여태까지 자살은 자살로 묻어두고 윤여진 사건에 집중을 하고 있었을 터인데 경찰서에 떡하니 자기가 죽였다고 타나토스가 편지를 보내왔으니... 경찰들로썬 상당히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타나토스가 저런 일들을 벌였다면 경찰들은 비난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건 우리 형도 마찬가지고. 방법은 하나. 빨리 범인을 잡는 것이다. 더 이상의 사상자를 내지 않고 이 사건의 범인인 타나토스를 잡는 것만이 경찰들이 비난을 빨리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