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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메시아
작가 : 비맞은산타
작품등록일 : 2019.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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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우주(3)
작성일 : 19-10-30     조회 : 347     추천 : 0     분량 : 4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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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새카만 공백. 그리고 빛나는 별들.

 

 내가 유카의 어깨너머로 맨 처음 본 광경이었다.

 

 “우주다...”

 

 “맞아요. 우주에요. 나야 질리도록 본 광경이지만 당신에겐 다르겠죠? 맘껏 감동해도 좋아요.”

 

 그래. 여긴 우주였다. 지구 인류 중 정말 극소수만 그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그 우주.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여기선 감동해도 좋은 장면이다. 그런데,

 

 ...바뀐 게 별로 없다.

 

 “유카.”

 

 “네?”

 

 “궁금한 게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난 왜 우주까지 와서도 여전히 ‘바닥’에 발을 디디고, ‘위’를 향해 물양동이를 든 채 익숙한 무게를 느끼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렇다. 난 지금 배경만 우주로 바뀌었을 뿐, 나머지는 땅에 있을 때랑 아무런 차이를 느끼고 있지 못했다. 무중력은 어딜 간 거야? 산소 따윈 개뿔도 없는 진공은? 절대영도에 가까운 추위는? 0기압은? 우주 방사능은? 아, 물론 저 가운데 내가 느끼고 싶은 건 무중력뿐이지만. 여하튼!

 

 “냐하하하핫. 그거야, 제가 이 주변을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이죠. 정확히 1기압에 1G를 구현해뒀어요. 아, 설마 우주에 잠깐 올라왔다고 시험이 중단될 거라 기대한 건 아니죠?”

 

 “...젠장. 그럼 두 번째 질문인데. 왜 아까부터 내 머리를 콱 움켜쥔 채 꼼짝도 못하게 하는 건데? 무중력체험도 못하는데, 하다못해 구경이라도 제대로 하게 해주면 안 되냐?”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그녀의 가슴!이라는 이상향으로부터 머리를 빼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유카는 양 손으로 내 양쪽 뺨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채였다. 그래서 현재 내가 볼 수 있는 거라곤 유카의 이마와 그 너머로 보이는 암흑, 그리고 약간의 광점뿐이다.

 

 나, 사실 이거 좀 무섭거든. 무슨 바이스에 고정된 것 같아서. 왠지 목이 비틀리길 기다리고 있는 닭이 된 심정이다.

 

 유카가 흠흠,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음, 준비가 필요해서 그래요.”

 

 “무슨 준비?”

 

 “마음의 준비.”

 

 “응?”

 

 “내가 이제껏 당신이 발 디디고 있던 '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었죠?”

 

 “물론. 그러려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 아냐?”

 

 “히힛. 그럼 뭘 봐도 절대 놀라지 말아요.”

 

 "후... 후후후. 후하하하하하핫! 유카. 넌 날 너무 듬성듬성하게 보는구나. 요 100여년간 내가 얼마나 많이 이상하고 괴이하며 신기한 걸 많이 봐 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제 와서 내가 뭘 본들 놀랄 것 같아?"

 

 "호오. 그렇단 말이지요. 좋아요. 그렇다면야 저도 기꺼이."

 

 내 자신 있는 표정을 본 유카가 장난스레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내밀어 카운트를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자! 보세요!!!"

 

 내 얼굴을 꼭 움켜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난 고개를 자연스레 아래로 내렸다.

 

 발밑을 바라본다.

 

 "......?"

 

 난 눈을 깜빡였다.

 

 ...잠깐.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좀 전의 가속 때문에 뇌에 피가 부족해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난 일단 눈을 감았다. 그리곤 그 상태로 정성스레 목운동을 했다.

 

 ...음. 좋아. 이만하면 됐겠지.

 

 눈을 뜨고 고개를 다시 아래로 내린다.

 

 "......."

 

 "니히히히힛."

 

 "......"

 

 아이 시바... 저건 뭐냐? 진짜 뭐냐? 대체 뭐냐? 알지? 나, 웬만하면 이런 욕 안 하는데.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어이, 유카. 혹시 환상이나 힙노 같은 뭐 그런 짓궂은 장난이라면 당장 그만 둬 주라."

 

 유카가 게 웃는다.

 

 "장난이라니요.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100% 현실인데요."

 안다. 그녀가 이런 걸로 날 놀릴 성격이 아니란 것도, 이제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난들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는 것도. 하지만... 이건, 이건...

 

 "...거북이, 라고?"

 

 이 황당한 광경을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혹시 당신은 고대인도인의 지구 상상도를 본 일이 있는가. 밑엔 뱀을 깔고 등엔 코끼리, 다시 그 위엔 반구형의 땅을 짊어진 거대 거북이. 거기서 뱀과 코끼리를 빼고 거북이를 헬X키티 풍으로 굉장히 귀엽게 데포르메 해 놓은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래! 바로 그거다! 거북이를 모델로 삼았음에도 정작 완성품은 귀여움에 올인 하느라 거북이랑 쥐뿔도 닮지 않은, 폭신폭신한 X로키티 풍의 인형 삘 나는 지구사이즈 거대 꼬부기가 등에 등껍질 대신 반구형의 하얀 대지를 얹고 우주를 걷고 있는 모습. 그게 바로 지금 내 눈에 비치는 광경이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놀랍냐고?

 

 이 사람들아! 스케일 좀 봐! 화성에 사람을 보내네 마네 하는 이 21세기의 지구인으로서, 등에 지구를 절반으로 쪼갠 것 같은 땅덩어리를 얹고 우주를 걷는 전장 15000km짜리 거북이인형을 봤는데 어떻게 안 놀라!!!

 

 아니, 뭐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 규모라는 측면만 제외한다면 내가 이제껏 봐 온 것들도 정말 만만치 않은 것들이니까. 하지만 말이지,

 

 "...이게 대체 전부 몇 마리야? 아니, 마리라고 해도 되나? 여튼, 하여튼... 대체 숫자가... 하, 하하..."

 

 그런 특대 별 꼬부기 수천수만, 아니 어쩌면 수억 마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주 저편부터 저편 소실점까지 이어진 채 착착 발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도 진짜 그런 소리가 나올까?

 

 "30억 마리정도 돼요. 무한히 이어진 것처럼 보이긴 해도 실상은 그리 많지 않죠."

 

 ...30억 마리랜다.

 

 난 가장 가까이에서 하얀 반구형 대지를 등에지고 걸음을 느릿느릿 발을 옮기고 있는 녀석에게로 눈을 돌렸다.

 

 "우리가 방금 저기서 빠져나온 거지? 그러니까, 내가 이제껏 저 만들다 만 짝퉁 거북이 녀석 등 위에 있었다고?"

 

 "짝퉁이라니요. 저거 저래 뵈도 천계 공모전에서 우승해서 나온 디자인인데요."

 

 아, 젠장.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놈의 동네는 태클 걸 곳이 너무 많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 내가 별 운운할 때 그런 표정 지은 이유를 알겠다. 별은 개뿔... 대체 저것들 정체가 뭔데? 여기 태양계, 아니 태양계가 다 뭐야. 여기 우리은하도 아니지?"

 

 유카가 내 어버버버 하는 반응이 심히 마음에 들었는지 유쾌하게 웃었다.

 

 "냐하하하핫! 그 말대로 여긴 우리은하 같은 곳이 아니에요. 차후 지구에서 여길 관측한다면 그들은 130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을 보며 이 SBc형 나선은하의 이름을 짓게 되겠죠."

 

 난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130억 광년이라고? 세상에..."

 

 난 잠시 눈을 감았다. 대학 도서관에서 가끔씩 뉴튼이라든지 하는 과학잡지를 보곤 했기에 아는 것이지만, 130억 광년이면 현재 지구에서 관측된 가장 먼 은하와 비슷한 거리이다. 심지어 우주의 확장속도가 빛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지금, 어쩌면 그 거리는 130억 광년이 아니라 400억 광년을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난 뭔지 모를 두근거림과 아득함을 느끼며 숨을 뱉었다.

 

 "후아... 스케일 봐라. 젠장."

 

 당시 ‘134억 광년 떨어진 은하’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그 잡지의 은하사진은 그야 말로 점, 그것도 134억 년 전에 찍힌 점이었다. 우주는 남자의 로망. 나 역시 남아라 그 작은 점을 보며 짧게나마 저긴 어떤 곳일까 하고 상상해 본 게 채 엊그제 같은데.

 

 빛조차도 도착하는데 130억년이 걸리는 곳.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누님은 지구를 관리하고 있잖아. 그런데 130억 광년 거리의 이곳을 들락날락, 뭐랄까. 대단하네."

 

 "그렇죠. 치천쯤 되면 뭐, 좌표만 알면 거리는 무의미하니까요. 지천들도 무리를 좀 하면 어찌어찌 가능하고요. 그래서 멀다 가깝다의 개념이 행동에 제약이 되는 건 실제 좌천(제3위계)부터라 할 수 있죠."

 

 유카가 에헴!하는 헛기침과 함께 가슴을 쑥 내밀었다. 내가 이만큼 대단한 존재다! 뭐 이런 걸 어필하고 싶은가본데... 지금의 난 한층 더 그 존재감을 과시하는 풍만한 가슴이 조금 전 세배로 즐긴 가슴의 말캉부들폭신한 감촉을 플래쉬 백 시키는 바람에 잠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 그래.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유카는 위대한 존재였지... 푼수노출광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자주 잊어먹는단 말이지."

 

 유카가 뺨을 뿌~ 부풀리며 짐짓 발끈했다.

 

 "푼수라닛! 노출광은 몰라도 푼수라닛! 내 천사생 통틀어 이런 모욕은 처음이야! 그 언니도 내게 밥벌레 년, 월급도둑 년 소리는 했어도 푼수 년이란 소린 안 했는데!"

 

 "...노출광은 괜찮은 거냐."

 

 유카가 뽑 하고 뺨에서 바람을 빼며 비키니아머 밖으로 드러난 가슴과 힙을 찰싹짤싹 두들겼다. 두들긴 부분에서 또 잔잔한 탄력 넘치는 떨림이... 으흠.

 

 "뭐, 차림새가 이 모양이다 보니 그건 변명을 못하겠네요."

 

 "......"

 

 ------------------

 주어진 30분의 구경시간을 만끽한 덕에 이 상상초월의 이상한 우주풍경에 대한 흥미가 조금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때서야 난 한 가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음. 으음?”

 

 그건 좀 전부터 내 몸 상태가 상당히 묘하다는 것. 정확하게는, 지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불끈불끈하단 느낌이랄까. 우주로 올라오면서 가슴에 담긴(?)채 가속을 느낀다는, 유달리 자극이 강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라면 그냥 ‘좋은 경험이었구나. 잘 먹었습니다.’하고 넘어갔을 텐데...

 

 어째선지 좀 전부터 번뇌가 들끓어 유카에게 시선을 가져가는 게 살짝 부담스럽다. 그 가슴쿠션이 뭔가 트리거가 된 건가? 열이 확확 오르네.

 

 "이 SBc형 나선은하의 크기는 우리은하의 1.8배쯤 돼요. 질량도 그렇고."

 

 이런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저런 것에 관해 설명을 이어가는 유카. 난 일단 우주에 올라온 덕에 텐션이 변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신경을 끈 뒤, 유카의 설명에 다시 집중했다. 이런 두 번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순간을 그런 번민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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