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첫회보기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5)
작성일 : 19-11-10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2569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1 :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비비안이 못 알아들었을까봐 크리스토퍼 백작은 쓸데없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저지른 뒤에 통보하는 거 말입니다.”

  “…….”

  “그 때문에 종종, 음… 난처합니다. 저번에도 말없이 저택을 비우셨지요. 경호원이 있으니 걱정은 안 했습니다만, 그날 몰래 입으신 가넷의 외출복 때문에 극대노한 그녀가 에밀리의 다리를 분지를 뻔했습니다. 설마 비비안 양의 소행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래요, 그런 걸 말한 거예요.”

 

  라고 말하면서도 비비안은 민망해서 헛기침을 했다. 자신의 안하무인을 조곤조곤 지적하는 크리스토퍼 백작 앞에서 할 말이 없었다.

 

  “또 가끔 이름도 처음 들어본 요리를 주문하셔서 주방장이 진땀을 뺍니다만…”

  “…….”

  “그 외에는 딱히 없습니다. 저야말로 조심하겠습니다.”

  “…예, 뭐….”

 

  피차 실례하지 말자는 결론으로 훈훈하게 대화를 끝내려고 했는데. 비비안은 듣다 보니 이제껏 실례해온 쪽은 저뿐인 것 같아서 말을 말았다.

 

  크리스토퍼 백작이 말을 그치자 분위기가 다시금 서먹해졌다. 비비안은 뺨을 긁적였다. 흠, 여기에 내 책임이 8할은 되려나. 환기 차원에서 그녀는 약간의 농담을 섞어 말했다.

 

  “제가 이미 실례 하나 했으니까, 백작님도 하나쯤은 해도 된답니다.”

 

  그 말에 크리스토퍼 백작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공작가 영애에게 무슨 배짱으로 실례를 하라고? 하지만 ‘진짜입니다’ 하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비비안에게 다음 순간 그는 홀린 듯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럼 실례지만…”

  “네.”

  “들어줄 이 없는 제 아내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비비안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둥글게 접혔다. 얼마든지 말하라는 뜻이었다.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놓고 크리스토퍼 백작은 마지막까지 꽤 뜸을 들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비비안에게 과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이니 괜찮다는 생각이 그를 충동질했다.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도 못한 채 그는 입부터 열어버렸다.

 

  “먼저 떠난 제 아내, 그러니까, 다이애나 레브론은요.”

 

  비비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레브론이라고? 어디서 들어본 가문 같은데. 그보다 아내를 왜 결혼 전 이름으로 부르는 거지? 그녀의 궁금증이 더 커지기 전에 크리스토퍼 백작은 결심한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크리스토퍼의 성씨를 따르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습니다.”

 

 ***

 

  붉은나무 저택을 나선 지 다섯 시간째. 에밀리는 오늘만 벌써 세 번이나 울상을 했다. 첫 번째는 신시가지에 있는 그레이 백작의 저택에 갔을 때. 백작은 저택을 방문한 이가 에밀리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축객령을 내렸다. 저 쥐방울이 무슨 말을 지껄이든 무시하라며.

 

  두 번째는 마르크 씨의 손자인 길리 마르크를 만나러 책방에 갔을 때. 안부인사도 묻기 전에 마르크 씨는 ‘손주놈이 기어이 선원이 되겠다며 아스타인을 떠났다’고 눈물을 쏟았다. 불곰처럼 거대한 할아버지가 그만 울 때까지 달래느라 에밀리는 녹스와 함께 진땀을 뺐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지금.

 

  가넷의 친구이자 건실한 양복장이인 벤자민 오터를 만나러 테일러샵에 왔을 때였다. 그는 과거에 에밀리를 꽤 오래 쫓아다녔고, 에밀리는 그의 마음을 이번 계획에 ‘아주 조금만’ 이용해먹을 생각이었다.

 

  “모, 몰랐어? 나 가넷이랑 사귀는 거….”

 

  이렇게 고백하기 전까진. 벤자민이 소년처럼 수줍게 얼굴을 붉히자 에밀리는 뒷목을 잡았다. 이 망할 새끼! 언제는 나밖에 없다더니!

 

  “점수판에 순결 항목을 추가해야겠어요….”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귀를 의심하는 녹스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에밀리는 벤자민의 몽타주에 찍찍 엑스표를 그었다. 친구의 남자를 지키겠다고 또 다른 친구의 남자를 팔아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에밀리의 그런 착잡한 속도 모르고 벤자민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와 녹스를 살폈다. 둘이 무슨 사이인지 가늠하는 듯하여, 녹스는 에밀리에게서 슬쩍 한 걸음 멀어졌다. 그러자 벤자민의 관심은 곧 에밀리가 품에 안은 종이뭉치로 옮겨갔다.

 

  “어라. 이 분은 프라이스 남작님 아냐?”

 

  공교롭게도 그가 발견한 얼굴이 아직 녹스와 에밀리가 만나보지 않은 마지막 한 사람의 후보였다. 모건 C. 프라이스.

 

  “이 그림을 알아봅니까?”

  “그야 물론이죠. 제 단골손님이신데.”

 

  녹스의 중의적 물음에 벤자민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고,

 

  “게다가 오늘 연회복 맞추러 오시기로 했거든요.”

 

  에밀리는 화색이 되었다. 만나기 까다로워서 가장 나중으로 미뤘던 인물인데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듯 녹스의 소매를 짤짤 흔들었다.

 

  “알았으니까 성급하게 굴지 말고…”

  “에이. 다 생각이 있거든요?”

 

  서로에게만 들리게 속삭이고 에밀리는 벤자민을 향해 생긋 웃었다. 그 옛날 에밀리의 미소에 반했었던 벤자민은 과거를 상기시키는 미소에 흠칫했다. 다만 옛날처럼 홀려서가 아니라, 등골이 싸해져서였다.

 

  그리고 그 예감이 적중했다는 듯 에밀리는 그에게 아주 은근하게 물어왔다.

 

  “우리 좀 도와줄래?”

  “어? 무슨…”

 

  잔뜩 움츠러든 벤자민이 의문을 표하기 전에, 그녀는 질문을 정정했다.

 

  “아니다. 우리가 좀 도와줄까?”

 

 

작가의 말
 

 1) 10화에 못 담은 애매한 분량이라 어제오늘 연달아 올립니다. 날이 한가해지면 저도 연참이란 걸 해보고 싶어요..ㅠ.ㅠ

 2) 결국 공모전 기간 내에 7만 자를 채우질 못하네요.. 아쉽..

 
 

맨위로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