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전단 : [ 1화 ] 나쁜 놈이 잘 잔다 1
강남 최대의 호텔나이트클럽 은 폭발직전이었다.
[서준아. 뭐 눈에 띄는 게 있냐?]
무전기를 통해 고반장이 물어왔다.
“있기야 있지요! 우와 몸매 죽이네!”
잠복근무 중이던 내 시선을 강탈하며, 몸매를 드러낸 그녀들이 지나쳐 갔다.
은 평상시에도 꽉꽉 들어차는 핫 플레이스였기 때문에 자정이 지나자 니트로글리세린이 연소를 시작할 때처럼 뜨거운 열기로 타올랐다.
플로어를 가득 채운 남녀들은 마치 한 몸이 된 듯 군무를 췄다. 올 해 최고의 댄스 히트곡을 DJ가 틀자 이미 한 몸이 된 남녀들은 음악에 맞춰 서로의 몸을 꽉 밀착시켰다.
아까부터 내게 눈길을 주더니, 지금은 내 옆에서 춤을 추고 있던 여인이 내 몸에 자신의 엉덩이를 밀착했다.
음! 이거 잠복근무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참고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오늘 처음 본 여인이 내 얼굴을 향해 몸을 돌렸다. 탄탄한 배를 그대로 드러낸 배꼽티에 슬쩍 걸쳐 놓기만 한 미니스커트. 게다가 탄성을 자아낼 만큼 솟아있는 가슴은 그녀의 율동을 따라 위아래로 흔들렸다. 분명 C컵이 분명한 가슴 라인과 브래지어를 안 해서 우뚝 솟아오른 돌기가 하얀 셔츠 위로 너무도 선명했다.
아! 잠복근무만 아니었다면!
오늘만 벌써 2번째다. 여자에게 직접 대시를 받을 정도의 나란 남자.
잠복근무만 아니라면, 어땠을까?
이때 정신 차리라는 듯 무전이 날아왔다.
[서준아! 바퀴벌레 들어간다!]
무전을 통해 오늘 잡아야 할 놈이 정문을 통과했다는 말을 듣고는 내 몸에 밀착된 그녀의 몸을 떼어냈다.
몸이 한껏 달궈진 그녀의 눈에서 아쉬움이 묻어났지만, 나는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부비부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플로어를 지나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 남자를 호위하던 조폭들이 사람들의 접촉을 막으며 걸어갔다. 후두 자켓을 뒤집어 입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후드를 올리기 전까지는 그가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중압감을 느낄 정도로 무리 속의 한 남자를 호위하며 그들은 호텔나이트클럽 의 구중궁궐처럼 깊고 은밀한 내실로 향했다.
오늘도 난 바퀴벌레들을 잡기 위해 조용히 그 뒤를 밟았다.
§
호텔나이트클럽 의 뒷문 근처에는 허름한 봉고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다. 내가 봉고차 문을 벌컥 열자, 어둠 속에서 잠복하고 있던 한 떼의 이리 같은 형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내가 그들 사이로 자리를 잡고 앉자, 모두들 보고 있던 몰래카메라 모니터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몰래카메라를 몸에 부착한 업소 아가씨를 통해 호텔나이트클럽 실내 복도가 계속 비춰지고 있었다.
“저기요! 자꾸 화면이 쳐지는데, 쪼매만 위로 쳐들면 안 될까요?”
강력반 고장석 반장이 자꾸만 기울어지는 몰래카메라 앵글을 보며 요구했다.
정말 어이없는 부탁이었다.
“형~ 지금 앵글 갖고 그러는 거야? 아 참. 어이없네. 이런 요구 하면 안 돼. 우리 지현 씨가 나 봐서 하는 일인데, 앵글이 이상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고반장을 향해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불만스러운 듯 고반장이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뭐~ 자꾸 고개가 꺾이니까 좀 부탁한 거지.”
“아, 정말! 지현씨 전혀~ 신경 쓰지 말구요. 그냥 그 방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나는 몰카를 촬영하며 블루투스로 통화 중인 업소의 여성 정보원에게 안심하라고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저한테는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요?”
“그럼 당근이죠. 지현씨.”
“그리고...”
“말 안 해도 알아요 지현씨! 남동생, 무혐의로 곧 나올 거예요. 우리 강력반 반장님도 약속했어요. 그죠 반장님?”
나는 지현씨와 했던 약속을 이행하라는 듯 옆에 앉아있는 고반장에게 눈치를 줬다. 마지못해 고반장은 마이크를 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지현씨. 저 강력반 고장석 반장이에요. 지금 말한 남동생 건은 무혐의로 처리될 거예요. 저희가 조사 좀 했더니, 진짜 이외로 무혐의더라구요. 아마 내일 중으로 볼 수 있을 거예요.”
“정말요?”
나는 고반장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뺏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럼요 지현씨. 그러니까 오늘 우리 잘 해봐요!”
지현씨로 불린 그녀의 가슴에는 ‘전지현’이라는 웨이트리스 명찰이 붙어 있었다. 공격적으로 환히 파진 가슴팍으로 흘러내린 목걸이 형태의 몰래카메라를 통해 깨끗한 화면이 전송되고 있었다.
지현은 몰래카메라의 앵글을 위해 그녀의 가슴을 슬쩍 치켜세웠고, 그러자 봉긋한 그녀의 가슴이 마치 로키산맥처럼 불끈 솟아올랐다. 그녀는 짧고 매력적인 치파오를 입은 채 밀실을 향해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잠시 후 밀실 앞에 선 그녀는 도베르만처럼 노려보던 경호원들에 의해 몸 검사를 당했다. 그러는 동안 내 입도 타는 듯 목마름이 느껴졌다. 경호원들은 그녀의 가슴에 있던 목걸이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유심히 살피며 그녀를 희롱했다.
‘젠장! 들켰나?’
침샘이 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전지현양은 교태 섞인 콧소리를 내며, 경호원을 속였고 드디어 밀실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빙고!”
드디어 룸 안의 모습이 몰래카메라를 통해 비쳐졌다.
룸 안에는 상석에 앉은 남자와 접대를 하는 또 다른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둘 옆으로 조무래기들이 서넛 앉아 있었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구석에 서있었다.
“빡환이. 이 포주새끼 있어? 없어?”
고반장이 숨넘어갈 듯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며 함께 보고 있던 나를 향해 다그치며 물었다.
“잠깐만!”
무엇인가 발견한 나는 급히 말했다. 그리고는 빡빡머리의 포주 빡환의 수배전단을 찾아들고는 몰카 모니터 옆에 대고 비교해 보았다. 몰래카메라 화면 속에서 가발을 쓴 채로 변장을 한 포주 빡환을 곧 찾아내었다.
포주 빡환이 방금 들어간 술을 받아 상석에 앉아있던 사내에게 곧바로 따르기 시작했다.
“짜식. 성공했네. 요즘 머리카락 시술이 많이 발전했네. 진짜 같다. 그지 형?”
“요새 돈 있으면 못할게 어딨겠냐! 나도 좀 알았으면 좋겠네.”
“에이 형 뭘 걱정해. 우리 빡환이 잡아다가, 함 물어보지 뭐.”
나와 고반장은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주거니 받거니 여유로운 만담을 시작했다.
§
밀실에서 VIP를 향해 접대 하던 빡환이 마이크를 잡았다.
빡환. 본명 박지환.
어둠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모두 그를 빡환이라고 했다. 용산역 앞 사창가 포주 출신이었던 빡환은 돈과 계략으로 조직을 키운 자였다. 용산역 철거 당시 강제철거 용역을 지휘하며 거대 공권력과 담합해 세력을 키웠다. 이후 용산역 개발에 참여하며, 누구도 따라가기 힘든 부와 세력을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걸린 수배건수는 대략 13건. 살인, 강간, 특수상해, 살인교사 등. 이런 중범죄를 저지른 놈이면 벌써 감방에 갇혀야 할 것 같지만, 빡환은 잡을 수 없었다.
빡환은 2개의 특기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변장술이었다. 도망치는데 비상한 재주가 있었는데, 그놈의 변장술에 나도 몇 번이나 당했다. 빡빡 대머리 주제에 별의별 가발을 다 가지고 다니다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완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자로 변장하는 정도는 놈에게는 우스운 일이었다. 나도 빡환의 변장에 깜빡 속아서 다 잡은 놈을 놓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우리 무진서 강력반 전원 1개월 감봉을 받았다.
이가 갈리더만.
게다가 빡환은 신출귀몰한 변장술 말고도 특기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줄 대기 였다. 불법으로 끌어 모은 돈으로 권력과 사람을 샀다. 빡환의 돈을 받아 처먹은 놈이 얼마나 많은지 실로 놀랄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는지 몰라도 함정수사를 해도 어떻게 알고 도망치는 거였다. 내부에서 정보가 새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누군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서 아무도 못 믿게 된다. 그러면 결국 팀워크에 문제가 생겨서 작전은 실패하고 만다.
증말 이가 갈리더만.
사실을 말하자면, 경찰이 범인을 못 잡는 이유는 딱 2가지다. 하나는 잡을 생각이 없거나, 또 하나는 잡으면 안 되는 경우다. 이 2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잡을 수 있다.
빡환의 경우는 이 2가지 이유가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었다. 우리 형사 중 일부는 그를 잡을 생각이 없는 거야. 왜? 이미 빡환에게서 상납금을 두둑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녀석을 잡으면 안 되는 거야. 왜냐면 놈은 경찰을 포함한 각계 각층의 권력자들과 커넥션을 만든 녀석이기 때문에 그들의 비리 사실을 증명하게 되는 증인이자, 증거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녀석이 아직도 체포되지 않고, 유유히 다니는 거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 향락의 끝을 즐길 수 있는 강남 최대의 나이트클럽 에 나타난다는 것만 봐도 빡환이 얼마나 경찰을 호구로 보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잘못 걸렸어. 빡환은 나한테 찍혔거든.
내가 원래 화를 잘 내는 편이 아닌데... 원래 바르고 정의로운 편이 아니어서 악질이 아니면 사적인 감정을 갖지 않거든.
벌써 5년이 지난 사건이야. 경찰대를 나와 여기저기 부서를 돌다가, 바라고 바랬던 강력반에 배속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어. 부푼 꿈을 안고 간 강력반이라 빡센 생활이었지만, 기꺼이 막내 생활을 할 때였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차출을 당하게 됐는데.근데, 강력반이 무슨 데모 진압하는 델 나가냐구. 강력반 대부분이 잠복근무 중이라 막내였던 내가 차출된 거지. 차출된 형사들과 함께 출동해 보니 용산역 주변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지.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철거민들이라 그런지 정말 살벌하더만. 나처럼 우리 서에서 차출된 형사들은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매스컴과 민간인 접근을 막고 있었어.
그런데 경찰 쪽에서 최루탄이 발사되고, 그에 맞서 화염병이 터지면서 그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불길이 타올랐어. 그리고 전경들의 방어선이 뚫리면서 경찰이 밀리자, 뒤로 빠지라는 무전이 왔지. 도대체 지휘부가 어떻게 할까 했는데...
그 때 놈들이 투입됐지. 사설 용역들이었어. 시청과 경찰서의 묵인 하에 폭력으로 해치울 모양이었어. 검은 마스크를 쓴 채로 손에는 각목과 쇠파이프를 든 상태였지. 곧이어 사설 용역들의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되었어. 경찰대 교육과정 중에 시위진압과정이 있었기에 빡세게 데모 진압훈련을 받았지만 내 앞에서 펼쳐진 건 데모 진압이 아니었어. 그건 국가 공권력을 등에 업은 무지비한 폭행이었어. 아무리 생존권을 걸고 목숨 걸고 싸우더라도, 일반인이잖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건 이외로 힘든 일이야. 형제나 친구끼리 싸운 적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 폭력을 쓴 적은 아마도 없을 거야. 더구나 상대는 데모를 한다고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잖아. 노인들도 있었고, 아녀자들도 있잖아. 근데 사설 용역들은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어. 의식을 잃거나, 맞는 걸 못 견뎌서 살려달라고 빌기 전까지 폭행을 그만두지 않는 거지.
이건 아니다 싶었어.
더구나 시위대 중 딱 우리 엄마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가 있었어. 내가 봐도 그 아줌마는 열 사내 보다 용맹했어. 힘이 세거나 잘 싸운다는 게 아니라, 뒤에서 지휘를 하는 거야. 무너진 둑처럼 시위대의 대열이 흐트러지고, 사설 용역들에게 폭행당하는 시위대를 보면서도 그 아줌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어.
잠시 후 사설 용역들에게 아줌마가 둘러싸였어. 그리고는 굴복하지 않던 아줌마를 향해 누군가 쇠파이프를 휘둘렀지. 멀리서 보던 나에게까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어. 이때 방어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는 아줌마를 쇠파이프로 후려치던 놈이 바로 빡환이었어. 피가 튀고, 아줌마는 끔찍한 비명을 질렀지. 사설 용역들은 빡환의 폭력이 보이지 않도록 동그랗게 둘러쌓았지. 하지만 아줌마의 찢어지는 비명은 계속 이어졌어.
사실 그 뒤는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나와 함께 차출된 형사의 전언에 의하면 내가 사설 용역들을 향해 뛰어들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아줌마를 패던 빡환과 맞붙어 싸웠다는 거야. 눈이 뒤집힌다는 말이 있잖아. 내가 그때 그랬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난 경찰이 안됐으면, 쓰레기가 되었을 거야. 한때 정말 막 살았거든. 그 덕에 누구한테 맞고 살지는 않아. 하지만 그건 알아. 약자를 괴롭히는 건 누가 뭐래도 잘못된 거야. 어쨌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그 아줌마는 누구한테는 엄마이고, 아내일 거 아냐. 그리고 그냥 일반 시민이라구. 그런 시민을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무차별 폭행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래서 빡환은 그가 아줌마에게 가한 고통의 크기만큼 통증을 느꼈을 거야. 정말 죽을 만큼 팼다는 거지. 물론 나도 그때 사설 용역들한테 맞아서 몇 군데가 부러졌지. 보다 못한 형사들이 나서지 않았으면, 나도 죽을 뻔 했지.
하지만 다행히 아줌마는 살렸어.
그때 각자 앰뷸런스에 실려가면서, 빡환에게 내가 한 마디 했지.
“너 이 개새끼. 다음에 내 얼굴 보면 너 죽는다.”
근데, 그 빡환이를 5년 만에 잡을 수 있는 찬스를 잡게 된 거지.
그때 내 기분이 과연 어땠을까?
< 나쁜 놈이 잘 잔다 1 > 끝
ⓒ 진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