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전단 : [ 3화 ] 나쁜 놈이 잘 잔다 3
“동! 작! 그! 만!”
사자후! 역시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다! 사시미 칼을 들고 달려들던 빡환의 부하조차 나의 사자후에 놀라 지레 주저앉아 버렸다. 기세는 반쯤 내게로 기울어졌다. 이젠 확인 사살을 해야 할 때다. 느긋한 베테랑처럼!
“야! 야! 니들 칼 좀 집어넣어라. 생일케이크 보니 누군지 모르지만, 귀 빠진 날 칼 담글 일 있냐. 좋게 좋게 해결 보자구.”
내가 너스레를 떨자, 긴장했던 빡환의 부하들조차 전의를 잃어버렸다. 그때 내 시야에 룸 구석에서 아가씨 허벅지에 대가리를 쳐 박고 숨은 빡환이 들어왔다.
“어이, 빡환아! 간만에 형님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안 그래?”
룸 구석에서 아가씨 사이에 숨어있던 빡환이 ‘아우 씨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한껏 인상이 찌푸려진 빡환이었다.
“빡환아~ 오늘 어디 안 좋은 일 있어? 기분 많이 안 좋은 것 같애? 엉?”
“아니야~ 지금 이 자리가 그런 자리가 아니야.”
빡환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빡환은 자신보다 10살은 더 어린 나의 대거리에 열 받았다. 게다가 이 자리는 자신의 든든한 금동앗줄이 될 VIP와 함께 있는 자리였다.
오늘 급습한 경찰들에게 잡히지만 않는다면 아직 승산이 있었다.
검찰과 법원도 이미 손을 써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단속하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났던 것이다. 조만간 자신은 자수를 하게 될 것이고, 수많은 범죄 사실은 물 타기를 통해 집행유예로 풀려나오게 예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 나를 만나다니!
하긴 빡환이도 열 좀 받을 게 분명하지. 5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내가 제대로 깽판 치며 쫓아다녔거든. 한번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
놀랍게도 빡환이더라구. 그러면서 참 사람 좋은 척을 해. 기가 막혀.
“아니, 형님. 우리가 전생에 무슨 원수 졌다고 저한테 왜 이러는 거에요? 제가 형님 부모를 죽였어요? 형제를 협박했어요? 그냥 성실하게 세금 내면서 살아가는 시민한테 이렇게 하는 일마다 깽판을 만들면 어떡해요.”
“아이고, 우리 족보에도 없는 동생이 억울한 모양이네? 잘못 한 일 없어서 억울해?”
“아이, 형님. 억울하다기보다는 조금 너무하신 거 아니냐구요. 형님! 쥐꼬리만 한 형사 월급에 그렇게 휴일도 없이 불철주야 근무를 하셔서 제가 조그만 성의를 보냈는데 영 반응이 없으시더라구요.”
“아, 얼마 전에 가방 하나 보냈더라! 야, 근데 그게 뭐냐? 가방은 그렇게 큰데 든 건 겨우 돈 천만 원 넣으면, 날 너무 막보는 거 아냐?”
“아이, 말씀을 하시지. 제가 인사는 원체 잘하는 놈이에요. 우리 형님 그래서 자존심 상했구나. 우쭈쭈! 내가 우리 형님 화 풀리게 해 드릴께. 앞으로 형님,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나 말씀 하셔!”
그런 통화를 끝낸 뒤 다음 날 지하철 무인보관함에 돈을 묻어놨다는 전화가 다시 왔지.
“형님, 용돈 좀 두둑이 넣어뒀으니까 몸보신 좀 하시구!”
“아유 동생 고맙네. 내가 잘 쓸께.”
이런 다정다감한 통화를 마친 뒤 1시간 후 다시 빡환에게서 전화가 왔지. 딱 예상하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지.
“야이 씨벌 놈아. 니 지금 뭐하는 거야? 너 증말 죽고 싶어!”
“아니 왜 그래 동생.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야 이 씨벌 놈아.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 씨발 용돈 보낸 걸로 날 공무원 뇌물제공죄를 걸어 이 썅 노무 새끼야!”
“야, 화 많이 났구나. 근데 어떡하냐? 법이 그래, 법이. 공무원한테 뇌물제공하면 불법이거든. 이거 어떻게? 우리 빡환이 범죄 하나 추가요~.”
“너 그러다 증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아이고 무서워라. 이젠 형사를 협박까지! 협박죄도 추가!”
“야, 이 썅놈아. 너 증말 죽을래?”
“빡환아! 잘 들어. 형이 딱 한 번만 얘기할 께. 동생 생각해서 딱 한 번만 얘기해 줄게.”
“……”
“형은 말야... 죄 지은 놈이라고 미워하지 않거든.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럼 회개하고, 벌 받으면 되는 건데. 너 같이 자기가 죄 지은 줄도 모르는 놈들을 미워하는 거야. 막 우긴다고 있던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 그런 놈은 아직 제대로 죗값을 진 적이 없어서 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 죄값 치룰 수 있게 도와줄게. 니가 다시 좋은 놈 되는 거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죄 지은 놈이 두 발 뻗고 남들보다 더 편히 자는 건 못 봐줘. 너 같은 놈은 쥐새끼 마냥 잡히는 그 날까지 불안해서 벗어날 수 없게 해줄 거야. 알겠어? 그게 너와 나의 변치 않을 입장인거야!”
쉴 새 없이 내뱉은 말을 주워 먹은 빡환이도 어이없었을 거야.
내가 말을 하다가 좀 흥분했던 가봐. 목소리 톤도 올라갔고, 목소리 크기도 커졌지. 빡환이도 내 말을 못 끊더라구. 결국 내가 말을 다한 뒤 빡환이가 한 마디하고 전화를 끊었어.
“니는... 언젠가 내 손에 꼭 뒤진다.”
끊어진 폰을 보면서 나도 한 마디 했지.
‘기다려라 빡환아. 언젠가 니는 내 손에 잡힌다.’
§
그게 바로 오늘이야.
“어우 우리 빡환이! 짱구 굴리는 거야 지금? 에이 짱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어서 이리 안 와!!”
이때 누군가 양주잔을 깨끗이 비운 뒤 탁자를 내려쳤다.
마치 여기 내가 있다! 라고 알리듯 신호를 보내는 거야. 모두들의 시선이 구석에 있던 VIP에게로 향했다. 잠시 빡환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것조차 불만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몰래카메라를 통해 봤던 VIP였다.
“거기, 아저씨! 누구세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정말 기다렸다는 듯 VIP 옆의 비서관이 발딱 일어서며 말했다.
“이분은 국회의원 최기하 의원이십니다.”
비서관의 소개로 고개를 바짝 쳐든 최의원이 다시 ‘음!’ 또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비서관, 내 자켓 가져와!”
비서관이 가져다 준 양복 재킷을 입자 견장처럼 붙은 국회의원 금배지가 드러났다. 게다가 알아서 모시란 거만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 찼다.
금배지.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배지였다. 국회의원들이 패용하는 이 배지를 흔히들 ‘금배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금배지’는 실제로는 겉면만 금도금 될 뿐 순은 6g으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금배지가 당연히 아닐 뿐더러, 3만5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배지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회사무처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들에게만 판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싶더라도 수억 원의 웃돈을 내더라도 살 수 없는,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만 지급되는 배지여서 그럴까? 아니면 국회의원을 하기 위해서는 가문의 금덩어리들을 죄다 팔아야만 하기 때문에 금배지로 불리는 것일까? 아니면 배지 가운데 새겨진 나라 ‘국國’의 뜻처럼 국민을 대표하기 때문에 금배지로 불리는 것일까?
“음! 어이구 수고들 하시네.”
하지만 자신을 국회의원 최기하라고 밝힌 VIP는 분명히 국민을 대표하며, 민의를 따르는 놈이 아닐 것은 분명했다. 내 속에서 무언가 부르르 떨려왔다.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고반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야 최의원을 알아본 고반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내 귀에 대고 귓속말로 볼멘소리를 했다.
“아이, 이거! 서준아.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고? 국회의원이 왜 여기 있노?”
“그러게. 빡환이 국회의원 똥구멍 빨아주고 있는 건데 말야.”
“오늘 그냥 접어야 하는 거 아냐? 빡환이 잡다가, 우리 명줄 잡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형!”
기가 차서 고반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고반장은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괜히 국회의원 건드렸다간, 벌집 건드리는 기라! 일단 방에서 빠지고, 정문에서 잡자.”
“그러다 또 놓치면! 형도 봤잖아. 뇌물공여 범죄현장 영상까지 확보했는데 뭔 걱정이야?”
고반장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지었다. 고반장의 표정을 보니,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나쁜 놈들 잡는 게 형사 아냐? 그냥 잡으면 돼! 나쁜 놈들 확인되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잡아넣는 게 우리 형사들이야!”
내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그러자 고반장은 내가 더 사고를 치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공손한 표정으로 룸 안의 사람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방 호수를 잘못 안게 분명하거든요. 하여간 죄송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의원님.”
고반장이 자신을 지칭하자, 최의원은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답을 했다.
“고생들 하시게!”
상황을 정리하려던 고반장은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내 등을 떠밀며 더 어이없는 말을 꺼냈다.
“서준아, 아무래도 오늘은 아이다. 저 의원이 누군지 생각난 기라. 저 의원, 서장 고교 선배다. 게다가 여당 중진 4선 의원이다. 범인 잡다가, 우리 명줄 잡을 일 있나!”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고반장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세상 이치를 알만한 나이가 된 것 아닌가!
잠시 후 나의 얼굴 표정에서 분노의 감정이 수그러지자, 그제서야 고반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웃자, 고반장도 웃었다. 빡환이와 최의원도 웃고, 아가씨들과 깡패들도 웃었다. 내가 웃자 모두들 웃게 되었다. 그런 화기애애한 자리가 되자 나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했다.
“아휴~ 제가 이런 무례를~ 여기 누가 와 계신지도 모르고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들 좋게 정리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어는 끝까지 들어야 맛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야, 빡환이! 어서 안 튀어나와!! 야이 좆만 한 새끼야! 이젠 포주 짓도 모자라서, 국회의원 똥구멍에 뭘 먹이는 거야! 엉?”
분노한 내 말을 들은 최의원이 벌떡 일어서며 고함쳤다.
“뭐?! 너, 이 자식 지금 뭐라구 그랬어! 똥!구!멍? 아니, 이 늦은 시간까지 지역민 고충해결을 하는 날보고 뭐? 똥!꾸!멍? 야~ 당장 서장 연결해! 뭐해~ 비서관! 야, 너 관등성명 대 이 자식아!”
최의원 역시 여당의 4선 중진 의원이었다. 그 넓은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을 떠들썩하게 할 고함 정도는 자신도 질러 봤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걸어 나왔다.
역겹고 우스워서 나는 ‘픽’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최의원은 똥 싼 놈이 성낸다고 시뻘건 얼굴이 터질 듯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이 자식! 웃어? 엉!”
최의원은 내 귀싸대기를 후려갈길 생각으로 손을 후려쳤다.
술 취한 노친네의 헛스윙에 맞을 내가 아니다. 내가 슬쩍 피하자, 균형을 잃고 나자빠진 최의원이 길길이 날 뛰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내 몸에 손끝이라도 닿았다면, 아마 최의원이라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불같은 성미를 아는 고반장이 나를 향해 달려들던 최의원을 몸으로 막았다. 이어 형사들과 비서관들이 나서서 최의원과 나의 간격을 벌려 놨다.
“이거 놔! 안 놔! 국회의원이면 다야!”
“뭐 이 자식이! 너 죽어볼래!”
< 나쁜 놈이 잘 잔다 3 > 끝
ⓒ 진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