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전단 : [ 6화 ] 나쁜 놈이 잘 잔다 6
나의 두 손을 꼭 쥔 할아버지의 손아귀에서 힘이 전해져 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나를 보고 할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다시 살테냐? 아니면 죽을 테냐?”
사실 내가 곧바로 답변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왜 그러니 서준아?”
“근데… 아버지는 말이죠…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아무리 세상에 실망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그때는 할아버지가 계셨잖아요.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건 잘못 아닌가요?”
“서준아… 너도 이미 다 컸기 때문에 이해하겠지만…”
할아버지는 잠시 내 눈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마도 네 아비는 2번 산다고 해도 달리 살 방법을 찾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그런 고통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을 게야. 그리고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란 실망감에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그럴까요?”
“저기 서준아… 혹시 너 역시 네 아비와 같은…”
“아니요 할아버지!”
나는 단호하게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겁니다. 할아버지 저는 살겠어요. 다시 살겠습니다.”
“그래 서준아.”
할아버지는 나의 결심 어린 눈빛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정말 다행이구나 서준아. 네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은 위험하지 않고 안전한 삶을 살거라. 타인을 위하는 만큼 네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거라. 그러려면 아무래도 형사 생활은…”
“아닙니다 할아버지.”
“뭐?”
할아버지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저한테 형사는 정말 딱인 직업입니다. 저는 다시 살겠어요. 그리고 쉽게 죽지 않을 겁니다. 나쁜 놈들한테 맥없이 당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있는 나쁜 놈들을 모두 잡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저는 형사로 계속 살아갈 겁니다. 아니요 꼭 형사여야 해요. 나쁜 놈들 일수록 아주 잔혹한 심판을 받게 해 주겠어요. 밤잠 잘 때 편안하게 두 발 뻗고 잔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 그런 놈들이 두려워할 사람이 되겠습니다.”
“뭐 이놈아!”
“두고 보세요. 할아버지. 저, 꼭 좀 다시 살려주세요. 제가 나쁜 놈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공포와 괴로움을 선물 할 겁니다.”
할아버지는 한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나를 멍한 표정을 한 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죄송스럽게도 할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모른 척 살아가는 건 내게 행복을 주지도 못하고, 성공한 것도 아닌 그냥 좆 같이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내게 성공적인 삶은 나쁜 놈들 혼내 가며 살아가는 삶이다. 그것이 나의 기쁨이란 사실을 나는 비로써 명확히 깨달은 것이다.
아! 어서 다시 제2의 삶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당신의 바램과는 너무나 다른 손주의 결심에 한탄스럽기 그지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놈! 내가 그리 알아듣게 설명했건만!”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나를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허공 속에 멈춰있던 나의 몸이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끝도 없는 미궁을 향해 떨어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살려줘요!”
§
“살려주세요! 제발요! 할아버지~”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악몽 속에서 깨어났다. 나는 죽었는줄 알았는데, 아! 다행히 달리는 강력반 봉고차 안이었다.
“나… 죽겠어… 컥….”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신음소리를 듣고 쳐다본 고반장의 목덜미를 나의 두 손이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반장의 목을 꽉 움켜쥐었던 손을 깜짝 놀라며 떼었다. 아마도 악몽 속에서 할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때문이 아닐까. 허공 속에서 어두운 미궁을 향해 떨어져 내리던 중이라 무엇이라도 꽉 움켜쥐었던 것이었으리라.
악몽 속에서 깨어난 나는 달리는 봉고차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을 보았다.
“휴~ 살았다!”
작전을 나가기 전에 가끔 이렇게 짧은 잠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악몽은 처음이었다. 덩달아 나에 의해 악몽을 꾼 고반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아이고~ 죽는 줄 알았어. 헉… 헉….”
고반장은 식은 땀은 물론이고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런 고반장을 보고서도 내가 한 소리 했다.
“뭔 꿈을 그렇게 꿔요! 출동 나가면서!”
“으흐… 꿈에서 죽다 살았어!”
“개꿈 꿨네!”
“야, 근데 이상한데… 꿈속에서 너도 나왔는데. 아! 이상한데….”
“그니까 개꿈이죠.”
고반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어쨌든 꿈속이었지만 끔찍하게 죽었었는데, 아직 살아있다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이 모든 것은 과연 꿈이었을까?
창밖으로 저 멀리 강남의 불야성, 호텔나이트 클럽의 전광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텔나이트클럽의 후문 골목길에 주차했던 강력반 봉고차의 문이 확 열리고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여기저기서 오늘 작전에 쓸 호신용 무기를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몽둥이, 삼단봉, 해머를 비롯해 야구방망이, 쌍절봉 기타 등등. 그 중에서 해머를 들고 고반장이 말했다.
“오늘은 이걸로 해볼까?”
마치 애장품을 만지는 것처럼 녹슬고 피가 말라붙은 해머를 쓰다듬는 고반장을 쳐다보던 나는 다시 섬뜩한 악몽이 떠올랐다. 그건 기시감이었다. 불어로 데자뷔.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나 느낌을 다시 보는 상황을 말함이었다. 조금 전 악몽 속에서도 고반장은 해머를 처음 만지며 저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곧 품속에 넣고 다니는 최루용 호신총을 선택했다.
나는 고반장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내가 환생한 것이라면 잠시 후 고반장은 해머를 팽개치고 품속의 최루용 호신총을 꺼내 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했지 아마?
[역시 이게 내겐 어울리지.]
묵직한 해머를 들고 폼을 재던 고반장은 꿈속에서처럼 해머를 팽개치고, 품속의 최루용 호신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꺼낸 말은...
“역시 이게 내겐 어울리지!”
악!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본 꿈속의 상황과 똑같다.
이거 혹시? 아니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돼!
내가 죽은 뒤 다시 환생한 것이란 말인가?
잠시 후 고반장은 자신이 영화 속 경찰이 된 듯 최루용 호신총으로 여기저기를 조준하는 포즈를 취했다.
꿈속과 똑같다. 아니 내가 죽기 전 상황과 똑같았다. 2가지 가정이 가능한데, 하나는 예지몽을 꿨을 가능성, 또 하나는 꿈속에서처럼 할아버지를 만나 다시 환생했을 가능성이 그것이었다. 마치 영화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타임슬립을 해서 내가 죽기 직전의 상황으로 다시 환생했을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나는 그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끔찍한 죽음!
나는 고반장과 함께 깡패들의 사시미 칼에 난자 당해 죽어가는 나의 몰골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아냐! 아냐! 이건 그냥 꿈이랑 비슷한 거야.]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도리도리 거세게 흔들었다.
‘악몽 때문에 작전을 망친다는 건, 강서준 사전에 있을 수 없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무시하기 위해 애썼다.
근데 이거 진짜 악몽 속 상황이랑 똑 같다.
“에이C.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자~ 가자구!”
나는 께름칙한 악몽 따위는 모두 털어버리겠다는 듯 큰 소리로 외치며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그리고 잠시 후.
나와 동료 형사들은 사시미 칼을 들고 당장이라도 찌를 듯한 빡환의 부하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대치한 상황 속에서 고반장이 꺼내든 총은 이미 내가 알고 있듯이 진짜 총이 아니라, 최루용 호신총이었다. 나를 향해 달려드는 놈을 향해 고반장의 최루용 호신총이 발사되었다.
내가 꿨던 악몽이 실제로 되풀이 되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현실은 꿈속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계속 되풀이 되었다.
고반장의 총구에서 최루액이 발사되자, 룸은 뿌연 최루가스로 가득 찼고 여기저기서 쿨럭쿨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야를 가린 최루가스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지만, 정신을 차리기 위해 집중했다.
그 혼미한 상황 속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살테냐? 죽을 테냐?’
나는 그제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것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첫 번째 인생에서 처참하게 죽었지만, 납득가진 않지만 어쨌든 다시 살았다.
저승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나는 분명히 말했었다.
‘저한테 형사는 정말 딱인 직업입니다. 저는 다시 살겠어요. 그리고 쉽게 죽지 않을 겁니다. 나쁜 놈들한테 맥없이 당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있는 나쁜 놈들을 모두 잡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저는 형사로 계속 살아갈 겁니다! 아니요 꼭 형사여야 해요. 나쁜 놈들 일수록 아주 잔혹한 심판을 받게 해 주겠어요. 나쁜 놈들 밤잠 잘 때 두 발 뻗고 잔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할 겁니다. 그런 놈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겠어요.’
그렇다. 쉽게 죽지 않을 거다. 나쁜 놈들한테 맥없이 당하지 않을 거다. 세상에 나쁜 놈들 괴롭히며 잔혹한 심판을 받게 할 거다. 나쁜 놈들이 편안하게 두발 뻗고 잘 수 없게 해줄 테다.
§
최루가스로 흐릿한 시야 속에서 형사들과 깡패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잠시 후 최루총이라는 것을 깨달은 빡환은 부하 깡패들을 향해 명령을 하려고 했다.
“다! 조… 조…”
아마 원래는 ‘다! 조져’라고 소리쳤었다. 하지만 빡환은 그 말을 마치지 못했다.
빡환의 부하들은 그가 사시나무처럼 떨며 말을 못 잇는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최루가스 연기가 사그라들자, 빡환의 모습이 드러났다.
빡환의 목에 긴 사시미 칼을 갖다 댄 채 마치 매미처럼 나는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양팔과 양다리로 옴짝 달싹 못하게 한 뒤, 날카로운 사시미 칼로 빡환을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이전까지의 강서준이 아니다. 핏발 선 눈을 한 채 나는 나쁜 놈들을 향해 고함쳤다.
“동! 작! 그! 만!”
< 나쁜 놈이 잘 잔다 6 > 끝
ⓒ 진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