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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전단
작가 : 진가산
작품등록일 : 201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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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전단 : [ 8화 ] 나쁜 놈이 잘 잔다 8
작성일 : 19-10-18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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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배전단 : [ 8화 ] 나쁜 놈이 잘 잔다 8

 

  “오~ 이 사람 보게. 말로 다 하네. 엉? 그렇게 말로만 할 거면 어떡해! 응!!”

 

  어떠한 말과 변명도 소용없다는 것을 서계장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도 딱 하나 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수석님!!!”

  “죄송? 허~”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보낸 우지석 수석은 옆에 있던 와인 병을 들었다. 잠시 어쩔까를 생각하던 우수석은 천천히 와인을 따랐다.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짝 숙인 서계장의 머리에 따랐다. 하얀 머리카락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차가운 와인이 등짝으로 흘렀는지, 서계장이 움찔하자 와인 방울이 우지석 수석의 옷에 튀었다.

 

  “아니, 이런~ 튀었잖아! 서계장. 시킨 건, 좀 잘 하자! 응? 그래야 좋은 세상을 만들지! 안 그래?”

  “넵!! 시정하겠습니다.”

  “아이구~ 요새는 위나 아래나 다 제 정신들이 아니야. 아~ 정말 말세다 말세. 참, 오늘 판 깬 놈 이름이 뭐라고?”

  “네! 무진경찰서 강력반 강서준 형사라고 했습니다.”

  “서계장님, 준비 좀 하고 있어요~ 곧 연락이 갈 테니까.”

  “넵. 알겠습니다.”

 

  우지석 수석은 모두 쏟아버린 와인 병을 난간에 내려놓으며 한 마디 더 평했다.

 

  “에이 이 와인. 영 아니야~ 쯥!”

 

  우지석 수석은 요원이 건넨 물수건으로 정성들여 손을 닦은 뒤 나갔다. 수행하는 요원들이 곧이어 뒤따랐다.

  홀로 남겨진 서계장은 와인으로 온 몸이 범벅이 되었지만, 멀어져 가는 우지석 수석을 향해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서계장의 눈에서 와인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떨어졌다.

 

 §

 

  다음 날.

  무진경찰서 서장의 호출을 받은 고반장과 나는 긴 복도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 젠장. 이거 고삐리들 교장실에 불려가는 것 같잖아.”

  “네? 나는 그렇게 산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

  “뭐? 이놈아가 누구 앞에서 시치미를 떼나! 그리고 지금 이게 누구 땜에 이러는데 딴청이가?”

  “아니 형. 생각을 해봐. 우리가 표창을 받으면 받았지 뭐가 겁나서 그래?”

 

  서장실 앞에 도착한 고반장은 호흡을 고른 뒤 한 마디 했다.

 

  “니 내랑 내기 할까? 표창인지? 아구창인지?

  “뭐 까짓 꺼. 내기 해! 대한민국 경찰이 범인 잡았으면, 표창 받아야지! 안 그래?”

  “퍽이나 그러것다!”

 

  고반장은 말이 안 통하는 나를 더 상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말을 끊고 서장실을 노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고반장과 나는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몰라서 경직된 표정으로 경찰서장을 바라봤다. 고반장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서장에게 물었다.

 

  “저… 부르셨습니까? 서장님.”

 

  그런데 우리는 서장과 함께 앉아 한담을 나누고 있던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그는 바로 최기하 국회의원이었다.

 

  경찰서장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왔어, 어서들 앉아.”

 

  다행히 혼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고반장은 다행이다 싶었다.

 

  “아, 이 친구들이구만!”

 

  서장과 함께 앉아있던 최기하 국회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예상과 달리 웃는 표정으로 일어난 최의원은 우리에게 악수까지 청했다.

 

  “항상 고생이 많아요~”

  “앗! 네! 감사합니다.”

 

  고반장은 깍듯하게 허리를 굽히며 최의원의 손을 잡았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직 간파가 안 되기 때문에 고반장은 계속 경계의 눈초리로 상황을 살폈다.

  이어 최의원이 나에게 악수를 의미하는 손을 내밀었다.

  어이가 없었다. 내게 손을 내밀다니. 나는 당연히 외면했다. 더욱이 인상을 쓰며 볼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놀란 고반장은 물론이고 서장이 보다 못해 언성을 높였다.

 

  “야~ 강서준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경색된 서장실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최의원이 웃으며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아냐, 아냐. 젊은 친구가 보면 뭔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겠어. 안 그래요?”

 

  최의원은 얼굴을 바짝 디밀며 내게 물었다.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번뜩거리며 날카로웠다. 더구나 술기운이 하나도 없는 최의원은 사람이 달랐다. 차갑고, 능글맞게 야비한 표정이 꽤나 잘 어울렸다. 그의 능글능글한 얼굴을 마주 보며 물었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말을 받아치자 잠시 멈칫했지만 최의원은 놀라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을 해왔다.

 

  “허허~ 눈빛이 아주 좋네! 와~~ 이서장.”

 

  무진경찰서장이 바로 답했다.

 

  “네, 선배님.”

  “내가 경찰청장 할 때 자네가 어디 있었지?”

  “아이구 말두 마십시오. 저 그때 지방 좌천 되서 뺑이 돌구 있었죠.”

  “아, 그랬던가?”

  “그럼요. 그때 선배님이 끌어주셔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에이, 그건 아니지. 다 자네가 잘해서 그런 거지.”

 

  최의원은 두 손을 휘휘 저으며, 서장의 말을 겸손하게 받았다.

  점점 낌새가 이상했다. 의도가 너무도 분명한 것이었다.

  최의원이 다시 나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자네……. 그때 이런 눈이었어. 허허~ 딱 닮았네! 그래서 내가 자네를 찍었던 거지! 꽉!”

  “아, 그러셨던가요? 선배님?”

  “그럼. 이런 눈은… 처음이 어렵지! 내 사람이 되면 세상 그 무엇 하고도 바꿀 수가 없지. 내 말 잘 알겠지? 이서장!”

  “네 선배님. 잘 알겠습니다.”

 

  서장은 언제 일어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의원에게 꾸뻑 머리를 조아렸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최의원은 계속 서글서글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게다가 내 양팔을 툭툭 치며, 친근감까지 표현했다.

 

  ‘도대체 이게 뭐하자는 거야?’

  불쾌한 의혹이 잔뜩 남아있었다. 더구나 어제의 사건 이후에도 이런 능글능글한 행동을 할 수 있다니! 이놈은 여태껏 내가 만나왔던 나쁘기만 했던 놈들과는 질이 달랐다.

 

  ‘하! 드디어 강서준 인생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건가! 그것도 끔찍한.’

 

  그런 생각을 하자, 잠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내 핏속에 녹아있던 분노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자, 그럼 다음에 봅시다. 젊다고 너무 버티지 말고, 우리 빨리 다시 봅시다. 그럼!”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나와의 대화를 마친 최의원이 서장실을 나섰다. 서장이 황급히 따라 나가며 배웅을 했다.

  보수 여당 4선 국회의원의 두려울 만큼 큰 공력이 느껴졌다. 그만큼 불쾌감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

 

  서장실에서 먼저 내려온 지 1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고반장이 강력반으로 내려왔다. 서장은 고반장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했을 것이다. 서장실에서 내려온 고반장은 나를 따로 불러 얘기했다.

 

  결국 고반장이 내기에서 이겼다.

  고반장이 예언했듯이 형사가 범인을 잡았지만 나는 표창장이 아닌 아구창을 맞았다.

 

  ‘씨발! 대한민국 조옷 같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라고. 내게 내려진 좌천 명령을 얘기할 때 속에서 욕설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오히려 고반장은 자기가 더 억울해하며 욕을 했다.

 

  “씨발! 대한민국 증말 조옷 같네! 이게 나라야!”

 

  나 대신 칼을 맞은 사람이다. 지난 생에 나도 죽었지만,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남자라고 생각하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과거에 화려했던 강력반의 전설을 온 몸으로 썼지만, 반장을 달더니 약해진 게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가 자신의 몸만큼 동료들의 생명과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실적이 떨어지더라도 무리한 체포작전을 펴지 않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다.

 

  좌천이라! 강력반을 떠나 민원봉사실에서 나보고 뭐하라는 거냐!

  게다가 폭력과잉검거로 체포된 빡환의 민사소송도 이어질 거라고 했다. 매스컴에서는 여당 4선 의원이 자리에 있었단 사실만 쏙 빼고 경찰의 강경대응만 문제 삼았다. 목숨 줄 내놓고 다니는 경찰이지만,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모든 억울한 심정을 고반장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언제라도 나 대신 칼 맞을 수 있는 남자에게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에이~ 앞으로 나만 탱자탱자 놀면 미안해서 어떡하지…”

  “서준아…….”

 

  고반장은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이상 말을 못이었다. 불의와 타협한 것은 아니지만, 부하를 책임지고 권력에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었을까?

 

  경찰학교를 마친 뒤 강력반에서 뼈를 묻을 생각으로 살아왔던 나, 강서준이 좌천됐다. 중요한 것은 한 번 죽었다 다시 살아났는데도 이런 꼴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나쁜 놈들에 대한 뜨거운 적개심은 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

 

  강력반에서 짐을 챙기다 구석에 기대져 있던 원더배트를 보자 그동안 참았던 울분이 끌어 올랐다. 나의 원더배트. 고교 야구선수 시절부터 내 분신과도 같았던 원더배트. 전생에는 저것에 맞아 죽었더랬다.

  빡환이 휘두른 원더배트를 맞고 절명하게 되는 내 모습이 다시 떠오르자 소름이 끼쳤다. 이미 생명을 다해 꼼짝 않고 죽어있는 내 주검을 저 원더배트로 도살장 고기덩이처럼 짓이겼던 빡환. 다시 만나게 되면 이 원더배트로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원더배트를 들고 노려봤다.

 

  이때 외근에서 돌아온 심만보 형사와 한정우 형사가 저간의 사정을 알고는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뭐해? 반장님, 얘 지금 뭐하는 거에요? 왜 짐 싸는 거에요?”

 

  속 정 깊은 심만보 형사가 짐을 챙기고 있던 나를 보며 고반장에게 고함쳤다.

 

  “서준이형.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SM 나이트클럽 건 때문에 좌천 된다는 게 증말이에요?”

 

  나를 보고 답답해서 묻는 한정우 형사였다.

 

  “아니 반장님! 도대체 이게 뭐에요???”

 

  심형사와 한형사가 소리치며 물어도 고반장은 담배만 빨아댈 뿐 대답할 수 없었다. 미안함 때문인지 나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런 눈치를 빤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심형사와 한형사가 나를 대신해서 내 속말을 대신해 주어서 고마웠다.

  동료라는 말이 있다. 식구라는 말도 있다.

  조직에 따라 그 동료들간의 관계가 모두 다를 텐데. 우리는 좀 다른 관계가 생긴다. 어쩌면 피를 나눈 형제, 자매는 아니지만, 때론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를 대신해 칼빵을 맞아주는 상황이 몇 차례 생기다보면 이건 가족보다도 더한 사이가 된다. 물론 타인을 대신해 칼을 맞아주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항상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해야지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되는 거다. 나도 심형사나 한형사 대신에 몇 빵 맞아준 적이 있다. 맞고 싶어서도 아니고, 작정해서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는 거다.

  근데, 이게 뭐냐! 젠장!

 

 

 

 

 

 < 나쁜 놈이 잘 잔다 8 > 끝

 ⓒ 진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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