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전단 : [ 9화 ] 나쁜 놈이 잘 잔다 9
고함을 치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심형사와 한형사에게 붙잡힌 고반장은 고개만 가로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숨 걸고 범인 잡았더니, 폭력과잉진압으로 좌천에 고소까지 당하지. 게다가 국회의원은 대놓고 협박하고, 서장도 한 통속이니 앞으로도 짜증나는 일의 연속일 터.
그래, 내 피가 뜨거워서! 성질 죽이고 못 다녀서! 증말 미안하다!
나는 결국 터져 버렸다. 난 조용히 짐만 챙겨서 강력반을 나가려 했지만, 결국 원더배트로 내 책상이었던 것을 무참히 내려치고 있었다.
미친 놈처럼 원더배트로 책상을 내려치는 나를 동료 형사들은 말리지도 못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짐을 챙겨 도착한 민원봉사계 기록실은 참으로... 후졌다. 경찰서 내에서 더 이상 처리할 수 없는 사건기록과 민원기록들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지고, 묻힌다. 경찰서 내의 무덤 같은 곳이 바로 민원봉사계 기록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서철이 가득 찬 서고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거미줄과 먼지로 가득 찬 서고를 따라가다 웬 이상한 놈을 발견했다. 생긴 건 고릴라처럼 생겨서, 물구나무를 선 채로 푸쉬업을 하는 공익이었다. 복부에 빨래판처럼 근육이 2열 종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물구나무 선 채로 푸쉬업을 하는 게 쉽던가? 왕년에 나도 좀 했던 것 같은데...
그 때 였다. 서고 뒤에 선 채 녀석을 지켜보던 나를 발견한 공익이 펄쩍 뛰면서 일어섰다. 제대로 선 모습을 보니, 키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좀 더 컸고, 온 몸이 머슬 코리아에 도전하려고 애쓰는 놈 같았다. 좀 위협적이었다.
음! 이런 놈일수록 기선제압이 필요한데 말이야...
아뿔싸! 근데, 공익 놈이 선제공격을 하며 내 야코를 죽였다.
“어이~ 아저씨! 아저씨가 전직 강력반이야?”
기가 찼다. 고작 해봐야 20대 초반 나이로 보이는 녀석이 감히 큰 형님 뻘인 분께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지.
녀석의 기고만장한 말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저씬, 내 수행보조니까 저기!”
공익 녀석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바라보니, 창고 한 구석에 놓인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는 정리가 안된 온갖 서류들이 너저분한 탑처럼 쌓여있었다. 청소를 얼마나 오래 안했는지, 쌓인 먼지가 백악기층처럼 두꺼웠다.
아! 세상 살아가기 짜증나는데, 여기서 또 이렇게 태클이 들어오나?
나는 뚜벅뚜벅 걸어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두 다리를 책상 위로 뻗었다. 의자를 15도 정도 약간 기울이고, 책상 위에 쭉 뻗은 두 발은 최대한 편안하게.
“뭐야! 당신!”
나는 이 창고에서 가장 깨끗하게 보이는 책상에 앉았던 것이다. 아마도 녀석의 책상이었을테지. 내가 자신의 책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자, 공익 녀석은 씩씩 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어이, 형씨! 뭐하는 거야? 이건 내 책상이라구!”
나는 녀석에게 대꾸는 물론 쳐다보지도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어디랑 경기가 있었지? 아, 맞다. 잠실에서 라이벌전이 있었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야구경기 관전을 시작한 내 모습에 녀석이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쯧! 피 끓는 어린놈이니 선방은 먼저 날리게 해주마.
녀석은 여유만만한 내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녀석은 자신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모습은 결단코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다 지레 겁을 먹게 된다. 나처럼 미친놈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딱 보면 견적이 나온다. 녀석은 겉만 오랑우탄 고릴라지, 아마 속은 순두부처럼 말랑말랑 할 것이 분명했다. 생긴 게 겁나게 생긴 놈일수록 실전은 그닥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척 보면 그냥 딱 감이 온다.
물론 그건 나만의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어쩔 줄 몰라하던 녀석이 선전포고 없이 행동을 감행했다. 내가 들고 보던 스마트폰을 툭 쳤다. 그리고 바닥에 딱 떨어진 스마트폰의 화면이 쩍 갈라졌다. 아직 할부도 안 끝난 폰이었다.
스마트폰에서 한창 중계하던 야구캐스터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경기장에서 저런 행동은 안 되죠! 이럴 땐 엄중한 경고가 필요해요. 아~~ 일 커지겠어요! 저 선수 열 받으면 누구도 못 말려요.”
분명히 기회를 줬었다. 선방을 날릴 기회를 줬건만, 감히 내 스마트폰을 건드려? 그것도 아직 할부도 안 끝난 걸!
‘애들에게 매를 아끼면 버릇 나빠진다.’는 어르신들의 말이 당장 떠올랐다.
그리고 하나 더!
“야! 너 이렇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공익으로 빠졌어?”
도대체 맥락이 없는 내 질문에 오랑우탄 녀석의 큰 눈동자가 더 커졌다.
“이 새끼. 너두 빽 썼어? 안되겠구만!”
생각해보니, 폰 깨진 것 보다 빽 있는 놈이 설치는 건 더 못 봐주겠다. 으C!
천천히 일어서는 나를 내려다보던 오랑우탄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니가 어쩔 건데?’ 비웃음 가득한 오랑우탄의 얼굴에 말풍선이 떠올랐다면 이런 게 떠올랐을 거였다.
어쩔 거냐구? 넌 진짜 조옷됐다는 것만 알면 돼!
§
사실 난 애들은 안 때린다.
그렇지만 오늘 난 심히 열 받았고, 빽 믿고 잘난 척 하는 놈들한테 억하심정 갖을 만 했다. 물론 동쪽에서 뺨 맞고, 엄한 데서 화풀이한 건 인정한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민원봉사계 자료실에서 은밀한 교육이 이뤄진 뒤에...
스카치테이프로 금이 간 액정을 정성 들여 붙인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치켜 들고 있던 불량 오랑우탄 공익이 움찔거렸다. 스마트폰 화면에 중계하고 있던 야구시합이 잠깐 치지직! 했다.
“어허! 올려~”
나는 거의 램수면 중이었지만, 야구중계가 잠깐 끊기는 소리를 듣자 반사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녀석의 손이 자동으로 번쩍 올라갔다. 내가 보던 안 보던 야구중계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럼 그렇고 말고. 녀석은 아마 생애 최초로 군기가 잡힌 날일게다. 재수 옴 붙은 날의 시작이라고 할까. 슬쩍 눈을 뜨고 보니 녀석의 꼴도 참 가관이다. 양쪽 콧구멍을 틀어막은 휴지에 핏물이 배어나와 빨간 코딱지가 길게 늘어진 꼴이라니. 이렇게 맞고 나서야 예의가 생기면 좀 곤란한데 말이다.
“저기 형님~”
우탕이가 정말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물었다.
“왜? 오줌 마렵냐?”
“저기, 저 빽 써서 공익 온 거 아니거든요.”
“뭐?”
“제가 정말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요...”
“근데 할 꺼지? 하지마~”
“저기, 제가 정말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요... 저 공익 빽 써서 온 거 아니거든요. 사실... 부끄럽지만... 저... 치질... 똥꼬 핏줄 터져서 온겁니다.”
“쓰~ 너 거짓말 하면 되진다.”
“진짜라니깐요.”
녀석의 자백을 듣고는 난 일부러 화난 표정을 짓고는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듯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순백의 눈망울을 한 채로 날 올려다보았다.
“진짜?”
“네! 진짜요! 저기 형님이 절 오해하실 수는 있어요. 저도 듣는 귀가 있어서, 형님이 여기로 좌천된 이유는 알고 있거든요. 빽 있는 놈 건드렸다, 치였다는 거 다 알죠. 그래서 저도 그런 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그치만 전 절대 아녜요. 그냥 전 흙수저, 아니 똥수저예요. 믿어주세요.”
자식. 그러거나 말거나. 뭐가 이리 간절해. 적당히 군기도 잡았겠다, 좀 풀어줄까 생각했던 나는 너무도 놀랄 사실을 깨닫고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악! 야!”
내가 깜짝 놀라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자, 녀석은 덩달아 놀라 자지러졌다.
“왜요 형님?”
“야, 지금 몇 시야?”
“아... 6시인데요.”
“뭐?”
놀란 나는 서둘러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뭐 하세요 형님?”
“뭐하긴. 너두 얼른 일어나. 우리 퇴근 시간 맞지? 어서 퇴근하자!”
“오~ 역시. 형님 퇴근하시게요? 퇴근은 역시 정시 퇴근이 제 맛이죠.”
그럼. 내 형사 인생 처음으로 정시 퇴근을 해볼 생각이다. 인생 뒤바뀌는 건 한순간이지.
“야 뭐해? 어서 짐 챙겨서 퇴근해!”
“네, 형님!”
오탕이 녀석은 기쁜 나머지 펄쩍 일어났다, 다시 폭싹 주저앉았다.
“아~ 다리, 다리, 다리~ 아, 저려요.”
오탕이 녀석은 바닥에 엎어져 바둥댔다. 그런 녀석을 남겨둔 채 나의 발걸음은 새털보다 가볍게 민원봉사실 기록실을 빠져 나갔다.
“즐 퇴근! 주말 잘 보내~”
아직 하늘 허리에 걸린 태양빛을 받으며 번쩍이는 경찰 마크가 붙은 정문을 올려다 보았다. 경찰! 대한민국 경찰! 나에게 경찰은 유일한 미래 희망이었고, 정언명령이었다.
나쁜 놈 잡는 것만이 나의 지상과제이자, 삶의 재미였다.
혹자는 그게 무슨 재미있는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범죄자들 쫓아다니다 보면, 당연히 위험하고 생명줄 내놓고 다니게 되기도 한다. 집에 못 들어가고 일주일 잠복 들어가면, 그냥 거지새끼가 된다. 하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그냥 그게 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돈은 또 많이 벌기라도 하나.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하기 힘들다. 언제라도 강력사건 발생하면 호출에 튀어나와야 하니 개인생활도 없다. 옷은 항상 후줄근한 차림에 폼 나는 구두에 머리에 왁스 발라넘길 일이 있겠냐마는.
전생에 억울하게 죽은 혼이 붙었는지 몰라도 나쁜 놈들 때려잡을 때만큼 엔돌핀 나올 때가 없다. 자,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흔히 지나다가 가끔 나쁜 놈들을 보잖나. 가장 하찮은 얘를 들자면, 덩치는 산만하고 머리는 스포츠로 깎은 채로 건들건들 협박하는 양아치들을 만났다고 치다. 그 양아치가 지나치다 어깨를 부딪쳤든, 아니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트집을 잡든 그 놈은 정말 재수 없는 놈일 거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형사와 부딪힐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놈이 정말 나쁜 놈이라는 확신만 생긴다면, 나는 최소한 수갑을 채워 경찰서 빽차 태워, 유치장에 가둬버릴 수 있다.
물론 나쁜 놈이라는 확신과 물증만 있다면.
좀 더 크게 일을 벌이자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악이 있다고 치자. 왜 뉴스에도 막 나오고,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살인자가 있다고 치자. 그런 놈들을 때려잡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영화 속에서 히어로들이 악당들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는 건 아니더라도, 생각만으로도 피가 부르르 떨리는 일이 아닌가!
물론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형사라는 직업에 정말 잘 맞는 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따위 상황에 처하게 되니 회의감이 들게 된다.
천하에 나쁜 놈을 잡아들였는데, 알고 보니 그 놈은 국민의 대표랄 수 있는 국회의원과 그렇고 그런 관계였고, 그 국회의원은 자신의 구린내를 숨기기 위해 경찰서장을 통해 나를 좌천시킨 것이다.
여기서 국회의원이나, 경찰서장이나 이런 놈들은 정의의 편에 서야할 것 아닌가! 그런 놈들이 오히려 권력과 금권에 휘둘려 나같이 법대로 산 놈을 괴롭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
나는 경찰서 정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의 퇴근길에 새로 들어온 신입 경찰 놈이 경례를 했다.
“충!성!”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좆!까!”
퇴!
나는 생애 최초로 경찰서 입구에 침을 뱉었다.
대한민국 경찰.
좆!까! 라구 그래!
< 나쁜 놈이 잘 잔다 9 > 끝
ⓒ 진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