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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전단
작가 : 진가산
작품등록일 : 2019.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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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전단 : [ 10화 ] 개무시 1
작성일 : 19-10-23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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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배전단 : [ 10화 ] 개무시 1

 

  좌천당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머릿속 무엇인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가 고삐리 시절부터 좀 나쁜 길로 막 나가다, 정말 뜻하지 않은 이유로 이 길로 들어섰지만 후회 한 적은 없었다. 돌대가리 같던 머리를 연마하며, 불가능하다던 경찰대학에 꼴찌로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하게 될 때까지 난 분명했었다.

 

  나쁜 놈들아! 쫌만 기둘려! 내가 합법적으로 니들 다 작살 낼 테니까!

 

  근데, 같은 편한테 뒤통수 까이니까 여태까지 살아왔던 것들이 젠장 하나같이 빙구 짓처럼 보인다. 젠장! 혼자서 이불 킥을 날리며 억울해서 잠도 안 온다. 게다가 한 번 죽다 살아난 인생을 이렇게 쩌리처럼 살아야 한다구!

 

  “모난 놈이 정 맞는다!”

  “네? 어, 할아버지 언제 오셨어요? 어, 여긴 또 어디야?”

 

  내가 언제 잠이 들었나. 이미 꿈속이다.

  망망대해에 통통 낚싯배를 타고 있던 할아버지가 방금 낚아 올린 광어를 내게 던지며 한 마디 하셨다.

 

  “이 놈아! 아직도 세상 이치를 모르겠느냐?”

  “뭐가요?”

  “쯧쯧. 뻔하지 않느냐. 뒤 구린 놈들이 너처럼 쩌리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얼마나 잘 알겠니. 그래서 힘으로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거지. 그러다 기가 약한 놈이면 졸개로 삼을 수도 있고. 악한 놈일수록 촘촘하게 그물망을 짜거든. 그래야 한 번 잡힌 고기를 놓치지 않는 거지. 너 같은 놈쯤이야 얼마든지 찜 쪄 먹을 수 있지 않겠어.”

  “아으 증말. 할아버지 어떻게 해야 되요? 그냥 생각 같아서는 그냥 다 들이 박아버리면 시원할 거 같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하든가. 아마 조만간 그나마 알량한 형사 자리도 잃어버리겠지! 아, 맞다. 이미 반쯤 잃었지? 그래 그렇게 해라. 그냥 때려치워.”

 

  할아버지는 그냥 재밌는 모양이다. 손주 놈이 괴로워하는 건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놀릴 수 있는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인상을 쓰며 고민을 하든 말든 낚아 올린 생선들을 담아둔 광주리를 펼쳐 보시고는 입맛을 다시셨다.

 

  꿈에서 회를 먹는데도 정말 생시 같았다. 더구나 시원한 해풍이 풀어오는 바다 한 가운데서 회를 먹게 된 거 였다. 어른 손바닥만한 자연산 광어를 시커먼 부엌칼로 턱턱 치고 뼈를 발라내어 큼지막한 소고기처럼 잘라내시더니, 언제 준비했는지 초장에 척 발라서 소주 한 잔을 곁들여 꿀떡 마냥 드신다. 거기에 촥 목구멍에 소주를 끼얹는 것 까지!

 

  할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따라서 회를 씹었더니, 이야 목젖이 찌르르 감전된 마냥 떨려왔다. 세상에 이런 진미를 다 먹어보다니. 그것도 꿈속에서. 할아버지 생전에 술잔을 따라 드렸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 뵙고 술잔을 따라드리니 그것 또한 감개무량했다. 이미 돌아가신 지 20년은 되셨으니 말이다. 할아버지 입에서 카아~ 소리가 절로 났다.

 

  “이놈아,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게냐! 어서 한 잔 해라!”

  “네, 그럼 저도.”

 

  키야~ 소리가 절로 났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주 놈이 장성해서 맞술을 하는 것이 그냥 대견하기만 하신 모양이다.

 

  “어쭈 이 놈 봐라! 자, 이 할애비 잔을 받아라!”

  “아, 네 할아버지.”

 

  막상 할아버지가 술을 따라 주신다고 하니, 퍼뜩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잔을 받았다. 도골선풍이라고. 할아버지는 생전에 머리며, 수염이 곧고 길게 나셨는데 하얀 눈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도인이라고 부르곤 하셨는데, 내게는 정말 친근한 할아버지였다. 어려서 할아버지 수염 당기며 논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서준아~.”

 

  몇 순배 술잔을 서로 돌리며, 마르지 않는 술병을 할아버지 잔에 따를 때였다. 차분한 목소리에 정감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래 당해보니 어떠니? 나쁜 놈들 때려잡는 게 니 기쁨 아니었느냐?”

  “그러게요. 좀 이상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게다가 나쁜 놈들 비호하는 놈이 경찰서장이 아니냐. 말은 안 해도 네 놈도 착실히 형사로 살다보면 승진도 하고 좋은 자리로 갈 것 아니야. 근데 그렇게 살려면 적당히 해야 하는가 보더라. 나쁜 놈인지 좋은 놈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거지. 그 놈들한테 너는 착한 놈이 아니라, 어리석고 어린놈일 뿐 아닌가? 그러니 그렇게 당당히들 사는 거지, 그 놈들이.”

  “아이구, 할아버지. 지금 무슨 얘길 하구 싶으셔서 그렇게 뜸을 들이시나요? 그냥 평소대로 직진 하시죠.”

  “이 놈. 누구 손주 아니랄까봐. 그래. 깜빡이 켰으니까, 그냥 직진하마!”

  “......”

  “형사일 그만 하는 건 어떠냐!”

 

  뭐, 예상한 일이지만 할아버지가 또 그러신다. 이 정도면 우기시는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를 두 번 살게 하신 이유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냥 내가 편히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뿐.

 

  “죄송해요 할아버지. 제가 앞으로 잘할게요!”

 

  아닌 건 빨리 아니라고 해야, 기대가 없어지는 법이다.

 

  “할아버지 마음은 정말 제가 잘 알죠. 그렇지만 할아버지... 그렇게는 살기 싫어요. 어쩌면 아버지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점점 더 약해질 게 분명하니까, 아버지는 선택하신 거예요. 두 번 산다고 달라지지 않을 걸 안거죠. 하지만 저는 달라요. 제가 이번 생에서 부귀영화 누리며, 잘 사는 거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좀 더 현명하게 살게요. 정말요!”

  “진짜?”

  “그럼요! 앞으로는 할아버지가 싫어할 일은 절대 안 할게요.”

  “진짜지?”

  “아이 그럼요. 할아버지.”

  “그렇지! 그리구 니 운명도 찾구!”

  “네? 제 운명이요?”

  “그럼~ 니 씨는 받아야지. 후세는 이어야지! 네 놈이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또 그놈의 피가 끓어서 앞뒤 안 가리고 날뛰다 보면 씨도 못 잇고 끔찍한 일을 당하면 어떡하냐. 내가 니 놈을 살리려고 했던 모든 일이 깡그리 무너질 텐데.”

  “아우~ 저도 증말 원하죠. 그럼요 당근이죠! 근데 할아버지. 제 운명은 어디 있나요?”

  “어딨긴 어딨어? 밖에 있지! 이놈아.”

 

  할아버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이마가 빡 깨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였다. 잠든 채 횡설수설 잠꼬대를 하던 내 이마를 숟가락으로 내려친 게다.

 

  “야, 이놈아! 밥 먹으란 소리 안 들려?”

  “아~~~.”

 

  정신이 확 들었다.

 

  “아이, 오늘 주말인데 좀 편히 자자구!”

  “니가 웬 일이냐! 일주일에 한번 코빼기 보기도 어려운 놈이. 주말 타령이야~”

  “응? 내가 말 안했나? 이제 난 그냥 공무원이야. 강력반 아니라구.” “진짜?”

  “그럼. 내가 오늘 뭐하는지 알어?”

  “뭔데?”

 

  엄마가 의심쩍은 눈빛으로 날 내려다 봤다.

 

  “소! 개! 팅”

 

  나는 한자 한자 소리 내어 말했다. 엄마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내가 오늘 아가씨 만난다구!”

  “그래? 그럼 말여... 일단 맘에 들면 자빠뜨려!”

  “에헤이~ 엄마, 불법이잖아~”

  “이놈아, 결혼 못하는 것도 애미한텐 불법이야!”

  “네~ 네~ 고은옥 여사님 덕에 잡혀가면 사식이나 잘 넣어줘.”

  “암! 애는 내가 키워줄게.”

  “아이구 고은옥 여사님. 또 오바 하신다.”

 

  엄마도 말이 지나쳤는지 실실 웃었다. 그동안은 못 봤는데, 한 번 죽어보니 엄마 머리카락이 하얀 새치로 가득 찬 것이 보였다. 마치 흰 눈을 맞은 듯 했다. 자식 새끼가 형사질 하느라 엄마 늙어가는 것도 못 보고 살았다.

  엄마는 아빠가 죽은 뒤 한동안 우리와 따로 살았다.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사셨는데, 엄마를 멀찌감치 떼어놓고 살았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해가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엄마가 재가하길 바라셨던 게다. 할아버지가 은근 꿍쳐둔 재산이 있어서 궁색하게 살지는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았다. 준비된 죽음이 아닌 사고사였기 때문에 나는 대략 한 달 가량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말을 잃었다고 할까.

 

  어린 시절 엄마보다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들이 많았던 나로서는 엄마의 손길 보다는 할아버지의 부재를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대략 10세 이후로 엄마와 함께 사는데 이 분이 좀 호탕하시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도 남편의 삶을 걱정하고 두려워는 하셨겠지만, 유일하게 인정하고 응원하셨다고 들었다. 게다가 정말 독립적이어서 남에게 기대어 사는 것은 애초에 생각도 않는 분이다. 그래선지 하나 밖에 없는 자식조차 독립적으로 키웠다. 그 덕에 난 적당히 막 살 수 있는 청소년기를 보냈던 거였다.

  그랬던 분이 내가 형사가 된 뒤부터는 ‘결혼’, ‘결혼’을 입에 달고 사셨다.

 

  ‘니 사는 거야 내가 뭐라 안 하는데, 애는 하나 만들어 놓고 살아라.’

 

  정말 화끈하지 않나. 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씨가 귀한 집안이 아니라, 피가 뜨거워 제 수명을 다한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 결혼과 출생에 집착이 강하시다. 그런데 내가 소개팅을 한다고 하니 벌써 결혼준비라도 해야 할 것처럼 혼자 또 오바를 하신다.

 

  평소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다림질도 하신다. 내 상하의 셔츠와 손수건까지 빠닥빠닥하게 다림질해서 챙겨주신다. 나름 거울에 비춰진 나의 프로필이 맘에 들었는지,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신다. 참 그게 귀엽기도 해서 물었다.

 

  “나, 어때? 괜찮지 않아?”

  “그럼. 니 아빠만큼은 아니어도 꽤 괜찮지.”

  “오케이! 그럼 소개팅 하러 갑니다.”

 

  엄마는 말없이 두 손 엄지를 척 치켜들고 나를 배웅했다.

  자, 그럼 운명의 상대를 한 번 찾아가 볼까!

 

 §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에게 관우, 장비가 있었다면 내게는 정태와 상진이 있다. 녀석과 함께 나는 쓰레빠 3인조라고 불렸다. 모두 함께 야구부 출신이었던 녀석들과 동반 자퇴서를 제출할 때 쓰레빠를 신고 갔던 것에서 유래했던 별명이다.

  소개팅이라는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단 녀석들의 아지트를 방문했다. ‘베이비 베베’ 간판이 걸린 베이비 전문 포토 스튜디오를 두 녀석이 운영하고 있었다. 나조차 저 놈들은 뭐해 먹고 살까? 도무지 답이 없던 녀석들이었는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녀석들은 건실한 사회인으로 세금 꼬박꼬박 내며 살아가고 있다.

 

  “야, 어때?”

  “허! 짭새가 때 빼고 광냈네.”

  “저런다고 여사친이 생기는 줄 아나봐! 아직도 소개팅 해줄 사람이 남아는 있냐?”

  “그럼~ 요번엔 완전 대박이야!”

 

  오늘 때 빼고 쫙 빼 입은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던 정태와 상진이 동시에 말했다.

 

  “퍽이나!”

 

  이런!!! 개무시를 당하다니! 어디 두고 보자!

 

 

 

 

 < 개무시 1 > 끝

 ⓒ 진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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