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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름답다고
작가 : 내일
작품등록일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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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파리
작성일 : 19-10-11     조회 : 509     추천 : 1     분량 : 7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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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한 파리 (프롤로그)

 파리 15구 루브르 근처 떼헤스 가에 위치한 어느 한 식당

  그 곳에서는 25살 한국인 한나가 일하고 있다. 이곳은 10년 전 한 한국인 부부가 파리생활 정착 끝에 연 한식당이다. 이곳에서는 순두부찌개와 불고기 정식, 그리고 김치전과 찌개 등을 판다. 요즘 들어 부쩍 현지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덤덤히 자신들의 음식을 팔고 성실하게 손님을 받는 이 식당 주인 부부처럼 한나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직원이다.

  한나는 약 2달 전에 이곳 파리로 왔다. 그녀가 아무 계획 없이 이곳에 온 이유는 한국어 외에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할 줄 알기 때문이었다. 한나는 이곳에 와서 다행히 일자리를 빨리 구했다. 조용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부부가 운영하는 한식당이었다. 한나는 쉬지 않고 일했다. 한나는 감사했다. 프랑스어 실력이 형편없어도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한국으로 돌아갈 뻔 했다. 그렇게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한나는 충분히 자신의 인생이 잘 풀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나는 프랑스로 갈거야.”

 그 꿈은 아무런 미래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한나에게 빈정거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거기서 뭐 할 건데?”, “너 프랑스어는 잘 하니?”

 한나는 그럼 그들에게 더 자신 있게 말했다.

 “잘 지내다 보면 뭐든 하나는 하고 오겠지. 난 떠날거야.”

 한나의 이마는 반짝거렸다.

 브이자로 길게 파인 옷섬 사이로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한나는 25살 대학 졸업생이었다. 그녀는 불행하게도 대학을 나왔다. 그 대학에서의 삶이 한나를 파리까지 이끌었다. 한나는 4년 동안 자신의 앞날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떠날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집이 그녀에게 끔찍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나에게는 3명의 가족이 있었다. 엄마가 있었고 발랄한 여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엄마는 그녀를 끔찍하게 걱정한다. 그녀도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훨훨 날아갈 비행장이 필요했다. 한나는 매일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한다.

 “잘 있어. 걱정마.”

 엄마는 처음 3주간은 매일 인상을 찌뿌렸다.

 “딸, 돌아오지 그래? 엄마가 걱정된다. 응?”

 그러면 나는 더 심하게 인상을 썼다.

 “엄마 그만. 나 여기서 너무 좋아. 엄마도 건강 잘 챙기고, 운동 좀 하고.”

 

  오늘 따라 손님이 적었다. 이토록 손님이 없는 것은 이곳에 와서 처음 겪는다.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던 한나에게 큰일이 닥친 것이다. 어색하게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뺀다. 지금으로선 그게 한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액션이었다. 불편하게 기대 선 한나의 표정을 읽은 사장부부가 웃었다.

 “한나야 손님이 많이 없지?”

 한나는 멋쩍게 웃었다.

 “오늘은 날도 좋은데 왜 손님이 없는 걸까요?”

 사장부부는 한나가 귀여워 웃었다.

 “이럴 때도, 저럴 때도 있는 거겠지.”

 사장 부부는 처음으로 한나를 유심히 본다. 그들은 50이 넘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아마 자식이 있었다면 한나 또래 정도 되었을 것이다. 한나를 뽑을 때도 이렇게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작은 한국 여자애가 가게 밖 창문에 붙여 놓은 구인 메모를 보고 들어 왔을 때 밑반찬을 내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남자사장이 다짜고짜 서둘러 일을 시켰다. 그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한나를 보며 여자 사장이 물었다.

 “한나야, 네가 어디에서 왔다고 했지?”

 “저 광해요.”

 “아, 광해….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네. 파리는 바다가 없어. 그래도 살아보니 어때?”

 “괜찮아요. 대학 다닐 때도 바다 구경 못했는데요.” 한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남자 사장이 물었다.

 “일하기 전에 파리에 한 달 머물렀다고 했지? 노르망디나 다른 도시들에 가봤니?”

 “네. 노르망디는 못 가봤지만 생폴드방스, 니스, 님은 가봤어요.”

 “오, 많이 가봤네.”

 한나는 뿌듯해졌다. 화기애애한 질문이 계속 되었다.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 거야? 아예 이민 오려고?”

 한나의 얼굴이 빛났다. 누가 자신의 미래를 물어봐 준다는 것만큼 보람찬 일도 없었다.

 “몰라요. 하하. 진짜 모르겠어요. 사실 이곳도 여행하려 온 건 아니에요. 그냥 왔어요. 진짜 그냥요.”

 사장 부부가 웃었다.

 “그래, 온 것이 중요한 거지. 우리도 그냥 왔었다. 근데 이렇게 식당까지 열 줄 누가 알았겠어?”

 

  한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누가 그랬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나는 늘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쁘지는 않아도 빛이 났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의아했다. 한나가 예뻐 보이는 자신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한나를 향해 날선 말들을 했다. 한나는 상처를 꽤나 받았다. 아직 한나는 자신의 매력을 믿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늘 그녀의 매력은 거부당했다. 한나가 빛이 나는 것은 당연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그래서 한나는 외로웠다. 자신을 특이한 인간으로 규정짓고 자신의 눈들은 파내는 사람들을 한나는 견디지 못했다. 한나의 빛은 너무나 이국적이고 독특해서 사람들은 아름답다는 것을 잘 몰랐다.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한나를 혹독한 외로움의 언덕으로 보내 버렸다. 한나야. 너는 그냥 매력적인거야. 누가 이 말을 한번이라도 해줬었더라면 한나는 이렇게 먼 곳으로 오지 않았을 거다. 한나 자신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거부에 한나는 결국 항복할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자신이 골칫덩어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에게 부담만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나는 밤마다 눈물로 마음을 위로했다. 다소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알고 있는 몇몇은 한나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계속되는 외로움에 지쳐 우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옆엔 아무도 없었고, 가족들은 잘 듣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주변으로부터 격리 당했을 뿐이었다.

 

  점심때인데도 어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벌써 1시가 되었다. 한나는 화창한 밖을 내다보았다. 윤이 나게 닦은 유리 창문 사이로 가을날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한나는 자신이 이곳에 더 빨리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파리의 봄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한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파리의 봄을 보겠지…, 보고 떠나고 싶다.’

 밖을 내다보는 한나를 사장 부부는 지그지 바라봤다.

 “한나야, 날이 참 좋다.”

 한나는 밖에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부부를 보며 말했다.

 “그러네요. 오늘따라 햇빛도 따뜻하고요.”

 “월요일까지면 어때?”

 한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었다.

 “월요일까지 쉬신다고요?”

 “아니, 너를 내보내려고.”

 

  한나는 국문과를 나왔다. 한나의 고집 때문이었다. 좋은 성적이었기 때문에 더 좋은 학교를 갈 수 있었지만 꿋꿋이 불문과를 선택했다.

 “나는 국문학을 배워야 해. 왠지 나는 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한나의 엄마는 한나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 한나는 똑똑하니까.”

 그래서 고집스럽게 지금도 파리에 있다.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좋아했다. 권태로운 삶에 특별함을 선사했다. 한나는 얼떨결에 두꺼운 식탁보를 하나 집어 들고 나왔다. 사장 부부가 내보냈기 때문이다. 한나는 달리 갈 곳이 없어 루브르와 콩코드 광장 사이에 있는 튈르리 공원으로 향했다. 언제나 설레는 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강 강변에 누워 책을 읽을 때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곳은 매일이 설렌다. 한나의 삶은 어떤 특별한 것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했다. 튈르리를 향해 가는 이 길이 그녀의 인생에 영원히 기억될 어떤 페이지처럼 강렬하게 적어져 내려가고 있다. 한나는 확신했다. 이제 자신은 누구보다 빛나게 살아가고, 빛나게 사랑하며, 빛나게 태워질 것이라고.

 

  한나는 뚱뚱했었다. 대학을 가기 전까지 그녀는 매일 자신의 다리를 옆 사람과 비교했다. 무릎도 제대로 꿇지 못했다. 그녀의 다리가 겹쳐지면 살이 눌려 퍼지면서 자신의 튼실함을 온 힘을 다해 뽐냈기 때문이다. 숨도 조용히 쉬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숨 쉬는 소리가 역겹게 들릴까 매일 노심초사했다. 한나는 그렇게 10년을 끔찍한 감옥에 갇혀 지냈다. 누구도 꺼내 줄 수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 갇힌 감옥이었다. 그 감옥은 누구도 몰랐다. 한나는 그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밤 토했다. 게워내고 게워내며 그녀는 스스로 웃었다. 그렇게 해서 한나는 마침내 2번이나 십의 자리 수를 바꿔냈다. 그렇게 한나는 감옥에서 벗어난 줄 알았다. 한나는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누구보다 크게 웃고 해맑지만 스스로의 웃음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아름답지만 그걸 느끼지 못해 마음 한 구석이 텅비어버린 인형이 됐다. 누구보다 순수한 한나의 마음이 아직 껍질을 뜯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순수하게 타오르는 열정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것은 절대 누구도 끄지 못하는 한나 만의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으로 파랑새를 불러들일 것이고, 불꽃 위에 피어나는 사랑으로 한나는 아름답게 삶을 살아낼 것이다.

 

  누구든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온다. 자신만 모르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귀한 매력이 흘러넘치는 그런 순간이다. 지나갈 때마다 흘러나오는 고귀한 존재를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는다. 쟁취하려한다. 참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새로운 세상이다. 한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다. 스치듯 만난 인연에 강력한 시선을 묶은 칼을 꽃아 그들이 멀어지려 할수록, 꽂힌 칼이 나오려 할수록 피가 배어나오는 아픔을 주는 그런 순간 말이다. 한나는 자신의 칼이 어디에 꽂혔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한쪽에서 들려오는 큰 울음소리를 못들을 수는 없었다. 한나는 결국 가장 슬프게 울어대는 쪽으로 몸을 돌려 달려갈 것이다.

 

  튈르리 공원에 도착했다. 한나는 오르세이 미술과 맞닿아 있는 가장 안쪽 잔디밭으로 들어가 식탁보를 깔고 누웠다. 얼굴을 반쯤 가리는 나무 그늘 사이로 싱그러운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노래를 틀었다. 산뜻한 시티팝 멜로디가 한나를 에워쌌다. 이제 이곳은 오로지 한나의 공간이었다. 저 멀리서 한 프랑스인 가족들이 피크닉을 나왔다. 개가 짖고 아기가 울었다. 한나에게 그것들은 방해되지 않았다. 이곳은 또 다른 우주였다. 한나는 눈을 감고 자신의 우주를 터트린다. 작은 점을 터트려 지구를 만들고 하나하나 한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들을 창조해간다. 우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한나가 사는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모든 질서와 진리가 한나를 따랐다. 한나는 말했다. 아, 정말 죽겠다. 행복해서. 귀 속을 울리는 리듬을 따라 한나의 우주는 움직였다. 모든 행복은 이제 한나에게 달려있었다. 한나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을 비밀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비밀을 차지하는 사람은 한나와 영원토록 행복할 것이다. 한나는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열심히 빚었다. 그녀가 지음 받은 것처럼 그녀의 마음을 닮은 순수한 피조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나는 다짐했다. 이 피조물에게 자신의 모든 행복을 주겠다고. 자신이 생각한 가장 최고의 삶을 선물해 주겠다고. 한나는 정성을 부었다.

 

  “진짜 질린다. 정말.”

 한나의 첫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하고 떠났다. 한나는 슬퍼 울었다. 더 이상 그 남자와 함께하지 못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부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욱 슬퍼 울었다. 그는 한나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거부한 것이다. 한나는 적어도 자신이 남자친구에게 만큼은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넌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것 같애.”

 사실 이런 말까지 들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우기 위해 한나에게 모진 말을 쏟아냈다.

 “넌 나한테 뭘 줬는데?, 나랑 뭐 하고 싶었는데?”

 한나는 한 학년 어린 같은 과 동생과 자신의 남자친구가 키스하는 걸 봤다. 그날 한나는 남자친구한테 폭풍같이 화냈다. 남자친구는 차분하게 한나를 진정시키고 만나자고 간절히 말했다. 처음엔 좋았다. 한나는 평생 지워지질 않을 주홍글씨여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더 미안해한다면 계속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니가 뭔데. 니가 뭔데 대체 나한테 매력 없다고...”

 “나니까 이정도 참은 거지. 됐다. 그만하자. 너 너무 딱딱해. 여자애 같은 맛도 없고.”

 한나는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 한나는 자신은 절대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는 가로등 아래에서 한나에게 손찌검을 했다.

 “재수없는 년.”

 한나는 자유로워지기로 결심했다. 특별할 수 없다면 특별해지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스스로한테는 그렇게 보여 지고 싶었다. 남자의 형편없는 욕을 들은 이후부터 더욱 그랬다. 한나는 긴 꿈을 꾸어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전에 한나에게는 많은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운명이 있다면 한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워지는 것이 한나의 운명이라면 한나는 한 없이 날아도 떨어질 일이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한나는 날개가 꺽일 때까지 날아보기로 했다. 그때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더라도 한나는 멈추지 않기로 작정했다. 꽃 같은 나이에 한나는 많은 것을 겪었다. 충분이 긴 꿈을 꿀 적절한 시기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한나의 마음은 동동 떠올랐다. 한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후로 한나는 아주 길고 긴 꿈을 꾸었다. 이따금 잠꼬대처럼 욕을 했다.

 “개새끼…”

 

  우주에서 피어난 꽃처럼

  너는 내 품에서 아름다웠지

  나를 구원해준 나의 천사

  나를 사랑해준 나의 구원자

  우주에서 피어난 꽃처럼

  저 별들처럼

  누가 알까 네가

  내 우주에 피어난 꽃이라는 걸

  그냥 날 놓아주기를

  내 우주의 아름다운 구원자

  나의 천사 나의 사랑 나의 구원자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네가 나를 운명처럼 보아주기를

  운명이 질투하는 우리

  저 북극의 오로라 바람처럼

  넌 나의 천사라는 걸

  너는 나의 구원자라는 걸

  너는 꼭 알아주기를

 

  한나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뒤덮였다. 한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누가 볼새라 검은 머리칼을 얼굴에 부비며 눈물을 닦았다. 눈 주위가 벌개지고 검은 머리가 엉겨 붙다가 매끄럽게 흘러 내렸다. 그때 저 멀리서 한나가 방금 전에 만들어낸 북극을 넘어온 산들바람이 태평양에서 달궈져 칠레로, 그리고 멕시코를 거쳐 다시 한번 아일랜드의 어느 오로라를 만들어낸 자기장의 영향을 받으며 파리로 날아와 ‘휑’하고 한나의 머리칼을 쳐냈다. 덕지덕지 붙은 머리칼 사이로 힘겹게 뜨여진 눈앞에 어떤 잘생긴 청년이 서서 한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나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모든 슬픔과 행복함이 뒤섞인 이 공황에서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한나는 얼른 뒤집어 생각했다. 이것은 불필요한 우연이었다. 한나는 남자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한나가 기다릴수록 보이는 건 남자의 흔들리는 눈이었다. 한나는 다시한번 이것 또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아주 흔한 인연.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 순간조차도 으레 있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남자의 심장이 데워지는 순간에 그의 깊은 눈동자 속으로 자신의 일그러진 행복이 칼을 꽂았다는 것을 한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한나는 다시 한번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한나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믿어볼 용기가 필요했다. 한나는 아름답다. 그걸 앞에 서있는 남자는 단번에 알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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