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너는 아름답다고
작가 : 내일
작품등록일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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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다른 만남
작성일 : 19-10-11     조회 : 332     추천 : 0     분량 : 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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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또 다른 만남

 다음날 한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우재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너무나 행복해서 부푼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직 한나에게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이 너무나 꿈만 같았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한나는 상쾌한 마음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사장부부는 한나를 반갑게 맞아 들었다.

 “오랜만이다. 잘 쉬었니?”

 “네, 덕분에요. 정말 감사했어요.”

 “한나야, 때론 시간을 갖는 것도 많은 것을 얻는데 도움이 된단다.”

 한나는 사장님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사장님.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왔어요.”

 

 한나는 보통 때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한나의 행복한 표정이 가게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가게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었다. 한나는 밝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손님이 많았지만 전혀 고되지 않았다.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점심 장사를 마칠 시간이 왔다. 한나는 사장 부부에게 알렸다.

 “이제, 셧더 내리고 쉬어 가겠습니다.”

 한나는 힘차게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문을 닫으려고 하였다. 그때 검은머리가 눈을 가린 한 준수한 청년이 문 앞에 섰다.

 “혹시 지금 끝난 건가요?”

 “네에…, 그렇긴 한데…”

 한나는 물에 젖은 남자의 눈빛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장부부에게로 달려갔다.

 “저기요, 사장님. 죄송한데 손님 딱 한분만 더 받을 순 없을까요? 저…, 그게, 그냥 보내기에는 마음에 좀 걸려서…”

 사장부부는 서로 눈을 맞추며 빙긋 웃더니 말했다.

 “괜찮단다. 그 대신 2층에서 주문을 받아주겠니?”

 

 한나는 문 앞의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된대요! 어서 들어오세요.”

 남자는 한나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자리를 안내 받고 큼직한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었다. 한나는 남자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남자는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요.”

 남자는 메뉴판을 보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때 한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혹시, 민, 민 맞죠?!”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어머! 지금은 콘서트 끝나고 휴가 중이신거겠네요?”

 “주문 안받아주실 거예요?”

 차가운 민의 표정을 보고 한나는 말을 멈추고 주문을 받았다.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죄송해요.”

 민은 대꾸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음식이 나오고 한나는 곧이어 민에게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이건 서비스에요, 편히 쉬고 싶으셨을 텐데, 제가 괜히 아는 척 한건 아닌가 싶네요. 말이 많았어요. 죄송해요.”

 민은 그런 한나를 올려다보았다. 하얗고 매력적인 얼굴이 밝게 빛이 났다. 민은 특유의 물에 젖은 듯한 눈으로 한나를 쓸어보았다.

 “많이 행복한가 봐요.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을 정도로…”

 한나는 발그레하며 말했다.

 “요 며칠 제게 정말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거든요.”

 민은 수줍게 웃는 한나의 얼굴을 보자 눈썹이 떨렸다. 평생에 그렇게 행복해 하는 얼굴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수줍게 올라온 뺨의 분홍빛에 민의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이내 민은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주스 고마워요. 저 이제 혼자 밥 좀 먹을게요.”

 한나는 얼른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편하게 드세요. 필요한건 언제든지 말하시고요.”

 

 민은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니 기지개가 절로 켜졌다. 며칠 동안 그는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은 다 밖을 나가 하루 종일 있다 들어오거나 아예 연락이 없는데 민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벌써 데뷔한지 8년, 최정상까지 오른 그에게 남은 건 오직 피로함뿐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즐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민에게는 몹시 고달플 뿐이었다. 10년 전, 데뷔만 한다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게 아무 것도 특별함을 주지 못했다. 누릴 것을 다 누렸지만 기쁘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당연하듯이 느껴졌다. 전혀 감사하지도 전혀 행복하지도 않았다. 민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제 멤버들이 하나둘 군대를 가기 시작할 거고 그 후에 이 그룹이, 자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민은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오색 풍선들이 떠오를 것만 같은 푸른 하늘이었다. 거리에 많은 집시들이 아이를 안고 나와 있었다. 민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씁쓸히 웃었다. 아이를 보면 자신의 옛날 모습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가슴을 헤집어 놨다. 민은 머리를 흔들어 더욱 얼굴을 머리칼로 가리고 나아갔다.

 

 “아버지, 잘, 잘못 했어요…!”

 “이리와! 다리 걷어!”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며 소리를 냈다.

 “어린놈의 자식이 벌써부터 학원도 빼먹고…!”

 “아, 아버지…흐흑, 잘못했어요.”

 아버지가 꽉 쥔 자줏빛 회초리는 색색 소리를 내며 어린 민의 다리에 붉은 자국을 내었다.

 “어미 없는 새끼라고 놀림 받고 싶어? 이리와! 오늘 아주 끝장을 보자!”

 

 넓은 정원에는 나이든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오래됐지만 강인함을 품은 고풍스러운 주택이 하나 보인다. 이곳 이층 끝 방에서 어린 민이 어둠 속에서 홀로 울고 있다.

 “흐흑, 엄마…, 보고싶어… 흐흐흑”

  민의 아버지는 민이 6살 때 젊고 아름다웠던 부인을 사고로 잃고 홀로 민을 키웠다. 너무나 사랑하던 부인을 잃은 충격은 민에게로 향했다. 굳건한 척, 홀로 아들을 키우는 것이 전혀 외롭지 않은 척 그는 더욱 단단하게 변해갔다. 민의 어머니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워졌다. 오직 홀로 자식을 키우는 고집스런 영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민의 아버지는 민을 굳게 믿었다. 언젠가 큰 사람이 되어 이 아비의 사업을 물려 받을 거라고, 그리고 누가 봐도 어미 없는 자식처럼 키우지 않겠다고. 그런 아버지의 단단한 고집과 애착은 민을 외롭게 만들었다. 민은 지쳐갔다. 넓은 집도, 집안의 든든한 배경도 민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민은 단지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민에게 사랑을 나타낼 줄 몰랐다. 매번 그의 행동이 눈에 차지 않을 때마다 혼을 내는 것이 다였다. 아버지의 사랑은 날로 갈수록 혹독해져갔다. 그럴수록 민은 점점 사람에게 마음을 닫아갔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 집에서 나오기를 바랬다.

 

 민은 노을이 질 때까지 루부르궁 안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있었다. 민은 다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입구 밖을 나섰다. 오색 노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시간의 선물이란 놀라웠다. 궁전 처마 끝에서 피어난 분홍색 구름이 실오라기처럼 늘어지고 늘어나 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민은 이 시간의 선물을 간직하고자 사진을 찍으며 센느 강변을 걸어 나갔다. 하나하나 이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었다. 특히 여기 퍼지는 이 사람들의 소리와 강물의 노래까지 담아내고 싶었다. 그때였다. 민은 다리 밑의 아름다운 사진을 찍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내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같은 멤버 우재였다. 우재가 손을 마주잡고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민이 아는 얼굴이었다. 바로 한나였다. 민은 한나의 얼굴을 미간을 좁히며 바라보았다. 사랑받고, 행복해 하며,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기적을 본 얼굴이었다. 민은 한나의 얼굴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나의 얼굴을 담았다. 잠시나마 민은 한나가 궁금해졌다. 어떤 여자인지, 우재와는 대체 언제부터 만났는지, 왜 그렇게 행복해 하는지. 민은 카메라를 내리고 다시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갔다. 한나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특이해….’

 그러면서 또 우재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한나는 기다리고 있을 우재 생각에 저녁시간이 되자 초초해졌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장부부는 그런 한나의 상태를 바로 알아차렸다.

 “한나야,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니?”

 한나는 애써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 아뇨”

 남자 사장님이 말했다.

 “그것만 정리하고 들어 가보려무나. 우리 둘로도 충분하단다.”

 한나는 재빨리 그릇을 치우고 앞치마를 락커에 던져넣었다.

 “감사합니다!”

 

 한나는 센느 강 다리 아래로 뛰어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우재를 찾았다. 그때 뒤에서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나씨!”

 한나는 우재에게로 달려 나갔다.

 “많이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우재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걱정하지 말아요. 한나씨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에요.”

 우재는 한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나씨 배 안고파요? 우리 뭐 먹으러 갈까요?”

 우재는 한나의 두 손을 맞잡았다. 한나는 수줍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배고파요. 먹으러가요.”

 둘은 한참을 마주보며 서로를 향해 웃음을 보였다.

 

 둘은 노트르담 근처 식당으로 갔다. 음식이 나오고 배를 채운다음 손을 쓰다듬으며 쉼 없이 이야기했다.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둘이었다.

 “한나씨는 원래 어디에서 살았죠?”

 “저, 광해요. 들어봤어요?”

 “광해 잘 알죠. 저 거기서 드라마 촬영도 했는 걸요!”

 “우와. 우재씨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우리 한국에서 만날 땐, 꼭 광해에서 다시 만나요.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우리 같이 손잡고 걸어요.”

 “한나씨, 절대로 저 잊어버리면 안돼요! 제가 한나씨 어디에 숨어있던 찾아낼 거예요. 제가 한국 가도 꼭 연락해야 해요. 알겠어요?”

 한나는 웃었다.

 “당연하죠. 근데 그건 내가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나야말로 우재씨가 나 잊어버리면 어떡해요? 예쁜 배우들 가수들 사이에서 나 같은 건 기억도 못하면 어떡해요?”

 우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나 옆으로 가 앉았다.

 “한나씨, 한나씨는 정말 예뻐요. 믿어줘요. 내 눈에 한나씨가 제일 예뻐요.”

 한나는 우재를 잠깐 바라보더니 손을 잡고 알어났다.

 “자, 이제 나가요. 파리는 야경이죠!”

 

 둘은 많은 버스커들이 무대를 이고 있는 노트르담 성당 앞으로 나왔다. 둘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잃을까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나, 이제 뭐든 해도 용기가 날 것 같아요. 우재씨가 이렇게 옆에 있잖아요.”

 우재는 한나의 이마에 키스했다.

 “나는 더 용기가 날 것 같아요. 한나씨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도 나와 함께 해줘요. 내가 한나씨를 만난 건 정말 선물같은 일이죠.”

 둘은 밤 하늘에 수 놓아진 하얀 불빛들과 그 아래 퍼지는 프랑스 버스커들이 외치는 사랑의 노래에 흠뻑 취해갔다.

 “한나씨 사랑해요.”

 “나도요 우재씨.”

 

 그날 밤 둘은 처음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잡힐 듯 잡히는 않는 서로에 대해 잠시 잊고 그 순간을 느끼려는 듯 했다. 우재는 자신을 잊었다. 자신을 잊을 만큼 한나에 대한 마음만큼은 자신 있었다. 운명이 있었다면 이것이었다. 북극을 타고 태평양을 건넌 그 바람이 불어온 그날 우재는 모든 것엔 운명이 있다고 믿었다.

 

 아침이 되었고, 둘은 네 번째 아침을 함께했다. 우재는 먼저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는 한나를 보며 말했다.

 “잘 잤어요?”

 한나는 빙긋 웃었다.

 “커피 내려 놨어요. 오늘도 일찍 나올게요. 기다릴거죠?”

 우재는 엄지를 척 들었다.

 “훌륭하십니다. 시간 맞춰서 갈게요. 잘 다녀와요.”

 한나는 허리를 숙여 우재의 볼에 키스하고 밖으로 나왔다. 한나는 자켓의 앞을 더 단단히 여몄다. 오늘은 왠지 유난히 쌀쌀함이 더해진 것 같이 느껴졌다.

 “춥네…, 더 일찍 나와야겠어.”

 한나의 눈엔 파리 시내가 아니라 우재의 얼굴이 보였다. 꿈결같이 나타나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여 준 그 남자. 오늘도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한나는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한나의 앞길에 이제 희망찬 구름만이 가득 할 것 같았다. 한나는 그렇게 우재를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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