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우리 이제 그만 놔주자.
“놔! 나는 알아야 겠어, 그 사람 누구야? 누구 길래 우재씨가 그렇…”
우재가 유리를 거칠게 놓았다. 우재는 유리를 놓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누구냐니까?”
유리는 여전히 흥분해 있었다. 우재는 숨을 몰아쉬면서 유리를 모았다. 유리는 울고 있었다. 우재는 유리를 울리고 싶지 않았다.
“유리야….”
유리는 이미 우재의 말이 안들리는 듯 했다.
“오빠 만나는 사람 있었구나…, 그랬구나.”
유리가 서럽게 울었다. 우재가 미간을 좁히며 눈을 감았다. 유리는 쉴새 없이 말했다.
“평범한 사람 같던데, 어떻게 만난거야?”
우재는 유리의 말에 대답이 없었다. 유리가 더욱 날뛰었다.
“오빠, 나는, 나는 이제 어떡해? 흑.”유리가 주저 앉아 울었다. 우재가 유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유리야…, 나 이제 그만 나주라.”
유리가 울음을 멈추고 우배를 바라봤다.
우재가 핸드폰을 찾았다. 어디에도 핸드폰은 없었다. 우재는 한나를 영영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우재가 한나의 집 앞에 다다랐다. 한나의 집엔 불이 꺼져 있었다. 한나를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우재는 골목으로 들어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아까 일을 떠올렸다.
“오빠, 이렇게 다시 온 나한테 그게 할 소리야?”
우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마음대로 온 거잖아.”
유리는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힘들어 한다며. 나 오빠 때매 온 거야. 오빠한테 힘이 되고 싶어서.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어서.”우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힘들었었지. 많이 힘들었었지. 이 생활이. 너랑 끝난 후부터 이 생활이 힘들더라고. 그게 너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나도 다시 연락 안 해볼까 한 건 아니야. 근데 유리야, 이제는 아니야. 나 이제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다시 기운도 낼 수 있게 됐어. 우리 1년 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잖아. 그때 많은 게 바뀐 거야. 유리야, 돌아가. 돌아가서 이제 네 일을 해. 우린 그때가 마지막이어야 했어. 이제 나도 너를 놔줄게. 유리야. 우리 이제 진짜 그만두자. 미련까지도.”
유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유리는 또 다시 주저앉았다. 우재는 유리를 뒤로하고 걸어 나오며 말했다.
“이제는 그냥 갈게. 널 또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다독여 주면 끝내질 못하잖아.”
우재는 힘없이 아까 한나와 있었던 그 곳으로 걸어 나갔다.
한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재는 한나를 놓쳤다. 우재의 가슴이 아파왔다.
“한나씨….”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재는 한나의 집으로 뛰어갔다.
우재는 한나의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한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재는 주저앉았다.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이제 곧 우재는 파리를 떠나야했다. 우재는 한나에게 아무 말없이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재는 한나의 가게로 갔다. 그곳에서 우재는 계속 한나를 기다렸다. 우재는 한나를 만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재는 솔직해지기로 다짐했다. 우재는 한나에게 유리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재는 한나의 표정을 상상했다. 한나가 부디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우재는 가게 앞에 쭈그려 한나 생각을 했다.
아침이 되자 사장부부가 가게로 나왔다. 둘은 가게 문 앞에 고개 숙인 채 쭈그려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놀랐다. 그리고 이내 침착해진 목소리로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monsieur?”
우재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장부부가 놀랐다.
“한국인이세요?”
우재는 눈을 떠 정신을 차려 보았다. 사장부부가 걱정스런 얼굴로 우재를 일으켰다.
“밤새 여기 계셨던 거예요? 갈 곳이 없으세요? 한국어를 잘 못하나?”
우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장부부를 보았다.
“혹시…, 여기 사장님 되세요?”
사장부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재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나씨는 언제 나오나요?”
사장부부가 놀라 물었다.
“한나를 아세요?”
사장 부부는 우재를 자세히 살폈다. 여자 사장님이 남자 사장님의 귀전에 속삭였다.
“여보, 그 사람이에요. 밖에서 한나를 기다리던.”
남자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배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 한나는 안 나올 텐데요. 저 그러지 말고 일단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들어가요. 지금 모습이 말이 아니에요.”
우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한나씨가 여기 없으면 저도 여기 있을 필요는 없어요. 전 그만 한나씨를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우재가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자 사장부부가 우재를 가로막았다.
“한나에게 연락해 봤어요?”
우재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사장부부는 우재를 감싸 가게 안으로 들였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다 가요. 우리가 한나랑 연락 해 볼게요.”
우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 부부는 우재를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알아챘다.
“알…플라워? 맞죠?”
우재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사장부부는 놀랐다.
“아니 근데 우리 한나를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여자 사장이 덧붙였다.
“아니 원래 알던 사인가?”
우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주일 전에 여기서 처음 봤어요. 근데 너무 아름다워 제가 첫눈에 반한 거예요.”
사장 부부가 흐뭇한 얼굴로 우재를 바라봤다.
“우리 한나가 예쁘죠. 근데 한나는 자기가 예쁜 걸 정말 모르더라고요.”우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 부부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근데 왜 한나에게는 연락도 없이 여기 이러고 있어요?”
우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가, 실수로 놓쳐 버렸어요.”
사장부부는 아무 말 없이 우재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거면 안되는 거였는데…, 제가 한나씨를 놓쳐 버렸어요. 연락도 못하고. 집에 가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오질 않네요. 여기라도 있으면 만날 줄 알았는데….”
우재의 이야기를 듣던 남자 사장이 메모지와 펜을 가져왔다.
“자, 여기다가 써요. 지금 한나를 못 만나더라도 한나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우재는 눈물을 훔치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꾹꾹 적었다.
‘내가 다 설명할 게요. 미안해요. 하지만 사랑해요. 진심으로요. 꼭 연락해요.’
우재는 한나가 없는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우재는 한나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한나씨…’
우재는 한나에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었다. 한국으로 같이 돌아가자고. 자신이 그녀가 꿈을 다 이루도록 도와주겠다고. 우재는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숙소에 가니 민 빼고 모든 멤버들이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우재는 멤버들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우재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유노가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노는 약간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어디 갔다와?”
우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냥 좀, 누구 보러 갈 일이 있어서.”
유노는 화가 난 듯 했다.
“형,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우재가 시큰둥하게 받아쳤다.
“누가 본다 그래.”
그때 하루가 들어와 유노의 말에 힘을 보탰다.
“형이 몰라서 그래. 형 나가고 난 뒤부터 민이 형도 안보이고…”
우재가 갸웃거렸다.
“민이도?”
유노가 아직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가서 봐. 형 요새 너무 막 다녀.”
우재가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 보였다.
“형 그렇게 막 다니지 않았어.”
하루가 우재의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유리 누나여도 알지? 우리 몇 년 전에 엄청 고생했던 거…”
하루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형, 나 아이돌 오래하고 싶다.”
우재가 씁쓸하게 웃었다.
“걱정마. 너 오오래 할거야.”
유노가 인상을 구기며 우재의 눈치를 살폈다.
“흐음, 무슨 일이 있구만?”
우재가 물기 있는 머리를 털었다.
“참, 무슨 일이 있다고 그래.”
하루가 우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어, 형 말 돌리는 데?”
우재가 당황해 다시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마침 민이 들어왔다. 민이 태연하게 물었다.
“다들 여기서 뭐해? 다들 이 방에 있다고 해서…”
그때 하루가 소리를 빽 지르며 말했다.
“형! 뭐하다 이제 들어왔어?”민이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야, 놀랐잖아.”
유노가 의심스런 눈초리를 민에게 보냈다.
“흐음, 뭐하다 이제 왔을까?”
민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누구 만나고 왔어.”
유노와 하루가 동시에 말했다.
“누구?”
민은 또 다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 친구 생겼거든.”
우재가 큰 눈으로 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평생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정말 예쁜 친구.”
유노와 하루가 당황했다. 하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형, 조심해 지금 우리 열애설 나면 끝장이야.”
민이 살짝 웃었다.
“걱정마. 그 친구는 날 친구로도 생각 안 할지도 몰라.”
우재가 머리 말리는 것을 멈추고 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 다시 못 볼지도 몰라.”
하루가 심각한 표정을로 말했다.
“번호나 페북도 안물어 보고 뭐했어.”
민이 힘없이 웃었다.
“다 있어 나한테.”
유노가 표정 없이 물었다.
“근데 왜?”
민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 날 다시 보고 싶어 하느냐가 문제지?”
하루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 형 알플라워인거 알아?”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는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연락을 못한다고?”
민이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재는 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민도 어쩌면 한나와 같은 진실한 사람을 만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향으로.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노가 짜증을 냈다.
“잘한다 잘해. 우리 여기 연애하러 왔어?”
하루가 눈을 이상하게 치켜뜨고 유노를 바라봤다.
“아, 형! 우리 이제 나이도 있고 8년이나 됐는데 멤버들끼리는 이해하고 삽시다. 연락도 못한다잖아.”
유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이해 못한다는 게 아니잖아. 둘 다 숙소에도 안 들어오고, 연락도 잘 안됐고, 현지에서 아무나 만나고…”
“아무나 아니야.”
민이 갑자기 유노의 말을 끊었다. 유노는 아차 싶었는지 해명했다.
“내말은 그게 아니고, 여기서 길어봤자 며칠 본 게 다니까…, 그런 뜻이…”
유노는 민의 눈길에 말을 멈추고 사과했다.
“미안…, 내 말은, 형도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잖아.”
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걱정시켜서.”
둘을 가만히 보고 있던 하루가 우재를 보고 말했다.
“형은?”
우재가 당황한 듯이 잽싸게 사과했다.
“어, 그래. 나도 미안했다. 너무 생각이 짧았네. 연락 할게 앞으론.”
유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튼 형도 얼른 가서 챙겨요. 우리 곧 출국이야.”
민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우재의 방을 나가자 우재의 얼굴엔 그늘이 짙어져 갔다. 민의 솔직하고도 당당한 모습에 우재는 속상했다. 핸드폰을 충전시켜 한나에게 문자를 넣어 놨지만 답이 없었다. 한나도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재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한나가 분명 오해하고 있었으니까. 우재는 한나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여전히 한나는 묵묵부답이었다. 우재는 머리를 잡아 뜯었다.
알플라워는 팬들로 가득 메워진 샤를드골 공항에 나왔다. 한국으로 가기까지 몇시간도 채 안남은 시간이었다. 민은 수 많은 팬들 사이로 한나를 떠올렸다. 한나도 자신을 사랑해 주었음 싶었다. 민은 더 열심히 무대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언제 어디서든 한나가 자신을 볼 수 있게. 민은 하루 종일 핸드폰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우재에게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형 누구 연락 올 사람 있어요?”
우재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러나 표정은 숨기지 못한 채 대답했다.
“응, 아니. 친구한테 문자 왔나 싶어서.”
민은 우재의 표정을 읽었다. 한나에게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듯 했다. 민은 가슴 한 켠에서 뿌듯함이 올라왔다. 우재가 민을 보고 말했다.
“이대로 한국 가기엔 슬프다 그치?”
민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곧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을 태운 비행기는 이륙준비를 마쳤다. 파리에서 끝난 인연이 한국에ᄁᆞ지 닿을 수 있을지 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한 채로 한국으로 가는 여정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