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새 출발
한나는 시작해야 했다. 한나에게 주어진 여유는 적당하지 않았다. 한나는 서둘러 강우와 자신의 삶을 구상해야 했다.
"뭘 시작해야 하지?"
한나는 막막했다. 대학을 나온 것 밖에 그녀가 한 것은 없었다. 한나는 무엇이든 시작해야만 했다.
"찾아 보자!"
한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생각나는 대로 치기 시작했다.
'여성 일자리'
'청년 창업'
'사무 보조원'
'공시준비'
어느 것 하나 애가 딸린 미혼모에게는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한나는 절망했다. 눈물이 났다. 한나는 다시 힘을 내어보려 주방엘 갔다. 따뜻한 우유라도 한잔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한나는 한숨을 쉬며 주방으로 갔다. 주방엔 마침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축 처진 한나를 보고 말했다.
"엄마가 그렇게 힘이 없으면 어떻게 해? 왜, 뭐가 잘 안돼?"
한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엄마, 나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나 이제 어떻게 해? 강우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엄마가 계속 고사리를 삶으며 말했다.
"왜에, 너 잘하는게 얼마나 많았는 데. 피아노도 잘 치고, 글도 잘쓰고..."
한나는 순간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였다.
"어? 내가? 글?"
엄마가 웃었다.
"너 예전에 문학상도 받고 그랬잖아. 엄마는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데!"
한나는 어마의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다시 방으로 갔다. 한나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한나는 오래 전부터 묵혀둔 파일을 꺼냈다. 노란색 폴더 안에 차곡히 저장된 파일 들이 있었다. 한나는 그 중에 하나를 열어 보았다.
"로사나..."
한나는 그 파일을 열어서 차분히 스크롤을 내리며 읽어보기 시작했다.
"당신은 나의 공주요, 일어나요 로사나, 이제 나와 함꼐 해주오."
"당신이 유라레의 공주인가요?"
"난 공주가 아니에요! 난 그저 평벙한 로사라구요!"
"당신은 사실 잃어버린 공주랍니다. 당신의 용기는 유라레 왕국을 살렸죠."
"나는 당신을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어요."
"저 별빛이 나를 왕국으로 인도해주면 좋겠어요."
"자, 이제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다 잊어버려요. 지금부터는 나와 함께 빛으로 나아 가는 거예요!"
"사랑해요, 그대의 기억 속에서 난 무엇이든 상관 없어요."
"당신은 공주가 되기에 완벽해요!"
"당신의 희생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군요.'
"아아, 당신을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요?"
"자, 이리와요 내사랑. 이제부턴 눈물 닦도 나와 춤이나 추러 가자고요."
한나는 말이 없었다. 한나는 어릴 적 자신이 써내려갔던 글들을 읽어가면서 가슴이 타올랐다. 그리고 공허했다. 이렇게 꿈 많던 소녀의 모습이 지금 자신에게 남아 있는지 싶었다. 한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이 달린 한 쪽 벽을 보고 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한나는 애써 머리를 단정히 빗어 보았다. 소용히 없었다. 한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 오면서 당분간은 거울을 보지 않기로 했다. 한나는 다시 노트북 앞으로 왔다. 수 많은 글을이 차례를 이루어 빼곡히 저장 되어있었다. 한나는 새삼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열정에 감동했다. 한나는 의자 등받이에 다리를 길게 뻗고 누워 기대며 생각했다.
'글을 쓰자.'
한나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나에게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한나는 이 악물고 글을 써낼 자신이 있었다. 전보다 사랑도 아픔도 더 많이 겪어봤다. 이제 한나는 작가의 자질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한나는 인터넷 창을 켜고 검색 창에 공모전을 쳤다. 한나는 수 많은 사이트들을 들락날락하며 현재 열려있는 공모전이 무엇이 있나 확인했다. 그때 마침 한나의 눈에 한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스토리 컨텐츠 공모전'
한나는 외쳤다.
"이거다!"
일정분량의 스토리 소설을 내면 심사를 거쳐 책으로든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웹툰으로든 웹드라마라로든 나오는 그런 공모전이었다. 물론 상금도 두둑했다. 한나는 이제 망설일 것이 없었다. 한나의 입가엔 행복이 떠올랐다. 한나는 옛 소설을 수정도 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공모전 사이트에 업로드를 했다. 한나는 숨을 한 번 고르게 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후련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엄마, 우리 밥이나 먹을까?"
민은 한나의 집 앞에 다다랐다. 민은 문을 두드렸다.
"한나씨!"
미나가 문을 열고 민을 맞이했다.
"어? 빨리 왔네요? 서울에서 광해까지 오기 안 귀찮아요?"
민이 웃었다.
"나 빨리 들어가면 안돼요? 추워요."
미나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얼른 들어와요. 안에는 무지 따뜻하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한나와 아이가 보였다. 민은 살갑게 강우에게 다가갔다.
"강우야! 아저씨 왔다. 잘지냈어? 어이구, 아프진 않았고?"
한나가 웃었다.
"민씨 왔어요? 매번 번거롭게 뭐하러 와요. 일도 많은데..."
미나가 한나 옆으로 가 퉁명스레 받아쳤다.
"참나, 자기 자식 보러 오는 게 당연하지! 형부 자주 와요! 애가 아빠한테도 정을 붙여야지! 그리고 아저씨가 뭐예요, 아저씨가. 아빠라고 해야죠. 아무리 언니 눈치 보인다고 해도... 어쨌든 늘 애한테 관심 가지고 언니 잘 돕도록해요."
한나가 미나를 보며 화냈다.
"강미나! 그런 거 아니라고, 저 사람 애 아빠 아니야. 왜 자꾸 그래."
미나가 받아쳤다.
"애 아빠가 아니면 왜 여길 와?"
미나가 민을 보고 물었다.
"우리 언니 좋아해요?"
민이 놀라 더듬거렸다.
"네,네. 그럼요."
미나가 한번 더 쏘아 붙였다.
"애 책임질 수 있죠?"
민이 당황하면서 말했다.
"최선을 다할 거예요."
미나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최선은... 별론데..."
한나가 미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만하지?"
민이 한나를 달랬다.
"전 괜찮아요. 애가 놀라겠어요."
미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책임지겠다잖아. 저 잘나가는 형부가. 언니도 그만 받아들여 흔치 않은 기회야."
민이 재밌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한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민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요? 쟤가 좀 아무말이나 잘해서..."
민은 다정한 미소를 한나에게 보냈다.
"전 다 만족해요. 한나씨 일이라면."
한나가 미나에게 말했다.
"너 운동 안가냐?"
미나가 갑자기 거실 바닥에 누워 등을 비벼댔다.
"으으, 가기싫어!"
한나가 미나를 재촉했다.
"가라. 가라고. 어휴 돈 아까워."
미나가 벌떡 일어나 짜증을 냈다.
"아, 간다고, 간다고!"
민은 자매들의 싸움이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한나는 민망해 얼글이 벌개졌다.
"미안해요, 손님한테 이런 모습 보여서."
민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전혀요. 저는 이런게 부럽기만 한데요 뭘."
한나가 민을 쳐다보았다. 민이 한나를 보며 말했다.
"저 외동에 혼자 컸거든요."
한나가 이해했다는 듯이 읊조렸다.
"아... 그러셨구나..."
미나는 어느샌가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쳤다. 운동을 가기 싫어서 얼굴이 죽상이 되어 있었다. 한나는 그런 미나를 보며 얄밉게 응원했다.
"운동 잘하고와! 건강해지겠다!"
미나가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말했다.
"아, 뭐래!"
미나가 간고 난 후 집안엔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다. 민이 정적을 깨고 한나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한나가 물었다.
"뭐가요?"
민이 미안한 듯이 물었다.
"제가 거짓말쳤잖아요. 강우 아빠라고..."
한낙 씁쓸히 웃었다.
"당황스러웠죠. 강우 아빠는 따로 있는데... 그래도 고마워요. 덕분에 엄마랑 미나가 절 덜 걱정하더라고요."
한나가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민은 물었다.
"우재형... 많이 보고 싶어요?"
한나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한나는 아이의 등을 두드렸다. 민이 한나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거뒀다.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죄송해요. 전 그냥..."
한나의 목소리가 민의 말을 뚫고 나왔다.
"네, 아직 제가 많이 좋아하나봐요 그 사람."
민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민은 약간 화가 난다는 듯이 쏘아 물었다.
"이렇게 옆에 있지도 않은데요?"
한나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래도 자꾸 생각나요. 미우면 미운 만큼. 그리우면 그리운 만큼."
민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따져 물었다.
"형은 한나씨에게 못와요. 그리고 형은 그 여자, 유리라는 여자가 계속 옆에서 따라다닐 거고요."
한나가 민을 보며 따뜻하게 웃었다.
"이제 그만해요. 거짓말. 그리고 이제 안 오셔도 돼요. 사실 민씨도, 우재씨도 제게 너무 과분한 사람들이었어요. 이제 그만 꿈에서 깰 때가 된 거죠. 꿈을 너무 달게 꿔서 제가 벌 받았나봐요. 원래는 제 것이 아니라서요, 그래서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벌을 받았나봐요 제가."
한나가 자는 강우를 보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민은 그런 한나를 보며 말했다.
"한나씨, 저는 절대 한나씨 안 떠날 거예요."
한나가 민을 보며 웃었다.
"그럼 우리 친구해요. 우리 강우한테도 멋있는 삼촌, 그리고 친구해줘요."
민이 물었다.
"어머니랑 미나는 제가 아빠인 줄 아는데요."
한나가 크게 웃었다.
"그럼 그때만 아빠 해줘요. 뭐 다들 큰아빠 작은 아빠 하나 쯤은 있잖아요?"
민이 알겠다는 듯 웃었다. 한나는 갑자기 슬픈 얼굴을 했다.
"혹시 민씨..."
"네?"
한나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혹시 우재씨도 알고 있어요?"
민이 아프게 웃었다.
"형은 제가 한나씨를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
한나가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 일부러 연락도 안받았어요."
민이 한나를 쳐다보다.
"그게 맞는 거 잖아요, 그렇죠?"
한나가 민에게 물었다. 민은 애써 고개를 그덕여 주었다.
"네, 잘했어요. 한나씨 너무 슬퍼 말아요. 이제는 한나씨 그 마음에 내가 들어갈게요. 내가 노력할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마음을 열어줘요."
한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