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살아야 돼. 살아있으면 도영씨가 어떻게든 찾아 줄 거야.’
자신이 사랑하는 한도영이라면 자신을 꼭 찾아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민아는 그를 생각하면서 어떤 일이든 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용병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의 15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어떤 방의 문을 열었고, 거기에는 갑수의 옛 동무, 이혁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
15층 이혁진의 방에서 나온 민아. 다리의 힘이 풀리면서 나온다. 가까스로 자신의 몸에 힘을 다시 주면서 자신을 감시하는 용병과 숙소로 걸어간다. 이 섬에는 납치된 노인들은 사이코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이혁진은 아주 미치광이로 불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혁진의 다른 인격이 사이코였다. 그는 다중 인격자였고, 경기장에서 보여준 인격은 혁진의 평소 인격과 다른 인격이었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방에 왔을 때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주 미치광이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어떤 여성은 혁진의 방에 왔다가 죽은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혁진에게 경고를 주었으나, 한 번씩 여성들을 상대하다가 목을 졸라 죽이기도 했었다. 그만큼 혁진이 부르면 항상 무서워했다.
민아는 그런 여성들을 위해 자신이 발 벗고 나서 혁진을 상대해주었고, 혁진은 두려워하던 여성들 보다 당당한 민아의 모습을 만족해하였다. 하지만 민아 조차도 그를 상대하기 항상 버거웠지만 항상 자신보다 남을 배려해주는 성격이었기에 그녀들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납치 되어 온 여자들과 민아는 사뭇 달랐다. 납치된 여자들은 도망치다 죽은 여성들을 보면서 희망을 잃고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하지만 민아 만큼은 자신이 살아있어야만 다시 도영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겁먹지 않고 다른 여성들을 챙겨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후우,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네.’
사실 그녀도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마음속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언니, 고생했어요.”
“괜찮아요? 어디 다친데는 없어요?”
“괜찮아, 걱정 마. 봐, 나 이렇게 멀쩡하잖아?”
숙소로 돌아온 그녀를 동생들이 반겨주었다. 동생들은 걱정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들 대부분 혁진을 한 번씩 상대했었고, 그를 상대한 그녀들은 손사래를 치면서 그를 무서워했다. 그러다 민아가 그를 매일 상대해주고 자신들을 챙겨주니, 그녀들 입장에서 민아는 엄마 그 이상의 존재였다.
‘그래, 니들이 그 미치광이한테 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나 하나 희생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해.’
납치된 온 여성들은 대부분 나이가 적었다. 미성년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성인이라지만 20~23살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이 곳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것은 민아였다. 그래서 민아는 동생들을 더 챙겨줄려고 했고, 거기에 동생들은 감동해서 그녀를 잘 따라 주었다.
이 숙소에 방은 나름 꽤 괜찮았다. 납치되어 왔다고는 하나, 방은 항상 청소해주었고, 밥도 그녀들이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어도 상관없었다. 도망치지 않게끔 배려도 많이 해주었다. 물론 말만 잘 들으면 그녀들 또한 자유가 허용 되었다. 대신 일을 하러 갈 때는 용병들이 데리러 왔었다.
그녀들도 TV가 각 방에 있었고, 큰 거실에도 TV가 있었다. 거기서는 그녀들의 정보 빼고 편의 시설에 대한 정보가 나왔고, 저녁에는 똑같이 경기가 나왔었다. 그녀들 중에서는 마약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들에게도 일을 갔다 오면 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화를 주었고, 그걸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 몇몇은 마약으로 이 현실을 도피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어떤 노인의 방으로 가서 언제 죽을지도 사실 그녀들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민아는 그녀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마약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민아의 건물에 있는 그녀들은 아무도 마약을 하지 않았다. 다른 건물의 있는 몇몇 여성들이 마약을 손대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민아가 관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서로 국가가 달랐다.
“언니, 그거 알아요? 이번에 김갑수라는 할아버지 한국 사람이에요.”
“아, 진짜? 이혁진처럼 그런 미친 놈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두요,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니깐 왠지 반가워요. 헤헤.”
이 건물은 한국인들이 있는 건물이었다. 각 건물에는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러시아, 유럽 등등 여러 건물이 있다. 노인들의 규모가 큰 만큼 일 하는 여성들의 숫자도 제법 컸다. 노인들 중에서는 말이 통하는 여성을 부르기도 하지만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드는 노인들은 말이 아예 통하지 않는 상대를 부르기도 했다.
“슬슬 배고픈데, 오늘은 뭐 먹을래?”
“언니, 저는 치킨이요!”
“치킨? 좋지! 또 다른 애들은?”
“저는 피자요!”
‘헤, 항상 먹는 거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동그래져서 다들 귀엽다니깐.’
***
햇빛이 쨍쨍한 오후. 부두에는 큰 리조트가 입항해있었다. 거기에 지키고 있는 용병들은 따분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10명 정도의 사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래, 신분은 철저하지?”
“그럼요. 제가 신분은 철저히 보장합니다.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온 애들 밖에 없습니다.”
“문제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해줬어?”
한 용병들의 말에 맨 앞에 있던 중년의 남성은 약간 움찔하며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시키는 일만 하고 다른 헛짓거리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해놨습니다.”
“흐음, 그래. 저번처럼 문제 생기면 또 곤란한데.”
“킥킥, 야 뭐가 걱정이야. 저번처럼 묻어버리면 되지.”
“그렇긴 하네, 들어가 보세요. 할 일들은 섬에 도착하면 다 설명해 줄 거야.”
“아, 하하. 예.”
나이가 꽤나 보이는 중년은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그들보다 나이가 적어보이는 용병들이 반말을 하는 데도 중년의 남성은 웃으면서 존댓말을 끝까지 사용한다. 그만큼 이 사내들의 무서움을 알기에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에 모여 있던 사내들은 서로 눈치를 주고받으면서 움찔 움찔 하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한마디로 문제 생기면 사내들을 죽인다는 소리였으니, 이 사람들의 리더 같이 보이는 사내에게 절대로 헛짓거리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막상 다가오니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이들이 주는 돈은 액수가 꽤나 컸으니, 함부로 설치지만 않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자, 가세나. 내가 했던 이야기 잊지 말고 하는 일만 처리하면 된다네.”
앞에 있던 중년이 그들을 이끌면서 큰 리조트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중에 한도영과 김동수도 같이 있었다. 한도영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리더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에게 돈을 주어 들어갈 수 있었고, 동수는 고기잡이배 선장이 신분을 보증해줘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큰 리조트에 이들의 방은 단 3개. 각자 나눠서 방을 들어가게 되었고, 한도영과 김동수, 그리고 용병들과 말을 하던 중년의 남성이 장씨가 있었다. 그는 섬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었고, 용병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섬에 일을 한번 하러 갔다가 큰돈을 벌게 되었다. 물론 그 섬에서 있었던 일은 모조리 비밀이었고, 그들은 장씨가 일을 잘하여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돈을 더 준다는 말에 배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람을 모아서 일을 하러 갔었다.
한번 일을 하러 들어가게 되면 최소 1개월에서 2개월 정도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하루 일당이 무려 30만원이나 되었다. 한 달가량 일을 하게 되면 900만원이었다. 일도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물건 판매, 청소 등 하루에 6~7시간 간단한 일만 하면 되었다. 그렇기에 장씨는 이 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씨는 처음 들어온 도영과 동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일을 한 번씩 해본 자들이기에 도영과 동수에게 하면 안 되는 일들을 알려주려고 그들과 방을 배정했다.
“도영이랑 한씨 아저씨 밑에서 일하는 동수라고 했나?”
“아, 네.”
“예예, 고기잡이 배 타다가 손을 좀 다쳐가지고 사장님이 알려주시더라고요.”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동수를 보면서 도영은 동공이 약간 확대되었다. 자신의 집에 몰래 잠입해서 이야기를 하며, 그와 몰래 계획을 나누면서 그의 행동은 냉정하고 진지했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니, 대단한 연기실력이었다.
‘뭐, 뭐야. 이 사람 연기자야?’
동수는 장씨에게 더욱더 살갑게 대하면서 장씨의 기분이 좋게 만들어주었다.
“하하, 동수 자네 하는 행동을 보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아이고, 그럼요. 제가 한씨 아저씨 밑에서 얼마나 일을 했는데. 괜히 한씨 아저씨가 보증 서준게 아니라니깐요?”
“근데, 저 청년은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예, 예? 아, 물론이죠. 하하.”
그들의 모습을 혼자 생각에 빠졌던 도영은 장씨가 말을 걸어오자 화들짝 놀라 당황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장씨에게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약간 능청스럽게 말을 시도 해보았다.
“그래, 뭐 별일 일어나겠어?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건 저번 달에는 사람 한명은 죽었어.”
“예?”
“죽었다니요? 아까 그럼 그 사내들이 말했던 것이 진짜예요?”
“그럼, 근데 그 양반은..여자에 미쳐서 거기에 있던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다가 그렇게 된 거니. 자업자득이지.”
순간 동수는 도영은 눈을 마주치고 이내 다시 장씨에게 능청스럽게 물어보았다.
“아니, 장씨아저씨 거기에 여자가 왜 있어요?”
“그건 자네가 알바가 아니네. 여자가 있는 데 괜히 접근해서 헛짓거리 하지 말게나. 그러다 걸리면 나도 감당 못하니 잘 알아두게.”
“뭐, 그런 일은 없는데 거기에 왜 여자가 있나 싶어서.”
“어허, 그건 자네가 알게 없다니깐.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네. 우린 돈을 버는 목적이지. 여자가 아닐세.”
더 물어보려고 했던 동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사내는 꽤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았으나, 아직은 여기까지 밖에 정보를 들을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들은 장씨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누워서 약간의 낮잠을 청했다.
조금 뒤 배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울렸다.
[배가 곧 섬에 도착할 예정이니, 내리실 분은 배가 입항하고 나서 현문 앞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
장씨가 같이 온 사내들과 그들을 챙겨 현문 앞으로 향했다. 그때 동수와 도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았던 많은 여성들과 노인들이 중화기로 중무장 이들에게 총을 겨눈 채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놀란 그들에게 눈치를 주면서 얼른 나가라고 장씨가 재촉한다.
“이봐,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얼른 움직여!”
“예, 예..”
그들은 장씨의 재촉에 배를 건너서 섬에 들어올 수 있었다. 도영은 그 여성들 중에서 민아가 없는 지 찾고 있었고, 동수는 노인들 중에 갑수가 있는지 찾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 없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혹시나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섬에 들어올 수 있었다.
‘민아, 민아만 찾자. 민아야 이제 오빠가 간다.’
‘내가 이 새끼들은 전부 박살내주겠어.’
섬에서 가장 큰 건물을 쳐다보면서 도영과 동수는 각오를 다지고 장씨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