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비천 쌍문비
“자객이라고?”
“돈만 주면 어떤 일이든 하죠. 그게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도 말이에요. 사파 인들 사이에서도 별로 소문이 좋지 않아요.”
“그런 위험인물이 왜 여기 우한에 왔을까?”
“모르겠어요.”
“심상치 않은데.”
연청은 살짝 고민했다.
“좀 더 머물러볼까?”
“저야 장 형 말대로 따를게요.”
“흠. 내가 너무 민감한가. 그저 술을 먹으러 온 것일 수도 있고. 윤홍정도 말했다시피 이곳에 있는 청하 객잔의 술이 유명하잖아.”
“아까도 보니 술에 대한 집착이 큰 것 같긴 하더라고요.”
“그렇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걸 수도 있네. 일단은 얼른 사천의 낙산으로 가는 게 우선이겠지.”
연청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시간이 있다면 좀 더 조사해보겠지만.”
“혹시…….”
남영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강남 표국과 관련된 일 아닐까요?”
“아닐 거야. 이미 흑백교에서 잠입을 시도했잖아. 만약 쌍문비가 연관이 되어 있다면 왜 굳이 그에게 의뢰하고, 또 이렇게 일을 벌려?”
“그건 그렇군요.”
“홍정의 연락으로 아마 윤청지 대인과 무림맹의 일원들이 강남 표국에 곧 도착할 테니, 그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듯싶네.”
“맞아요. 그걸 생각 못 했네.”
“흑백교와 관련된 사건이니, 무림맹에서도 최대한 신속하게 사람을 파견할 거야. 괜히 여기 있다가 엮일라. 아이고. 얼른 우리 갈 길이나 가자고.”
“좋아요.”
“그런데 이대로 걸어가면 십 일은 족히 걸릴 텐데?”
“말을 사요.”
“돈 많아?”
“많은 거 알고 친해지려 한 거 아니에요?”
남영이 웃으며 말하자 연청이 당황하며 답한다.
“아 그게 뭔 소리야? 차를 좋아하는 지기를 알게 된 기쁨에…….”
“전홍같이 명차를 가지고 다니는 지기면 더 금상첨화잖아요.”
“하. 진짜 눈치 하나는 엄청 빠르구먼.”
“장 형은 정말 똑똑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니까요?”
둘은 투덕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
공동산.
명문 정파인 공동파가 위치한 감숙성의 명산이다.
공동파 장문인은 진가백.
현존하는 무림 십 대 고수 중의 하나로, 그 명성을 널리 떨치고 있다.
그리 크지 않던 공동파의 존재감을 훨씬 위로 끌어올린 것도 그의 노력이 컸다.
그의 무공과 인품에 수많은 정파 인들이 존경을 바친다.
“윤 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들놈이 무사해서 다행이긴 한데, 내 부재를 틈타 빌어먹을 사도 놈들이 급습한 걸 아니 분이 터져 죽을 지경이요.”
“그들의 처리 문제는 우리 무림맹에서 잘 수습할 터이니 분을 좀 가라앉히시죠.”
만장일치였다.
칠의문파인 공동파, 화산파, 청성파, 형산파, 태산파, 보타문, 개방이 모여 만든 무림맹.
초대 맹주로 뽑힌 이가 바로 진가백 이다.
윤홍정의 연락을 받은 윤청지는 안절부절못하며 얼른 표국에 돌아가려 했지만, 진가백이 잠깐 진정하라며 붙잡은 상태다.
“감히 흑백교가 우리 강남 표국을 습격하다니! 내 검이 용서치 못하리라!”
방방 뛰는 윤청지를 말리며 진가백이 점잖게 말했다.
“이제 곧 동행할 이가 올 것이니, 그때 출발하도록 하시지요.”
“누구입니까? 저 혼자라도 충분합니다.”
“불같은 윤 대인의 화를 식혀줄 수 있는, 아주 차가운 아이지요. 허허.”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오! 이제 오는가?”
매끈한 청삼의 복장과, 긴 머리.
허리에 찬 검집의 장식이 영롱히 빛난다.
가녀린 몸이지만, 풍기는 고고함이 비할 데가 없이 우아하다.
천하일색의 미모.
허나 차가운 눈빛이 그녀의 성격을 말해준다.
“맹주! 인사드립니다.”
“잘 왔네. 화산파에서 오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안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자 장문께 감사하다 전해주시게.”
윤청지가 진가백에게 물었다.
“저 소저는 누구인지?”
“화산파 장문인인 자하경 대협의 여식이자, 신진 팔 고수의 일원인 자한정 이라 합니다.”
“아! 그 소문의?”
“냉철하고, 명석하며, 무공도 뛰어나 우리 무림맹의 기대주 중 기대주이죠. 흑백교와 관련된 일이라 조사가 필요해 제가 불렀습니다.”
“그럼 이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윤청지가 조급해하며 말했다.
진가백이 웃으며 답했다.
“잠시, 내 저 아이에게 지시만 내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알겠습니다. 맹주.”
“한정아. 이리 오너라.”
자한정이 진가백에게 다가가자, 진가백이 입을 가리고 살짝 귓속말로 속삭였다.
“흑백교 잔당들에게 정보를 얻은 뒤, 그대로 모두 죽여라.”
“알겠습니다.”
“손을 쓰기 싫다면 윤청지를 구슬려. 불같은 성격이라 쉬울 것이야. 물론 너라면 직접 죽이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사도 인들은 무림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존재들입니다. 맹주께서 명을 안 내리셔도 제가 먼저 요청하려 했습니다.”
차가운 한정의 답을 들으며 진가백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마음에 든다. 그런 너의 냉정함이.”
“과찬이십니다.”
“왜 침입했는지 꼭 알아내야 한다. 윤청지의 아들인 윤홍정이 잘 알 테니 협조해라.”
“네.”
진가백이 몸을 돌렸다.
인자한 미소로 수염을 쓸어내리며 진가백이 윤청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윤 대인. 이제 출발하셔도 됩니다. 마음이 급하신데 여태 붙잡은 불초를 탓하십시오.”
“아니요 맹주. 다 생각이 있겠지. 자, 자한정이라 했나?”
“네. 대인.”
“갑세나. 얼른 가세. 한시가 급해. 조마조마하군.”
“알겠습니다.”
윤청지와 자한정이 돌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진가백은 여전히 수염을 쓸어내렸다.
**
쌍문비가 도착한 곳은 청하 객잔.
우하 시에서 가장 술로 유명한 곳이다.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향에 쌍문비가 코를 벌름거렸다.
“좋구나! 좋은 술이다!”
점원이 서둘러 다가와 손을 싹싹 비비며 묻는다.
“손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술을 먹으러 왔지.”
“저희 청하 객잔은 좋은 술이 많아 각지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죠. 잘 오셨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죠!”
쌍문비가 웃었다.
“아니, 급해서 지금. 술이나 가져오게. 가져갈 테니.”
“네네. 바로 대령합죠~”
점원을 기다리는 동안, 쌍문비가 객잔 내부를 죽 둘러본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쌍문비가 근처 의자에 앉았다.
곁에 있던 탁자에서 술을 마시던 두 사내가 그런 쌍문비를 아니꼽게 바라본다.
흥얼거림이 듣기 싫어서다.
“이보쇼.”
참지 못하고 사내 하나가 쌍문비에게 말을 걸었다.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하쇼.”
“응? 나한테 말 한 건가?”
쌍문비가 웃으며 그런 사내를 바라보았다.
히죽거리는 면상이 거슬리는지, 사내가 한층 더 언성을 높인다.
“그럼 당신이지. 여기 당신 말고 누가 있어?”
“하하. 내가 그리 시끄럽게 굴었나?”
“객잔에 왔으면 조용히 술이나 마시고 가. 노래가 부르고 싶다면 기방이나 가라고.”
“그 말도 맞네.”
쌍문비가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실실 처 웃으니 뭔가 자신감이라도 붙나 봐?”
“뭐요?”
“사람을 그렇게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야. 더군다나 강호에서는. 누가 어떤 이일지 어떻게 알지?”
“그게 무슨 소리야?”
쌍문비가 사내가 앉아있던 탁자로 자리를 옮겼다.
쳐다보고 있던 다른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너 뭐야! 저리 꺼져!”
“조용히 해.”
쌍문비가 몸을 숙이더니 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무림인이냐? 일반인이냐?”
“이게 어디서 감히…….”
“무공을 할 줄 모르면 살려주겠다.”
여전히 히죽이는 웃음으로, 쌍문비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사람이 멍청하면 보고 듣는 것도 다 멍청할 테니, 그걸 고려해주겠다는 거야.”
“이 자식이!”
“선뜻 시비를 거는 걸 보니 힘 좀 쓰겠다 싶은데,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쌍문비가 손가락 하나로 탁자 위를 짚었다.
“내 손가락을 있는 힘껏 후려치거라.”
“뭐?”
“조금이라도 미동이 있다면 살려주마.”
“이 건방진 놈이…….”
처음 시비를 건 사내가 다짜고짜 주먹을 쌍문비의 얼굴에 날린다.
퍽!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고, 쌍문비가 눈을 껌벅인다.
“하하. 내가 손가락을 때리라 했지, 내 얼굴을 때리라 했나? 말귀를 못 알아듣나?”
“너, 너 뭐야…….”
“너는 내 말을 안 들었으니 그냥 죽어라.”
쌍문비가 순식간에 사내의 목을 가격했다.
“켁.”
신음 하나 못 내고 사내는 절명했다.
놀란 다른 사내를 보며 쌍문비가 말했다.
“자, 너는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시행해야지?”
“저, 자, 잘못했습니다. 나으리…….”
“시간은 점원이 술을 가져올 때까지.”
쌍문비가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너희 둘이 무공을 못 하는 무뢰배인 건 분명하구나. 그러니 봐준다 하지 않았냐. 내 손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으…….”
사내가 허둥지둥 탁자 위에 살짝 얹힌 쌍문비의 손가락을 붙잡고 마구 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움직여. 움직이면 살려주마.”
“꼬,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그건 네 사정이고.”
이제 아예 몸을 일으킨 나머지 사내가 있는 힘껏 쌍문비의 손가락을 후려치고 있었다.
흔들리지도 않는 손가락을 보던 사내의 표정은 창백하다 못해 새파랗게 질렸다.
저만치 점원이 술독을 들고 온다.
“나으리~ 어느 정도 담아 드릴까요?”
쌍문비가 사내에게 말한다.
“시간 다 됐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내가 왜?”
쌍문비가 사악하게 미소 짓는다.
“가만히 있던 내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네놈들이다.”
“아니, 아니요. 죽은 저놈입니다. 저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음. 그런가?”
쌍문비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도 맞네.”
“그렇죠? 그렇죠?”
“하지만 이미 너희 둘을 다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니, 그것 또한 내 생각이고 내 사정이다.”
겁에 질려 부들거리며 떠는 사내를 보며 쌍문비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연다.
“혹시, 은자는 가지고 있나?”
“네? 아 네! 은자라면 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이 좀 다르지.”
고개를 돌려 쌍문비가 점원을 부른다.
“여기 이분께서 술값을 내시겠다네.”
“아이고. 저희야 누가 내시든 상관없습니다~”
“자네가 술값을 낼 거지?”
사내가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쌍문비가 짚었던 손가락을 거둔다.
“내 돈은 그렇게 쓰기가 싫단 말이야.”
일어선 쌍문비가 허리춤에 찬 술병을 들어 점원에게 들이밀었다.
“이것만 다 채워주게나.”
“예이! 알겠습니다!”
가득 찬 술병을 받아든 쌍문비가 흥얼거리며 사내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바빠서 그럼 이만. 그 친구는 잘 묻어주시게.”
혼비백산한 사내를 뒤로, 쌍문비가 객잔을 나섰다.
‘자 이제 목적지로 가야지.’
쌍문비가 향하는 그곳.
발걸음이 향하는 그곳은 바로.
강남 표국이 있는 쪽이다.
쌍문비가 방문한 목적은 바로, 강남 표국이었던 것이다.
‘좀 늦었으니 얼른 가야겠어.’
살짝 두 다리를 풀던 그가 몸을 숙였다.
타닥!
일신의 경공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마치 한 마리 제비와도 같다.
비천 쌍문비.
하늘을 걷는 자라는 별호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저긴가?’
어느새 표국 건물이 보인다.
슬슬 속도를 줄이며, 쌍문비가 술병을 들어 마개를 열었다.
한 모금, 두 모금 들이키며 여전히 흥얼거린다.
표국 앞에 다다랐다.
강남 표국 호북 지부.
흑백교의 난입 사건이 아직 채 해결되지도 않았기에, 어수선한 분위기다.
‘흠.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쌍문비는 흑백교와 관련된 일은 알지 못했다.
그가 받은 의뢰는 흑백교와는 무관하다.
그에게 의뢰를 맡긴 이는 거액을 약속하며, 단 하나의 조건만 제시했다.
최근 강남 표국에 들어온 물품을 훔쳐라.
‘뭔지는 관심 없어. 돈이 제일이다.’
입구 앞에 있던 표사가 쌍문비를 보고 경고한다.
“지금은 방문하실 수 없소.”
“그건 네 사정이고.”
쌍문비가 수도를 날려 표사의 목을 친다.
컥 하는 소리와 함께 표사의 몸이 무너졌다.
옆에 서 있던 표사가 경악하며 검을 빼들려 했지만, 쌍문비가 더 빨랐다.
“켁!”
역시 목을 얻어맞고 그대로 절명했다.
피를 보는 게 싫은지라, 쌍문비는 검이나 다른 무기를 쓰지 않았다.
오직 손과 발.
그거면 충분했다.
“자, 슬슬 들어가 보실까나~”
쌍문비가 표국 건물 안에 들어서며 기지개를 켰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한다.
그것이 정파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 표국에 침입하는 것이라도 말이다.
의뢰인이 그에게 알려줬던 정보.
‘윤청지는 출타 중이라 했었다. 그나마 위험한 인물이니. 조심하는 것도 좋겠지.’
장원을 지나치며 쌍문비가 다시 술병을 들어 들이킨다.
표사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표국 내부적으로 큰일이 벌어진 모양새다.
살짝 실망한 쌍문비가 입맛을 쩝 다셨다.
‘내가 친히 방문했거늘 다들 어디다 정신을 팔고 있는 거야? 김빠지게 시리.’
본청이 보인다.
바삐 움직이는 표사들의 모습도.
몇 명의 표사가 저만치 걸어오는 쌍문비를 보더니 수군거린다.
한 명이 본청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표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런 쌍문비를 경계한다.
“넌 누구냐!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는데!”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내 사정이 있어서 온 거야.”
히죽 웃으며 쌍문비가 고개를 까닥거린다.
“운송할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어디냐?”
본청 안에서 누군가 황급히 뛰어나온다.
바로 윤홍정이다.
검을 들고 뛰쳐나온 홍정이 쌍문비를 발견하고 외쳤다.
“허락 없이 들어오다니! 누구시오!”
“아하? 네 놈이 윤청지의 아들인 윤홍정이냐?”
쌍문비가 답했다.
“내 이름을 들으면, 그대로 황천길인데 괜찮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