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괴롭히던 학생이 누구였습니까?”
담임은 책상에 놔두던 출석부를 들어 펼쳐보였다. 학생 이름들이 세로로 나열되어 있는 목록들 중에, 검지로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오면서 멈칫거리며 지적했다.
“우선 이 학생들이에요.”
도현은 각각 메모장에 적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여선생에게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괴롭힘 받는 일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래도 도현은 나름대로 형사 횟수가 있기에 냉정히 유지하며 물었다.
“그러면 최근 누구를 괴롭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여기 이 애예요.”
사진을 보니 그 학생도 역시 먹잇감으로서 제격인 왜소한 체격과 외모를 지녔다.
“혹시 이 아이일까요?”
도현은 출석부에 향하던 시선을 올려 선생에게 향했다.
“그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요즘 아이들 사이에 여러 소문들이 떠돌고 있어요. 요즘 말이 많은 이변자니 뭐니 하는 얘기들로 인해서 아이들도 무서워하더라고요.”
“혹시 이 삼인방이 이 학생들 말고도 괴롭힌 사람이 있습니까?”
집요하게 괴롭힘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현의 생각이었다. 화제의 시선을 돌릴 겸, 그 배경을 알려 했다.
“글쎄요……. 담배를 사서, 담배를 판 편의점을 영업 정지시킨다거나 그 공장에 일하는 노동자를 한 명을 폭력 행사한 일이 있기도 했어요.”
과거사가 참 화려했다. 그 세 학생은 일단 교내에서 유명한 악질인 듯싶었다. 소위 일진들이라 일컫는 학생들이 서슴없이 학생이 자행할 수 있는 악행들을 저지른 모양새였다.
그로인하여 원한관계가 여러 면에서 많이 이어졌기에 도현은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런 반면에 도현은 이 선생 참 대단하다고도 느꼈다. 무엇 하나 개입하지 하고 시종일관 방관만 하는 이 선생을 차라리 체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시 선생님도 무서우신가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네?”
도현은 비록 자신이 어리석은 행동은 저질러도 질책했다는 만족감을 더 누리려 했다.
선생은 이에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놀리시는 건가요? 당연히 형사님이 이런 일을 해결해서 시민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게 형사의 도리 아닌가요?”
“글쎄요, 나로선 제 직업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어봤자, 별 감흥이 없군요.”
도현은 자신이 이러면 안 되겠지만 적어도 직성이 풀려야 잘 되겠다는 착각이 있었다. 이런 선생에게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지 않는 이상 계속 생각날 것만 같았다.
도현의 예상대로 선생은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응답했다.
“알아요. 그 학생들을 그저 내버려 둔 것 정도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근데 어쩌라는 거예요? 책임을 느끼고 사퇴라도 할까요? 일단 사건을 저지른 학생은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에요.
저 역시 간접적인 책임은 있겠지만 직접적으로는 그 아이에게 있어요. 아니 아이가 아니죠. 이제 고등학생식이나 되는데 아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도현은 아무 말 안 했다. 우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진술이라 치더라도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고 도현은 생각했다.
이변자의 출현 이전에도 소년 사건은 늘 있어 왔다. 어리다고 감형하는 재판부의 행태에 시민들은 늘 열불 터져 있었다. 지금 수사하는 이 사건도 큰 차이는 없었다.
단지 이러한 특수한 사건만큼은 단순히 어려서가 아니라 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거기다가 형사팀의 일원들도, 어려서 봐주거나 하는 작태는 행하지 않을 터였다.
어른이건 아이건 무관하게 진지하게 임해야 했다.
“수사 협조 고맙습니다. 나중에 뭐 말할 게 있으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접이식 의자를 접어 벽에 기대게 했다. 선생은 몸을 책상 쪽으로 돌려 자기 일에 집중했다. 중간고사 시험을 출제하기 위하여 힘쓰는 중이었다. 사건이 일어나 시점이 시험 날로부터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하필 그 사건이 터져버려 결국 시험 출제의 결과물을 내보일 기회를 앗아갔다. 학교는 그 사건 이후로 급하게 휴교령을 내렸다.
우선 사건이 잠잠해져야 했다. 바깥에 학교 폭력을 방임한 학교라는 시선이 찍히면 곤란했다. 안 그래도 이런 소도시에 대입 결과가 그나마 잘 나오는 학교였다. 그런 학교가 어떠한 구설수가 오른다면 위장 전입의 유행은 불 보듯 뻔하였다.
그러기에 사건이 잠잠해지면 다시 정상 수업을 전환하여 바로 시험을 보게 할 예정이었다.
도현은 그 선생이 시험을 집필하는 모습을 힐끗 보다가 등 뒤로 하고는 교무실에서 나왔다. 문이 미닫이 열리다가 닫히는 충돌 소리와 함께 육성으로 나지막이 욕설을 내지르면 사건 현황을 파악했다
.
일단 가해자를 특정하기란 힘들었다. 이수영, 권지혁, 장영하……. 학교 내부에서는 학교 폭력을 그저 애들 싸움이라 치부하고는 개입하지 않은 정황으로 보였다.
학교는 무어라 개입하기보다 그나마 희망 있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대학 아웃풋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라고 도현은 추측했다. 안 그래도 이런 소도시에 별로 없는 교사들을 비롯한 처사를 고려한 방책이었다.
도현은 내심 불편한 마음으로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그러면서 그날 있었던 경찰서의 소동을 떠올렸다.
살해된 세 학생의 부모들은 장례식에서만 필연적으로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나고 나서 해당 지역 관할 경찰서에 찾아와서는 얼른 그 가해자를 사형에 처해달라며 난동을 피웠다.
도현은 여러 소회들이 깃들었지만 그 부모들 중에 아버지로 해당하는 한 사람은 성악해도 될지도 모른다는 잡념까지 상존했다.
그러한 소회는 도현의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도현 역시 불편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충분히 부모로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세상에 안 그런 부모가 있을까? 그렇게 행동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내심적으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했다.
그래도 그 삼인방이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에서는 그다지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삼인방들이 저지른 사고들은 단순 학생의 일탈로 보기는 어려운 부분들이었다.
여러 상념에 빠지면서 도현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을 통해 학교를 나왔다.
도현은 재킷의 주머니에 있는 작은 수첩을 꺼내서 펼쳤다. 각각 피해자들의 집 주소 적혀 있었다. 다만 직접 방문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각각 피해를 당한 부모들에게 댁의 자식이 폭력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말하기는 좀 꺼려졌다.
부모가 순순히 아 그러냐면서 제 자식을 내보낼 리도 만무했다. 여러 면에서 난관들이 봉착했다. 도현은 그 이변자인 순경의 능력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무언가 사람을 추적하는 능력이었다면 일이 수월할 텐데,
비록 그 순경은 자신은 의도해서 생긴 능력이 아니라는 것은 도현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 본의 아니게 갑자기 생겨버린 비운 또한 그 순경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순경의 능력이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 이 역시 안타까운 감정이 드는 이 역설적인 감정은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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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는 처음에 능력이 생길 당시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다는 유용성만 파악했다. 자신의 기억 특화 능력이 그것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려는 의지만으로 곧바로 기억되는 능력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려는 것은 기억하고, 그 기억은 또 지울 수 있는 간편한 능력이었다. 비록 여타 일반인처럼 충격적이거나 인상 깊은 상황들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지우지는 못했다.
의지를 발휘한 기억만을 남기고 지울 수가 있었다. 창호는 이러한 능력이 처음 생겼을 당시, 경찰 공무원 시험 보기 전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제는 공직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능력을 숨길 의향도 없었다. 능력이 생기자 창호는 곧바로 자신을 이변자로 신고했다. 신고 절차는 그저 사본의 양식대로 정보를 채우기만 하면 됐다.
다 채우고 나면 시청의 담당자에게 건네며 됐다. 실로 간단했지만 창호는 아직도 그 담당자가 지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잊지 못했다. 이후 폰의 메시지가 오면서 날짜와 장소를 지정해주었다.
이후 창호가 당도한 그곳은 이변자 담당 부서의 공공기관이었다. 창호는 그 건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면접관에게 한 명씩 차례마다 면접을 보려니 마치 취업준비생 같은 인상을 받았다.
대기실의 사람들이 스무 명 정도였으나 이변자는 거의 소수자나 다름없는 점을 감안하면 창호에게는 참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 시청 담당 공무원의 표정을 공감하고서는 자기 차례가 호명되자 면접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임원들에게 사본에 기재된 능력을 증명해보였다. 임원들의 시시하다는 표정에서 마술 공연 처음 본 어린아이로 급변하는 모습은 실로 술 안주거리였다. 모든 절차를 마치자 창호는 이변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었다.
그런 뒤, 창호는 그곳 임원들의 당부사항을 들었다.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밝혀도 되지만 가급적이면 하지 않기를 추천했다. 가족들도 이에 해당했다. 그래서 창호는 이를 함구하면서도 당분간 무언가를 기억하기란 오로지 소소한 일에 국한될 줄 알았다.
그래서 본인 능력에 대한 자각도 점점 무심해져 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러기는 힘들어졌다.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있는 힘껏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창호는 책상에 어질러진 부검 사진을 바라보며 기억했다. 창호가 시신을 자세히 볼 여력이 안 되기에 정양은 이를 배려했다.
그래도 마음은 여의치 않았다.
“정말 괜찮겠나? 나도 자네 능력이 분명 필요해서 연락을 하게 됐지만 힘들면 그만 둬도 된다네.”
“아닙니다. 일단 이러한 이변자 사건이 터졌으면, 저 역시 이변자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수락한 겁니다. 물론 그런 시신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무책임한 말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익숙해 질 걸세. 그리고 전에도 말했듯이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
창호 순경은 그래도 사흘 전 정양의 조언과 함께 그 시신들의 모습을 잊히기 힘들었다. 도저히 정신은 여느 아이와 다를 것 없는 이변자라해도 그런 일을 행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청소년기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지 못해 벌어진 일로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청소년이라고, 아직 미성숙한 미성년자라른 식으로 주위에서는 얕보지 말라면서 단단히 일렀다.
그래도 정말로 이런 일을 저지른 미성년자를 어른과 다를 바 없을까? 미성숙한 어른이 존재하듯이 미성년자를 일반 범죄처럼 대우하는 것이 옳을까?
본인이 이변자인 만큼 이해해 줄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창호가 자료와 사진을 기억할 동안 정양은 그 사무실에서 나와 도현과 얘기했다.
“그래서 전화가 왔다고?”
“예, 오늘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각 가정 방문은 잘 됐는가 보지?”
“예, 참 제가 형사인지라 여러 덕담을 해주시더라고요.”
도현은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래 수고했네. 그 덕담들이 자네 수명을 늘려주겠구먼. 어쨌든 오늘이라면 지금 가면 되는 건가?”
“예, 딱 지금 점심시간에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적 여유를 벌어둘 겸 해서요.”
“그래…….”
정양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싶더니 도현에게 제안했다.
“창호 순경은 데리고 갈 테지?”
“네?”
“창호 순경과 같이 가면 좋겠다고 했네.”
“반장님, 저 역시 능력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너무 미숙하지 않습니까?”
“난 능력의 유용성뿐만 아니라 기회를 주려 하는 것이라네. 비록 나는 아직까지 이변자에 소속감을 느끼는 놈은 본 적 없지만, 기회는 줘야지.”
“그래도 아시잖습니까. 비록 저희 형사 팀이 쟤를 포함해서 3명뿐이라지만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고요.”
도현은 형사 팀원이 3명뿐이라는 처지가 못내 아쉬웠다. 비록 정양이 오히려 이러한 사건에는 수가 적은 편이 낫다고 했고, 또한 가급적 조용히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조치라 했다.
그래서 정양과 같은 베테랑과 일을 진행하며 일이 일사천리로 처리되기는 보장 받겠지만 이번 사건은 특수했다.
“저희 3명이서 충분히 일을 처리할 수나 있을까요?”
“나는 저 능력만 적절히 활용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네.”
“그러면 데려가서 어쩌시려고요?”
“모든 정보를 기억하라 일러 둘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