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자는 그날도 직원과의 언어의 장벽과 서로 다른 업무스타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겨운 날을 보낸 후였다. 여자는 박닌 에서 친해진, 여자 보다 한 살 많은 조선족 언니와 술 약속을 잡았고 즐겨가던 치킨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한국에서 였으면침대에 누워 전화통을 붙잡고 형선 과 영상통화를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겠지만 이제 남자친구는 여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왜일까..
여자는 동물을 좋아한다. 말 많은 사람들 보다 말없는 동물들을 더 좋아하는 격이다. 노래의 장르를 불문하고 좋아하듯 동물 또한 종류를 불문하고 좋아한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동물에게도 다가가기 위해서는 절차와 예절이 필요하다.
가령 강아지를 보면 예쁘다고 달려들어 먼저 막무가내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거리를 두고 쪼그려 앉아 손등을 내밀고 강아지가 먼저 다가와 손등을 통해 사람의 냄새를 탐색하게 한 뒤 살살 쓰다듬으며 만져도 된다는 동의를 얻어야한다.
고양이를 만난다면 먼저 눈을 마주치고 가만가만 눈을 깜박이며 눈인사를 주고받은 후 살살 등을 먼저 쓰다듬고 고양이가 먼저 비빈다면 턱을 살살 만져주며 그르렁 됨을 느끼는 것이 고양이와 가까워지는 절차와 예절인 것처럼 말이다.
여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절차와 예절을 내가 지킨다면 강아지와 여자 , 고양이와 여자 등 동물과 사람사이에 가까워지고 친해지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절차와 예절을 지킨다 할지라도 상대가 절차와 예절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본인과 절차와 예절을 지키는 방법이 다르다면 이 둘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기에 여자는 인간관계에서 본인을 숨기고 밝은 모습으로 위장해 사람들을 대하며 언제나 인간관계에서 혼자 먼저 지치곤 했다.
때문에 여자는 동물을 더 좋아했다.
이 날도 친해진 언니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중국음식점에 있는 고양이를 보러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철장 우리에 하얀 털에 노란 얼룩이 있는 새끼고양이 한 마리와 회색 털 바탕에 어둑어둑한 검은색 계열의 줄무늬가 있는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들어있었다. 여자는 비교적 둘 중에 저 얌전한 검은색 계열의 털 무늬가 있는 암컷 새끼고양이를 우리에서 꺼내 안아들었다.
예쁘다, 귀엽다, 보드랍다.
“이제 왔어?”
“안녕하세요.”
“어이구 요즘 바빴나 보네? 얘네 가 엄마 기다리던데!”
“아.. 네 좀 바빴어요..”
“내가 계속 한국인 아가씨가 와서 얘네 만지고 부둥켜안고 하니까 목욕도 자주시킨단 말이여. 밥 안 먹었음 밥 먹고 가!”
“아 언니랑 밥 먹기로 했어요. 감사합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향기 나네요.”
중국집 사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이 사장님은 조선족이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둥근 안경을 코끝에 걸쳐 쓰고 계시며, 언제나 뒷짐을 지고 가게 앞을 어슬렁 걸으시다가 다리가 긴 나무 의자에 걸터앉으셨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일을 보시곤 하셨다. 사장님은 그녀에게 친근하시다. 언제나..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언제나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웃음을 띄우고 있어야 하는 여자는 혼자 걷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생각하는 것을 즐겼다.
아저씨가 더 이상의 대화를 걸어올까 고양이를 다시 우리에 넣고 얼른 언니네 가게 앞으로 갔다.
여자의 친한 언니인 아영은 조선족인데 작년 귀화를 하여 한국인과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출신을 조금 부끄러워했다. 아영은 현재 조선족인 친척오빠를 따라와 빠찡코 게임장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다. 여자도 처음에는 아영이 조선족인줄 몰랐다. 여자는 어렸을 때 중국 유학을 다녀와 그런 면에서 구분을 잘하는 데도 말이다. 아영의 말투, 이목구비 모두 완벽한 한국여자였다. 어깨 까지 오는 흑발 생머리에 하얀 피부 큰 키에 예쁜 얼굴 완벽했다.
여자가 아영을 한국사람으로 알고 있을때에도 여자는 조금의 의문은 있었다. 왜 그 언니는 중국에서 대학교 까지 다 나왔다고 이야기 했으면서 보통 중국에서 유학을 하는 한국인들은 무역 쪽으로 가는데 이 언니는 유아교육학과를 나왔으며 왜 자기 전공을 살려 일을 하지 않고 빠찡코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인가? 여자는 의문은 들었지만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것이 여자의 인간관계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내가 알고 싶어 하면 할수록 여자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여자는 항상 누군가와 거리를 두고 지냈으며 혼자 있기를 즐겼지만 외로움에 몸부림 칠 때도 있었다. 악순환 이었다.
“내가 널 만날 때 소개팅 남을 만날 때보다 더 설렜어.”
이 말이 여자와 아영이 첫 만남에 여자가 들었던 아영의 말 이였다.
여자와 아영은 아영의 남자인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으며 처음만난 날부터 술로써 친해졌기에 여자와 아영은 같이 술을 즐겨 마셨다.
어느 날 여자와 아영은 1차로 고깃 집 에서 고기와 술을 먹고 2차로 치킨 집에 가서 치킨과 술을 먹고 그마저도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술과 주전부리를 슈퍼에서 사들고 아영의 집으로가 새벽4시까지 술을 마셨다.
아영의 방은 빠찡코 가게에 4층 방.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자의 처음 방의 모습처럼 아무것도 없는데 아영은 다른 것을 채워 넣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아영은 채워 넣을 필요가 없었다. 아영은 여자가 좋았다.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 했으며, 얼마 없는 한국인 여자 친구 이기 때문이다.
여자도 아영이 좋았다. 여자의 이유는 하나, 자기에게 잘해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누군가를 예뻐만 했지 예쁨을 받아본 것이 드문 사람 이었다. 학생들을 예뻐해야 했고, 가족들을 예뻐해야 했으며 본인은 서운해도 억울해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날 새벽 4시까지 술인지 물인지 기억이 안날정도로 오래도록 많이 술을 먹은 날. 아영은 어렵사리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영은 어렸을 적 조선족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때문에 할머니 손에서 많이 자랐는데 할머니 손을 떠나 아빠의 곁으로 갔을 때는 거의 방치 상태였다. 아빠는 관심보다 그저 아영에게 돈 만을 건냈을 뿐이었다. 2차 성징과 사춘기 때도 가족의 관심보다는 돈을 들고 친구들과 어울렸으며, 때문에 아영도 여자처럼 내면에 외로움이 가득한 사람 이였다.
후에 성인이 되고 친엄마에게로 가서 한국으로 귀화를 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여자는 속으로 굉장히 놀라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너무 크게 놀라면 실례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여자는 20대 초반 때만해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도 잘 먹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느꼈다. 술이 달다...
여자는 아영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자신의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시작은 “언니와 나는 많이 다른 인생을 살았네..”
여자는 친구가 별로 없다. 밝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왜 친구가 없을까 생각하는 아영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