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 띠 띠리리~~"
팔평남짓한 신축원룸에 아침에 일어나면서 그대로 둔 헝클어진 이불이 놓여있는 침대, 주방도구도 세면도구도 거의 없는 깜깜한 집안으로 덜덜떨리는 팔로 캔맥주를 한봉지 가득 사들고 온 현종이 도어락을 열고 들어왔다.
현종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아 진짜 힘들다...그래도 .. 내년까지만.. 내년까지만 하면 괜찮아 ..'
그렇게 조용한 방 바닥에 누워 스스로를 다독였다.
조금뒤 옆으로 돌아 일어난뒤 맥주캔을 땄다.
"치익..."
그리고는 급하게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집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현종은 외로움에 사무쳤다.
눈물이 흘렀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버티고 사는걸까?
현종은 어렸을때부터 그렇다할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끼가 다분한 현종의 동생과는 다르게 그렇다할 재능이 부모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공부까지 좋아하지 않아 아예 손을 놓아 버린것이다.
현종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으로써 그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했으며, 교사집안이라는 타이틀을 어느누구에게도 실망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한 키도크고 힘도 세기로 유명했던 현종의 아버지는 학교의 문제아들 이란 문제아들은 도맡아 왔던 것이다.
현종의 아버지의 눈에는 현종은 문제아였다.
하지만 현종에게도 하고싶은 것이 있었다.
운동.
운동을 하고싶어했다.
무슨 운동이든 몸으로 하는 것은 현종은 다 잘했다.
수영, 테니스. 베드민턴, 축구, 탁구, 합기도 .... 그것들 중에 하나만 이면 되었다.
그중에 하나만 선택을 했어도 현종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종의 부모님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단순히 운동을 시키고싶지 않아서 인지 알아도 모른척 했고, 귀와 눈을 닫고 현종을 문제아 취급하며 공부를 강요했고 매를 들었다.
그렇게 현종은 집에서는 조용히 살았다.
있는듯, 없는듯 말이다. 주말에는 친구들집에서 지내며 부모님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았다.
그러던중 현종은 운동말고 하나 더 좋아진 것이 있었다.
쇠, 철...
딱딱하고 차가운 그 촉감.
자신의 마음같아서 였을까 그냥 쇠가 좋았다.
그렇게 아이러니하게 아무도 몰랐던 현종의 장래희망은 엔지니어가 되었다.
현종은 그렇게 단순한 남자였다.
단순히 쇠의 촉감이 좋았고, 그러면서 기계가 좋았고, 엔지니어가 되고싶다.
라고 생각이 진행될만큼 말이다.
그래서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연애가 뜨겁지 않았다.
차가웠다.
잘생긴 외모와 남자인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 여자들이 다가왔지만 그는 한없이도 차가웠다.
그냥 차갑디 차가운 고철덩어리였다.
그렇게 현재 현종은 자동화기기를 조립하는 엔지니어가 되어있었고, 또래들 보다는 많은 수입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현종은 정말 하나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차가웠다.
또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 집에 살면서 단단하고 이기적이게 변했다.
그렇다.
정말 딱딱한 쇳덩어리처럼 차가웠고, 구부러지지 않았으며, 물처런 다른어떠한 것에게 공간을 양보해주는 성질을 버리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단단히 단단히 더욱 단단히 자신의 자리를 조금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현종도 힘이 들었다.
외로웠다.
외로움은 쇳덩이같은 현종도 무너지게 만들었다.
한없이 마음이 차가운 이 남자또한 따뜻함을 찾았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회사사람들은 나이도 어리고 나름 잘생겼으며 힘도좋은 현종이 어느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의아해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럴 자격이 못됐다.
여자좀 만나라, 결혼은해야하지 않겠냐, 젊은애가 왜 맨날 혼자 이러고 있냐 등등.. 이런소리 말이다.
회사의 경리 빼고는 전부 남자들인 현종의 회사는 대부분이 결혼을 한 가장들이다.
안그래도 집안에서 따뜻함을 받고 자라지 못한 현종은 그사람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가정을 살펴본다.
헌데,
"아.. 남자들은 결혼하면 다 돈벌어다주는 기계야~"
"사랑? 그런게 어딨어. 애들때문에 사는거지."
"왜 내가 돈벌어다 주면서 용돈을 받아서 써야되는거야;;"
"내가 이렇게 까지 살아야 되나 싶다.."
사랑? 사랑... 그래 사랑을 받아본적도 없는데 줄 사랑은 어디있겠는가..
세상사람들도 다 사랑은 없다고 말하는데 말이다.
가족들의 사랑도 거래..
현종은 모든것이 빚이었다.
부모가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며 해줬던 모든것들.
그것들은 전부 빚이었다.
갚아야하는...
그렇다 현종은 그날만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그렇게 빚을 갚고 이렇게 사랑도 모를 인생은 접고 다음생을 바라볼 것을 말이다.
사랑같은건 드라마나 영화에나 있지..
그러니까 그런것들은 다 거짓말이니까.. 사랑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상상..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현종은 맥주를 연달아 두캔을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일어나 별안간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야했기 때문이다.
현종은 이 일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무도 없는 현종이 이나라 저나라 떠돌아 다닐수 있으니까.
그렇게 현종은 커다란 여행가방을 열어 옷과 속옷 노트북, 책, 조촐한 화장품 등을 챙겼다.
그리고 방을 깨끗히 정말 깨끗히 정리했다.
어느날 어느 한시에 이세상을 져버리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실 그걸 바라기도 했다.
작고 간단한 살림살이의 방을 다 정리한 후 여행가방까지 다 싼 후에 현종은 다시 맥주한캔을 더 땄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