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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자 관찰자 시점
작가 : myomyo
작품등록일 :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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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4)
작성일 : 19-10-21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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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상(4)

 

 장례식은 조촐했다. 오가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탓이다.

 장례식 특유의 서늘하고 무거운 분위기와 간간히 들려오는 백작부인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베로나는 헌화를 위해 꽃 한 송이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당연히 시신이 있어야할 관이 비어있다. 남들에게 보이기 힘들만큼 시신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라. 그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보고 싶었던 것은 시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였음으로.

 신관의 지시에 따라 조의를 표하는 엄숙한 절차가 이어졌다.

 그의 안영과 안식을 위하는 신관의 기도가 길게 이어졌다. 참석한 이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죽은 사람에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조소와 함께 그녀는 낡은 반지 하나를 꺼내들고 그것을 꽃으로 묶었다. 결국 이것은 산사람들을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추모도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녀는 미리 꺼내두었던 반지에 입을 맞추고 그것을 관에 올렸다. 그녀의 언니가 자랑하던 약혼반지였다. 항상 언니의 왼손 약지에 자리하던 반지가, 관 속에 있다. 나중에는 살이 너무 빠져 끼고 있다 기보단 들고 있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그럼에도 손에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둘이서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언니를 보내드릴게요.

 

 “ 와줬구나 벨. ”

 

 말에 울음기가 가득했다. 눈가가 이미 벌겠다. 무덤덤하게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 기다렸어.. 리체 언니는 안보이더라. 언니가 몸 약하고 맘 약한 거 아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니가 오지 않다니 섭섭해. 그래도 오빠 마지막 가는 길인데 자리를 지켜주지. 어머니도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 알면 많이 섭섭해 하실거야. 우리가 보통사이야? ”

 

 “ 미안. 발레라...언니는 ”

 

 “ 너도 그래, 이 못된 계집애야. 나한테 먼저 왔어야지..내가..내가.. 혼자 얼마나...”

 

 그녀는 발레라의 어깨를 토닥였다. 일정하게 토닥이는 손길에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도 모르게 악을 쓰며 참고 있었던 것이다. 울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어머니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 시신조차 넣지 못하고 비어버린 관. 그녀가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어찌할 바를 모른 체 그냥 악을 쓰며 달려왔을 게 훤했다.

 

 “ 젠트 경이 생사를 오간다는 소식에 언니가 손목을 그었어. ”

 

 “ .... ”

 

 “ 미안해, 내가 언니한테 숨겼어. ”

 

  발레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짐짓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듯 했다.

 

 “ 목숨에 지장은 없어. 대신 기억이 혼선이 온 모양이야. ”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거든. 그녀는 그 안타까운 말을 퍽도 담담하게 말했다. 꼭 타인을 말하는 것도 같았고 어떻게 되던 상관없는 사람인 것도 같았다. 발레라는 조금 질색했다. 자기 가 아는 베로나가 아닌 것 같았다.

 

 “ 손목을 그었다고? ”

 

 그녀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 허. ”

 

 발레라는 기막힌 듯 실소했다.

 

 “ 죽고 못 사는 사랑이라도 된다니? 사랑하면 닮는다. 뭐 이거야? 남은 사람 생각도 안하는 건 어쩜 그렇게 둘 다 똑같아?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야? ”

 

 “ .... ”

 

 “ 아니지. 오빠 잘못이야. ”

 

 “ ....발레라 ”

 

 “ 그 멍청이가 자기가 아파서, 너무 아프니까 미쳐 돌았나봐. 리체 언니가 그럴거라고 생각도 못했을 거야. ”

 

 저 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길게 늘어지는 말 속에 머뭇거림이 있다. 말을 고르고 뱉는 과정이 정신 사납고 거칠었다. 화가 나는 듯 했다.

 

 “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로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 하지만 오빠는..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나봐. 그래서 그랬나봐..”

 

 그녀의 오빠가 평범한 부상으로 돌아온 거라면 저 관이 비지 않았으리라. 오빠는 자신의 손으로 찔렀다. 결점이 있는 귀족의 삶이 어떤지 알기에 이해되었다. 동시에 원망스러웠다. 끔찍한 몰골이었다.

 

 “ 우리 오빠가.. 언니를 그렇게 만든거야. ”

 

  베로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언니와 젠트 경은 좋은 사람이었다. 둘 다 지나치게 심약한 게 흠이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충실했고 다정했다. 발레라는 그들을 가리켜 어릴 때부터 약속한 사이답지 않게 수줍어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진저리쳤다. 똑같은 사람끼리 만나서 답답하다고. 그녀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언니는 행복해보였고, 그녀들에게 혼인은 가문과의 동맹이며 그런 상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행운임으로. 그녀 또한 이 행운을 바랐다.

 

  둘의 약혼반지는 둘 사이를 답답해하던 발레라와 그녀가 고른 것이다. 아무리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반지 하나 주지 않는 오빠가 못 미덥다며 화를 내는 발레라에 그녀도 동의했다.

 

 반지를 건네는 젠트 경이 어떻더라?

 받아들이는 언니의 표정이 어떻더라?

 몰래 훔쳐보던 발레라의 표정 역시 가물가물했다.

 그저 언제나 볼 수 있던 평범한 일상이었으므로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을 웃어넘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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