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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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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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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18     조회 : 451     추천 : 0     분량 : 5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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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삶이 가치 있는 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고난과 역경이 있기 때문이다. 누나가 처음 공무원 시험을 접고 고향에 내려왔을 때 했던 말이다. 누나는 우리 지역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가끔은 이렇게 쓸데 없는 개소리를 늘어트려 놓고는 했다.

  누나가 우리 집에 눌러앉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할머니는 누나에게 당신이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동생 된 입장에서 하나 밖에 없는 혈육에게 그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사실 누나가 공무원 시험에 붙을 가능성이 있었다면 말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프로필 사진에 내가 알던 용수 형이 아닌 다른 남자 사진과 찍은 사진이 올라왔을 때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진정한 형제남매란 원래 기쁨과 슬픔은 공유해야하는 법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누나가 바로 이렇게 짐을 싸고 고향으로 내려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누나가 3번 째 시험에 낙방 했을 때, 나는 누나가 한강에 뛰어들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특유의 골격과 성깔머리로 남자애들이 겨드랑이에 털이 날 때까지 골목대장 노릇을 하기는 했지만 한강에서 수영을 해서 살아남을 지까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누나는 물고기 밥이 되는 대신에 ‘멍청한 대신’ 돈 많은 집안의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다시 행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할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 날, 목 늘어난 티셔츠에 5년 전에 나랑 같이 맞춘 나이키 신발을 신은 채 병실 문을 열던 누나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소문난 무당이었다. 내가 할머니 집에서 살기 시작한 게 7살 때부터였는데 난 이날 이때껏 할머니가 한가하게 좁쌀이나 식탁에 뿌려놓고 세고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용녀무당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늘 대문 밖까지 줄이 길게 늘여져 있었고 나는 그것이 좋았다. 내가 변소라도 가려고(내가 좌변기를 써본 건 중학교 때가 처음이었다) 내 방에서 나와 마당으로 나오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바라보았고 대부분 미소를 지었다. 물론 처음엔 그 미소가 좋았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주는 사탕이나 돈을 더 좋아하게 됐다.

  할머니가 더 이상 점을 보지 못한다고 했을 때도 찾아오는 손님은 무척이나 많았다. 할머니가 SNS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색이 바래고 바래 가까이 가서야 겨우 읽을 수 있는, 용녀무당이라고 적힌 입간판에 ‘잠정 휴업’이라고 적었을 뿐이었고 손님들은 저마다 죽기 직전에 점집을 찾았으므로 잠정 휴업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찾아왔을 때 마당을 쓸고 있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잠정 휴업이라는 딱지를 붙인 지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여전히 찾아오는 손님은 있었지만 여기저기 소문이 퍼졌는지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그녀가 찾아오기 하루 전에는 아예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점을 보러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점집을 찾은 사람의 노크 소리는 택배원이나 마녀 집이라고 소리치며 문을 뻥 차고 도망가는 동네 아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학예회 무대 오를 준비를 하는 주인공처럼 잔뜩 긴장해 조용하다. 중국집 배달통과 다를 바 없는 철문은 조금만 두드려도 쾅쾅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점을 보러 찾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노크를 했다. 고민이 깊을수록 그 소리는 더욱 작았다.

  그녀의 노크는 마당을 쓸고 있던 나도 빗질을 멈추고 귀를 기울어야 할 정도로 소리가 작았다. 솔직히 소리로 알았다기보다 미세하게 떨리는 철문 덕분에 나는 누군가 또 절박한 심정을 안고 이 곳을 찾아왔구나 생각했다.

  “니 차례야. 가서 열어 봐.”

  벌써 8년이나 복날의 위기를 넘긴 순이의 똥을 치우던 누나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참 손님이 우르르 쏟아졌을 때 우리는 철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매번 문을 열어야 했다. 난 그냥 대문을 열어두자고 말했지만 3년이나 노량진 고시원에서 산 누나는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그것을 완강히 거부했고 우리는 순번제로 문을 열기로 했다. 이번 손님은 72번 째였기 때문에 짝수인 내가 문을 열 차례였다.

  “나가요, 나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노크를 막 하려는 바람에 내 가슴팍에 주먹을 들이대고 있는 조그만 중년의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걸 볼 수 있었다. 30년 전 이집을 처음 지을 때, 어떤 녀석이 또 막걸리에 취해서 측량을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 대문은 바깥보다 살짝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었다. 한 마디로 대문에서 문을 열면 바깥쪽 사람보다 까치발 높이 정도로 높은 위치에서 사람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그러면 웬만한 모든 사람들은 키가 작아보였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내 앞에 서 있는 여자는 키가 무척이나 작았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중학생 키와 맞먹을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녀가 걸친 핸드백이나 악세사리는 이 집 문짝을 통째로 들어내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 보였다. 그녀는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놀란 것도 잠시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여기가 용녀무당님 댁이 맞지요?”

  아닐 수가 없다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난 그녀의 뒤에 서있는 검은색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핸드백에 삐죽 튀어 나와 있는 우산 손잡이에는 그 차의 브랜드가 새겨진 조그만 우산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아마 저 우산 하나도 누나가 멍청한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고생 꽤나 해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네, 하지만 지금은 하지 않아요. 잠정 휴업이거든요.”

  평소 같으면 이렇게 말하고 말았을 테지만 자동차를 손목에 두르고 다니는 잠정 VIP 손님이 기분 나쁠까 특별대우로 입간판에 잠정 휴업 딱지를 가리켰다.

  “잠정 휴업.”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안 하는 건가요?”

  “잠정 휴업이니까요.”

  “왜죠?”

  세상에. 나는 그녀가 72번째 손님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우리 누나가 나갔을 테고 누나는 나처럼 화사하게 웃어주며 그녀를 맞이하진 않았을 테니깐.

  “저희 용녀무당님께서는 현재 휴식기를 갖고 계세요. 이럴 때 점을 본다면 적중률이 떨어져서 안 보느니만 못하답니다.” 누나와 나는 할머니가 병을 걸렸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괜히 병에 걸렸다면 그것을 신이 떨어져 나가는 신병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할머니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래서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고 말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할머니 나이 때 병이 걸리는 건 휴식기라고 표현해도 옳았다.

  “일부러 시간 내서 왔는데요.”

  그것이 마치 엄청난 일이라는 듯이 그녀가 말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려다 다시 한 번 그녀의 핸드백을 보면 화를 참았다. 잠정 VIP. 잠정 VIP. 그래서 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그렇게 오세요.”

  그녀는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화는 이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행군 배낭 속 새콤달콤 같이 귀한 대접을 받아온 그녀가 얼른 돌아가길 바랐다.

  “나중에 휴식기가 끝나면 찾아오세요.”

  난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 순간 그녀가 노크할 때의 수줍음은 온데간데 없이 철문을 꽉 움켜잡았다. 그녀는 아까랑 전혀 달리 굳은 표정이었다.

  “내 말은 그만큼 중요한 일 때문에 왔다는 거예요.”

  “무슨 일이야?”

  순이 똥을 화단에 버리던 누나가 내가 계속 실랑이를 벌이자 쓰레받이를 든 채 내게 다가왔다. 난 누나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아무것도.”

  난 다시 여자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오신 분들 대부분이 그래요. 사업이 무너질 거 같다는 사람도 있고 아들이 중요한 시험을 앞둔 사람도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제각각의 삶의 무게를 가지고 있답니다.”

  제법 멋진 말(특히 삶의 무게 부분)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침을 삼키느라 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딸에게 악재가 일어난 사람도 왔나요?”

  “네?”

  “제 딸에게 악재만 겹친다고요.”

  “진상이야?”

  누나가 어느새 내 등 뒤까지 다가왔다. 누나는 인상을 가득 찌푸리고 있었다. 누나가 마음 먹는다면 들고 있는 쓰레받이를 이 정도 덩치의 여자의 이마 한 복판에 꽂는 건 일도 아닐 터였다.

  “아니야, 누나.”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누나가 나를 슬쩍 밀쳤다.

  “저기 아줌마, 말을 했으면 알아들으셔야죠. 지금 용녀 무당님…”

  누나는 말을 멈췄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별안간 핸드백을 뒤적인 여자가 5만원을 다발을 꺼낸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5만원 다발은 마치 두부 같았다. 네모반듯하고 깔끔하게 잘린 황금두부. 누구라도 편식하지 않는 그런 두부 말이다.

  “보수라면 넉넉해요.”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만나 뵐 수는 없을까요?”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보였다면 착각일까?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이제껏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진정성을 느꼈다. 정말, 정말정말정말 엄청나게 큰 슬픔을 안고 있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훌륭하네요.”

  누나가 말했다.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 말은 정성이 훌륭하다는 말입니다.”

  “더 드릴 수도 있어요. 당연히.”

  그녀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누나가 말했다. 누나는 20도 밖에 열리지 않은 철문을 활짝 열었다. 국어시간에 배운 표현대로 말하자면 그건 누나 마음의 문이었다.

 

  “미쳤어? 어쩌려고 그래?”

  여자가 새로운 행성에 불시착한 지구인마냥 마당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걸 보며 나는 누나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속삭였다.

  “돈 봤어? 오백은 되겠던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돈 말고 세상에 문제 될 게 뭐 있니?”

  나는 그 놀라운 사실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을 느끼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는 병원에 계셔.” “그리고 그 손녀 딸은 여기있지.”

  “무슨 소리야?”

  “잘 들어. 난 용녀 무당의 손녀 딸이고 어렸을 때부터 어깨 너머로 할머니가 무당 일을 한 것을 봐왔어. 1만 시간의 법칙 알아? 어떤 일이든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최고가 된다는 거. 나는 삼만 오천 시간은 할머니를 봐왔어.”

  “무슨 말이야?”

  “무슨 말하는 지 머리를 좀 굴려봐.”

  나는 그렇게 했다. 떠오른 생각은 한 가지 뿐이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걸 할 생각은 아니지?”

  “네 머리로 어디까지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무당 사칭이라면 그게 맞아.”

  “넌 돌았어!”

  내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여사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돌아봐주셨다.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저… 용녀 무당님께서는?”

  그녀가 물었다.

  “용녀 무당이요? 혹시 용녀 무당에 대해서 듣고 오셨나요?”

  누나가 물었다.

  “어떤 걸 물어보시는 거죠?”

  “그냥 뭐든지요.”

  “용하시다는 것 밖에는 못 들어봤어요.”

  “그럼 그것도 모르시겠네요.”

  누나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용녀무당이라는 것도요.”

  여자의 눈이 접시만큼 커다래졌다. 내 눈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겠다. 모든 무당이 이렇지 않는다. 아니, 정말로 신을 섬기고 공부하는 무당은 절대 돈에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 또한 그렇다. 용하디 용하다고 소문이 퍼졌지만 30년 넘게 화곡동의 이 기울어진 주택에서 살고 있는 것도, 당장 암에 걸려도 치료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것도 모두 할머니는 벌어들인 수익을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쁜 무당만이 돈을 밝힌다. 그리고 그런 무당은 무당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돈을 섬기는 무당은 모두 지옥에 갈 것이다. 우리 누나처럼.

  “어이구, 무당니임!”

  여자가 어쩔 줄 모르며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누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수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보살님. 뭐하니, 준비 안하고?”

  누나가 말했다.

  “보살?”

  누나가 팔꿈치로 복근은 없지만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내 배를 쿡 찔렀다.

  “준비하라고. 닥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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