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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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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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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4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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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망할 계집애! 망할 계집애! 망할 계집애!

  누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 전화를 절대 안 받을 리가 없었다. 나는 좌석에 머리를 기대며 끓어오르는 화를 삭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옆에 앉은 의뢰인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명상 좀 하는 거예요.”

  어쩜 이렇게 거짓말을 잘하는지.유도를 배웠던 내가 우스워졌다. 손이 부르트게 밧줄을 탈 필요가 없었다. 근사한 재능이 있었는데 말이야. 차 시트는 놀랍도록 푹신했다. 독일의 근사한 기술력이 녹아있는 이 차는 뒷자리만 해도 내 방보다 넓고 아늑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이런 차에서 울면 금방 기분이 좋아질 것이었다.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또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조그만 도로에는 오늘 하루도 고생한 차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때 메시지가 왔다.

  - 대충 부적 써주고 잡귀 쫓는 척 해주고 나와.

  아. 이런 식이겠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여자의 눈치를 보며 메시지를 보냈다.

  - 미쳤냐, 너 진짜?

  다시 메시지가 왔다.

  - 얘기 나눠보니깐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사람 불러서 땅에 묻겠더라. 미친 여자야. 이미 너 말고 다른 무당들도 다 찾아갔는데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해서 온 거였어. 우리 일 꼬였어.

  - 나 솔직히 말한다.

  난 문자를 보내고 문자를 기다렸지만 문자는 오지 않았다. 누나도 아는 것이었다. 내가 절대 말할 리 없다는 걸. 나는 10분 정도 더 기다리다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 잡히면 넌 진짜 디졌어.

 

 

  그녀의 집은 신사동이었다. 강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하고 지하철로 사오십분 거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삶의 체감은 천국과 지옥의 수준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신사동에 들어섰다고 알려주었을 때 나는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아는지 아주 똑똑히 자각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난 영원히 신사동 어느 산에 무령묘로 남을 것이었다. 차를 타고 있는 내내 들었던 클래식도 긴장된 내 마음을 달래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한산하고 조용한 마을이 펼쳐졌다. 조용하고 한산한 건 내가 사는 마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다른 게 있다면 우리 마을은 슬레이트를 얹어놓은, 내가 마음 먹고 부딪히면 무너질 거 같은 집들뿐이라면 이곳은 높은 담장과 2층짜리 주택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는 곳이었다. 왜 거 있잖은가, 도둑도 오르려다 포기할만한 담장들. 나는 정말 거물을 상대로 사기로 치고 있는 것이었다.

  “각오를 좀 하셔야 돼요.”

  차가 담장 밑 주차장에 들어갈 때 그녀가 말했다.

  “많이 까다롭거든요. 저희 애가.”

  차가 주차되고 기사가 문을 열 때 그녀가 근사하게 손을 들었다.

  “좀 얘기 좀 하다 갈게요.”

  기사는 알겠다고 말하고 문을 닫았다. 멋진 권력이군. 내가 생각했다. 정적만이 가득한 차에서 그녀는 꾹 참은 듯 한숨을 내쉬더니 우리 사이에 놓인 냉장고에 커피를 꺼내 내게 건넸다.

  “커피 마시시나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의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온통 영어로 적혀 있어 무슨 커핀지 알 수 없었지만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걸 봐서는 고양이 맛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맥주라도 되는 양 꿀꺽꿀꺽 쉬지 않고 삼켰고 나는 예의 바르게 홀짝였다. 고양이 치고 맛은 괜찮았다.

  “커피는 괜찮나요?”

  그녀가 물었다. 저번에는 그냥 키 작고 돈 많은 아줌마로 느껴졌지만 이렇게 좁은 공간에 단 둘이 있으니 전에 없던 기품이 느껴졌다. 역시 홈그라운드가 최고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맛있습니다.”

  “많이 힘드실 겁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제 딸애요.”

  “아, 예.”

  “대화를 가급적 안 하시는 게 좋으시겠지만 만약 마주친다면 그냥 제 비서라고 소개해주세요. 그거 외에 더 안 묻겠지만 혹시나 물으면 그거 있잖아요. 그, 사람이 위기상황에 발휘되는 거.”

  “유도리요?”

  그녀는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융통성이요.”

  그녀는 마저 커피를 마시고 차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을 뿐인데 꺼져 있던 주차장 전등이 들어왔다. 이 집의 한계가 궁금해졌다.

  “가시죠.”

  “네.”

  난 입고 있던 정장을 괜히 한번 만져보았다. 한복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장을 입고 나왔지만 그녀는 아리송한 표정만 지을 뿐 다행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장을 만지니 왠지 서글퍼졌다. 나중에 근사한 곳에 취업을 할 때 입으려고 샀던 옷이었지만 취업은 커녕 면접 근처에도 가지 못해 한 번도 밖에 입고 다닌 적이 없던 옷이었다. 그런데 이런데 입고 올 줄이야.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집 안은 외부주차장에서 계단으로 바로 갈 수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있었지만 의뢰인께서 계단으로 올라가셨기 때문에 나는 계단을 통해 집으로 올라갔다. 집은 내가 드라마를 통해 봐왔고, 생각했던 그대로였기 때문에 바닥에 깔린 대리석이나 벽 한 면이 거대한 통유리로 되어 있는 것은 생각보다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감각이 떨어져 내가 이 곳에 서있다는 것이 얼떨떨할 뿐이었다.

  “아줌마, 진영이 위에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저 멀리서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덕한 중년 여자가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다가왔다. 여자는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를 흘깃 보더니 빠르게 지나쳐 의뢰인 앞으로 다가갔다.

  “진영 아가씨, 방에 있어요.”

  저 말을 굳이 앞에까지 알현해서 할 필요가 있나 했지만, 부자들은 부자들의 룰이 있는 법이니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나도 어디 멀리 있다 그녀가 부르면 저렇게 개처럼 뛰어가야지.

  “어떻게 하실까요?”

  그녀가 물었다.

  “딸애가 방에 있다는데 제가 같이 가서 비서라고 소개하는 게 낫겠죠?”

  “그렇게 속이는 것보다 그냥 제가 무당이라고 잠깐 의식을 한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녀는 눈을 껌뻑였다.

  “지금 제 딸한테 애미가 무당 불러다가 난리 치는 걸 알리라는 건가요?”

  잠깐 침묵이 깔렸다. 가정부는 살찐 이마를 좁히며 나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은 듯 했지만 부잣집 사모님답게 쫙 핀 가슴은 수그리지 않았다. 문득 우리 할머니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제 말은…”

  “무슨 말인지 알아요.”

  내가 대답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그렇게 하죠.”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술을 입 안으로 밀어 넣더니 이내 말했다.

  “사례금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무엇이든.

 

  1층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궁전 같다면 2층은 바닥이 대리석이 아닌 일반 장판이었기에 조금은 집다운 느낌을 주었다. 복도에 두 걸음 넓이마다 설치된 전등에서는 은은한 노란빛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을 설계한 설계사가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의 방은 2층에 있는 족히 50개는 넘어 보이는 방 중에 제일 끝에 위치해 있어 마치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그 느낌은 그렇게 틀린 느낌은 아니었다. 방문에는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누나가 이걸 보았으면 여기에 성인용품이 가득해서 그런 거라고 키득거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누나에 비해 아이큐가 좀 더 나은 편이었으므로 그런 삼류 농담보다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무당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나는 이류 정도는 될 터였다.

  “진영아, 안에 있니?”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진영아.”

  “안에 있어요.”

  “안에 있대요.”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마치 우리 집에 얼음 나오는 정수기가 있다는 아이의 말투였다. 어쩌라는지 몰랐지만 나는 착한 사기꾼이었으므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들어간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도어락 번호를 눌렀다. 이럴 거면 뭐하러 설치했는지 몰랐지만 부자들은 부자들만의 룰이 있는 거니깐. 그녀는 손으로 도어락 번호를 누르다 나를 바라보더니 내가 여기 있는지 몰랐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아, 비밀번호는 이육삼오공하나팔사에요.”

  그녀는 문을 열며 덧붙였다.

  “혹시 나중에 들어올 일이 있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죠?”

  이 집은 넓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 중 이 방은 단연코 가장 넓은 방임이 분명했다. 나는 옷장을 통해 나니아 세계에 빠진 느낌이었다. 들어오는 문이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보통 문인 것이 민망하게 방은 웬만한 가정집만큼 넓었다. 나무바닥재가 논밭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고 방의 한가운데에는 또 다른 불투명한 유리문이 있어 다른 방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북쪽 벽면은 책이 가득 꽂힌 선반이었고 남쪽에는 디자이너가 감옥에서 살다왔는지 또 거대한 통유리로 만들어져 마을 너머까지 보였다.

  그녀는 문에서 다섯걸음도 떨어져 있지않은 책꽂이 앞 마호가니 탁자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커튼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은 긴 머리에 정수리에 얌전하게 머리띠를 하고 있는 나무바닥재의 좁은 틈으로 빠질 수도 있을 정도로 마른 여자였는데 이제까지 내가 보았던 깡마른 여자들 중에 가장 차가운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그녀 앞에는 그녀 몸통만한 커다란 책이 펼쳐져 있었다.

  “어서와요.”

  나한테 말하는지 자기 엄마한테 하는지 몰랐지만 그녀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사가 물었다.

  “밥은?”

  “먹었어요.”

  그녀의 눈길이 내게로 향했다.

  “처음 뵌 분이시네?”

  “엄마 비서.”

  난 말을 하는 의뢰인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 생각도 없어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아까의 그 부잣집 사모님의 기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체구 작은, 동네 분리수거장에서 유리병 놓는 곳을 찾는 보통 아줌마가 된 느낌이었다.

  “나영이 언니 해고 됐어요?”

  누나가 할머니한테 청바지 빨고 어디 놓았느냐고 묻는 듯한 말투였다.

  “아니, 김 비서는 회사에서 필요하고 이 사람은 집에서 필요하고.”

  “비서가 집에서까지 필요한 일이 뭐가 있어요? 영희 아줌마가 할 일을 대신 할 것도 아니고. 집은 CCTV가 지키고. 마사지 같은 걸 하시나?”

  그녀가 김밥 말듯이 손을 조물조물 거렸다. 안마라면 나도 자신 있었지만(할머니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안마용도로 날 데려온 게 아닌 여사님께서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채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 융통성. 짜놓으신 시나리오는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니었나보구나.

  “반갑습니다. 이연석이라고 합니다.”

  난 넥타이를 만지며 가볍게 목만 숙였다. 경호업체에서 한창 불법철거 아르바이트 할 때 어깨 너머로 배웠던 인사법이었다. 저렇게 넥타이만 만지면서 목만 숙이면 되게 무뚝뚝하고 강인해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사모님께서 경호원으로 저를 고용하셨습니다.”

  “비서라면서, 엄마.”

  그녀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검지를 시계초침처럼 왔다갔다 했다.

  “경호원이랬다, 비서랬다, 왔다갔다.”

  나는 의뢰인의 원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다시 한 번 넥타이를 어루만졌다.

  “사모님께서 아가씨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렇게 말씀하신거구요, 원래는 경호원입니다.”

  “부담스러울 게 뭐 있어요.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제가 진영 씨 경호원이거든요.”

  흥미가 동하는지 그녀가 입을 살짝 벌리며 아까보다 관심 있게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하셨나요?”

  이럴 때 군대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지.

  “들으신 게 맞습니다.”

  “내 경호원이라고?”

  “예. 그렇죠, 사모님?”

  그녀는 마치 내가 하루에 한 번씩 고자질을 하는 부지런한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는 나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의 융통성에 무척이나 감탄했다.

  “맞아.”

  그녀가 대꾸했다.

  “사실 네 경호원이야.”

  “아가씨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신 뒤로 보호가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의뢰를 하셨더라고요.”

  키야, 보았는가? 이게 센스라는 것이다.

  “난 경호원 필요 없어요.”

  “처음엔 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희 서비스를 받아보시면…”

  “그만…”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손을 들어보였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 후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만 됐어요. 잠깐 나가 주실래요? 우리 얘기를 해야 돼서.”

  나는 그러기로 했다. 진영 씨께서는 사업검토서를 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넥타이를 잡고 목례를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이건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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