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방에서 나오자마자 문자가 왔다.
-어때? 할 만해?
난 생각할 것도 없이 문자를 보냈다.
-나 경호원 됐어.
그리고 바로 문자가 왔지만 난 읽지 않았다.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가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방 문이 열렸다. 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깍듯이 대기를 했다는 듯 꼿꼿한 자세로 가랑이 사이에 손을 포갠 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덕희 부인은 도어락 잠기는 소리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결말이 배드엔딩이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꾸지람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들어가 봐요.”
그녀가 말했다.
“지금요?”
“네.”
부분대로 하기로 했다. 내가 막 방문을 두드리려는데 부인이 나를 불렀다. 난 그녀를 돌아보았다.
“경호원 유도리 좋았어요.”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려다 다시 한 번 멈춰서 나를 보았다.
“아니, 융통성.”
방문을 두드렸다. 있는 거 뻔히 아는데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말괄량이 아가씨로구만. 나는 다시 한 번 두드렸다.
“이육삼오공하나팔사!”
멀리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이럴 거면 도어락을 왜 단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으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난 번호를 눌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게 등을 보인 채 통유리 앞에 서있었다. 돈은 많지만 인생에 고민이 많은 부잣집 아가씨처럼 보이는 걸 노리고 저러고 서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하얀 원피스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희고 깡마른 다리를 보니 톡 치면 부러질 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가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난 넥타이를 만지며 고개를 숙였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다시 소개합니다. 이연석입니다.”
“꺼져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 들은 그 소리는 우리 누나가 나한테 자주 하던 말인데. 이 집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네?”
“내 집에서 꺼지라고요.”
그녀가 우아하게 몸을 돌며 나를 바라보았다.
“꺼지라는 말 몰라요?”
“압니다.”
“그럼 알고 있는 사전적 용어대로 하세요.”
“잠깐 물러나라는 건가요?”
“아니요. 완전히 이 집에서 나가라고. 이 사기꾼아.”
“사기꾼이오?”
별로 마음에 드는 애칭은 아니었기에 내가 되물었다.
“경호원? 웃기시네.”
그녀가 진짜 웃기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이 무슨 경호원이야. 당신 무당이잖아. 그것도 가짜무당.”
나는 가짜무당이라는 단어를 듣자 온 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단연코 해본 적이 없지만 만난 지 5분 만에 걸릴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나는 내가 걸릴 만한 행동을 했는지 찬찬히 돌이켜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사실 짧은 시간에 가짜무당인 걸 들킬 정도면 이미 차에서 사모님이 알아차려야 할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뻔뻔하게 나가보기로 했다.
“전 경호원인데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잠시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전 바보가 아니에요. 엄마가 무당을 찾아다닌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상한 무당한테서 이따위 부적을 받아온 것도 알아요.”
그녀는 책상으로 다가가더니 책상서랍을 열어 내게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은 내 가슴을 막고 땅에 떨어졌다. 잔뜩 구겨진 종이였다. 나는 그것을 들어서 펴보았다. 초등학교 이후 한자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읽을 수는 없었지만 한자로 추정되는 글씨가 빨갛게 적혀 있었다.
“한자를 쓰려면 제대로 쓰던가. 한자도 뭣도 아닌 걸 받아와서는.”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이건 누나가 한 것이었다.
“누가 그 쪽이 했대요? 왜 찔려요? 그래도 그 쪽은 좀 똑똑한가봐요. 의심 많은 우리 엄마가 집에 데려올 정도면. 왜요? 제가 악귀라도 씌였다고 했어요? 마늘이라도 숨겨야 한다고 말했나요? 어디다 숨기게요? 바닥 밑에? 베개 밑에?”
“전 이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모르신다?”
“네.”
“아예 이 부적하고 연관이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럼 지금?”
“저는 경호원이고요, 종교는 천주교에요.”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치더니 뒤돌아서 다시 통유리 너머 세상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경고에요. 가세요. 가서 엄마한테 전하세요. 쓸 데 없는 짓 그만하라고. 이런 일 벌여봤자 저한테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이게 제 팔자라고 말하세요. 뭐라 하면 너무 센 악귀가 씌여서 도저히 손 쓸 수 없다고 대충 둘러대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고개만 틀어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진짜로 귀신 들린 척 미친 짓 해버릴테니깐.”
“어때요?”
내가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사모님이 쪼르르 달려와서 물었다. 나는 계단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부인의 말이 옳았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경호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좋아하는 아이돌 보겠다고, 비키라고 내 머리를 쥐어뜯은 아이들은 저 여자의 히스테리에 비하면 5살짜리가 앞차기 하는 수준이었다.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말했다.
“무슨 말이죠?”
“저보고 무당이라고 꺼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리가.”
“따님이 어렸을 적부터 신기가 좀 있었습니까?”
“그런 것은 없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가 좀 셌어요.”
그냥 부잣집이라 오냐오냐 자란 거겠지. 나는 생각했다. “혹시 따님 베개에 부적 같은 거 숨겼나요?”
“네. 저번에 용녀무당님이 가져가라고 주셨어요. 베개 밑에 숨겨놓으면 마음이 안정될 거라고.”
망할 계집애! 어디서 이상한 퇴마 프로그램을 보고 따라한 게 분명했다. 베개 밑에 부적이라니! 요즘에는 퇴마 영화에서도 쓰지 않는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장치였다.
난 그녀에게 구겨진 부적을 건넸다.
“독한 악귀가 씐 모양이에요.”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 사기 행각에서 유일한 수확은 운전기사와 제법 친해졌다는 것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스무살 조금 많아 보이는 운전기사는 세대를 넘어서 통하는 게 있었다. 일단 우리 둘 다 클래식을 싫어했고 육군 병장만기제대였다(운전기사는 내게 무당도 군대를 가냐고 물었는데 나는 신부도 군대를 간다고 의구심을 해소시켜줬다). 딸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했고 사진을 보니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운전기사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한 게 분명했다. 사모님은 속도가 100키로미터 이상 넘어가면 주의를 줬는데 나는 100키로미터 미만이면 혹시 엑셀이 고장났냐고 핀잔을 준 것이 가장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걸그룹에 엄청난 팬이었는데 요즘 세대의 걸그룹보다 내가 군복무를 했던 11년도의 걸그룹들을 좋아했다. 나는 오는 내내 그와 신나게 소녀시대 노래를 불러댔다.
“또 뵙죠.”
막 K200 장갑차 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집에 도착했고 우리의 대화는 중단 되었다. 기사는 내게 주먹을 내밀었고 나는 그의 주먹을 퉁 쳤다.
“나중에 또 즐겁게 얘기해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또 뵐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렇듯 세상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반복되어 있다.
“조심히 가세요.”
“무당님 말처럼 제 딸이 이번에 취업하면 한 턱 쏠게요!”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차 문을 닫았다.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우리 동네의 부서진 아스팔트 길을 부드럽게 내달리는 차의 뒤꽁무늬를 사라질 때까지 본 후 난 내 집으로 향했다.
“이리 와!”
집에 들어서자 누나는 식탁에 앉아 피자를 먹고 있었고 나는 곧바로 누나에게 달려들었다. 누나는 자기도 충분히 반갑다는 듯 식탁에 있는 가위를 내게 들이댔다.
“잠깐! 잠까안! 잠깐! 잠깐!”
내가 허점을 발견해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려 황소처럼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나한테 많이 당해본 누나가 본능적으로 외쳤다. 누나는 의자 위로 껑충 뛰어 올라 손을 내저었다.
“일단 진정해!”
누나는 내가 사나운 맹수라도 되는 양 내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피자 하나를 뜯어 내게 건넸다.
“일단 피자 먹어! 니가 제일 좋아하는 콤비네이션이야!”
난 콤비네이션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피자는 콤비네이션 밖에 먹어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싫어하지도 않았다.
“핫소스도 많아!”
누나가 식탁에 올려진 비닐봉투를 쏟아부었다. 족히 열 개는 넘는 핫소스가 쏟아졌다. 누나가 눈썹을 위로 치켜 올렸다. 그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내 정성을 모르겠니?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었다.
“피클도 많아?”
누나는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걸 물어보니.”
“진짜 또라이구만.”
누나가 길게 트림을 했다. 난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손을 내저어 더러운 화생방 공격을 날렸다.
“진짜 귀신이 씌인 거 같아.”
내가 말했다.
“부적을 갑자기 나한테 툭 던지면서 눈을 치켜뜨는데 와,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니깐.”
“막 침 질질 흘려?”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나는 콜라를 꿀꺽꿀꺽 삼킨 뒤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부적 던졌을 때 진짜 소름 돋았겠다.”
“그것도 그렇고, 어떻게 내가 가짜 무당인 걸 알았지?”
“그냥 떠본 거 아니야? 왜, 그 사모님이 평소에도 무당들한테 부적 같은 거 받아가지고 난리를 쳤잖아. 그러니까 척하면 척이지.”
“그래서 그런가?”
“그리고 니가 무당처럼 생겼냐. 딱 봐도 그냥 운동한 애처럼 생겼지.”
“아무튼 마늘이라도 숨겨야 한다고 말했냐고 물었을 때 진짜 소름 돋았어.”
누나가 턱을 내밀어 묻는 표정을 짓자 난 내 의자 밑에 노스페이스 가방을 집어 들어 냉장고에서 챙겼던 마늘을 꺼냈다.
“진짜 마늘 챙겨갔거든.”
누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너 무슨 진짜 퇴마하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뭘 해야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떡해, 그럼.”
난 마늘을 식탁에 던졌다.
“이게 다 누나 때문이야. 누나가 부적을 숨기지만 않았으면.”
“미안해. 딱히 할 말이 없더라고.”
“아무튼 대충 염불 외는 척 하면서 집 안 돌아다녔어.”
“잘했어.”
난 더 이상 먹을 수 없어 먹다 남은 피자를 던졌다.
“아무튼 이런 일 두 번 다시 없게 해. 무슨 짓이야.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은 또 거짓말을 낳는다고. 그 여자가 또 찾아오면 어떻게 할 지 계획을 세워두자.”
누나는 손으로 피클을 집다 잠깐 멈칫하더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천천히 피클을 입에 집어넣었다. 난 그걸 놓치지 않았다.
“뭐야. 뭔데.”
“피자는 맛있어?”
“뭐야. 말해.”
“연석아, 그… 두 번… 정도는 더 가야할 지도 몰라.”
“왜?”
“이 일이라는 게 사기잖아, 그렇지? 일을 완벽하게 해야 사기인 걸 모를 거 아냐. 맞지?”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돈을 좀 많이 받았어.”
“뭔 소리야? 돈을 받다니? 돈을 왜 받아!”
누나는 끔찍한 거라도 보았다는 듯이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쩔 수 없었어! 준다는데 안 받을 수는 없잖아.”
누나는 눈을 살짝 들어 내가 얼마나 자기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나 바라보았다.
“복채를 안 받으면 부정 탄다는 사실은 알잖아.”
“우린 사기를 치고 있어. 우리가 부정을 가져오는 거라고, 이 여자야!”
“알아, 안다고. 근데 거기서 돈을 안 받으면 의심할 거 아냐.”
“얼마나 받았는데?”
“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나왔다. 우린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천 오백만원을 사기 친 아주 질 나쁜 년놈들이 되어 있었다.
“쓴 건 아니지?”
“아니지이. 절대. 아무튼 그래서 갈 수 밖에 없어. 그 다음에 생각해보자.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해보자. 탈출구가 있을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 안에 핫소스 맛이 맴돌았고 잇새에 피자가 끼어 찜찜했다. 누나는 내 반응을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너도 공범이라는 건 잊지 마. 너도 마찬가지야.”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돈 쓰지 마. 돈 쓰지 말고 방법을 생각했다가 정 안 되면…”
나는 차마 마지막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다음에는 누나가 가. 누나가 용녀무당님이시니깐.”
“그래야지. 이번엔 넌 그냥 대타였어. 알아만 두라는 거야.”
“그래.”
난 내 방으로 걸어가다 궁금증이 생겨 뒤를 돌아보았다. 누나는 마저 피자를 먹으려다 다시 피자를 놓았다.
“넌 행정고시 보지 마.”
난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