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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작가 :
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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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성일 : 19-10-29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6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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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누나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날은 더워지고 에어컨 있는 방이 접견실과 거실 밖에 없는 터라 장군상이 내려다보는 곳에서 잠을 자느니 거실에서 잠을 잤는데 누나가 새벽부터 왔다갔다 거리는 통에 잠에서 깰 수 밖에 없었다. 누나는 늘 그렇듯이 애초에 날 사람 취급 할 생각도 없는지 발목을 밟기도 했다.

  “지금 누나가 새벽에 일어났다는 거 알아?”

  누나의 콧노래를 참지 못한 내가 항복을 선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지.”

  누나는 에어컨을 껐다.

  “돈 니가 내냐? 에어컨을 몇 시간 튼 거야.”

  “데이트라도 가? 왜 아침부터 난리야.”

  “데이트?”

  누나가 나를 돌아보며 재밌는 생각이라도 난 못된 아이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뭐?”

  “악귀 씐 그 아가씨 만나러 가는 거야.”

  나는 충전기에 꽂혀있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 일이 있고 3일이나 지나있었다.

  “어제 밤에 전화하니깐 여자가 좀 조용히 진 거 같다고 하더라고. 니 마늘 요법이 통했나 봐.”

  누나가 생각만 해도 우습다는 듯 키득거렸다.

  “오늘 가서 아예 쐐기를 박아버리려고.”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 그 일에 관해 어떻게 할 지에 대해 의논하겠다고 했지만 놀랍게도 3일 동안 그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한 적이 없었다. 나는 자소서를 첨삭하느라 바빴고 누나도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사실 우리 남매가 친구처럼 친하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기에 누군가가 화장실 변기물을 내리지 않는 이상 대화를 하는 일은 좀체 없었다. 사실 그 일에 대해 의논하면 서로 그럴 듯한 뾰족한 수도 없었다. 우리는 암암리에 알고 있던 것이다. 그냥 이 일이 무사하게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걸.

  “난 할머니 병원이나 가야겠다.”

  분위기를 돌리고 싶어 내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러든지.”

  누나는 화장실로 들어가려다 고개를 쑥 빼냈다.

  “할머니 방 서랍에서 화투 가져가라. 저번에 화투 치고 싶어 하시더라.”

 

  암 병동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고 삭막한 곳은 아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의사나 간호사들이나 길게 이어진 회색 복도는 그렇게 사람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한 걸음 한 걸음 뗄 떼마다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무겁지는 않았다.

  간에서 이따만한 종양을 제거한 할머니는 다행히 예후가 좋았다. 내가 병실로 들어섰을 때 정해진 면회시간에 맞춰 이미 각 자리마다 면회객들이 넘쳐났는데 예비 침대에 앉아 과일을 깎고 있는 아주머니나 노트북을 하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는 환자들을 보니 죽음이라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가장 안전한 후방으로 이송된 두 번 다시 전쟁터에 갈 일이 없는 예비군들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온다고 1시간 전에 전화를 했지만 손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 같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슬쩍 돌려 문 앞에 서있는 잘 생긴 손자를 발견했다.

  “뭘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어.”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으신가. 김영월 여사님께서는.”

  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드라마.”

  “무슨 드라마?”

  “태조 왕건.”

  “질리지도 않나. 그것만 백 번 본 거 같네.”

  “질리는 건 니들이지, 최수종이 아니야.”

  할머니는 다시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니들 뭔 일있냐. 어째 한 년이 오면 한 놈은 안 오고 한 놈이 오면 한 년이 안 와.”

  “누나 약속 있대서.”

  “저번에 그 년도 그렇게 말하더라. 네 놈 약속 있어서 못 왔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느낌을 풍겼다. 단순히 무당이라서 그렇다기 보다 우리 위에 둥둥 떠다녀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느낌이었다.

  “니들 뭔 일 있는 거 아니지?”

  냉장고에서 포도주스를 꺼내는데 할머니가 물었다.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는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에어컨 때문에 창문은 꼭 닫혀 있었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해.”

  그건 할머니의 암호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슬픈 일이 생길 때마다 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말을 했다.

  “누나 행정고시 떨어져서 그런 거 아냐?”

  “그게 한 두 번이냐. 그런 거랑 좀 달라.”

  “나 또 취업 안 되려는가 보다.”

  “너는 한 3년 있어야 운이 풀린다니깐. 그런 거 말고.”

  나는 냉장고 문을 닫고 주스를 꿀꺽꿀꺽 삼켰다. 분명 포도주스였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 둬.”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마시던 주스를 더 이상 삼키지 못했다. 할머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할머니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르지만 그만 두는 게 좋아.”

  핸드폰이 울렸다. 허벅지에 조그만 진동도 느껴졌다. 할머니는 말 없이 다시 누워 태조왕건을 보기 시작했고 나는 세 번 정도 벨소리가 울리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

  “너 좀 와야겠다.”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았지만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누나라는 걸 알았다.

  “잠깐만.”

  내가 병실을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나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들어가라.”

  난 우뚝 멈춰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도 나를 쳐다보았다.

  “들어가.”

  인사라기보다 명령 같았다. 나는 문을 닫았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곯아떨어지느라 몰랐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정류장 앞에는 운전기사가 양 손에 우산을 든 채 서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그가 내게 우산을 건네며 말했다.

  “준비하고 올라오신다고 미리 말씀하셨으면 제가 무당님 모셔다 드리고 바로 내려갔을 텐데요.”

  “번거롭게 해드릴 수는 없죠.”

  “그게 제 일인데요. 보살님이 보살님 일이 있듯이요.”

  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버스가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진 검은색 세단을 가리켰다. 우리는 그 차로 향했다.

 

  “일이 꼬였어.”

  내가 주차장을 통해(이번에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야호!) 집에 올라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누나가 내게 재빠르게 다가와 말했다.

  “왜? 왜?”

  내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말괄량이 아가씨가 내가 마음에 안 든데.”

  “그 여자가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

  누나는 분홍빛 정장 소매를 걷었다. 손목에 빨갛게 날카로운 상처가 나있었다.

  “그 년이 이런 거야.”

  “고양이 상이었는데 진짜 고양이었구나.”

  누나가 날 물어뜯으려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내가 무당이란 걸 알더라고. 오자마자 비명비명을 악을악을 고래고래 써가며 이것저것 집어던지는데. 와, 미친년이야.”

  “누나 목소리가 너무 커.”

  난 누나 어깨너머 사모님을 쳐다보았다. 사모님은 그러거나말거나 소파에 앉아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무튼 갑자기 널 부르더라고.”

  “왜?”

  “모르지. 아무튼…”

  그때 명상 중인 거 같았던 사모님이 우리 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누나에게 고갯짓을 했다.

  “오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네.”

  우리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니까 보살님이요.”

  누나가 날 가리켰다.

  사모님은 말없이 2층을 바라보더니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올라가보셔야 할 거 같아요.”

  난 그렇게 했다. 그러려고 여기 온 것이니깐.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난 조그맣게 숨을 내쉬었다. 첫날에 의뢰인께서 왜 이 앞에서 한숨을 쉬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기 전에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심정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역시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좀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이육삼오공하나팔사!” 나는 비밀번호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오자마자 다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재빠르게 날아왔기 때문이다. 문 너머로 쿵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이연석입니다.”

  “아, 오셨구만.”

  “들어갈게요.”

  “들어와요.”

  “뭐 안 던지실 거죠?”

  “알았어요.”

  “들어갈게요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녀는 통유리를 돌아보며 서있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 혹시 나중에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면 물어보리라 다짐했다.

  나는 보든지 말든지 넥타이를 잡은 채 목례를 했다.

  “친구를 데려오셨더라고?”

  그녀가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혼자… 왔는데요?”

  “가짜 무당년 하나 데리고 왔잖아요.”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 가짜 무당놈아.” “아, 밑에 계신 분? 모르는 분이에요. 소파에 앉아 울고 계시더라고. 누가 할퀴었나 봐요.”

  그녀는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턱짓으로 저 쪽을 가리켰다.

  “저거 보여요?”

  난 주머니에서 터져나와 바닥을 굴러다니는 마늘을 보았다. 아까 저 여자가 던진 것이었다.

  “잘도 숨겨놨더라고.”

  난 부엌에 숨겨놓은 마늘주머니를 매달아 놓은 것을 기억해냈다. 싱크대 위에 자연스럽게 매달아놓아서 누가봐도 치톤피트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뱀파이어에요? 마늘을 왜 매달아 놔?”

  “제가 한 거 아닌데요.”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받았어요?”

  “월급젭니다.”

  “제가 두 배 드릴게요.”

  그녀가 손가락을 폈다.

  “그러니까 이제 이따위 일은 그만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랑 다르게 차분하고 단호했다. 이제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심리상담을 하는 상담가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러고 싶었다. 진심으로. 하지만 다섯 살짜리가 꼬아놓은 실타래처럼 일이 제멋대로 엉켜버린 지금 나도 물러설 곳은 없었다. 우리 서로에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 경호원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월영이 아줌마가 다 말했어요. 우리 엄마가 무당을 데리고 왔다고.”

  월영이 아줌마는 처음 들어 본 이름이었지만 나는 나를 아니꼽게 쳐다보던 가정부를 떠올렸다. 내 예상대로 그녀는 나를 싫어했다. 그러면 나도 이제 싫어해야지.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난 내 오른발 옆에까지 굴러온 마늘을 쳐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무당 맞아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남자라고 말한 것처럼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어머니께서 고용하신 것도 맞고요.”

  “그런데 가짜죠.”

  “월영이 아줌마가 그래요? 내가 가짜라고?”

  “아뇨. 하지만 난 알 수 있어요. 그 쪽이 가짜라는 걸.”

  “무슨 근거로요?”

  그녀는 입을 벌리다 다물었다. 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서요.”

  “안 좋은 짓을 많이 했나 보죠?”

  난 말을 뱉고 나서야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쌓이고 쌓이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거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집이 타는 걸 보는 세입자처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 말은…”

  “전 미래를 볼 줄 알아요.”

  “네?”

  “미래를 볼 줄 안다고요.”

  그녀는 진지했다. 적어도 내가 보는 한 그랬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 여자는 정말 또라이였다.

  “그러시군요.”

  어떻게 반응해야 될 지 몰라 태연한 척을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랑 비슷했다. 왕년에 자기가 국가정보원이었다는 사람이라고 떠벌이면서 소주를 100원만 깎아달라고 하는 사람을 겪어보면 저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귀여운 또라이 있잖은가.

  “또라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그녀가 주머니에 손을 빼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난 그 쪽이 누군지, 저 밑에서 내가 던진 가위에 손목이 긁힌 여자가 누군지도 알고 있어요.”

  가위를 던졌구나. 나쁜 계집애!

  “누군데요?”

  “당신 누나잖아요. 행정고시 실패하고 눌러앉은 여자.”

  난 그녀가 내 표정을 보지 않았으면 싶었다. 갑자기 들어온 주먹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은 가관일테니깐. 난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는데 그것을 후회했다. 분명 내 울대가 움직이는 걸 보았을 것이었다.

  “용녀무당은 원래 당신네 할머니잖아요. 지금 간암 때문에 병원에 계시고요.”

  “아닌데요.”

  내가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할머니 여기 할머니랑 똑같은 사람이 있어요!

  “아니에요?”

  그녀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없어 예대 대신에 서울시립대 나오신 이연정 씨와 그 사람 동생 이연석 씨 아니시라고요?”

  “아닙니다.”

  난 넥타이를 만졌다. 보아뱀처럼 내 목을 꽉 조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그녀가 건반을 조율하듯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역사상 가장 가까이 내게 다가왔다. 난 젤리처럼 맑게 비치는 그녀의 갈색눈을 보며 문득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미래에서는 당신이 한 달 뒤에 차 사고로 죽는 걸로 되어 있거든요. 저를 구하려다 대신에. 전 그걸 막고 싶을 뿐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라면 다행이고요. 난 다만 그걸 막으려고 이렇게 적대적이었던 것 뿐이거든요.”

  그녀는 뒤를 돌아 다시 통유리로 다가갔다. 그녀가 스칠 때 나는 딸기향 샴푸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역시 인간이 막을 수 있는 건 아닌가보네요. 가서 경호 일 보세요. 이연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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