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할머니는 무당이 되고 싶어 된 사람은 없다고 하셨다. 사람은 저마다 신기를 가지고 있고 다만 그걸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달리 영이 맑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이 선택을 받고 무당이 된다고 했다.
“그럼 거부하면 되잖아.”
어릴 적 나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제나 나만 보면 헛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며 쥐어박던 할머니는 웬 일인지 내가 본 할머니 중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됐으면 나도 이렇게 안 살지.”
무당이 되고 싶어 무당이 된 사람은 없다. 무당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무당이 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신에게 선택을 받으면 그 선택을 거부할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다치거나, 가족이 다치거나 하면서. 그런 느낌이 온다고 했다. 누군가가 자기와 함께 있으면 다칠 거라는 걸. 그래서 그런 사람일 수록… 사람을 멀리한다고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큰 일 났어.”
누나가 주차장으로 내려오기 전에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렸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뭔데? 저기서 말하면 되지, 왜 여기까지 오라그래?”
“저 여자는 진짜야.”
“뭐가?”
“진짜 신기가 있는 여자라고!”
누나는 계단을 내려오다 멈춰서 그러면 보인다는 듯 위를 위를 쳐다보았다.
“자기가 신기 있대?”
“미래를 본대.”
“와, 좋겠네.”
“진짜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된다고. 우리에 대해 전부 다 안다니깐? 누나가 나온 대학이랑 누나가 행정고시 실패했다는 것도 알고, 내 엉…”
나는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것만큼 결정적인 증거도 없었다.
“내 엉덩이에 점까지도 알고 있어.”
“그 여자가?”
“그래!”
누나는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댔다.
“근데 니 엉덩이에 점 있는 거랑 미래를 보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
“신기가 있다는 거지. 할머니 보면 몰라? 다 알잖아? 누나 담배 펴던 것도 알고. 내가 여자친구 있던 것도 알고 있었고.”
“그거야 나 같이 예쁜 애한테 갑자기 아저씨 냄새가 나니깐 그런거고, 너는 티를 너무 냈잖아. 옆집 누렁이도 알았을 걸.”
“할머니랑 똑같다니깐. 느낌도.”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셔츠를 쥐어뜯는 나와 달리 누나는 아무 미동도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누나는 한참 그러고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없어.”
“뭐?”
“신기 같은 건 없다고. 그거 다 뻥이야.”
“무슨 말이야, 그러면 어떻… 잠깐만.”
나는 천천히 입을 다물며 조금은 차분히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할머니가 우리 같은 사기꾼이라는 거야?”
“아냐.”
“그럼 무슨 말인데? 신기가 없다는 건 우리 할머니도 구라쟁이라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럼?”
나는 누나가 그냥 웃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말이 잘못 나왔다고. 그런 뜻이 아니라고 평소처럼 낄낄 거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나는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더니 날 바라보았다.
“그래. 난 그런 거 안 믿어. 할머니도 안 믿고.”
난 눈썹을 서서히 조였다.
“구라쟁이라고 생각한다고.”
“지금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신기가 있었으면 왜 우리 엄마, 아빠 사고를 막지 않았는데?”
누나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격앙된 감정도 슬픈 감정도 없었다.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순수한 아이 같이 이어진 단어 하나하나가 각자의 의미에만 충실했다.
“운명이었잖아.”
내가 달래듯 말했다.
“알았어도 막을 수 없었다고.”
“얼마나 대단한 운명이길래 알면서도 막을 수조차 없었을까. 응? 부모가 돼가지고 자식이 죽는데 얼마나 대단한 운명론자시길래 그걸 ‘안’ 막았냐구?”
“누나.”
“그러면 이것도 운명이겠지. 우리가 할머니 이름 팔아 사기치는 것도. 안 그래? 이걸 무슨 수로 막니? 팔자가 사기꾼 팔자인데.”
“그게 무슨 뜻이야? 팔자라니?”
“난 계속 하겠다는 소리야. 아무리 생…”
“누나!”
“귀 안 먹었어! 내 말부터 들어!”
누나의 목소리가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크게 소리 지른 건 내가 누나가 꿍쳐놓은 라면을 몰래 먹었거나 누나가 서울예대에 붙었을 때 말고는 없었다.
누나는 골반에 손을 얹어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위를 쳐다보았다. 혹시 길고양이가 들어왔나 내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천 오백이야.”
누나가 말했다.
“한 달도 안 돼서 그 돈이 들어왔어. 거기다가 앞으로 더 들어올 거라고. 저 멍청한 아줌마의 지갑은 우리가 평생 벌어들일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 체크카드를 가지고 있거든. 내가 경제학을 배웠으니깐 말해줄까? 이런 시장성을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거야, 아니? 조금만 아가리 털면 크게 한 탕 할 수 있다고. 조금만, 아주 쪼오그음만 기분 좋게 해주면 되는 거 뿐이야.”
“사기야.”
“어디가 사기야? 무슨 사기? 금융 사기? 주식 사기? 채권 분립 사기? 무슨 사기니, 이건? 딸이 귀신에 씌였는지, 돈이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다 하느라 인생에 너무 쉽고 재미없어서 우울증에 걸린 건지, 아무튼 배 부른 지랄을 떨고 있는데 그거 조금 위안해주는 게 사기라고 할 수 있을까? 경찰서 가서 저 아줌마가 뭐라고 할 거 같은데? ‘글쎄, 무당이 제 딸을 낫게 해준다고 했는데 낫지를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게 끝이야. 우리가 일을 안 한건 아니잖아? 상담해달래서 상담해주고 악귀를 쫓아내달라고 해서 집까지 와서 마늘까지 달아줬는데. 우린 사기 아니야.”
누나는 내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다시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다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행정고시 왜 자꾸 떨어지는 지 알아?”
“공부를 못해서겠지.”
내가 대꾸했다.
“그래. 공부를 못해서야. 근데 왜 못하는지 알아?”
그 순간 나는 누나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누나의 목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가라앉았고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과외 하느라. 오전에 과외 돌리고 오후에 학원 알바하는데 어떻게 공부하겠니? 남들은 열 시간, 열 두시간 죽어라 하는 게 행정고신데 나는 내 월세값도 못 내서 일하고 새벽에 공부하느라 이러고 있는 거야. 예대에 합격했을 때랑 똑같지. 예대 등록금 많이 든다고 예대를 포기하고 시립대를 갔으니깐. 글은 일 하면서 실컷 쓰라고. 그런데 옘병, 이젠, 이젠, 일도 마음대로 못하네!”
내가 올라왔을 때 사모님은 홀로 앉아 있었다. 막 커피를 가져다 준 월영 씨는 역시나 달갑지 않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펭귄처럼 뒤뚱뒤뚱 부엌으로 향했다. 그녀는 커피잔을 들다가 나를 보고는 커피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무슨 얘기를 했어요?”
그때 누나가 부엌 옆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씻고 왔는지 얼굴에 물기가 가득했지만 충혈된 눈은 가리지 못했다. 누나는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손을 정장바지 뒤로 닦았다.
“저기요? 보살님?”
난 한동안 바라보던 눈을 떼고 의뢰인을 바라보았다. 의뢰인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 표정이 굳어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소파로 다가갔다. 머릿속에는 프라이팬에 기름 끓는 소리처럼 수많은 생각들이 시끄럽게 종알거렸다. 나는 자리에 앉아 누나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누나는 나랑 한 자리 떨어져 앉았다.
“말해봐요.”
그녀가 재촉했다.
“따님은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나는 누나가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의뢰인도 들었는지 슬쩍 누나를 쳐다보았지만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많이 심각한가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거 같더군요.”
“네. 맞아요. 예전에도 자살시도를 했으니깐요.”
그건 몰랐는데. 덕분에 나는 더욱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녀는 지금 틀어진 22도의 에어컨 바람보다도 차갑게 나를 바라보았다.
“받았는데도 나아지지 않으니깐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았을까요?”
“저희 실력으로는 무리에요.”
그때 누나가 말했다. 그녀가 누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몇 번 의식을 해봤는데 저희 실력으로는 안 되겠어요.”
누나는 고개를 푹 숙였고 나는 누나의 허벅지에 올려진 주먹이 꽉 쥐어진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말 없이 눈을 굴려 우리를 바라보더니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 딸아이가 악귀가 씌였는데 방법이 없다는 거죠?”
“악귀는 아니고 단순히 정신적으로 불안해보이니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녀는 내 말이 무슨 말인가 곱씹는 듯 눈을 좁히며 식탁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코웃음을 쳤다.
“살다가 무당이 정신과 가라는 얘기는 처음 듣네요.”
그녀는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커피잔을 잡는 그녀의 손가락이 하얗게 세었다.
“정신과도 문제 없다 하고 무당도 이상이 없다 하면 나는 이제 누구한테 가야하죠? 신부님한테 가야하나요?”
이상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걸 하나하나 꼬치꼬치 대답할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격앙돼 있었다는 걸 눈치 챈 듯 헛기침을 하고는 머리를 넘겼다.
“그래도 다른 무당들보다는 낫네요. 다른 무당들은 어떻게든 낫게 해주겠다고 난리를 치더니 나중에는 전화도 안 받던데. 양심은 있나보네요. 참 무당인이에요, 두 분은.”
“비용은 돌려드릴게요.”
누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의뢰인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에서 벗어났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아줌마, 양 기사 불러서 저 분들 데려다 주라 해요.”
멀어져가는 의뢰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누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누나는 무릎 위로 손을 올린 채 엄지 손톱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누나는 내 쪽으로는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문득 누나 발치에 놓인 쇼핑백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그 안엔 부채와 방울, 곱게 접힌 한복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삶의 가치 있는 건 삶의 역경과 고난이 있어서다. 공무원 시험을 접고 내려오며 누나가 했던 말이었다. 익숙한 말이었다. 그 말은 누나의 방에 포스트잇으로 적혀 있을 정도였으니깐.
누나는 어떤 삶을 위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을까.
‘난 할머니를 구라쟁이라고 생각해.’
누나는 왜 구라쟁이 할머니의 물품을 들고 여기에 있을까. 어떤 것이 그렇게 가치가 있었기에 이 사기꾼 팔자를 위해 늘 고난과 역경과 싸울까.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가오던 가정부 아주머니가 잠깐 움찔했다. 아마 가뜩이나 더러운 인상인데 잔뜩 구겨져 있어서 그랬겠지.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사모님.”
크게 낸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워낙 집안이 고요해 내 말이 방을 가득 울렸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믿어주실 수 있습니까.”
“예?”
“시간이 꽤 오래걸리더라도 따님 치유에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그녀가 냉장고 문을 천천히 닫으며 말했다. 그녀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아까는 안 된다며?”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적어도 다른 무당을 찾으실 때까지라도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네요.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저희도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내가 넥타이를 어루만졌다.
“사기꾼 소리를 들어도 저희도 자존심은 있으니깐요. 이대로는 못 물러나겠는데요.”
그녀는 내게 눈을 떼지않고 냉장고 앞에 식탁에 컵을 끌어오고는 물이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냈다.
“할 수 있으세요?”
그녀가 물을 따르고는 고개를 들었다.
“사기꾼 소리 안 들으시려면 효과가 있으셔야 할텐데요.”
“해보겠습니다.”
그때 소매가 밑으로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가 나를 잡아끌고 있었다.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믿어주세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내게 진보냐 보수냐, 요즘 정치 상황이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둥 여러 가지 말을 걸었지만 그렇게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왜 그랬어?”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몇 걸음 떨어져 걷던 누나가 말했다. 누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냐구.”
“내 맘이야.”
멋있게 대답하고 걸어가다 뚝 멈춰서 누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팔자가 사기꾼 팔자라서 그랬나 봐.”
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다시 집으로 걸어갔다. 우린 집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