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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작가 :
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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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6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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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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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여기에 가장 안 좋은 기운이 느껴져요.”

  내가 싱크대 앞에 서서 방울을 흔들었다. 사모님은 그러면 보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싱크대를 쳐다보았지만 나도 안 보이는 걸 그녀가 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집 안에 유일한 정상인인 월영이 아줌마만이 우리 뒤 식탁에서 돼지고기를 주물럭 거리며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여기는 예전에 전쟁터였나 봐요.”

  내가 말했다.

  “전쟁터요?”

  “네. 배고픈 잡귀들이 부엌에 몰려 있어요.”

  “세상에.”

  “여기 옛날에 산이었는데요?”

  월영 씨께서 말했다. 우린 그녀를 돌아보았다.

  “옛날에 그냥 동네 뒷산이었는데, 무슨.”

 

  “산에서 전쟁이 일어난 거죠. 우리나라가 산악지대잖아요. 전쟁은 대부분 산에 일어나잖아요.”

  그녀는 나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한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닐장갑을 벗고 냉장고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나는 다시 순진한 바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식을 시작하죠.”

 

  방울을 흔들고 소금을 뿌리고 러시아말인지 중국말인지 모를 거를 중얼거리는 짓을 한 시간 정도 하고 있을 때 계단에서 그녀가 내려왔다. 소파에 집에서 떠온 수돗물을 성수마냥 뿌리고 있던 누나는 재빠르게 물통을 숨기며 내게 저 쪽을 보라며 고갯짓을 했다.

  빛이 날 정도로 흰 피부에 깡마른 그녀는 가뜩이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바람에 계단을 내려온다라기보다 미끄러져 내려오는 거 같았다. 난간에 우아하게 손을 올리고 내려오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위태해보였다. 그녀는 우리를 힐긋 바라보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진짜 귀신 같애.”

  누나가 내게 속삭였다. 나는 시나리오 상 누나랑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누나 옆에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졌다.

  “엄마.”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그녀가 외쳤다. 엄마만 불렀을 뿐이었지만 충직한 가정부도 함께 다가왔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딜 가려고?”

  저런 표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걱정이란 걱정은 다 떠안은 표정이었다.

  “바람 좀 쐬려고.”

  그녀는 더 물어도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우아하게 돌려 현관으로 향했다. 그때 그녀의 엄마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경호원이었지만 실제 경호원은 아니었기에 나갈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렇게 치자면 무당도 아닌데 무당 짓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서비스 차원에서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뒤따랐다. 내가 현관을 나가려는데 사모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절대 다치는 일이 없게 해주세요.”

  나는 그러겠노라 말했다.

 

  강제철거나 아이돌 경호라면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런 일대 일 경호는 처음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할 지, 어떻게 보폭을 맞춰야 할 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스토킹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뒤를 흘끔 바라보더니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건 난 키가 185나 되었다는 것이었고 그녀는 나보다 작았으니 빠르기는 내가 더 빨랐다.

  “아 씨, 진짜.”

  거의 달리다시피 걷던 그녀가 우뚝 멈춰서더니 몸을 휙 틀었다. 나도 재빠르게 몸을 틀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 다시 몸을 틀었다. 그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쫓아와요?”

  당연한 걸 물어서 대답을 해야하나 싶었지만 그녀는 정말 대답을 원하는 얼굴이었다.

  “경호를 하고 있으니까요.”

  “괜찮으니깐 돌아가세요.”

  그녀가 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나는 멀뚱히 서있었다. 돈을 주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나도 30도 가까이 되는 이 날씨에 좋다고 양복 입고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에어컨이 빵빵한 그 궁궐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혼자 돌아왔냐는 말에 해맑게 가라해서 왔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린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가라니깐?”

  “못 가요. 임무가 있는데 어떻게 가요.”

  “아오, 진짜!”

  그녀가 냅다 달리기 시작했지만 저 이쑤시개 같은 다리로 나의 축구로 단련된 비복근이 뿜어대는 속도를 이겨낼 수 없었다.

 

  그녀는 누구를 만나거나 하지 않았다. 딱히 친구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걷다가 예쁜 옷이 입으면 멈춰서서 구경하거나 의미 없이 들어갔다 금세 나오고는 했다. 이따금 이어폰을 꽂은 채 씰룩씰룩 고개를 흔들고는 했는데 이 더운 날씨에 집에서 해도 되는 짓을 굳이 나와서 저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2시가 정도가 되자 카페에 들어갔다. 오전 10시부터 쫓아다닌 터라 하나 있는 정장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배도 우라지게 고픈 참에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그녀는 길게 이어진 줄들을 기다리며 매장에 진열된 빵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정작 주문을 할 때는 놀랍게도 아메리카노 밖에 시키지 않았다.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온갖 빵을 다 시켰다.

  나는 아가씨가 앉은 자리에서 한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무당을 부를 정도로 이상한 아가씨는 아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침을 뱉지도 않았고 별안간 괴성을 지른다거나 흥얼거리는 노래로 들어봐서는 최신 가요였지, 주기도문을 거꾸로 외운 노래 따위는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괴팍한 성격을 가진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의 노고와 짜증이 섞인 참치 샌드위치를 먹고 있을 때 내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드니 의뢰인의 소중한 따님께서 예배를 빠지고 놀러간 아이를 보는 엄한 아버지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참치 샌드위치를 삼키려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언제까지고 쫓아올 거예요?”

  “최선을 다해야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 앞에 앉은 것이다. 그녀는 동그랗고 가뜩이나 좁은 탁자에 두 팔을 포개며 올려놓았다.

  “그냥 가요.”

  명령이나 강압이 아닌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엄마한테 내가 잘 말할게요. 돈도 내가 그보다 많이 준다 했잖아요. 그냥 가요. 그리고 되도록이면 영영 내 곁에 오지 마요.”

  “경호를 약속했으면 경호를 해야죠.”

  “경호원도 아니잖아요.”

  “또 가짜 무당 얘기입니까?”

  나는 이번에야 말로 확실하게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에 점 하나로 의기양양한 콧대를 눌러줘야지.

  “저는 그냥 경호원일 뿐이에요.”

  “알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 쪽이 무당이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깐 절 쫓아오지 마요. 부탁이에요.”

  부탁. 나는 그 단어를 의심했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뜻이 있을까 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생각보다 누그러운 그녀의 말투에 나 또한 경계심을 풀었지만 그 뿐이었다. 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야수 같은 놈이었다.

  “절 고용한 건 사모님이세요. 사모님께서 절 고용하셔서 사모님께서 그만하라 할 때까지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겁니다.”

  그녀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잠시 창가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틈을 타 몰래 참치 샌드위치를 씹었다. 내가 세 번 정도 씹을 때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제가 죽는 날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 죽으려면 한참 남았으니깐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당연하죠. 제가 있는 한 아가씨는 다치실 일이 없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근사한 말이었지만 그녀에게 신뢰를 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다물었는데 어찌나 꽉 다물었던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난 맛있는 샌드위치를 잠시 놓았다.

  “귀찮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항상 뒤로 물러나서 있는 듯 없는 듯 있을 거구요, 저를 신경 쓰지…”

  “약속할 수 있어요?”

  “예?”

  “약속할 수 있냐고요. 날 안 다치게 하겠다는 거.”

  “당연하죠.”

  “만약 다치게 하면요? 그러면 경호 일 그만 둘 거죠?”

  “그만두기 전에 잘릴 걸요.”

  내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근사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나는 미소를 갖다치웠다. 그녀는 주먹을 주악거리더니 손톱으로 탁자를 긁었다. 드드득, 드드득 하는 소리가 기분 나쁘게 귓 속을 파고 들었다. 그녀는 한참을 멍하니 그 행동을 반복했다. 마치 손톱을 긁는 기계 같았다. 그녀의 손톱이 벌어지겠다 싶을 때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안타깝네요.”

  “뭐가요?”

  “오늘 제가 다치기로 되어 있거든요.”

  “뭐라고요?”

  “이따 다섯시 십사분에 공사자재가 떨어져서 이마가 다치기로 되어 있거든요.”

  “그게 무슨…”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더니 입구로 빠르게 걸어갔다. 난 손목시계 같은 훌륭한 물건은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2분. 샌드위치만 먹었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이어폰을 꽂더니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사라졌다. 무슨 5살짜리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정장을 벗어 셔츠를 펄럭였다. 그녀 또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가는 내내 몇 번이나 이마에 땀을 닦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멈추거나 쉬지 않았다. 마치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걸어갔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걷는다기보다 끌려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내는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이었고 나처럼 인생을 바쁘게 사는 사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그녀는 한참 시내를 걸어가더니 건물들 사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쫓아온다는 걸 알고 있으면 좀 기다려줘도 좋으련만 그녀에게 그런 매너는 없는 듯 했다. 난 뛸 수 밖에 없었다. 바닥에 올라오는 열기와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소가 핥는 것처럼 기분 나쁘게 나를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다음 순간 그녀가 사라졌다. 수많은 인파들 속으로 그녀가 증발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내 앞으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밀치다 시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다음 순간 나는 보았다. 정차한 버스를 타는 그녀의 모습을. 그녀는 유리창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버스로 달려갔지만 허사였다. 버스는 출발했다.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무작정 버스를 쫓아 뛰었지만 새마을운동 때부터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발전된 국산차의 엔진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늘은 나를 엿 먹을 생각인지 신호등도 죄다 파란불이었다. 나는 결국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무릎에 손을 얹어 숨을 몰아쉬었다. 문득 다섯시 십사분에 다칠 예정이라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네시 이십분이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 시간 안에 그녀는 다칠 것이었고 나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재밌는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이었다.

 

  무작정 택시를 타고 그녀가 탔던 버스 노선을 따라갔다. 택시기사는 프로였다. 요금을 두 배든 세 배든 원하는 대로 얹어주겠다고 무조건 버스를 따라잡으라는 내 말에 택시기사는 서울에서 제일가는 운전 실력을 발휘했다. 버스는 이미 시야에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택시기사는 버스 번호를 듣더니 지름길을 안다며 도로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나는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꼭 사랑을 쟁취하쇼.”

  택시에서 내리기 전 기사가 말했다. 도망간 여자를 찾아야 된다는 말을 사랑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하이에나로 본 거 같았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 했지만 버스가 출발하려 했기에 길 잃어버리면 택시타고 오려고 했던 거금 5만원을 건네며 재빨리 버스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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