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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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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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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6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5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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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김진영의 일기 -

 

  그가 왔다. 아래층이 벌써부터 시끄러웠다.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감히 무당인 척을 하고 우리 엄마를 농락하는 저 나쁜 놈을 내쫓기로 마음먹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저런 놈과 사랑에 빠진다니.

  미래는 가끔 악독하기 이를 데가 없다. 왜 하필 저런 놈인가. 24년을 살아오면서 ‘선로’를 벗어나면 더 큰 불행이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아무런 ‘대가’이 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녀석을 이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했을 것이다. 현관에 압정이라도 깔아놓았을 거라는 말씀이다.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구름모양 잠옷바지를 벗고 가장 도도하고 쎄보이는 옷을 입기로 했다. 미래의 선로대로 간다면 나는 잠옷바지를 입고 그를 맞이해야 할 테지만 옷을 갈아입는다고 크게 선로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 박자감. 노래를 부를 때도 약간의 애드리브는 노래의 재미를 이끌지만 너무 과하면 망치는 것처럼 미래라고 꼭 정해진 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 먹어야 되면 먹어야 되고 자야되면 자야되고 다쳐야 되면 다치면 되는 거니깐. 정해진 행운과 불행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귀여운 잠옷바지 대신 섹시한 옷을 입는다고 미래가 크게 선로를 이탈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내게 섹시한 옷이 없었다. 원체 몸도 밀대로 민 것처럼 평평하고 살도 잘 찌지 않는 바람에 나는 섹시한 스커트나 죽여주는 레깅스 따위는 없었다. 대신 예전에 (몇 없는 즐거운 기억 중이라고 할 수 있는)봄나들이 갔을 때 입으려고 인터넷에서 샀던 하얀색 원피스가 있었다. 내가 가슴에 지금보다 3배 정도 많은 지방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나마 볼만 했겠지만 그러지도 않았고 그럴 일도 없었으므로 입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잠옷 바지로 그를 맞이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는 싫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고민 따윈 집어던져버리고 재빠르게 하얀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통유리 앞에서 가장 도도한 자세, ‘팔짱 끼고 머나먼 곳 응시하기’를 했지만 너무 설정한 티가 나서 책꽂이에서 책을 대충 뽑아서 탁자에 펼쳐놓고 읽는 척을 했다. 바로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성격 급한 엄마가 다시 한 번 나를 불렀다.

  “진영아.”

  “안에 있어요.”

  세상에. 옘병. 안에 있어요. 라니. 차라리 기다리고 있어요. 라고 하지 그랬어, 멍청한 계집애! 나는 생각만큼 도도한 목소리도 귀찮다는 말투도 아닌 것에 무척이나 실망했다. 너무 착하게 태어난 죄다. 너무 착하게 태어나서 나쁘게 말 못하겠어. 오, 주님.

  혹시 모를 도둑의 2차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도어락 눌리는 소리가 들리자 내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를 내쫓아야 했다.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고 봐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유일한 내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3초 앞에 두고 떨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문득 또 눈물이 나려 했다. 그가 나 때문에 죽는다는 걸 미래로 본 이후, 믿기지 않는 현실에 수많이 울었던 지난 밤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래서 난 미소를 지었다. 플러스의 반대는 마이너스고 숟가락의 반대는 젓가락, 자동차의 반대는 비행기 듯이 눈물의 반대는 웃음이었다. 무슨 소리냐고? 일종의 주문이다. 나처럼 울 일이 많은 인생은 눈물을 조절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눈물의 반대는 웃음.

  문이 열렸다.

  “어서와요.”

  두 번째 실수. 차라리 기다렸어요, 라고 하지 그랬어.

  그 사람이 들어섰다. 면접을 보기 위해 샀지만 한 번도 입어볼 일이 없어서 오늘 처음 입어본, 앞으로 오 만 번은 입을 그 정장을 입고. 내가 본 미래보다 그는 훨씬 키가 컸다. 훨씬 더 못 생겼고 훨씬 더 섹시했다.

  (아니, 뭐라고?)

  그는 내 끝내주는 미소를 보고도 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내 책만 쳐다보고 있다.

 (멍청한 놈! 나를 보라고! 너 때문에 입은 내 하얀 원피스를 보고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지으란 말이야.)

  “밥은?”

  엄마가 묻는다. 엄마는 언제나 내 끼니를 걱정하신다. 마치 내가 단식 투쟁이라도 들어간 느낌이다.

  “먹었어요.”

  엄마가 눈썹을 위로 치켜든다. 내 대답이 차갑게 느껴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내 컨셉을 잘 유지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순간, 아! 그가 나를 쳐다본다. 드디어 펼쳐진 책보다 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사를 했는데도 씹는 건 이해해도 반갑다거나 처음 뵙는다거나 뭐 그런 말을 하지도 않는다. 순간 내가 입은 원피스 때문에 미래가 ‘탈선’했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남자에게 사고가 일어났고 바보가 된 건가?

  니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지.

  “처음 뵌 분이시네?”

  이번에 괜찮았다. 적당히 도도하고 예의도 있어보였다. 그러다 문득 이럴 필요가 있나 싶어졌다. 그와 나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데. 놀랍게도 들뜬 감정이 빠르게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난 더 차가워질 수 있었다.

  “엄마 비서.”

  “나영이 언니 해고 됐어요?”

  엄마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언제나 거짓말에 잼병이다. 지금 나에게 이 남자를 어떻게 설명해야 될 지 고민하는게 도화지에 크레파스마냥 눈에 뻔히 보인다.

  “아니, 김 비서는 회사에서 필요하고 이 사람은 집에서 필요하고.”

  풋. 웃음이 나올 뻔 한다. 엄마, 그런 변명은 너무 심각해요. 원래 엄마가 내게 하려는 대사는 저것보다는 나았는데 훨씬 못한 변명이 나온다. 아마 내가 원피스를 입음으로서 미래 대사에 살짝 영향을 준 듯 하다. 그런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언제나 종착점은 같다.

  나는 연석 씨가 변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 한 박자 대답을 쉰다. 내 미래에서 그는 그렇게 똑똑하지도 재치 있지도 않지만 궁지에 물리면 체대생답게 생존본능이 뛰어난 건지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빨리 돌아간다. 지갑에서 콘돔이 발견됐을 때 했던 변명은 정말 인상 깊은데. 나는 그를 날렵한 능구렁이라고 불렀다. 우리 날능이.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에선지 가랑이 사이로 두 손을 포갠 채 엄마만 쳐다볼 뿐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압박을 시작한다.

  “비서가 집에서까지 필요한 일이 뭐가 있어요? 영희 아줌마가 할 일을 대신 할 것도 아니고. 집은 CCTV가 지키고. 마사지 같은 걸 하시나?”

  내가 손가락을 안마하듯 조물조물 거렸다. 그의 손아귀가 벌써부터 그립다(겪지도 않았는데!). 유일한 특기가 안마라던 날능이. 할머니 안마를 많이 해줘서라고 했는데 단순히 센 게 아니라 정말 기술이 뛰어나다. 워낙 빈약한 신체라 다리에 쥐가 많이 나는데 그때마다 그는 내게 안마를 해주게 된다.

  침묵이 이어진다. 너무 심했나 생각이 들 때 갑자기 그가 입을 연다.

  “반갑습니다. 이연석이라고 합니다.”

  미래를 보았을 때보다 목소리가 좀 굵직했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사실 굵은 목소리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있담?).

  “사모님께서 저를 경호원으로 고용하셨습니다.”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본다. 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는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다. 이건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경호원이라고 나를 속이기로 되어 있었다. 경호원이라는 변명이 가장 적합한 변명이기는 했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그냥 미소를 짓기로 한다. 그 앞에서는 나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경호원이랬다, 비서랬다, 왔다갔다.”

  내가 과학실의 시계 초침처럼 검지를 왔다갔다 움직인다. 그의 당황한 표정이 너무나 귀엽다.

 

  네가 요즘 너무 다치길래 걱정이 됐어.

  나는 엄마의 대사를 생각한다. 엄마는 남자가 나가는 걸 확인하더니 내게 말한다.

  “네가 요즘 너무 다치길래 걱정이 됐어.”

  엄마가 너무 극성인 건 알아.

  “엄마가 너무 극성인 건 알아.”

  하지만 어떡해. 걱정이 되는데.

  “하지만 어떡해. 걱정이 되는데.”

  미래가 다시 제대로 된 기찻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이 상태가 되면 대가는 사라진 것이다. 원래는 대가가 생긴 다음에 원 상태로 복구하는 법이니깐. 옷을 다른 것으로 갈아입은 걸로는 엄마의 대사가 몇 개 바뀐 거 말고는 대가가 없던 것이었다.

  엄마는 내 표정을 살핀다. 죽는 날이 가까워지면서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다. 내가 24살에 죽는다는 건 16살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24살이라는 나이가 무척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16살은 자기가 애송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이니깐. 어쩌면 미래가 뒤바껴 내가 살 수도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이 가까워 오면서 내게도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정해진 행운과 불행이 있는데 나는 아직 불행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깐. 그것을 죽기 전에 다 몰아치려면 내게 안 좋은 일이 연거푸 생겨야 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행운이 많이 남은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가 초년에 고생 고생 생고생을 다 하다가 말년에 운이 트이는 경우다. 대기만성이라고도 부르더라고. 나는 정확히 그 반대의 경우였고. 뭐, 부잣집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을 쥐고 태어난 것이니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한 최고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이해해요.”

  “정말?”

  “그럼요.”

  진심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상의도 없이 한 일이라서 난 네가 화 낼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데.”

  “그럴 리가요. 다 저 걱정해서 한 일인데.”

  엄마는 정말 감격했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이해해줘서.”

  “네.”

  “귀찮게는 하지 않을게.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라고 할게.”

  그게 안 돼서 사랑에 빠지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는 엄지를 귀 뒤로 넘겼다.

  “경호원 만나볼래?”

  “좋죠.”

  “그래. 인사 나눠봐.”

  원래는 이렇게 엄마가 나가는 것이지만 나는 나가는 엄마를 부른다.

  “혹시 무당이나 그런 건 아니죠?”

  엄마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역시 거짓말에는 젬병이다.

  “농담 한 번 해봤어요.”

  엄마는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 방을 나간다.

  나는 통유리로 다가간다. 햇살이 비추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이런 세상에서 이제 곧 사라질 생각을 하면 정말 우울하기 짝이 없다. 사후세계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그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무(無)일까? 내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거지. 영영.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무섭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요즘 주책 맞게 눈물이 너무 많아졌어.

  노크 소리가 들린다. 나는 눈을 한 번 닦는다. 눈곱이 있을 지 모르니깐 한 번 더.

  한 번 더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성격도 급하지.

  난 이제 미래를 바꿀 준비를 한다. ‘기찻길을 탈선’하는 미래다. 탈선을 하면 바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다시 미래가 펼쳐지는데 마치 어긋난 기찻길을 수리할 때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난 그것을 ‘수리’라고 부른다. 대부분 이빨을 닦아야 하는데 귀찮아서 닦지 않거나 버스를 타야하는데 택시를 탄 것 같은 탈선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면 미래가 보이지만 이렇게 큰 탈선은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야한다. 그를 죽게 할 수 없다. 아니, 그랑 사랑에 빠질 수 없다. 그를 내쫓아야지. 어떻게든 내쫓아야지.

  난 큰소리로 외친다.

  “이육삼오공하나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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