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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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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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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6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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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가끔은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을 한다.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못돼먹은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 내가 가지는 근본적인 물음은 내가 누군가의 삶에 있어서 영향력을 끼쳤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적어도 내가 볼 때, 나는 누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누나는 한 번 출장을 갈 때마다 오십만원 씩 받는다고 했다. 차가 집 앞까지 오고 2시간 정도 푹신한 독일의 기술력이 집약된 시트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20만원. 집에 들어가서 몇 번 염불을 외우는 척 하면 20만원. 나중에 또 오겠다고 의뢰인한테 인사하면 10만원이었다. 앞으로 10번 정도만 이 짓거리를 한다면 누나가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충분하고도 남지.” 행정고시 비용을 마련했냐는 말에 누나가 닭다리 뼈를 뱉으며 말했다.

  “내가 계산해봤는데 지금도 방값, 식비, 교재값 모두 채울 수 있어.”

  “그럼 이제 그만할까?”

  누나는 치킨에 눈길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 병원비도 필요해.”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돈이 많은 양반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돈을 많이 쓴 것도 아니었지만 할머니가 모아놓은 돈은 천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할머니의 암을 제거하는데 몽땅 써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성공에 취할 필요가 없었다.

  “2천만원 정도만 더 긁어보자.”

  뼈를 통에 담는 덜그럭 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끝도 없이 먹고 또 먹었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는 코를 골면서 자더니 오자마자 치킨을 시켜서 이렇게 끝도 없이 먹고 있었다. 나는 그 악독한 눈꼬리 화장을 지우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닭을 먹고 있는 누나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다시 의뢰인을 찾아갔을 때 기사는 오늘은 조용히 무당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

  “첫째 아가씨 부부가 와있거든요.”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첫째 아가씨 성격이 미신을 전혀 안 믿는 성격이라서요.”

  그거야 둘째 아가씨도 마찬가지였기에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무당님께서 오늘 아예 일을 못하고 가실 수도 있어요.”

  “조용히 하면 되죠.”

  누나가 말했다. 기사는 슬쩍 누나를 백미러로 누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누나는 화장을 고치느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일단 분위기를 봐야죠.” 기사가 말했다.

 

  우리가 주차장 계단을 통해 올라갔을 때 소파에는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 남자가 앉아있었다. 우리를 등지고 있는 여자와 달리 우리를 마주보며 앉아있던 남자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반바지에 와이셔츠 차림으로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오른손에 차고 있는 주먹만한 황금빛 시계는 남자가 돈 꽤나 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커피잔을 든 채로 마치 행성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라도 되는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길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위층 말괄량이와 아주 똑같이 생겼지만 살이 20키로는 더 쪄보였다. 개인적으로 찐 편이 훨씬 나았다.

  “누구세요?”

  적대감을 감추지 않으며 남자가 물었다.

  “비서에요.”

  누나가 손가락으로 나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서?”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장모님 비서 바뀌었나?”

  “비서라고?”

  여자가 물었다.

  “우리 엄마한테 비서가 어디있어.”

  누나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부엌에서 사모님이 다가왔다.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는데 심지어 화장기도 없었다. 그녀는 우릴 보고 놀란 듯 눈썹을 위로 치켜들었지만 아주 짧은 순간 특유의 평온하고 맹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 오셨어요?”

  “엄마, 비서 있어?”

  첫째 딸이 물었다. 딸의 물음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필요해서.”

  “두 명이나요, 장모님?”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그는 딱 봐도 나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듯 했는데 만난 지 10초만에 싫어한다는 건 그냥 싫다는 뜻이었으므로 나도 그를 그냥 싫어하기로 했다.

  “전 경호원입니다.”

  예의바르게 내가 대답했다.

  “아가씨를 경호하죠.”

  “저요?”

  여자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너는 결혼했으니 아줌마지, 이 여자야.

  “다른 아가씨요.”

  그 순간 흥미롭다는 듯 나를 보던 아줌마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진영이 경호원 붙였어?”

  목소리에는 고슴도치처럼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왜?”

  “요즘 들어 자꾸 다치고, 사고 나서 해가지고. 필요해보여서. 어차피 병약하잖아.”

  “죽을 때가 됐나보지.”

  그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조금의 농담도 섞여 있지 않았다. 말을 끝마치자마자 과자를 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보.” 남자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하지.”

  그녀는 비스킷을 든 채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알잖아. 나 솔직한 거.”

  “미친년 아냐.”

  누나가 중얼거렸다. 누나와 눈이 마주쳤다. 우린 서로를 죽이고 싶어했지만 저렇게 냉혈한은 아니었다. 3초 이상 눈을 마주치면 속이 울렁거렸기에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경호원 씨.”

  그녀가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넥타이를 만졌다.

  “네.”

  “진영이 어때요?”

  학부모와 같은 말투였다.

  “착하고 훌륭하십니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심리적으로 어떠냐는 말이에요.”

  바보 같으니,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넘어가기로 했다.

  “착하고 훌륭하시죠.”

  아무래도 원하는 대답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노려보는 남자와 여자의 눈살에 버틸 수가 없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아가씨는 위에 있죠?”

  “네. “네. 내려오라 해줄래요? 식사 준비 다 됐다고.”

  나는 그러겠노라 말하고 2층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잠을 자거나 죽었거나 없는 척 하는 경우였는데 나는 없는 척 하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아가씨.”

  내가 두어번 더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는 문을 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토라진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남자친구가 된 심경이었다. 나는 다섯 번 정도 더 두드려본 후에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뭐라고 하면 죽은 줄 알았다고 하면 되겠지.

  “5분 뒤에 내려가요.”

  문을 열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다리는 이불로 돌돌 감싼 채 태블릿을 손에 들고 있었다.

  “뭘요?”

  “밥 먹으라고 부른 거잖아요.”

  아, 미래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제 앞에 얼씬도 말라는 말 제가 안 했나요?”

  그녀가 얼음보다 차갑게 말했다.

  “사모님이 경호를 맡기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제 말 안 믿는 거죠? 제가 지금 장난 치는 거 같아요?”

  나는 생각이란 걸 좀 하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절대 여기 오면 안 됐다. 나는 그녀를 구하려다 죽는 목숨이었을테니깐. 하지만 그녀 말대로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어쨌거나 나는 죽는 거였다. 이론상 그녀는 그녀 자신만 죽으면 나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내 운명이 그녀를 구하려다 죽는 운명인데 그 지독한 운명이 나를 가만히 놔둘까? 안 되면 내가 자고 있는 침대를 끌어서라도 도로 한복판에 놔둘 것이었다. 결국 이기적인 짓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음으로서 자기는 편하게 죽으려는 심보. 나는 신호등을 건너려다 그녀가 차에 치이려는 걸 보고 달려와서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예전에도 말했듯이 전 미신 안 믿습니다.”

  “그러다 죽는 거예요. 불에 뛰어드는 나방이랑 다를 게 뭐에요?”

  선반 위에 있는 과자를 꺼내려다 선반 위 물건까지 모두 쏟아버린 아이를 보는 듯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특히 저 구름무늬 잠옷바지가 귀여웠다. 분명 아동복이겠지.

  “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문득 궁금증에 내가 물었다. 그녀가 묻는 표정을 지었다.

  “미래를 볼 줄 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여기서 제가 뭐라 대답합니까.”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거랑 같은 듯 싶었다.

  “그럼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같이 죽겠다고.”

  “아, 제발! 이럴 줄 알았어!”

  “아니, 아가씨를 구하는 게 제 업무인데 아가씨를 구하다 죽으면 같이 죽어야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전 상관없습니다. 그러려고 월급도 많이 받는데.”

  “미쳤어요?”

  그녀가 태블릿을 치우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또라이 아냐? 죽음을 그렇게 쉽게 생각해요?”

  “죽음을 쉽게 생각하는 건 그 쪽이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내가 죽음을 쉽게 생각한다고요?”

  “죽으려고 애를 쓰는 거 같아요.”

  “죽을 운명이니깐. 아무리 애를 쓰고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미랜데 어떡해요? 나는 뭐 죽어야 되니깐, 아 죽는구나. 그래, 죽자. 이런 줄 알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데 어떡해요?”

  “그렇게 치면 나도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아가씨를 안 만난다고 일이 안 나겠어요?”

  그녀는 조그만 애완견이 손가락을 물어버린 것처럼 충격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서 죽는다고?”

  피리소리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나는 통유리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고 마당은 넓고 저 너머의 마을의 주택들은 비싸보였다. 살면서 저런 집에서 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 집만 해도 로또가 세 번 정도 당첨되어야 할텐데. 나는 내가 어느 집에서 살게 될 건지 생각해보았다. 허물 벗듯 벗어버린 바지나 옷이 널브러져 있고 식탁에는 먹다 남긴 맥주가 미지근하게 식은 채 놓여 있고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다가 일주일 넘게 방치된 쓰레기봉투에서는 날파리가 주위를 빙빙 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월세일 것이고 넓어야 17평이겠지. 이런 집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싶었다.

  그녀는 오죽할까. 침대가 우리 집 안방보다 넓은데.

  “살아야죠.”

  “그래, 이 바보야! 살아야지! 그러니깐 살려준다는 거 아니에요?”

  “아가씨도 삽시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못 들었다는 듯 다시 한 번 말했다.

  “같이 살아요. 우리. 살 방법을 찾아봐요.”

  나는 그녀가 내게 욕을 하거나 태블릿이라도 집어던질 거라고 생각했다. 성깔 같아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저글링이라도 한 걸 본 표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게 될 겁니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려줄게요.”

  그녀가 이불에 가려진 왼손을 내게로 쭉 뻗었다.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외손이 퉁퉁 부어있던 것이다. 하얀 손목이 부으니 왠지 하얀 기포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탈선의 대가에요.”

  그녀가 말했다.

  “세상에, 어디서 다친 거예요?”

  “삐긋한 거예요. 오늘 아침에 침대에서. 제가 말했죠? 종착점은 같다고. 다칠 일이 있으면 다쳐야 된다고. 그 쪽이 절 구해줘 버린 바람에 이렇게 돼버렸어요.”

  “사과 해야 하는 거예요?”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예요. 난 불행과 함께 하는 년이에요.”

  나는 그녀의 왼쪽 발목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축구 꽤나 해본 내가 볼 때 저 정도로 부으려면 백태클 정도는 당해야 되는 수준이었다. 나는 아픈 티도 내지 않는 그녀가 무섭게 느껴졌다.

  “병원부터 갑시다.”

  내가 말했다.

  “지금은 안 돼요. 아직 병원 갈 시간이 아니에요.”

  “그걸 꼭 재깍재깍 지켜야 됩니까? 이렇게 다쳤는데?”

  “굳이 그것 때문만도 아니에요. 이 식사를 놓치면 안 돼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거든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괜히 넥타이를 매만졌다.

  “안 그래도 연석 씨에게 해야될 말이 있었어요.”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요. 지금부터 전 밥 먹으러 내려갈 건데 엄마가 연석 씨랑 연정 씨도 같이 밥 먹자고 할 거에요. 그리고 식사는 아주 기분 나쁘게 흘러 갈 거예요. 저희 언니 때문인데 저희 언니가 와인에 취해서 저를 욕할 예정이거든요. 저희 언니가 절 아주 싫어하거든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 괜찮다는 거예요. 전 괜찮으니 괜히 나서지 말아요.”

  나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어서 멀뚱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쩜 저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던 섹시하게 생긴 아줌마와 아저씨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동생에 대해 내게 궁금해 했던 것도. 나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다 관두었다. 어쨌거나 이따 겪어야 될 일이었으니깐.

  하지만 한 가지는 넘어갈 수 없었다.

  “언니가 욕하는 걸 피한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나나요?”

  의외였다는 듯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잠시 대답할 말을 찾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다치거나 하진 않겠죠. 상해랑 거리가 머니깐. 하지만 언니에게 욕을 먹기 싫어서 피한다면… 그래요,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수 있죠. 제가 가는 이유는 탈선이 무서워서 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언니를 보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언니랑 저랑 사이가 안 좋지만 오늘이 언니랑 만나는 마지막 날이거든요. 그래서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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