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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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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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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작성일 : 19-11-06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2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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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부잣집이라고 음식이 다를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갈비찜과 잡채, 김치가 있었고 심지어 멸치볶음도 있었다. 가장 비싼 걸 찾아보니 소고기 전골이 식탁 한 가운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드래곤 고기나 엘프 귀 꼬치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30억이 넘는 집에 1년 만에 온 딸내미와 사위를 위한 음식치고는 너무나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누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식탁을 두리번거리며 음식을 보고 있었다. 캐비어라도 찾는 눈빛이었다.

  그녀의 예상(이라고 할 수 있다면)이 딱 맞았다. 그녀와 함께 내려왔을 때 가족들은 모두 식탁에 앉아 있었고 거기에 우리 누나도 껴있었다. 그녀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면 왜 저 여자가 남의 식탁에 앉아 있는지 의아했을 터였다.

  “언제 한 번 꼭 대접하고 싶었어요.”

  내가 자리에 앉자 누나와 나를 보며 친절하신 의뢰인께서는 말씀하셨다. 에피타이저로 열무김치를 오물조물 씹어먹던 첫째 딸이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대접까지야.”

  일순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앞에 와인을 마셨다. 가볍게 입을 축이는 수준이 아니라 물처럼 들이키는 수준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거 같았다.

  “아니이, 뭐 돈 주고 고용한 사람들한테 대접이라고 할 거 까지 있나 해서.”

  누나가 내 옆에 딱 붙어서 다행이었다. 누나가 욕을 중얼거릴 때마다 허벅지를 때릴 수 있었다.

  “고생하셨으니 그렇게 격어를 사용한 거지.”

  물을 홀짝이며 남편이 말했다.

  “뭐 나도 내 회사사람들한테 회식할 때 ‘제가 베푸는 음식 맛있게 드십시오’라고 하는데, 뭘. 장모님이 겸손하신 거지.”

  그건 아니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까 사모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는 온화해 보이고 싶은지 우릴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희 장모님이랑 처제 때문에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 집 사위고 최재식이라고 합니다. 조그만 벤처업체를 운영해요.”

  그가 누나와 목례를 나누고 나에게는 악수를 청했다. 그의 주먹만한 황금빛 시계 때문이 손이 참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연석입니다.”

  나는 덧붙일 말을 고민하다가 내보일 거라고는 전주 이씨 행렬공파 23대손이라는 사실 밖에 없었기 때문에 관두었다.

  “자기도 인사 하지, 그래.”

  그가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멸치를 냠냠 먹다 남편을 슬쩍 쳐다보더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 집 첫 째 딸이에요. 뭐, 비서랑 경호원이라고 들었는데 일 잘 했으면 해요. 문제 생기는 거 싫어해서.”

  “진희야.”

  남자가 쓰읍, 소리를 내며 주의를 줬다.

  “아니, 확실히 하면 좋으니깐.”

  그녀가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가 넥타이를 만지며 말했다. 여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멋진 자세네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아서 괜스레 뿌듯해졌다.

  “언니, 걱정 마. 일 잘하니깐.”

  진영 씨가 말했다. 이 집 첫째 딸께서는 진영 씨를 쳐다보았다. 마치 조각상이 말이라도 했다는 표정이었다. 사막의 바람처럼 삭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 그래요?”

  남자가 말했다.

  “처제가 괜찮으면 다 괜찮은 거지.”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지만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나도 어디서 웃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남자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남자는 민망한 듯 코를 몇 번 만지더니 아내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그래도. 그치, 여보?”

  여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니는 날 싫어해요.’

  나는 언니 쪽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식사시간은 구멍난 돛단배로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퍼내도 퍼내도 계속해서 들어차는 돛단배처럼 위태위태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집 첫째딸은 뭐가 그렇게 불만이신지 끊임없이 틱틱 대며 와인을 들이켰고 누나는 옆에서 계속 여자 뭔 술을 저리 먹냐는 둥 욕을 궁시렁 거렸으며 사모님은 레고라도 밟았는지 얼굴이 시뻘개지기를 반복했다. 놀라운 건 아가씨였다. 우리 아가씨께서는 계속해서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대학 시절 좋아하는 과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집적거리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언니, 이거 먹어봐. 이거 맛있다.”

  “언니, 그때 기억나? 언니 처음에 형부 데리고 왔을 때…”

  “애는 언제 낳을 생각이야? 조카 빨리 보고 싶은데.”

  언니는 누가봐도 불편해 보였고 점점 와인 마시는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누가봐도 여자는 진영 씨를 싫어했고 불편해했다. 난 차라리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야되지 않겠냐고 물어보려 할 때 그녀가 말했다.

  “아, 맞다. 그걸 깜빡했네. 경호원.”

  그녀가 전차 포탑이 돌아가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거 가져오세요.”

  “예?”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녀가 속도위반을 한 둘째 딸처럼 부끄러워하며 허공에 네모를 그렸다.

  “저번에 제가 산 거. 침대 옆에 있어요.”

  “그게 뭐야?”

  누나가 내게 속삭였다. 난 모른다고 고개를 저으려다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는 아가씨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융통성.

  “아,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에서 멀어져가는데 진영 씨가 계속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대학시절에 기억나? 그때…”

 

  침대 옆에 있다는 ‘그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침대를 한 바퀴 빙 돌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침대 밑에도 없었다. 나는 집 안을 샅샅이 뒤질 수 밖에 없었다. 한 10분 정도 지나고 나는 탁자 밑에서 ‘그거’를 찾을 수 있었다. 명품 브랜드가 적힌 쇼핑백에 ‘언니 선물’과 ‘형부 선물’이라고 적혀 있었으니 ‘그거’인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아니, 이걸 왜 여기에….”

  몰려오는 짜증을 뒤로하고 선물을 들고 방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디서 여자 고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시작 됐구나. 나는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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