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문을 두드려 그녀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정부의 말을 떠올렸다. 날카로운 창이 가슴 한 면을 깊숙이 찌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행복. 나는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진짜 얼빠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도, 한 번도 입어본 일 없었던 정장을 매일 빠는 수고를 하는 것도, 의뢰인이 우리 집에 찾아온 이유도 결국은 그녀의 행복 때문이었다. 그녀가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 서 뭐하는 것인가? 넥타이나 만지고, 사무적인 말투를 하려고 애만 쓰고, 운전기사랑 진보냐 보수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나도 결국 돈벌레라 욕하던 누나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나를 사랑하게 되고.
지옥에 갈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지옥에 갈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라는 말이 들리지 않자 나는 도어락을 눌렀다. 뭐라고 하면 쓰러져서 걱정돼서 말하면 될 것이었다. 변명거리야 만들어내는 게 내 특기였으니. 하지만 이번엔 그녀도 만만치 않아. 도어락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창과 방패군. 내가 생각했다.
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아가씨!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그녀가 소리쳤다.
“괜찮으니 이제 돌아가세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오지 말아요!”
그런다고 내가 갈까. 가뜩이나 누나를 태운 차가 출발해서 나는 오갈 데도 없었다. 삭막한 거실로 내려가기는 더더욱 싫었고.
“아직 퇴근 시간 멀었습니다!”
“아, 좀 꺼지라고!”
“사모님이 아가씨 괜찮은지 보고 오라 하셨습니다!”
“뻥 치지 마요! 그리고 나 괜찮다니깐!”
미래를 보면 거짓말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럼 앞에서 대기 하겠습니다.”
“제발 돌아가세요. 제발.”
“그럴 수는 없어요. 아가씨 미래에서는 제가 어떤 줄 모르겠지만 전 여기 계속 있을 겁니다. 계속!”
그 말은 사실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서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초과근무를 노리는 것도 아니었다. 연민에 가까웠다. 그녀에게는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의자를 가지고 올까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그녀가 문 앞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의자 가져오려 했죠?”
“아니요.”
“뻥치지 마요.”
“네. 다리가 아파서요.”
“정말.”
“미래에서는 내가 의자에 앉아있던가요?”
“네, 의자에서 졸던데요.”
“별로 안 피곤한데.”
“아침이었거든요.”
그녀가 뒤돌아서 침대로 향했다. 나는 안으로 들어라는 뜻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침대 옆에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정말 아침까지 가지 않아서 문 열어준 거 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어차피 열어주긴 하군요.”
그녀가 드라이기를 껐다.
“착각 하지 마요. 아침에 나가려고 문 연 거 뿐이에요.”
“사모님은 괜찮으세요.”
내가 말했다.
“뻥치지마요.”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모습에 안심이 됐다. 나는 화장실 앞에 널브러진 하얀 원피스를 바라보았다.
“이게 예상했던 미래였나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한테 심부름을 시킨 건 이 꼴을 보여주기 싫어서 일부러 탈선한 건가요?”
“점점 머리가 좋아지시네요.”
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이 넓은 공간에는 드라이기의 바람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남은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짜는 걸 보았다. 드라이기를 쥐고 있는 다친 손목이 아픈지 가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 나는 그 행동이 예쁘게 보이고 동시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머리를 말려서 무엇을 하나. 어차피 곧 죽을 건데. 그녀는 지금 1초 1초 아까운 시간을 왜 커튼처럼 긴 머리를 말리는데 쓰고 있을까. 이것도 미래에 정해져 있어서? 그녀는 무슨 기분으로 1분 1초를 보내고 있는 걸까. 그녀가 강인하다고 느껴졌다.
“왜요?”
그녀가 침묵을 깨며 물었다. 그녀는 멍하니 자신을 보는 나를 기분 나쁘다는 듯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봐요?”
“왜요? 그 미래에는 제가 쳐다보는 건 없습니까?”
그녀가 드라이기를 끄더니 머리를 손으로 비볐다.
“방금 탈선했으니 미래가 틀어졌잖아요. 당연히 모르죠.”
“무슨 말이에요?”
“제가 설명 안 해줬어요? 수리에 대해서.”
“수리요?”
“정해진 미래를 멋대로 탈선하면 한동안 미래가 보이지 않아요.”
“그럼 방금 문을 열어줘서 미래가 한동안 안 보이겠네요.”
“이런 사소한 건 몇 분일 뿐이에요.”
“그럼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지도 모르겠네요.”
“고백이라도 하게요? 와인에 젖은 게 너무 섹시해 보였어요?”
약간 기대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그럼 이제 영영 안 만나시는 겁니까?”
그녀는 머리를 비비던 손을 멈췄다. 그녀는 생각하듯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에는 없어요.”
“슬프지 않으십니까?”
“어쩔 수 없죠.”
“저도 누나가 있는데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결국에는 또 화해하고 그러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거 같네요.”
“뭡니까?”
“언니랑 화해하라는 말이죠?”
“정말 미래를 보시나 봅니다.”
그녀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 웃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화해하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요. 죽음 예상 시간으로부터.”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 침묵하더니 10초 정도 지난 뒤 입을 열었다.
“제가 동생과 아빠를 죽였는데 어떻게 화해를 할 수 있겠어요?”
나는 진희 아줌마가 고래고래 소리쳤던 그 말을 떠올렸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녀도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았고 나도 예의가 있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죽였다는 게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수능국어처럼 은유적인 표현이길 바랐다. 그러면 저 난리를 친 게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원래 똑똑한 척 하는 여자들은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법이니깐.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그녀가 내 말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지만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나도 누나랑 대판 싸우면 평생 말 한 마디 안 하고 살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오죽할까. 나는 복잡한 문제는 잠깐 제쳐두기로 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말고요.” “아마 못할 거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너무 큰 죄를 지어서요.” 그녀는 빙긋 웃더니 화장실 앞에 널브러진 옷을 들어 펼쳤다. 와인이 세계 지도보다 더 크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버려야겠다, 그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옷이나 사러 갈까요? 병원도 들리는 김에.”
그녀는 (내 예상대로)고개를 저었다.
“그건 미래에 없어요.”
“병원은요?”
그녀는 내 곁을 지나쳐 탁자로 가더니 탁자 옆 쓰레기통에 옷을 버렸다. 그녀는 책꽂이에 책을 꺼냈다.
“내일 가야 돼요.”
그녀가 탁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탈선 되었다면서요. 그걸 꼭 지켜야 됩니까?”
“한 번 탈선 됐다고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정해져있었던 일단 최대한 지키는 게 중요해요. 직접 안 겪으면 몰라요. 섬세한 조정이 필요해요.”
그녀가 검지와 엄지를 살짝 벌려 한 쪽 눈을 찡그리고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태연자약하게 책을 읽고 있는 그녀가 한심해보였고 짜증이 났고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 결국 이렇게 죽는다는 것인가? 앉아서 저렇게 책이나 읽고, 통유리 보면서 똥폼이나 잡고, 언니한테 와인이나 뒤집어써서 저 오라지게 예쁜 원피스나 버리고, 손목이 아파도 탈선인지 지랄인지 때문에 병원도 못 가고, 그냥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배부른 햄스터마냥 쳇바퀴만 돈다는 얘기였나? 뭐가 무서워서? 대체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 걸까? 지옥에 갈까봐? 그 허울 좋은 변명인 주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까봐?
문득 누나 생각이 났다. 온갖 멸시와 왕따를 당하면서도 바득바득 공부를 했던 그 여자. 나중에 어떤 천벌을 받을 지 모르지만 일단 지르고 보는 여자.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우리 누나가 이렇게 하는 것도 다 미래에 정해져 있던 것일까? 무당을 사칭하고 불쌍하고 멍청한 아줌마 돈이나 삥 뜯는 게 다 정해진 팔자라는 것일까?
그러면 이걸 짠 시나리오 작가놈은 아주 멍청이가 틀림 없었다. 이런 삼류 쓰레기 같은 시나리오가 다 있남!
나는 탁자로 쿵쾅쿵쾅 다가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그녀가 보고 있는 책을 덮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갑시다, 병원.”
내가 말했다.
“뭐예요? 갑자기? 미쳤나 봐.”
“가요, 병원.”
“아직…”
“아프잖아!”
크게 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유격을 하도 열심히 받는 바람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진짜 미친놈 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이럴 때 제일 좋은 건 사과하면 안 된다.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아픈데 뭘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다가 잘못 되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
그녀가 눈을 감고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괜찮아요. 문제 될 거 없다고요. 잘못 되거나 하는 건 미래에 없어요.”
“어떻게 확신해요?”
“뭐요?”
“내가 지금 그 쪽 팔 부러트리면? 그래도 내일 갈 겁니까?”
그녀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내게 팔을 뻗었다.
“해봐요, 그럼.”
나는 너무 말라 비틀어진 것처럼 보이는 팔을 바라보았다. 너무 하얀 피부에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여서 어떤 예술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조각 같이 느껴졌다.
“해 봐, 괜찮으니깐.”
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꽥 소리를 질렀지만 난 놓지 않았고 그녀도 입술을 깨물며 시뻘개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른 부러트려.”
그녀가 말했다. 정작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내 행동을 기다리다 입을 열었다.
“못하죠? 그렇죠. 그건 미래에 없으니까. 그 쪽 미래에도 이런 나쁜 행동을 할 거는 없을 거야.”
그녀는 책을 내려다보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무엇 때문에 이러는 지 알아요. 답답하겠지. 짜증나고. 미래니 뭐니 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 거.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은 사람이.”
“맞아요.”
“그래, 눈에 다 쓰여 있었어. 그런데요. 그럴 수 밖에 없는 인생도 있어요.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십 사 년을 사는 동안 수많은 방법을 쓰고 쓰고 쓰다가 찾은 방법이에요. 인정. 인정하는 거. 미래는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지구가 태양을 돌 듯 인생도 순리대로 흘러감을 인정해야하는 거예요. 고깝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우에요. 다만 그걸 모르기 때문에 개척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다 정해진 시나리오죠.”
“그럼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아픈 사람은 아프게, 잘난 사람은 잘나게, 못난 사람은 못나게 살아간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불교에서는 업보라고 해서 전생에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예요.”
그녀가 남은 손으로 내게 책 표지를 들어보였다. 윤회사상과 철학에 대하여.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라고 이러고 살고 싶어서 살겠어요.”
그녀가 속삭이 듯 말했다.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안 되는 걸. 그러니까 이제 놔줄래요? 팔 아픈데? 이것도 탈선이에요.”
내가 놓은 생각을 안 하자 그녀가 천천히 팔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울컥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내가 짜증났고 인생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 슬펐고 팔을 빼내고 있는 그녀가 가여웠다. 그녀가 이걸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 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는 깡마른 조그만 아가씨가 아니었다. 이미 모든 걸 받아들인 노인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빠져나가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꼭 잡았다.
“그러면 이렇게 죽는다고?”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해요. 진짜로.”
“말해요. 이대로 죽을 겁니까?”
“예!”
그녀가 소리쳤다.
“이대로 그냥 죽게 내버려 좀 둬요! 이런 인생인데 어떡하라고? 뭘 바꿀 수 있는데요? 바꿀 수 있는 거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까 그만…”
나는 그녀를 끌어와 입을 맞췄다. 끌어오는 순간 고통에 그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입술이 포개지는 순간 내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버둥거리며 나를 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박력은 갖춰야 되는 법이었다.
입술을 뗐을 때 그녀가 내 뺨을 쳤다. 왼쪽 뺨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얼얼했다.
“미친놈!”
그녀가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
“이게 제 미래였어요.”
내가 말했다. 그녀가 기가 찬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떡합니까. 그 쪽이랑 키스하는 게 내 미래였는데.”
“개소리 하지 마! 이 미친놈아!”
“난 그딴 거 안 믿어!”
내가 말했다.
“미래니 탈선이니 안 믿어. 있다 해도 안 믿어.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난 누구처럼 겁 먹어서 여기 와서 책이나 읽을 생각 없어.”
“그래, 너 잘났다. 그렇게 잘 나서 가짜 무당 행세나 하냐, 이 나쁜놈!”
“내가 가짜 무당인지 경호원인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당신이 보고 있는 미래가 한낱 망상인지 진짜 미래인지 어떻게 아는데! 그냥 보고 있는 대로 행동하니깐 그렇게 펼쳐지는 것 뿐이잖아! 미래를 개척할 자신도 없어서 그냥 따라가고 있는 거 아니야?”
“닥치고 꺼져! 니깟 놈은 백 번 살아도 내 삶을 이해 못 해!”
“꺼져주지!”
나는 터벅터벅 걸어가 방문으로 걸아갔다. 막 문을 열려는데 무언가가 내 등을 툭 때렸다. 하얀 뭉텅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얀 원피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벌개진 눈으로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버려주지!”
내가 옷을 주워 들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