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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호위기사
작가 : 휘루
작품등록일 :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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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2     조회 : 367     추천 : 0     분량 : 5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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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자면 클라우드는 레이라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황제와 황태자에게 애지중지 여겨지는 공주가 황성 밖으로 나간다고? 잠깐 놀러간다는 허락을 받아도 어마어마한 인력이 투여되어 호위기사가 뒤에 줄줄이 달리고 호화스러운 마차에 숨어있는 그림자들까지 달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레이라는 그 대규모 인원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이 싫어 황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클라우드가 호위기사를 하면서 레이라가 황성 밖으로 나간 것은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인력낭비가 싫다나? 그래서 처음에는 그녀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정말로 미쳤거나.

 

  “또 대규모 인력이 되겠네요. 언제 외출하실 예정이신가요?”

 

  “아니, 이번에 나가는 건 너랑 나. 둘 만이야.”

 

  “...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클라우드가 회의적으로 말했다. 황제와 황태자가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을 거라는 걸 클라우드는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공주의 말을 아무리 잘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이 건만큼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공주가 맨 몸으로 나간다는 건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림자를 따로 두는 것도 아니고 호위랑 단 둘이서만 가겠다고?

  헤나 역시 클라우드의 말에 동의했다. 시중을 드는 헤나까지 두고 클라우드와 둘만 나간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클라우드는 시중을 드는 법을 몰랐다. 그 역시 후작가의 귀족이었기에 수발을 받는 것에 익숙했다. 물론 공주의 호위기사를 하면서 그 전과 같은 수발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귀족이었다. 공주의 에스코트라면 모를까 그 외에 식사라던가 옷에 무언가 묻었을 때라던가 절대로 그는 수습하지 못할 일들이었다.

 

  “혹시 공주님께서 또다른 음모를 꾸미고 계신 거라면... 컥!”

 

  클라우드는 레이라의 갑작스러운 정강이 차기 공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보답이라고 했잖아? 황성 밖으로 오랜만에 나가는 거야. 1년 동안 내 옆에 있느라고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잖아?”

 

  “솔직한 심정을 말씀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소... 솔직한 심정이라니?”

 

  당황스러워하는 레이라의 모습에 클라우드는 씩- 미소 지었다. 레이라는 클라우드가 부끄러워하느라 몸을 베베꼬고 있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클라우드는 부끄러워서 몸을 꼬면서도 들을 얘기는 다 들었다. 이래봬도 공주의 호위기사였다.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는 알아야했다.

 

  “이번에 수도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고 싶으신 것 아닌가요?”

 

  뜨끔-

  무언가가 레이라의 가슴을 강타했다. 저 예리한 녀석- 레이라는 클라우드의 이런 점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놀려먹기 좋아 보이면서도 이렇게 예리하게 툭툭 치고 들어오는 것이 그녀를 방심할 수 없게 했다.

 

  “엄청난 호위들을 이끌고 축제에 임하면 제국민들의 불만을 사겠지요. 사람들이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되니까요. 그래서 몰래 저와 둘이 나가고 싶으신 것 아닌가요?”

 

  “너... 너 혼자서도 나 지킬 수 있잖아?”

 

  “저를 꽤나 신용하고 계시네요? 저는 언제나 어디서나 빈틈이 잔뜩 있는 호위기사에 맞지 않은 인물이라고요?”

 

  레이라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고 클라우드를 노려보았다.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호위기사였다면 공주님을 모시고 황성 밖에 다녀왔을 지도 모르지만요.”

 

  “그렇다고 내가 너를 놓아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

 

  “어라, 들켰나요?”

 

  정말이지 방심을 할 수 없는 녀석이라며 레이라가 혀를 찼다. 언제 어디서든 사직서를 꺼낼 수 있는 녀석이라는 걸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자신이 바보였다. 다과회에 온 것도 다 황제가 시켜서인데...

  레이라는 볼을 잔뜩 부풀리고는 클라우드를 두고 앞질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헤나는 화가 난 레이라의 뒤를 따르며 살짝 클라우드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공주님의 심기를 거스른 그가 다시 보였다는 감상을 살짝 취소했다. 그는 역시 클라우드였다.

  클라우드는 가만히 헤나와 공주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말괄량이 공주님이 황성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라... 이제 어떻게 한다?”

 

 

 *

  따사로운 햇살이 훌륭한 아침이었다. 창 밖 풀잎에 맺힌 이슬은 반짝였고, 새들은 노래했다. 그에 맞추어 클라우드는 오늘도 훌륭한 필력으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사직서를 작성했다.

 

  “...하여 공주님께서 황성 밖으로 나가시면 저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공주님을 지킬 수 없어 이에 사직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훌륭하게 레이라에게 걸려 사직서는 클라우드의 전용 소각장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진짜 질리지도 않네.”

 

  레이라의 말에 클라우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사직서를 제출했으면 놓아줄 만도 하건만. 그녀는 도무지 클라우드를 놓아줄 생각을 안했다.

 

  “내가 황성 밖으로 나가면 너도 간만에 황성 밖 공기도 좀 쐬고 얼마나 좋아? 너에게 주는 보답이라니까?”

 

  “공주님께서 저만 데리고 황성 밖으로 나가시면 저의 일이 늘어나요.”

 

  “결국, 그게 본심인 거지?”

 

  “어이쿠. 제가 지금 소리내서 말했나요?”

 

  말이나 못하면.

  레이라는 클라우드의 능청스러운 모습에 입을 삐죽였다. 이번 축제는 그녀가 손꼽아 기다려온 축제였다. 100회를 맞이하는 축제여서 더욱 화려하게 한다는 소리에 정말로 나가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제국민들을 위해 축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녀가 참가한다면 그녀의 눈치를 살피느라 아무도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로 100회를 맞는 축제야. 클라우드는 보고 싶지 않아?”

 

  “저는 축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사람이 많잖아요?”

 

  “명령이야. 나를 축제에 데려가.”

 

  “폐하께 허가를 요청하고 오겠습니다.”

 

  “잠깐!”

 

  클라우드가 능글거리며 황제에게 가려고 하자 레이라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호위였다. 물론 클라우드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 황실 규칙에 따라 공주의 외출을 허락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레이라가 싫어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공주님께서도 방법이 없는 건 알고 계시지 않나요? 폐하께 말씀드리지 않는 이상, 공주님께서 황성 밖으로 나가시는 것은 불가능해요.”

 

  볼을 크게 부풀리며 레이라는 눈을 치켜뜨고 클라우드를 노려보았다. 맞는 말만 하는 그가 얄미웠다.

 

  “아바마마께 너를 하사받았으니 내 명을 좀 받드는 건 어때?”

 

  “공주님의 명을 받들지 못하는 형편없는 기사는 황성에서 쫓아내심이...”

 

  “그건 기각이야. 그리고 명을 받들지 않는 기사는 황성에서 쫓아내는 게 아니라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레이라가 제법 협박조로 말하자 클라우드는 ‘흐음~’하는 짧은 한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제 목숨은 아까워서 말이죠.”

 

  클라우드는 팔을 꼬고 오른쪽 검지를 까딱거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레이라는 그런 그의 모습에 얼굴을 폈다. 클라우드의 저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저런 모습으로 생각을 하는 클라우드는 후에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내었다.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상황에 대해서 해결을 하려고 마음먹은 모습이기에 레이라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평상시의 클라우드는 미덥지 않았지만 저 모습의 클라우드는 신뢰감이 넘쳐났다.

 

  “역시 폐하를 알현하려 가야겠어요.”

 

  “아바마마께는 비밀로 하지 않으면 분명 호위를 엄청 붙이실 건데?”

 

  “괜찮아요. 폐하께 말씀드려도 공주님께서는 저와 단 둘이서만 황성을 나서시게 될 거니까요.”

 

  “믿어도 되는 거지?”

 

  레이라의 물음에 클라우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 목숨이 아까우니까요. 공주님께서 제 목숨을 내놓으라 하셨으니 저도 살기위해 명을 받들어야지요.”

 

  정말로 그런 협박에 굴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레이라는 일단은 클라우드를 믿기로 했다. 그녀의 머리에서는 아무리 짜내어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황제에게 떼를 쓴다고 하더라도 이 건 들어주지 않을 부탁이었다.

 

  “그럼 믿을게.”

 

  클라우드는 그렇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바로 저쪽에서 걸어오는 헤나를 불렀다. 잠시 소각장에 클라우드의 사직서를 전달하고 돌아온 헤나는 그의 부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가시는 건가요?”

 

  “폐하를 알현하러 갑니다. 공주님을 잘 부탁해요.”

 

  “그건 솔렝경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예요.”

 

  헤나는 쌀쌀맞게 말하고는 레이라의 옆에 딱 붙어 섰다. 그 모습을 본 클라우드가 미소를 한 번 짓더니 이내 특유의 가벼운 걸음걸이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클라우드는 항상 자리를 비울 때, 헤나한테 부탁을 하네?”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공주님 곁은 제가 계속 있는데도 말이죠. 쓸데없는 부탁이에요.”

 

  헤나가 클라우드가 일일이 부탁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 답했다. 클라우드는 항상 헤나에게 레이라를 부탁했다. 다과회 때에도 헤나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사냥에 가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직을 외치면서도 헤나가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 레이라의 옆을 지켰다. 헤나가 없는데 자리를 비워야 할 경우에는 레이라와 함께 이동하거나 헤나가 돌아올 때까지 일을 미뤘다.

 

  “저렇게 말하면서도 꽤나 성실하단 말이지.”

 

  “폐하께서 명하신 일이니 기사된 자로 거스르지 않는 것 뿐 일거예요.”

 

  “그렇겠지만...”

 

  레이라는 사라져가는 클라우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끔 클라우드의 묘한 행동에 뭔가 가슴 속이 이상해지는 기분을 받고는 하는 그녀는 무언가 못마땅한 듯 표정을 한 번 찡그리고는 이내 뒤돌아섰다.

 

  “클라우드가 해결한다고 했으니까 믿고 있어도 되겠지.”

 

  “공주님께서는 솔렝경을 은근히 신뢰하고 계시는 군요.”

 

  “...클라우드를 신뢰하는 게 아니라 내 판단을 신뢰하는 거야.”

 

  단호한 듯 말하는 레이라의 모습에 헤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판단이 클라우드를 신뢰한 것이 먼저 아니냐는 말을 했다간 레이라가 또다시 툴툴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이라는 흘끔 클라우드가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빠르기도 하지.

  레이라는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허리를 꼿꼿이 피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클라우드가 정말로 외출을 허가받는 다면 레이라도 준비할 것이 있었다. 그런 레이라의 뒤를 헤나가 조용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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