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윤재는 지난 기억이 새롭게 다가오는지 가끔 미소를 올리다, 서글픈 인상을 짓기도 하며 표정을 다양하게 바꾼다. 연애를 못해봐서 딱 잘라 뭐라고 하진 못하겠는데, 그렇게 가슴에 쌓였던 경험이 사람의 얼굴을 저렇게 다채롭게 만드는 거겠지. 그러면서 윤재가 ‘장희진’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장희진, 예쁜 이름이네.”
“그렇죠? 이름만큼 하는 짓도 예쁘고 얼굴도 귀여웠어요. 사회복지학과 다녔는데 나중에 산동네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서 자원근무를 할 거라 했죠. 인정 많고 따뜻한 가슴을 가졌어요.”
“어떻게 만났는데?”
“겨울방학을 맞아 동네 카페에서 알바를 했어요. 왜 주병장님도 그 동네 사니까 아시겠네요. 간판에만 카페라고 쓰여 있지 외양은 완전 다방 같은 곳인데, 일층이 아니라 이층에 있어요. 그 아래에 롯데리아가 자리 해요.”
“아, 알 거 같다. 우리 동네에 거기 말고 딱히 카페라고 할 만한 곳이 없지, 아마.”
“네. 거기서 봤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따뜻한 거 마시자고 들어갔었죠. 메뉴판 들고 다가오는데 그대로 눈에 들어왔죠. 헤, 헤.”
쑥스럽게 웃는데 나도 같이 웃음이 나온다.
“어쩌다 헤어졌어?”
잠시, 사이를 뒀다 말을 이어간다.
“장기 휴가 나온 사이였어요. 앞뒤 생각 않고 쫓아다녀서 친해졌고 크리스마스 때 멋진 둘만의 시간도 가질 생각을 했죠. 그러다 복귀 날짜가 다가오는데, 아, 지금, 내가 이럴 입장이 아닌데, 라고 퍼뜩, 후회가 드는 거예요.”
감상에 잠겼는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분위기가 심각해져 말 사이에 끼어들고 싶진 않았다.
“휴.”
“말하기 부담스러우면 그만 해도 돼.”
“아니요. 이제 다 지난 일인 걸요.”
숨을 고르더니 입술을 달싹인다. 이제 눈이 쌓이는 게 보인다. 지방에서는 눈이 오기 시작하면 금세 쌓여버린다. 그 두께가 성큼, 굵어진다.
“가장 하기 싫은 말이, ······, 기다려 달라는 거였어요. 괜히 저 때문에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한창 좋은 나이인데 군대 있는 사람 기다린다고 남들 다하는 거 해보지도 못 할 것 같고 그래서······.”
“애인 군대 있으면 많이들 깨지더라고. 우리 부대에도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 둔 애들 한두 명이 아니잖아.”
“그렇죠. 그게 고무신 거꾸로 신은 사람들 함부로 탓할 순 없잖아요. 혼자서 마냥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렇겠지. 게다가 주변에서 얼마나 집적대겠어.”
“흐흐흐.”
“크크크.”
내가 윤재 어깨를 툭, 건드렸다.
“보기보다 생각이 깊어.”
“보기엔 안 그래 보여요?”
“보기에도 그렇지만 속은 더 깊다고 하는 거야.”
“어째 위로하는 말처럼 들리네요.”
씁쓸한 웃음. 웃음이 씁쓸하다는 게 딱, 들어맞는 표정이다. 평소에도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 표정이 윤재를 훨씬 성숙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크리스마스까지 같이 보내버리면 정리하기 너무 힘들 거 같았어요. 크리스마스 바로 전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해버렸죠.”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을 내리는 짙은 구름 사이로 해가 어슴푸레 삐쭉, 보였다 숨는다.
“크리스마스 다 돼서 그런 건 좀 잔인한대.”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었는데 그렇다고 질질 끌면 상황이 더 나빠질 듯했죠.”
“너도 쉽게 한 결정은 아니겠지.”
“네, 사실 꽤 힘들었어요. 나름 많이 좋아했는데.”
“기다리겠다는 얘기는 안 해?”
“군대 있다는 얘기 안 꺼냈어요.”
내가 눈을 몇 번 껌벅이자 싱겁게 미소를 짓는다.
“그 당시엔 그랬어요. 괜히 변명만 늘어놓는 것 같기도 하고 기다리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깔끔하게 정리해버리자고 결심했었죠.”
“그래도, ······, 이유는 제대로 말해줬어야지 않나?”
“그런가요? 지금도 제대로 확신이 서질 않네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이었는지.”
“살면서 정답이 뭔지 알 때 보다 모를 때가 더 많지. 삶에 명확한 결론이 어디 있겠어. 매 순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주머니를 뒤진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요란하게 장식된 스티커 사진을 보여준다. ‘그렇게 끝냈으면서 왜,’ 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턱 바로 아래까지 걸치는 단아한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사진 안에 자리한다.
“사진을 아직 가지고 있어?”
“버리질 못하겠어서요.”
‘참하게 생겼네.’ 사진을 보며 바로 떠올렸다. 참, 하다는 말이 딱히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설명을 하라면 못하겠는데 그 단어가 사진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올라왔다. 그렇게 ‘장희진’이라는 이름을 들었고 사진으로 얼굴을 봤다. 그리곤 그게 다였다. 그 날 계속 눈이 퍼붓는 바람에 종일 눈을 쓸어 퍼내도 티가 나지 않았다. 흰 눈 속에서 즐기는 낭만은커녕 추위에 손과 발이 얼고 부대 보일러마저 얼어버려 곳곳에서 눈에 대고 욕하는 소리만 잔뜩 들렸다. 그 이후로 전역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윤재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다. 제대할 땐 윤재가 말년 휴가를 나가버려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부대를 나왔다.
막상 제대하고 나니까 부대에서 나오기 전 계획했던 것과 달리 딱히 하는 일도 없는데 시간이 빨리 흘렀다.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군대 시계는 나라에서 조작한 게 분명하다. 사회 나오니까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는데. 나름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생각한 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막 제대한 후엔 이제 갓 사회 나온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자는 생각에 계획대로 하지 않아도 하루쯤 괜찮겠지 그렇게 차일피일 넘겼다. 그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며 자꾸 지나치다 학교 복학할 시기가 가깝게 다가왔다. 맙소사, 그게 분명 아직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이 ‘어느새’로 바뀌었다. 부모님에게 넘겼던 돈은 불안했던 내 예상대로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더 불어나기는 고사하고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부모님은 그 돈을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듣도 보도 못한 비트코인이라는 것에 투자하셨고 제대로 날리셨다. 복리 이자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못 드시는 부모님께 어쩌겠냐고 말꼬리를 흐리며 넘겼지만 속은 제대로 쓰렸다. 부모님이 꼭 나중에 복리 이자까지 함께 쳐서 갚겠다고 하셨지만, 부모 자식 사이에 돈 가지고 냉정히 따질 일도 아니고 부모님 경제 사정을 뻔히 아는데 그게 언제가 될 지 당장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계획했던 해외여행은 잠시 미뤄두고 알바를 구하기로 방향을 변경했다. 군에서 갓 제대한 신체 건강한 남성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알바는 빨리 구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이게 또 생각대로 만만치 않았다. 추운 겨울이라는 날씨가 문제였다. 겨울이라 일거리가 줄어든 데다 연말이 다가오니 대부분 구인 광고가 새해를 지나 고용을 하고 있었다. 연말 특수 알바는 이미 고용이 끝난 상태였고. 내 구직 타이밍이 어쩌다 보니 좋지 않았다. 일은 없고 어디 놀러갈 돈도 없어 남는 건 시간뿐이었다. 시간이 남아 뭘 하려고 해도 다 돈이 든다. 심지어 집 근처 어딘가 약속을 잡아 나가려 해도 교통비부터 먼저 계산하게 된다. 여유가 없으니 친구랑 술 한 잔 하기도 아쉬웠다. 어디 식당에 들어가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기도 겁이 났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엔 가장 만만한 곳이 걸어갈 거리에 있는 집 근처 편의점이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만 해도 다른 생각은 없었다. 허전한 배를 뭘로 채울까 하는 고민만 있었다. 삼각김밥? 컵라면? 아님 만두? 가장 만만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골라 카운터로 향했는데 점원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바로 이름을 떠올렸겠지. 바로 누군지 떠올리지 못하고 계산을 마쳤다. 컵라면 물을 받으면서도 ‘누구지?’ 계속 기억해내려 애썼다. 아, 장, 희, 진. 그래, 내가 예쁜 이름이라 했던 그 이름. 머리 모양이 바뀌어서 떠올리기에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는데 사진에서 본 그 얼굴 그대로였다. 역시나 참, 하다는 인상이다.
그게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를 나는 알고 있다는 사실. 뜨거운 물에 적당히 익은 라면 사리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가끔씩 그녀를 향해 힐끔, 거렸다. 자기를 빤히 쳐다본다는 인상은 주지 않도록 조심했다. 선반 위로 물건 채우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삼각김밥을 입에 물며 고개를 뒤로 넘겼다. 이번엔 창고에서 음료 박스를 꺼내와 뜯어낸다. 힘 좋은 내가 도와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괜히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 그런 제의를 하면 그게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듯했다. 너무 서두르지 않는 거다. 아니, 서두를 일 자체가 없다. 내가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게다가 ‘임윤재’라는 이름을 꺼내면 오히려 질색할지 모른다. 안 좋게 헤어졌으니 그 이름이 반가울 리 없고 윤재를 통해 안다고 하면 외려 경계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 하아, 딱히 친해질 거리가 없네. 아니, 뭐, 그렇다고 내가 그녀와 친해지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집 근처 편의점에 일하는 점원이랑 얼굴 트고 친해지면 좋은 거고 아님 마는 거고. 그 날은 그렇게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고 나왔다.
핑계라고 하면 핑계일 수 있겠지만, 달리 갈 데가 없었다. 알바는 구해지지 않고, 군대 다녀오니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친한 친구들은 연말이라 다들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군 제대한 복학생 만나달라고 하니 모두 새해 지나고 보잔다. 먹는 데 쓰는 돈은 괜찮은데 교통비로 나가는 건 왜 그렇게 아까운지 어디 나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서 바람이라도 쐬려 나가자고 밖으로 나서면 꼭 지나치게 되는 곳이 그 편의점이었다. 예전엔 그저 집 근처에 자리한 편의 시설 중 하나였다면, 이제 나름 의미를 가진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일하는 가게. 지나다 보면 의뭉스레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내 이름은커녕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궁금하다니 그런 자신이 한심하긴 하면서도. 편의점 간판 바탕색이 파란색과 녹색이 섞였다는 게 그때야 눈에 들어온다. 그 전엔 그걸 보고서도 인지하지 못했는데.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니까 그 사람 주변까지 함께 마음에 들어온다. 그녀는 이런 나를 알고나 있을까? 이렇게 행동하는 내 모습이 그녀 눈에 띄려나? 그러다 어느새 자연스레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멈칫, 할 때가 있다. 이미 들어섰으니 뒤돌아 나가긴 그래서 결국 안으로 향하지만. 잔돈을 건네받다 손톱을 분홍과 자주를 반반 섞어 칠한 게 눈에 들어온다. 직접 했을까? 아님 누가 해줬을라나? 요즘엔 손톱 관리해주는 가게도 많이 보이던데. 별 게 궁금하다. 그런 내가 한심해진다. 이번 주에 편의점에 들른 건 몇 번째지? 자주 들르다 보니 매번 먹던 것만 먹을 수 없어 삼각김밥과 컵라면 종류를 거의 다 외웠다. 이제 나름 궁합을 맞출 줄도 안다. 참치마요네즈는 얼큰한 새우탕과 어울린다는 그런 나만의 메뉴 선택. 참, 누가 알면 웃을 일인데 여기에 자주 드나들며 그런 걸 익혔다. 오늘은 냉동식품 정리를 한다. 내일은 어디를 손 보려나? 내일 그녀가 뭘 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언제부터 그녀가 이렇게 궁금해진 걸까? 아마도 그녀가 누군지 깨닫고 나서겠지. 처음엔 그저 반가웠고 그 다음엔 친근해졌다. 말 한 번 제대로 섞은 적도 없으면서. 핑계가 아니라, 그녀가 뭘 할지 알기 위해서 내일 들러야겠다. 아니면 그게 궁금해서 하루 종일 뒤척이다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내 성격이라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런 자식을 낳아놓으신 부모님을 탓해야겠다. 왜 저를 이런 식으로 만드셨습니까? 아버님!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