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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징크스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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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징크스 6
작성일 : 19-10-24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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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 나 빨간불에 징크스 있는데. 빨리 건너자.”

  “징크스라니?”

  “왜 있잖아. 어떤 거에 엮여 반복해서 불길한 일이 생기는 악순환.”

  “네 징크스는 뭔데?”

  “길 가다 건널목에서 자꾸 빨간불에 발목이 잡히잖아. 그러면 꼭 그 날 하루는 재수가 없어. 벌써 두 번 연속 걸렸어. 이를 어째. 네 번이면 죽을 사잔데. 희진아, 넌 그런 거 없어?”

  정은이가 그렇게 물었을 땐 막상 생각나는 게 없었다. 살면서 징크스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으니까. 반복해서 불길한 일이 생긴 적이 있었나? 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정은이가 그렇게 말을 꺼내니 갑자기 이것저것 모든 게 그랬던 거 아니었나, 하고 괜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에잇, 그런 쪽으로 생각하면 더욱 그런 것 같으니까.

  겨울방학동안 같이 듣기로 한 영어회화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바람이 차갑게 쌩쌩 불어대고 있었다. 징크스에 대해 얘기하던 정은이랑 헤어지고 바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평소 일 시작하는 때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점장님이 일찍 나와 달라고 미리 당부를 하셔서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직행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겨울방학에도 알바를 한다. 작년에는 카페 서빙을 했었지만 올해는 편의점 알바다. 서빙 알바를 하면서 팔목이랑 어깨 근육에 너무 무리를 줘서 한동안 근육통에 시달리고 나니 올해는 더 이상 서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다른 자리를 찾아보니 가장 흔하게 나오는 광고가 편의점 아니면 피시방이었다. 둘 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구하기에 이력서를 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투명유리로 벽을 채운 편의점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주 바깥을 내다보게 된다. 누가 나를 이 공간에 강제로 가둔 것도 아니고 내가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온 자리이지만, 가끔은 이 사각형 공간에 갇힌 죄수처럼 느껴진다. 저 문에서 한 발짝만 내딛으면 바로 밖이지만 내가 정말 마음대로 나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자유를 저당 잡히고 돈을 벌 자리를 마련했으니 감수해야겠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거리는 더욱 화려해진다. 각종 장식이 길거리를 뒤덮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들리는 캐롤송이 어김없이 울려 퍼진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는 빠지지를 않는다. 오죽하면 영어랑 안 친한 내가 가사를 외울 정도일까. 우리 편의점도 오늘 겨울장식품이 도착하는 대로 크리스마스에 맞게 화사한 모양새를 갖출 예정이다. 점장님이 틈틈이 시간 내서 장식해놓으라고 했으니까 하는 흉내라도 내놓고 퇴근해야 할 것 같다.

  시기를 맞춰 반복되는 일상. 작년에는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었는데 올해는 편의점에서 하다니. 내년에는 또 어디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할지 예상을 못하겠다. 이왕이면 호텔이나 리조트 같은 근사한 곳이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안녕하세요.”

  음료수 배달하는 아저씨가 바퀴 달린 간이 운반대에 높다랗게 음료수 상자들을 쌓아서 안으로 들어선다. 나보다 연장자인데도 항상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신다. 그래서 더욱 호감이 간다. 우리나라 정서가 그렇듯이 나이가 무슨 무기인 것처럼 행동하는 어른들이 많은데 이 아저씨는 다르다. 언제나 예의 바르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낮추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더욱 친절하게 대하려 하고 아저씨한테 뭐라도 하나 더 챙겨준다. 편하게 ‘이씨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하셔도 함부로 그렇게 칭하지 못하겠다. 사람 대하는 방법이 그런 게 아닐 런지. 자신을 낮춰 오히려 높게 보이게 만드는 기술. 나도 언제 그런 고단수가 될 수 있을까.

  이씨 아저씨랑 기분 좋게 얘기 나누는 중에 한 무리의 꼬마 손님들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세 부류의 손님이 있다. 가게 안을 극성스럽게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초딩 꼬마들. 술 취한 채 들어와서 말도 안 되는 온갖 잡소리를 늘어놓으며 지갑도 제대로 못 찾는 취객들. 그리고 꼬박꼬박 반말 해대며 애꿎은 편의점 알바생한테 온갖 트집을 잡는 진상들. 가장 싫은 건 세 번째 진상들이지만 이 꼬마 초딩들도 만만찮다. 얘들이 들어서면 나갈 때까지 제대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워낙 주의가 산만해서 툭하면 선반에 올려놓은 물건을 쳐서 떨어트리고 순서대로 진열해놓은 것들을 뒤섞어놓기 일쑤다. 게다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누나 코믹 메이플 신간 아직 안 나왔어요?”

  “오후에 나온다고 했는데 오늘 중으론 들어올 거야.”

  “삼각김밥 먹을래.”

  “난 무조건 고추장 불고기.”

  이것들은 말을 시켜놓고 금세 지들 얘기하느라 바쁘다. 콱, 일렬로 세워놓고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내 동생이었으면 국물도 없다. 뒤이어 우리 단골 손님 중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늘은 모자를 눌러써서 짧은 머리가 제대로 안 보인다. 갓 군을 제대한 것 같다. 맨 처음 봤을 때는 군복을 입고 편의점에 들렀었다. 어디 인사하러 가는지 음료선물세트를 샀었다. 두 번째는 간단히 요기를 해결하려고 했는지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먹고 나갔다. 그 후로 편의점에 자주 들러 얼굴을 익히게 됐다. 더 이상 군복을 입지 않고 평범한 옷차림이었지만 짧게 깎은 머리가 유독 눈에 띈다. 제대할 때가 다된 말년 병장들은 머리를 일부러 기르는 것 같던데 곧 입대할 신병처럼 단정했다.

  얼마 전부터 거의 매일 들른다. 신문을 사고 컵라면을 먹고 갈 때도 있다. 미간이 좁아서 내가 좋아하는 인상은 아닌데 그렇다고 내 기준에서 못생기지도 않았다. 성격만 좋으면 데이트 신청 받아줄 만한 정도는 된다. 그런데 서글서글한 성격은 아닌가 보다. 말이 별로 없다. 편의점에 들렀다 볼 일만 보고 돌아가는 편이라 거의 말을 나누지 못했다. 얼굴을 마주치면 인사만 건네고 바로 눈은 원하는 물건을 찾아 진열대로 향한다. 나의 우상인 조인성님 수준 외모라면 그런 냉랭한 모습마저 쿨한 매력으로 다가오겠지만 그에게서 그런 매력이 뿜어져 나오진 않는다. 외모가 달리면 성격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나.

  아무튼 진상을 떨진 않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내 지론은 확실하다. 적이 아닌 모든 사람이 나의 친구. 특히나 편의점 이용하러 들러주시는데 내가 누구를 마다할까. 이렇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분들은 더욱 감사하고. 내가 점장님한테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다. 우리도 우량고객들을 위한 포인트 적립카드 같은 거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결국 알아보시기로 하셨다. 원체 일의 진행속도가 느리셔서 언제쯤 제대로 실행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바탕 소란을 떨어놓고 초딩 손님들이 밖으로 퇴장하자 진이 쭉 빠졌다. 저런 손님들만 있으면 이 일도 오래 못할 거다. 씀씀이가 큰 것도 아니면서 직원 힘만 빼놓고 사라지는 황야의 무법자 같은 것들. 여기가 무슨 지들 놀이터냐고. 어울려서 놀려면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던가.

  짧은 머리 단골손님이 신문, 김밥, 컵라면을 들고 카운터로 다가온다. 계산을 할 것 같더니 다시 뒤로 돌아가 음료코너에서 딸기우유를 하나 집어 든다. 오늘은 여기 오래 계실 모양이네.

  “애들 손님 상대하려면 힘드시겠어요.”

  말을 꺼내면서 눈은 지갑에 있는 돈을 찾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음, 드디어 말을 트시려는 건가.

  “힘들어도 아이들 장사가 나름 쏠쏠하거든요. 군것질을 워낙 좋아하니까요. 일부러 그 연령대에 맞춘 물건들을 보기 좋은 데다 진열해놓기도 해요.”

  “저도 그 나이 대에 그랬어요. 뭘 먹어도 뒤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파 오더군요.”

  정은이가 나를 향해 종종 지적하는 희멀건 웃음이 그의 코와 입주위로 맺힌다. 내 웃음이 너무 미적지근하다고 했다. 정은이는 속 시원한 걸 좋아하는 편이라 답답한 행동을 참지 못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중에 나올 듯 말 듯 웃음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저거 보라고 저 희멀건 웃음’이라며 싫은 내색을 그대로 비춘다. 이 사람이 정은이 말 그대로 웃고 있다.

  “그러게요. 키 크려면 잘 먹어야겠죠.”

  “주로 오후에 일 하세요?”

  계산대에 놓인 것들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다 갑작스런 질문에 고개를 드니까 바로 눈이 마주쳤다.

  “아, 네, 주로 오후요. 필요하면 오전에 일할 때도 있는데 제가 아침에 학원에 다니거든요.”

  바코드를 찾으려 시선을 내렸다. 계산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어째 눈을 마주치니 어색했다.

  “뭐 배우시는데요?”

  “친구랑 영어회화 학원에 다녀요.”

  “아, 네, 영어회화. 그렇죠? 요즘엔 영어 못하면 취직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라.”

  “영어에 취미도 없는데 배우려니 고역이에요. 다들 하는데 나만 안할 수도 없고.”

  봉지에 물건을 하나씩 담는 내 손동작이 조심스럽다. 그가 그걸 앞에서 보며 조심스러워 하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생각하니 더욱 몸이 굳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확인할 수도 없고. 웃기네, 정말.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괜히 긴장하기는.

  “감사합니다.”

  그의 동작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신문을 앞에 펼쳐놓고 김밥 포장지를 풀고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해 컵라면을 들고 움직인다. 나무젓가락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지금 내가 뭐하는 거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눈으로 쫓아다니고 있다.

  초딩 손님들이 어지럽힌 자리를 치우고 진열대를 정리하는 중간에도 한 번씩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 김밥을 집거나 컵에 들어있는 면에 젓가락질 하는 것 말고는 열심히 신문을 읽는다. 슬쩍 뒤로 지나가면서 펼쳐진 곳을 보니 구인란이다. 아, 일자리 찾나 보네. 아무래도 갓 제대하고 취직자릴 찾는 듯하다. 군 제대 후 쉴 만큼 쉬었으니 슬슬 일을 시작하려는 건가. 요즘엔 일자리 찾기 쉽지 않은데 행운을 빕니다. 냉동식품 자리가 비어가는 게 보여 물품을 찾아 창고로 향했다. 복도에다 냉동식품 박스를 재어놓고 하나씩 진열하는 사이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컵라면이 바닥까지 줄었다. 신문도 거의 끝을 향해 간다. 이제 나가려나? 함께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저 매장 안에 같이 있기만 했는데도 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바쁠 때야 그의 존재를 신경 쓸 여유가 없지만 이렇게 한가해지면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이래서 애완동물을 키우나?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존재. 흠, 슬쩍 위아래로 훑었다. 나름 애완용으로 괜찮긴 하겠는데. 큭. 속으로 웃음이 난다. 애완용이라니. 성인 남자를 애완용으로 기를 재력과 매력도 없으면서 무슨. 혼자서 별 생각을 다 한다. 저 사람은 내 애완용이 될 생각 눈곱만큼도 없을 텐데. 하, 오늘 하루 이렇게만 잘 지나가면 좋겠다. 그렇다면 영어회화 시간에 겪은 나쁜 기억은 싹, 잊어주겠다. 이제 거의 끝나간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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