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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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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 발로르
작성일 : 19-10-28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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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위망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용사는 여전히 눈치 못 챈 척을 하며 장작에 부채질을 한다. 그 상태로 조용히 눈만 돌려서 주변을 확인했다. 숫자는 여섯. 산속에 둘, 갈대밭에 하나, 풀숲에 셋이다. 그 중 한 마리의 기척이 어째 눈에 익다. 그레이스를 만나러 가던 때, 산속에서 그를 지켜보던 그 시선이다.

 

  ‘여기까지 따라온 건가!’

 

  가호를 잃었다고 하나 괴물이 이렇게 근접할 때까지 몰랐다는 건 그냥 그의 기감이 해이해졌다는 것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레이스에게 괴물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용사의 마음은 여전히 괴물들을 지옥 저 밑바닥에 두고 있었다. 괴물이 있다는 걸 듣기만 했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음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실책이다.

 

  하지만 용사는 자신의 실수에 몰두하지 않는다.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히고 깊게 생각한다. 그들의 목표는 뭘까? 아마도 복수일 것이다. 죽지 않는 몸으로, 온갖 고통을 다 받았을 테니 그렇게 만든 용사가 어지간히도 미울 것이다.

 

  용사는 집단의 리더로 보이는 중년에게 말한다.

 

  “괴물이 날 쫓아왔다. 내가 모두를 지킬 순 없어. 자네가 도와줘야 한다.”

 

  다 알아듣지 못했어도 상관없다. 괴물이라는 단어 하나만 알아들었어도 좋다. 다행이 그것만큼은 전해진 모양인지, 안 그래도 날카롭던 중년의 눈초리가 더더욱 치솟았다. 그 칼날 같은 시선이 용사를 한 번 째려보더니 곧바로 마을사람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빠르게 명령이 이어진다.

 

  “괴물이 나타났다! 다들 각오 단단히 하도록!”

 

  용사는 그 말의 태반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중년과 마찬가지로 괴물이라는 한 단어를 포착해냈다. 중년은 능숙하게 진영을 바꿔서 서로 등을 맞대고 원형으로 뭉쳤다. 어떻게 괴물을 상대해야하는지 알고 있는 자였다.

 

  큰 원조를 바라지 않았던 용사도 그 모습엔 제법 놀랐다. 겁먹고, 주눅 든 이들은 있어도 싸움을 피하고 도망치려는 이들은 없었다. 괴물은 교활하다. 그렇기에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이용할 줄 안다. 이렇게 사람들이 뭉쳐 있음에도 고작 여섯이서 달려드는 이유도 명확하다.

 

  용사가 인간을 버릴 수 없음을 알기에, 충분히 승산을 점 쳐 볼만 하니까 덤벼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다. 용사 혼자라면 얼마든지 포위망을 벗어나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책으로 이 불쌍한 사람들이 죽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그가 뻗을 수 있는 손은 고작 두 개. 모두를 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저렇게 굳건히 버텨준다면, 그는 힘낼 수 있었다. 어떻게든 격퇴할 희망이 보인다.

 

  사람들에게 이변이 보이자 몸을 숨겼던 괴물들이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로 크게 외친다.

 

  “오랜만이군! 용사!”

 

  “역시 가호를 잃었어!”

 

  “히―――― 햐! 죽이자! 죽여 버리자! 죽어도 또 죽이는 거야!”

 

  “너희들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용사는 힐류브리트어로 외치며 정신을 고양시킨다. 신의 언어가 그에게 힘을 가져다준다. 정말로 그렇진 않지만 그런 기분이면 충분하다. 고양감은 몸을 자극하고 몸이 사고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도록 일체를 이루어낸다. 오직 용사만이, 인간의 한계치를 이루어낸 그만이 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여섯 방향을 점하고 달려오는 괴물들. 가장 먼저 충돌한 것은 용사와 검은 소의 형상을 한 발로르다.

 

  “너에게 복수할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정말 꿈에 그리던 순간이군.”

 

  발로르는 죽죽 늘어지는 검정을 바닥에 뿌리며 달린다. 발로르의 두터운 뿔이 정면으로 치닫지만, 용사는 그것을 피해선 안 된다. 그의 뒤에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치기 위해 뼈칼을 위에서 아래로, 한 합 크게 내려친다.

 

  뿔과 뼈가 부딪히자 거센 불이 활활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르륵거리며 검은 불이 사그라지듯, 땅에 처 박힌 발로르의 얼굴이 뭉개졌다. 하지만 용사는 긴장을 풀지 않는다. 예상대로 뒤이어 바닥에 뿌려졌던 검정이 크게 일어나 해일처럼 들이닥친다.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용사는 부드럽게 횡베기로 그림자를 양단했다.

 

  형체가 없는 것을 베어낸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실제로 해 보인 용사였지만 속으로 좋지 않다며, 찌푸려지지 않는 표정을 찌푸린다. 발로르는 그림자를 타고 뒤로 물러나면서 민감하게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감정을 잡아냈다.

 

  “크하하! 실력이 녹슬었구나, 용사!”

 

  “닥쳐라! 내 이번에야말로 너를 갈가리 찢어 죽일 것이다.”

 

  발로르의 도발을 일축한 용사는 자세를 취한다. 초조함에 마음이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마음 속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칼날이 위로 향하도록 어깨 위로 견준다. 그대로 자세를 낮추고 축이 되는 발을 힘껏 박찬다. 돌진하면서 팔을 앞으로 쭉 내밀며 뼈칼을 발로르의 목젖이 있는 위치에 찌른다. 마치 소가 들이받는 듯한 모양, 발로르의 돌진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공격이 의식한 속도 그대로 현실의 공격으로 이어진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0.1초 단위. 3m란 거리는 분명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발로르는 소답지 않게 옆걸음질 쳐 공격을 회피한다.

 

  칼날이 바람을 가르자 펑―――― 작게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과 거의 동시에 숨이 막히는 듯한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한 사람이 컥, 컥, 들이쉬어지지 않는 숨을 필사적으로 들이키며 절명했다. 하지만 용사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저들을 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한 시라도 빨리 괴물들을 쓰러뜨리는 것뿐이다.

 

  용사는 다시 한 번 발로르에게 칼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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