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첫회보기
 
그 이름, 네프릭토스
작성일 : 19-10-28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4041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이런 멍청한 새끼.’

 

  중년은 자신을 힐난했다. 고작 토끼 세 마리에 홀려 집단을 위기에 빠뜨렸으니, 지도자로서 지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들은 언데드와 괴물을 피해 일평생 살아간다. 지금의 인류 전부가 그렇다.

 

  소지할 수 있는 물건은 열량이 높은 음식(주로 꿀)과 귀중한 자원(주로 철) 그리고 몸을 지킬 수 있는 무기 뿐. 그 외에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사치다. 그리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사치를 부리며 살 수 있을 정도로 생존은 만만치 않았다.

 

  집을 짓지 못해서 안 짓겠는가. 도망칠 때 어차피 버려야 하기 때문에 안 짓는 거다. 왜 배를 곯으면서도 사냥을 하지 않겠는가. 사냥을 하다가 그것들의 눈에 띄게 되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멋대로 돌아다닐 수가 없는 거다.

 

  이름 모를 언데드가 토끼 세 마리를 들고 왔을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여섯 마리는 아니더라도 그것이 괴물을 몰고 왔을 상상은 했어야 했다. 그냥 그러지 못했다고 대충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판단을 그르친 그 대가가 목을 노리는 커다란 칼날이 되어 휘둘러지고 있었으니까.

 

  중년은 앞에 선 사마귀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에 의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괴물의 이름이 네프릭토스라는 것도 사마귀가 아니라 딱정벌레에 가깝다는 것도 몰랐지만 날아드는 낫 형태의 두 팔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온몸의 구멍에서 벌레를 토해내며 죽었다. 네프릭토스를 닮은 그 새끼벌레들은 시체를 빠르게 먹어치운다.

 

  “목을 베어 죽일 거야!”

 

  “네프릭! 벌써 한 명이다! 조금은 적당히 해라!”

 

  “내장을 끄집어내서 죽일 거야!”

 

  “냅둬, 들을 거였음 진즉에 들었지. 우리가 조심하자고.”

 

  “이것들아! 놀지 말고 빨리 처리하고 도와달란 말이다!”

 

  “야 발로르 실력이 녹슨 건 용사가 아니라 너 아니냐?”

 

  “우우! 포워르의 광전사란 이름이 울겠다!”

 

  “천만의 대군을 이겼다는 것도 다 뻥이지?”

 

  “척추를 뽑아버릴 거야!”

 

  유유자적한 태도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발로르가 소리쳤다. 용사와 자웅을 겨루던 그는 어느새 수세에 몰려 있었다. 공격 하나하나를 막는 게 너무나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도 괴물들은 여전히 여유롭게 굴었다. 발로르의 꼴사나운 모습을 지들끼리 킥킥거리며 비웃는다.

 

  용사가 아닌 인간들은 전부 그들의 먹잇감이고 유별난 특식에 불과했다. 고작 인간에게 당할 수도 있다는 상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인질로 사용할 몇 명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여버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직 네프릭토스만이 살육을 위해 미친놈처럼 인간들에게 덤벼들었다.

 

  중년은 머리를 두 동강 내겠다는 듯 휘둘러지는 손낫을 메이스로 막아보고자 앞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손낫은 그것이 부질없는 노력이라는 걸 상기시켜주듯 메이스를 그대로 관통해 들어와 중년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크윽······.”

 

  중년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낀다. 기분 나쁜 감각. 형용할 수 없는 거북함이 머리 끝가지 치달았다. 괴물의 공격을 맞을 때마다, 그런 감각이 강해지고 있다. 속에서 올라오는 구토를 꾹 참으며 다음 공격을 다시금 메이스로 막는다. 이번에 부딪힌 것은 나무가 아닌 쇠 부분이다.

 

  이번엔 캉―――― 소리를 내며 손낫이 튕겨나갔다.

 

  중년도 괴물을 많이 상대해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집단의 최연장자답게 몇 마리쯤은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괴물의 상대법도 알고 있었다.

 

  괴물은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때문에 실체를 가진 것에게 피해를 줄 수 없지만, 똑같이 피해를 받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각자가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능력으로 만큼은 실체를 가진 것들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즉, 공격할 순 있으면서 공격을 맞지는 않는 부조리한 것, 생물이 아닌 무언가가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단 하나, 그들이 특별한 능력으로 인간을 공격하듯 인간도 특별한 무기로 그들의 공격에 대처하는 것이 가능하다. 바로 세계각지에 퍼져 있는 신단에서 재련한 성철聖鐵이 그것이다. 그걸로 만든 무기는 괴물의 공격을 막을 수도, 그리고 괴물에게 작지만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괴물을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괴물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 능력을 조심하면서 천천히 피해를 누적시켜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피해를 준 다음, 이동한 흔적을 지우며 멀리멀리 도망치면 끝이다. 괴물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에 그런 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중년은 안다, 괴물 한 마리를 무찌르는데 5명이 죽으면 평타, 3명이 죽으면 집단의 생존에 기뻐해도 될 정도로 그것들이 까다롭다는 걸. 입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몸으로 실천하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걸.

 

  20대6. 과연 이 숫자에 절망하지 않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 모두가 도망은 치지 않는다. 홀로 도망친 끝에 있는 것이 더욱 처절한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과연 맞선다고 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을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눈알을 파버릴 거야!”

 

  그런 불안을 떨쳐내고자 중년은 소리친다.

 

  “머리카락 하나 베지 못하는 그딴 물렁한 낫으로 날 쓰러뜨릴 순 없을 거다!”

 

  “어우, 그거 참 무섭네, 인간.”

 

  “키킥, 그거 참 굉장한데?”

 

  공포. 절망. 좌절. 그 끝에 놓인 포기. 승산은 희박하고, 그를 죽이려 드는 괴물들은 인간의 처절한 혈투를 비웃는다. 그럼에도 집단은 싸웠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그들이다.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굴강한 의지만큼은 옛 영웅 못지않다.

 

  메이스가 딱정벌레의 두터운 껍데기를 두드린다. 텅, 소리를 내며 튕겨 나오지만 껍데기는 움푹 파여 있고, 그것으로 약하지만 분명히 피해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손낫에 이어 네프릭토스는 입에서 두껍고 커다란 거미줄을 뱉는다. 메이스로 그것을 자를 순 없었다. 두 손으로 메이스를 잡고 휘두르며 일부러 양손을 들이밀었다. 거미줄은 몸이 아닌 두 손을 꽁꽁 묶어버리는데 그쳤다. 그리고 그 두 손에 들린 것은 그의 유일한 무기다. 휘두르던 그 기세는 죽지 않았고 그대로 공격을 감행한다. 쿵, 같은 곳만 노린 보람이 있는지 이번엔 껍데기 안쪽 살이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어느덧 여덟 명이 쓰러졌다. 평소 같으면 조금 더 버텼겠지만 여름의 막바지에 다다라 뜨거운 햇볕과 전투 전 용사와 합을 겨루며 힘을 쓴 것이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다. 넷이 팀을 이뤄 괴물 하나를 상대했지만, 여덟 명이 쓰러짐으로써 둘이서 하나를 상대해야 했다. 거기에 몸 상태는 온전치 않다. 괴물 하나를 혼자서 견제하던 중년도 자신이 많이 지쳤음을 체감한다.

 

  ‘여기서 끝인가.’

 

  적어도 괴물 한 마리를 길동무 삼아 데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죽지 않는 괴물을 상대로 그것은 너무나 부질없는 소원일 뿐이다. 네프릭토스의 공격을 막는 손에 점차 힘이 빠진다. 30합은 겨루었을 거다. 손에 거미줄이 묶여 있지 않았다면 이미 무기를 손에서 놓쳤을 것이다.

 

  벌레가 몸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가장 먼저 목숨을 잃은 그 사람처럼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되겠지.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금 날아드는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팔이 안 올라가!’

 

  분명 말로 하려 했지만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지쳐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공격을 멍하니 바라본 채, 눈을 감는 그 순간. 네프릭과 중년의 사이에 끼어 든 것은 예의 그 언데드다. 눈앞에서 들리는 캉, 소리에 중년은 감았던 눈을 떴고, 그 언데드의 등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뼈만 남았는데도 넓고 단단해 보이는 등이다. 다른 괴물과 싸우고 있었던 그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까? 중년은 스무 명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그의 실력을 떠올리면서 뒤를 바라본다. 그가 상대하던 소 형상의 마물이 거의 검은색 덩어리로 변해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다. 중년은 어쩐지 그 장면이 잔인하게 보였다. 그러더니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끼며 어째서인지 주체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네프릭토스의 공격을 막아낸 언데드는 말했다.

 

  “버티느라 수고했다.”

 

  분명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말에 담긴 따스함에 중년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10화까지의 설정 10/29 461 0
16 그 이름, 또다시 여행 - prologue end 11/3 265 0
15 그 이름, 알 수 없는 것 11/2 227 0
14 그 이름, 그레이스 하이룽호른 11/1 222 0
13 그 이름, 마음 10/31 214 0
12 그 이름, 지옥 10/30 229 0
11 그 이름, 악신 아르콘 10/29 224 0
10 그 이름, 절망 10/28 221 0
9 그 이름, 네프릭토스 10/28 199 0
8 그 이름, 발로르 10/28 216 0
7 그 이름, 마을 10/28 208 0
6 그 이름, 아이리스 10/28 241 0
5 그 이름, 하이룽호른 10/28 235 0
4 그 이름, 성인 10/28 236 0
3 그 이름, 영웅 10/28 216 0
2 그 이름, 흐릉달 10/28 218 0
1 그 이름, 용사 10/28 36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