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아아아아아아아”
“정도전을 잡아라! 그는 이곳에 있다.”
“포위하여 개미 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검을 든 무사들 수백 명이 함성을 지르며 수십 칸 기와집을 포위하며 안으로 들이닥쳤고 그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지시를 내리면서 눈에 불을 켰다.
그리고 그런 사병들을 바라보면서 한 사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왕자 저하. 천하의 정도전도 오늘로 끝이군요.”
“훗. 조영규. 너는 아직도 정도전을 모르느냐. 그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찾아왔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와도 같은 존재이지. 그렇기에 목을 날려버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방원이 스승으로 삼았던 것이지.”
“흥! 아무리 여우 같은 자라고 해도 왕자 저하는 이미 그를 넘어섰습니다. 제가 오늘 그 자의 머리를 날려버리며 조선에 새로운 하늘을 열 것입니다.”
조영규는 호언장담을 하며 이방원을 모시고 기와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상당한 살겁이 벌어지고 있었고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그러나 이방원은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고 곧 한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병사들의 뒤에 서며 입을 열었다.
“그래. 저곳이 마지막 건물인가?”
“넵. 다른 곳은 이미 샅샅이 뒤졌습니다. 이제 저기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바로 들이닥치도록.”
“알겠... 응?”
이방원의 지시에 검을 뽑으며 나아가려던 무사는 갑자기 건물의 방문이 스스로 열리자 움찔하며 그곳을 보았다. 그리고 곧 문 뒤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을 본 이방원은 반가운 얼굴을 하며 외쳤다.
“스승님! 제자 이방원이 인사드립니다. 하하하.”
“......”
이방원은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그를 본 정도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의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몇 시간 전까지 정도전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었다. 이에 정도전은 참담한 얼굴을 하였다가 곧 쓴웃음을 짓고 이방원에게 말하였다.
“나 하나 잡겠다고 참 많은 죄를 지었구나.”
“하하. 천하의 정도전을 잡기 위함인데 이 정도는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우~ 그래. 누구를 탓하겠느냐. 너를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지 못한 나의 잘못인 것을... 모든 것이 나의 죄이니라.”
“저 자를 당장 꿇어 앉혀라!”
정도전이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며 말하자 조영규는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부하들에게 외쳤다. 이에 사병 둘은 얼른 달려가서 정도전의 양팔을 잡았고 이방원 앞으로 끌고 와서 그를 강제로 꿇렸다.
그렇게 정도전을 내려다보게 된 이방원은 빙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하하. 이제야 실감이 나는군.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위치에 있었던 정도전을 이렇게 깔아보게 되니 말이야. 어떻소? 이번에는 이 이방원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지금... 농담을 하자는 것이냐.”
이방원의 제안에 정도전은 이를 바득 갈며 차가운 눈빛으로 답하였다. 그것에 이방원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겠지. 오늘 그대의 자식과 동료, 친구들이 모두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그런 상태로 내게 충성을 바칠 리는 없겠지. 그런데 말이오. 그대가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역사는 그대를 조선을 개창한 영웅이 아닌 고려를 망하게 한 역적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보느냐?”
이방원의 물음에 정도전은 하늘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 이에 이방원은 전혀 밀리지 않고 손을 뻗어 하늘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번득였다.
“새로운 하늘로 덮어버릴 것이오. 포은 정몽주라는 새로운 하늘 말이오.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한 충신 중의 충신. 그대는 그런 정몽주에 가려져 고려를 망하게 하고 또한 조선에서도 권신이 되려 한 벌레 같은 존재로 남게 될 것이외다.”
이방원은 그리 말하고 조영규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조영규는 이를 드러내며 검을 들어 정도전을 베었고 그는 친구였던 정몽주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짝짝짝짝’
그리고 이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던 60대의 남자는 대단히 마음에 든 표정으로 연신 박수를 치며 말하였다.
“크~ 정말 몇 번을 봐도 명장면이로군. 몇 년 전에 이 드라마를 보고 정말 소름이 돋았단 말이야. 너무나 멋지지 않은가.”
“조선을 개창했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정도전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60대 남자의 말에 40대로 보이는 한 사내가 짐작을 하며 되물었다. 그 말에 60대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허헛!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무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정도전은 결국 권력싸움에서 패하여 죽은 멍청이일 뿐이야. 내가 감탄하는 것은 바로 저 이방원의 모습이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광오함과 자신감.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 왔었지. 허허.”
“하하. 그렇다면 이미 꿈을 이루신 것이군요. ‘한희수’ 대표님. 당신은 이 나라 대한민국의 최고 정당 ‘자유정의당’의 당 대표로서 사실상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대표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늘을 가리는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허허. 그런 셈이지. 그리고 그것에는 자네 ‘나은민’의 도움도 컸어. 자네가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언론과 검찰, 경찰을 모두 통제해주고 있으니 말이네. 자네는 나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라네.”
한희수는 신뢰가 가득한 눈빛을 하며 나은민에게 칭찬을 보냈다. 이에 나은민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액션을 취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표님. 저는 대표님을 위한 도구와도 같은 존재. 대표님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만약 제가 능력이 떨어졌다고 생각되신다면 언제라도 버리십시오. 저를 대체할 인재가 생긴다면 저는 언제라도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럴 수는 없지. 자네는 나의 수족이 아닌가. 어찌 수족을 버릴 수 있겠는가.”
나은민은 한희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고 칭찬에 절대 들뜨지 않으며 상대가 좋아할 말을 해주었다. 이것에 한희수는 기분이 좋은 듯 나은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바로 그 때 대표실의 문 밖에 소란스러워졌고 곧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네. 대표님. 방태수 국회의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라...”
비서가 난처한 얼굴로 말하자 나은민의 표정은 탐탁지 않다는 듯 변하였다. 이에 나은민이 뭐라 진언을 하려는 순간 한희수는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먼저 말했다.
“허허. 태수 놈이 또 무슨 일로... 아무튼 들어오라고 하게.”
“내가 된다고 하지 않았나. 왜 사람을 막고 그래.”
한희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 밖에서 이를 듣고 있었던 듯 방태수가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에 나은민은 인상을 쓰며 말하였다.
“방태수 의원님. 대표님 앞인데 최소한의 절차나 예의는 갖추시지요.”
“뭐라! 은민이 너나 선배 의원한테 예의를 갖춰라. 내가 대표님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것은 그냥 요절을...”
“허허. 자! 급한 일로 온 모양인데 잡소리 할 시간은 있는가? 어서 용건이나 말하게.”
“저... 그것이...”
말다툼이 생길 조짐이 보이자 한희수는 노련하게 말을 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에 급하게 들어왔던 방태수는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꾸물거리면서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모습에 나은민은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보아하니 또 무슨 사고를 친 모양이군요.”
“어허! 이 놈이... 내가 무슨 사고뭉치인 줄 아는가. 내 문제는 아니야. 그저... 내 아들 놈이 마약을 했을 뿐이야.”
나은민의 비아냥에 방태수는 반동을 하며 대답을 해버렸고 나은민은 아들 문제가 자기 문제 아니냐고 속으로 생각하며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였다.
“형님. 아, 아니, 대표님. 도와주십시오. 제 선에서 해결을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이렇게 염치불고하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깟 마약 사건 같은 걸로 대표님 손을 빌리려 하십니까. 어차피 마약은 초범일 경우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공정하게 처벌을 받으시지요.”
“이 놈이 지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군. 너는 네 딸이 마약을 하면 그냥 처벌 받으라고 할 거냐?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 자식이 마약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정치인생은 그것으로 끝이야.”
“제 딸이 그런 한심한 짓을 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답니다.”
방태수의 일갈에 나은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흘려버렸다. 그리고 이를 듣고 있던 한희수는 손을 뻗어 방태수를 막은 후 나은민에게 말하였다.
“듣고 보니 그리 대단할 것도 없군. 어차피 태수 아들이 취직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거고 집행유예가 그리 타격은 아닐 것이야. 그리고 언론 통제 정도는 나은민이 해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런 잡다한 것에 그들의 신세를 지는 것이 조금 아깝기는 하군요. 대표님의 뜻이라면 따르겠습니다.”
한희수가 쿨하게 수락을 해주자 나은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방태수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그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에 눈치 빠른 나은민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다른 죄가 더 있으시군요? 후후.”
“으음... 그것이... 제 아들 놈이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약을 단순히 복용만 한 것이 아니라 유통까지 하는 바람에...”
“뭐라고요? 유통이라니... 아들 분 머리로 약국을 차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하! 알겠군요. 아드님이 운용하는 유흥업소 ‘스타넥’ 클럽. 거기에서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 그렇지.”
나은민이 광범위한 정보망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짚자 방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이것에 나은민은 이를 바득 갈면서 한희수에게 진언하였다.
“대표님. 마약 유통은 차원이 다른 범죄입니다. 이것을 덮으려면 꽤 높은 선과 이야기를 해봐야 합니다.”
“뭐... 어쩔 수 없지. 태수가 저리도 간청을 하는데 말이야. 자네가 잘 처리해보게. 그리고 태수는... 더 필요한 것은 없는가? 문제가 있으면 확실하게 말해봐.”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 정도만 해결해주셔도 백골난망입니다. 나머지 잡다한 것은 제가 처리해보겠습니다.”
한희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였고 이에 방태수는 절까지 하면서 감격해 하였다. 그 모습에 나은민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자. 그럼 진행상황을 말씀해보시죠. 이게 어느 정도까지 문제가 되어 있습니까?”
“으음... 현재 ‘강형욱’이라는 형사가 이 사건의 냄새를 맡고 캐고 있는 중이다. 또한 유력 언론 중 하나인 ‘소양일보’의 ‘마장우’라는 기자도 이에 대해 연신 기사를 내고 있지. 물론 아직까지는 실명을 거론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봐서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상하구만.”
방태수의 설명에 한희수는 바로 맥을 짚고 한 마디를 하였다. 이에 방태수와 나은민은 그를 보았고 한희수는 방태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기자와 형사란 자들은 그리 쉽게 손을 잡지 못하지. 그런 그들이 동시에 움직인다라... 이것은 흔한 일이 아니야.”
“게다가 스타넥 같은 클럽은 외부에서 실상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아무리 방태수 의원님 아들이 허술하다고 해도 그런 것까지 놓칠 리는 없지요. 바보가 아니고서야. 제가 보기에 이것은 내부고발자의 소행 같습니다.
방태수 의원님. 제가 알기로 아드님은 SL엔터테인먼트라는 연예 기획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소속된 여자 연예인들이 퍼트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은민은 스타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SL엔터테인먼트를 언급하며 물었다. 이것에 방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 회사는 사실상 내가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 연예인들은 내가 확실하게 옭아매고 있거든. 돈, 가족, 명예 등으로 다 묶어놓은 상태라서 절대 배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방태수 의원님 생각이고 그 일처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뭐라고! 이 자식이 감히...”
둘이 다시 티격거릴 조짐이 보이자 한희수는 양손을 들어 둘의 말을 막고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방태수를 보았다.
“SL엔터테인먼트의 소속 연예인이 아니라면... 그들과 친분이 있는 다른 연예인들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네. 그런 애들을 잘 추린 후에 그중에서 스타넥 클럽에 자주 온 이가 있는지 알아보게. 아마 내부고발자는 그 속에 있을 테니...”
“오! 그렇군요. 제가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제가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한희수의 조언에 방태수는 눈을 번쩍 뜨며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는 나가려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나은민을 보며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