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협박도 소용없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응? 이거 오해를 하셨군요. 하하. 저는 일종의 충고를 해드린 것입니다. 피를 보는 것은 제 전담이 아닙니다. 그런 몸으로 때우는 타입은 자유정의당에 따로 있지요. 그 인간이 나서기 전에 저를 먼저 만나신 것은 마장우 기자님께는 천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나은민은 덕을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장우 기자님께도 기회를 드리도록 하지요. 보아하니 진실을 밝히는 것을 좋아하시는 듯 한데... 더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해드리겠습니다.
‘지송 일보’... 이곳에 입사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지송 일보라는 이름이 나오자 마장우의 눈은 크게 떠졌다. 그곳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최대의 언론사였다. 5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언론으로 그 파급력은 국내의 대기업까지 떨게 할 정도였다.
“급여나 복지 등은 소양 일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곳의 기자라고 한다면 이 나라에서 대우를 받지 않을 곳이 없겠지요.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요. 하하. 아무튼 원하신다면 제가 그곳으로 입사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대답은 어떠신지...?”
“으음...”
지송 일보의 이름이 나오자 마장우의 표정은 크게 변하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건한 표정을 짓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머리를 굴리면서 득실을 따져보고 있었고 나은민은 결정타를 먹이기 위하여 무언가 떠오른 표정을 짓고 말하였다.
“아! 맞다. 지송 일보에 들어가시더라도 일을 하시려면 돈이 꽤 필요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똑똑’
나은민은 거기까지 말한 후 탁자를 두드렸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면서 점원이 검은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나은민은 그에게 손짓을 했고 점원은 마장우가 볼 수 있게 가방의 방향을 바꾸고 개방을 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신사임당 지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금 5억입니다. 물론 모든 세탁을 끝낸 돈이니 안심하고 바로 쓰셔도 됩니다. 물론 너무 티 나게 쓰시지는 마시고 말입니다. 하하.”
“5... 5억...!”
“네. 듣자하니 마장우 기자님 아드님이 이제 곧 대학에 가실 때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등록금 같은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부인 분도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 기회에 이 나라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신성 대학 병원으로 가서 제대로 검진과 치료를 받으시지요.”
나은민은 이미 마장우의 뒷조사를 다 한 듯 여유로운 얼굴을 하면서 말하였다. 그것에 마장우는 다시 한 번 놀랐고 뭔가 엄청난 벽을 느꼈다. 5억 정도의 돈을 너무나 쉽게 내미는 모습에 스케일의 차이를 본 것이었다.
“그, 그래도 이것은 기자 정신에...”
“네? 하하. 이거 제가 실례했군요. 나이가 40대 중후반에 접어들다 보니 셈이 조금 틀릴 때가 있어서 말입니다.”
마장우는 그래도 자신의 양심을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저항하려 했다. 그러자 나은민은 다시 탁자를 두드렸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점원이 검은 가방을 하나 더 가지고 와서 펴 보였다. 거기에는 종전의 가방과 같은 양의 지폐가 들어 있었다.
“합쳐서 10억입니다. 이 정도면 마장우 기자님의 고귀한 기자 정신을 살 수 있을 듯 한데 말입니다.”
“아아...”
10억이란 엄청난 액수의 돈. 이 정도면 지금까지 꼿꼿하게 살아오느라 피지 못한 집안 살림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다. 거기에 지송 일보의 기자 자리까지 받게 된다면 앞으로 기자 생활은 180도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지송 일보는 기자들에게는 꿈의 위치에 있는 곳이었다.
그런 화려한 보상을 생각하자 그의 마음속에는 악마의 손길이 깃들게 되었다.
‘그래. 어차피 나 혼자 떠들어봤자 이 사건을 표면화시킬 수는 없어. 소양 일보의 힘만으로는 나은민 같은... 국회의 의석 과반수를 잡고 있는 자유정의당을 이길 수 없을 거야.’
죽어라 싸워봤자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고, 항복을 한다면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되는 상황.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싸우는 것을 선택할 정도의 신념을 가진 이는 절대 흔치 않았다. 나은민은 이를 생각하면서 씨익 웃었고 결국 마장우는 나은민의 손을 잡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이 사건... 덮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제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이 사건을 마장우 기자님께 처음 말한... 내부고발자... 그 자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그, 그건...”
나은민의 질문에 마장우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를 신뢰하고 찾아와서 용기를 내어 진실을 밝혀준 내부고발자의 모습에 그는 순간 주저하였다. 그러나 이미 양심을 팔아버린 상황에서 그 주저함은 길지 못했다.
“그 자는... 아이돌 그룹 ‘더파이브’의 ‘김재훈’입니다. SL엔터테인먼트의 여자 연예인과 사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고 스타넥 클럽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고 그녀를 구해주고자 이런 문제를 밝히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와 강형욱 형사를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오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 하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여기서 최대한 즐기고 가시지요. 저기. 이 분께 극락을 맛보여 드리도록 하십시오. 앞으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실 분입니다.”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은민이 말하자 지배인은 씨익 웃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이에 마장우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다급히 물었다.
“저, 저기... 지송 일보 건은....”
“하하. 의심이 많으시군요. 걱정하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 나은민은 일을 할 때 신뢰를 가장 중시하니까요. 제가 지송 일보 측에 얘기를 해두겠습니다. 3일 쯤 후에 방문하시면 자연스럽게 자리로 안내받으실 겁니다. 그럼 이만...”
나은민은 그리 말한 후 술집을 나왔다. 그러자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가 다가와서 말하였다.
“일은 잘 처리되셨습니까? 하하.”
“훗! 당연한 일이지. 기자란 것은 원래 다 그렇거든. 말로는 진실이고 기자정신이고를 떠들지만 현실은 이렇게 권력과 물욕의 노예에 불과해. 세상에 기자들이 다 강직했다면 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이야.”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세상은 갈수록 퇴보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기자란 것이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비서는 나은민의 말에 공감하면서 받았다. 이에 나은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훗! 기자란 부류는 인류 역사에 언제나 있어왔었어. 이 ‘역사’란 것을 기록하는 역사가들이 그 시대의 기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지. 지금 우리 시대의 이 수많은 기사들이 후대에 역사서로 알려지는 것이야.
그리고 그 역사가들 역시 기자답게 현실에 타협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지. 자기 취향대로 영웅을 정하고 역사를 쓰는 것은 약과... 대부분이 승자에게 아부하는 식으로 붓질을 해왔고 패자는 아무리 훌륭한 이라고 해도 도적으로 매도하였지.
‘성왕패구’라는 단어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의 역사는 항상 그렇게 개차반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알고 있기에 강자의 편에 서기로 한 것이고 말이야.”
나은민은 평소 역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시니컬한 관점을 이야기하며 차에 탔다. 그런 그를 데리고 운전기사는 자유정의당의 본 당사 건물로 향하였고 나은민은 한희수에 앞에 서서 모든 경과를 보고하였다.
그리고 이를 들은 한희수는 무릎을 탁 하고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주었다.
“역시 나은민이군. 사흘 내로 처리한다더니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정리를 해버렸구만. 허허.”
“아닙니다. 그저 첫 삽을 뜬 것에 불과합니다. 김재훈과 강형욱을 확실하게 처리하여야 이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훗. 타깃이 정해졌다면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그래. 그럼 강형욱이라는 형사는 인산 시로 보내버리면 되겠지? 그렇게 강직하다면 아무래도 그 자를 처리할 수 있는 곳은 인산 뿐일 테니...”
“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인산 시를 쓰레기통처럼 이용하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김재훈이 남게 되는데... 제가 따로 알아본 결과 김재훈은 스타넥 클럽에도 자주 출입했더군요. 방태수 의원의 아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자를 마약 유통의 핵심인 것처럼 덮어씌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은민은 이곳으로 오는 동안 방책을 생각한 듯 청산유수처럼 그것들을 읊었다. 한희수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든 듯 조금의 토도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자네는 물러가 봐도 좋네. 여기까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테니 뒤는 내가 정리하도록 하겠네.”
“저... 대표님. 혹시 이 일의 처리를 방태수 의원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생각인데... 왜? 문제라도 있는가?”
“이제 슬슬 인산 시에 대한 통제를 방태수 의원이 아닌 다른 이를 통해서 하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방태수 의원은 조폭 출신답게 방식이 거칠고 어디로 튈지 모를 데가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는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나은민은 내심 이 기회에 인산 시에 대한 권한을 자신이 갖기를 바라며 의견을 말하였다. 그런 나은민을 물끄러미 바라본 한희수는 엷은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수 녀석을 이제 슬슬 버리라는 뜻이군. 하지만 그래야 할 정도로 공보다 과가 크지는 않다네. 또한 초선 때부터 함께 해온 형제 같은 녀석이기도 하지. 그리고 조폭 출신이라고 했는데 인산 시를 관리하려면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네.
자네가 태수 녀석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참고 힘을 써주게나. 허허.”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대표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만 따를 뿐입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나은민은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자 황급히 허리를 굽히고는 대표실에서 물러났다. 그런 나은민의 뒷모습을 바라본 한희수는 곧 비서를 시켜 방태수를 불렀고 그는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아들 ‘방용진’과 함께 대표실에 방문하였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아니, 대표님. 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표님.”
방태수와 방용진은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고 한희수는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나은민이 보고한 것을 말하였다. 이를 들은 방용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분해하였다.
“김재훈! 그 놈이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내가 그동안 해준 것이 얼만데...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들이지 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허허. 사랑에 빠져서 그런 짓을 했다고 하지 않은가. 사랑이란 것은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미약과도 같은 것이지. 그래서 우리 같은 큰일을 하는 이들이 그 감정을 가장 경계하는 것이고 말이야.
아무튼 강형욱 형사는 나은민이 해당 경찰서장에게 이야기를 해둔다고 하니 그 시간대에 맞춰서 인산 시의 조직에게 의뢰를 하면 될 것이네. 어디에다가 맡길 셈인가?”
“네. 아무래도 가장 규모도 크고 충성심도 강한 ‘파이어리츠’ 조직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이런 일을 계속 해왔기에 실수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파이어리츠라... 나쁘지 않겠군. 그리고 김재훈에 대해서는 마약 유통의 죄를 뒤집어씌울 생각이야. 그러니 그 녀석의 집에다가 마약 더미를 놓은 후 검찰 수색을 진행하면 될 것 같은데 김재훈의 거처를 알고 있나?”
“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놈 회사는 작아서 공동숙소도 없이 따로 월세 방을 얻어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깔끔하게 작업을 해놓겠습니다.”
방용진은 눈을 번득이면서 자신만만하게 답하였다. 이에 한희수는 왠지 신뢰가 안 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여러 번 해본 것을 감안하며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한희수의 지시는 인산 시와 서울의 관할 경찰청, 검찰청으로 전달되었고 세 곳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