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산 시에서 긴급 임무가 있다고요? 저는 전달받은 것이 없는데요?”
“비밀 임무라고 했잖아. 미리 다 알려지면 그게 비밀 임무겠냐? 비밀리에 수사 중이던 국외 인신매매 조직에 대한 정보를 고발하려는 자를 인산 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일을 자네에게 맡긴 것이니 당장 가보도록 해. 시간에 늦으면 그냥 간다고 했으니까 서두르고.”
“에이! 그것을 왜 제가 해야 합니까? 저도 할 일이 많은데 말입니다.”
“어허! 다른 사람들은 그럼 노는 줄 알아? 다들 바빠서 자네에게 맡기는 것 아니야. 그리고 이건 내 지시가 아니라 서장님 지시야. 그 정도로 중요한 임무라고. 다 자네가 신뢰할 만한 형사라서 맡기는 것이니까 군소리 말고 하기나 해. 잘 처리된다면 자네의 그 늦은 진급도 혈맥이 뚫리는 것처럼 해결될 수 있을 것이고.”
반장은 강형욱의 불만에 도리어 짜증을 내며 맞섰다. 그러면서 동시에 칭찬까지 해주는 능숙한 화법을 보였고 이에 강형욱도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이래서 능력이 너무 있어도 문제라니깐. 아주 다 시켜대지.”
강형욱은 유능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답게 중요 임무에 대한 거절을 차마 하지 못하면서 받기로 하였다. 이에 그는 시계를 보았고 인산 시의 접선 장소에 약속시간에 맞춰 가려면 상당히 빠듯하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짐을 꾸렸다.
그 때 그의 눈에 스타넥 클럽에 대한 수사 자료가 들어왔다. 그것은 왠지 모르게 강형욱의 눈에 강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강형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료를 모아서 서랍에 넣고 경찰서를 나가 자가용에 탑승했다.
그리고 서장실에서 이를 보고 있던 경찰서장은 휴대폰을 들고 나은민에게 받은 번호를 눌러 말하였다.
“네. 의원님. 지금 바로 출발했습니다. 그럼 뒷수습은...?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인산 경찰서에서 발표는 하는 것에 맞춰 이쪽도 대응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경찰서장은 전화기를 든 상태로 연신 허리를 굽히며 굽실거렸다.
그런 경찰서장이 있는 경찰서를 뒤로 하고 강형욱은 운전을 하여 한국 최남단에 위치한 광역시 인산으로 향하였다. 평일 밤이었던 터라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았고 강형욱은 창문을 열어 밤바람을 쐬었다.
“크~ 좋아. 굳이 뚜껑 열리는 차를 살 필요가 없다니까. 이렇게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면서 창문만 열면 이런 청량한 바람을 쐴 수 있는데 말이지. 부귀영화 같은 것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을...”
강형욱은 쾌남다운 말을 하면서 4시간 동안 운전을 했고 그의 시야에 인산 시로 들어가는 톨게이트가 들어왔다. 장시간 운전을 한 탓에 그는 어깨가 찌뿌둥하였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돌게이트로 진입하였다.
“어디보자. 위치가... 시 외곽의 해안가라고 했지? 참 신중하게도 정해 놨다. 내부고발자란 분이 아주 일처리가 치밀하시네.”
강형욱은 조직 내에서 친구가 그리 많지 않은 듯 연신 혼잣말을 하며 운전을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가자 신호가 걸렸고 그는 차를 멈추었다.
바로 그 때였다. 4차선의 좌측 편에 대기하고 있던 트럭이 갑자기 속도를 내며 달려온 것이었다. 강형욱은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트럭의 라이트가 이상하게 눈을 부시게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고 곧 그것이 자신의 차를 노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콰아아앙’
그가 욕설을 하며 몸을 비튼 것과 동시에 트럭은 강형욱의 차를 강하게 들이 받았고 차는 수십 바퀴를 회전하다가 길의 끝 가드레일에 충돌하면서 겨우 멈추었다. 그리고 워낙 강골인 덕에 정신을 잃지 않은 강형욱은 피칠갑을 한 상태로 차 문을 발로 차서 열고 겨우 밖으로 나왔다.
“크헉... 쿨럭쿨럭. 이게 무슨...”
형사 생활을 20년 정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던 그는 피가 가득 묻은 침을 뱉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곧 그를 포위하며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개자식들... 함정이었구나...”
“후후. 그러게 형사님. 건드리면 안 될 것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왜 이리 죽음을 자초하며 사는 건지 모르겠네.”
파이어리츠 조직의 보스인 ‘커터’는 휘하 조직원들을 데리고 강형욱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이 정도의 일에 보스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한희수의 오더라는 것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이렇게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강형욱에게 있어서 큰 불운이었다. 그러나 그간 산전수전을 겪어오면서 그것들을 다 이겨내 온 강형욱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취하면서 허리춤에 있는 경찰봉을 꺼내서 펼쳤다.
이 모습에 파이어리츠 조직원들은 코웃음을 흘리면서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들었다. 개중에는 사시미 칼을 쓰는 자들도 있었다. 그것을 보며 강형욱은 피를 뱉으면서 웃음을 흘렸다.
“이 개새끼들. 그래도 이 나라 조직이 아직 미국처럼 썩지는 않았구나. 총을 쓰지는 않는 것을 보니 말이야.”
“아... 그거? 쓰려고 하면 못 쓸 것도 없어. 그저 형사 하나 잡는 데에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럼 이제 이야기는 다 한 것 같고. 다들 쳐라.”
‘다다다다’
커터의 지시에 조직원들은 대답대신 기민한 발놀림을 보여주면서 강형욱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강형욱은 차량 충격과 출혈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애써 정신줄을 부여잡으면서 경찰봉을 휘둘렀다.
‘팍 파악 퍽 퍽’
“쿠억!”
“으아악!”
단 네 번의 휘두름으로 그는 가장 먼저 달려온 조직원 둘의 무기를 막아내고 그대로 반격을 하여 상대의 허리에 강타를 먹였다. 이에 조직원 둘은 비명을 지르면서 나뒹굴었고 강형욱은 그 기세를 타서 앞서 나아가면서 두 번째로 달려든 세 명의 조직원을 상대로 몸을 회전시켜 일거에 세 방을 먹였다.
“크악!”
“어어억!”
좋은 체격과 잘 단련된 무술의 힘에서 나온 일격에 조직원들은 다시 비명과 함께 쓰러졌고 커터는 그 모습에 인상을 쓰며 말하였다.
“뭐야. 저것들은? 내 조직원이 이렇게 허접하다고? 저 자식들. 이번 일 끝나면 바로 치워버려. 이런 수치와도 같은 것들이 내 밑에 있었다니...”
“죄송합니다. 보스. 이것들아! 상대는 고작 한 명이다. 추태 부리지 말고 빨리 끝내라. 방심하지 말고 제대로 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중간 보스의 일갈에 조직원들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보스 손에 죽을 수도 있다고 보며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런 적들의 기세를 느낀 강형욱은 여기서 더 시간을 끄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고 자신의 다리를 살폈다. 사고 직후에는 뇌에도 충격이 전달된 듯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말을 듣고 있었다.
이에 강형욱은 빠르게 눈알을 굴려 포위망 사이의 틈을 찾았고 적들에게 달려드는 척 하여 거리를 벌린 후 빠르게 방향을 바꾸어 달아났다.
“헉! 막아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일반인보다 훨씬 큰 체구이기에 느릴 줄 알았던 형사가 작은 틈 사이로 빠르게 빠져나가자 중간 보스는 기겁을 하며 외쳤고 조직원들은 서둘러서 그의 뒤를 쫓았다. 그 모습에 커터는 실소를 터트리면서 휴대폰을 들었다.
“나다. 이거 물고기가 상당히 팔팔하네. 아무래도 너희들도 와야겠다. 위치는... 어디 보자. 가리봉산. 가리봉산 남쪽 입구다. 몰이사냥을 할 생각이니까 오는 즉시 자리를 잡고 있으면 될 거다.”
커터는 거기까지 말한 후 쿨하게 전화를 끊고 걸어갔다. 이에 그를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경호대 다섯은 서둘러 그를 따라 이동했다.
“헉 헉 헉...!”
인산 시의 지리를 전혀 모른 채 그저 길이 보이는 대로 달리던 강형욱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은 조명도 없었기에 도망을 치기에는 그리 좋지 못했다. 자신은 길을 찾아서 뛰어야 하는 반면 추격자들은 자신의 뒤만 쫓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따돌릴 수만 있다면 몸을 숨기기에 유리함이 있었지만 파이어리츠 조직은 이런 일의 전문인 듯 한 방향에서만 뒤를 쫓지 않았다.
‘스스스스’
각 10명 씩 조를 이루면서 그들은 세 방향에서 강형욱을 몰이사냥 하듯이 쫓아오고 있었고 점점 강형욱은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그는 곧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지쳐서가 아니었다. 그의 앞에 절벽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신이 잘못 왔다는 것을 안 강형욱은 서둘러서 몸을 돌려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30명이 넘는 조직원들이 그를 반 포위한 채 모습을 드러냈고 잠시 후 커터가 그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면서 씨익 웃어보였다.
“하하. 야간 산행은 재미있으셨나? 나는 이 가리봉산을 아주 좋아해. 조용하기도 하고... 공기도 좋고... 그래서 그런지 자살하는 사람도 꽤 많아. 죽더라도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 죽으면 호상 아니겠어?”
“너 이놈... 여기서 사람을 많이도 죽인 모양이구나.”
“응? 와하핫. 이거 누가 형사 아니랄까봐 촉이 아주 기가 막히는구만. 맞아. 지금까지 내 비위에 거슬리는 짓을 하거나 상부에서 처리해달라고 하는 녀석이 있으면 이곳에서 자살로 위장하여 청소를 해왔었지. 형씨는 어디 보자... 열일곱 번째 손님 정도 된다고 할 수 있겠군.”
커터는 기분 좋은 듯 거기까지 설명을 해주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중간보스가 직접 몸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체격이 강형욱 이상으로 좋았고 이런 일을 자주 해본 듯 표정에 조금의 죄의식도 흥분도 없었다.
“흐아아아!”
그는 괴성을 지르면서 강형욱을 밀기 위해서 돌진을 해왔고 강형욱은 침을 삼키며 충분히 기다리다가 그가 원했던 위치까지 오자 그의 손을 잡은 후 그대로 그 힘을 이용하여 메다꽂았다.
‘쿠우웅’
“크허어억!”
상당히 큰 소리와 함께 중간보스는 비명을 질렀고 강형욱은 빠르게 그의 뒤로 돌아가서 목을 잡고는 허리춤의 권총을 뽑아서 그의 귀에 갖다 대었다.
“다들 물러서! 안 그러면 이놈은 죽는다!”
“저런 븅신... 다 죽어가는 형사 따위에게 잡히다니...”
상대 중간보스를 인질로 잡으며 강형욱이 일갈을 하자 조직원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 보스인 커터는 잠시 인상을 쓴 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짓을 했다. 이에 조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한 죽창을 들고 진형을 짰다. 그리고는 일제히 달려들었다.
“아...”
‘푹 푸욱 푹 푹’
강형욱은 동료의 몸을 서슴지 않고 찔러오는 상대의 공격은 예상 못한 듯 머릿속이 멍해졌고 그 힘에 그대로 밀리면서 절벽 아래로 추락하였다. 그런 강형욱과 중간보스를 내려다본 커터는 히죽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절벽 아래를 수색하도록 해. 시신을 찾는 즉시 보고하고. 그리고 너희 둘은 이곳을 자살 현장처럼 보이게 잘 장식하고.”
“알겠습니다. 보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이제 그만 쉬시지요.”
“이것들아. 뭘 하나라도 확실하게 해야 내가 쉬지. 어서 명령대로 하기나 해.”
커터는 조직원의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면서 말하였고 조직원들은 기겁을 하며 흩어졌다.
그렇게 강형욱 형사의 처리 건은 비교적 무난하게 정리가 되었다. 커터는 그의 시신을 확인한 후 신발을 벗겨서 절벽 위에다가 가지런히 놓았고 미리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한 유서를 신발 밑에다가 놓았다.
그리고 정확히 24시간이 지난 후 인산 시의 관할 경찰서에서 출동을 하여 수색을 하였고 강형욱의 시신과 유서 등을 확인한 후 통제를 하면서 방태수에게 이를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