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음날 차승민은 당 회의실로 다시 향하였다. 이곳에 모일 자유정의당의 소장파 의원들과 중지를 모아서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 방법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도착한 그는 자리에 앉아서 다른 의원들이 와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5시가 되고 6시가 될 때까지도 그곳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에 애써 웃음을 잃지 않고 있던 차승민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라졌고 김다니엘은 안쓰러운 얼굴을 하며 다가와서 말하였다.
“의원님. 이제 그만 돌아가시지요. 아무도 오지 않을 듯 합니다.”
“후우~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이 당에 생각이 깨인 인물이 최소 다섯 명 정도는 있을 거라고 보았는데 말이야.”
“저도 한희수 대표 세력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시원’ 세력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입니다.”
김다니엘은 한심한 소속 정당의 작태에 이를 바득 갈면서도 차승민의 마음을 생각하며 내색하지 않고 그를 모셨다.
그렇게 차승민 일행이 쓸쓸히 돌아갈 사이에 당 대표실에서는 두 무리의 만남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한희수 세력과 이시원 세력의 만남이었다.
“제가 어제 듣고 생각한 것은 차승민 의원의 말이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나라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국회의 존재가치가 아니겠습니까. 의혹이 있는 상태로 종결이 되었다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허허. 이거 시원이 자네도 아주 정치꾼이 다 되었구만.”
“네? 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30대 후반의 젊은 국회의원 이시원은 한희수의 말에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한희수는 노회한 늙은 여우같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나는군. 이민상 전직대통령 님... 나에게는 국회의원 선배님이기도 하셨지. 그 분께서 집으로 초대하셔서 갔을 때 자네는 10살 정도 되었었나. 꽤 귀엽고 똘망똘망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었지.”
“갑자기 지난 얘기는 왜...”
“그 후 관심을 가지고 이민상 선배님에게 자네의 근황을 자주 물었었네. 그리고 좀 의외의 말을 들었지. 애가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공부를 그리 잘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지. 딸 셋은 모두 명문대를 갈 정도로 훌륭한데 후계자가 되어야 할 아들 하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고민이 많으셨어.
그 때 내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고. 아마 다른 쪽으로 비상한 데가 있을 것이고 설령 부족한 데가 있더라도 내가 다 채워주겠노라고 말이야.”
한희수의 말에 뒤에 서있던 나은민은 웃음을 겨우 참는 척 하였다. 학력은 이시원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에 속했다. 그가 나온 대학은 현 국회의원들 중에서 뒤에서 두 번째로 안 좋은 편이었다. 첫 번째는 조폭 출신인 방태수였다.
그리고 이런 콤플렉스에 이골이 난 듯 이시원은 그리 흔들리지 않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네. 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국회의원이 된 데에는 한희수 대표님의 서포트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아. 왜 편한 길을 가려고 하지 않나. 그냥 가만히 내가 하라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대통령까지 무혈입성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의 대통령처럼 말이야.”
“지금의 대통령처럼... 당신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살라는 말입니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제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가지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은 죽는 것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젊은 이시원은 한희수의 노회한 눈빛을 받아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상대를 지그시 바라본 한희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였다.
“자네가 대통령이 되려면 앞으로 10년 정도는 필요할 텐데 그 때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나 58년생이야. 그 때 즈음에는 은퇴를 하게 될 거야. 그럼 자네는 허수아비가 아니라 진정한 대통령으로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
“그것은 모르는 일이지요. 지금은 백 세 시대가 아닙니까. 또한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한희수 대표님의 노욕이 사라질 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요. 후후.”
이시원은 한희수의 말에 한 마디도 지지 않으며 답하였다. 이것에 한희수는 확실히 어릴 때 그를 보았던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허허. 그것도 그렇군. 그래서... 이번 사건을 들쑤셔서 나와 대적을 해보겠다는 건가? 우리 자유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180명 중에서 자네 세력은 50명을 조금 넘길 수준일 텐데... 그 정도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건가?”
“하하. 한희수 대표님은 이길 상황이 확실할 때 전쟁을 하는 타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릅니다. 전쟁을 통해서 이길 상황을 만듭니다. 이번 사건... 제가 알기로 방태수 의원 아들이 운영하는 스타넥 클럽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또한 그 클럽은 단순히 마약만 다루는 것이 아닌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곳이지요. 이것을 제대로 들쑤셔서 세상에 공개한다면... 아마 방태수 의원은 확실히 나가리 될 것이고 그를 왼팔로 쓰셨던 한희수 대표님께도 상당한 타격이 오게 될 겁니다. 휘하의 국회의원 상당수가 갈아타기를 시전할 수도 있겠지요.”
이시원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눈빛을 하면서 말하였다. 이것에 나은민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한희수는 이를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미소를 짓고 물었다.
“후후. 어릴 때 머리가 좋겠다 싶더라니 그것이 상상력이었군. 뭐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보게나. 그런데 말이야. 우리 같은 정치인들은 협상이란 것을 할 줄 아는 법이지. 전쟁이란 것은 그리 좋은 게 아니거든. 우리가 서로 내전을 벌여서 상처를 입는다면 그 득을 보는 것은 제3자가 되는 법이야. 비록 민주당이 무능하고 골골거린다고 하지만 그런 이득까지 놓치지는 않겠지.
그리고 정치 9단이라 불렸던 이민상 전직대통령 님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머리가 나쁘지는 않을 것이고 말이야. 사실 정말로 전쟁을 원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차승민이 아닌 나를 만나러 오지도 않았겠지. 그래.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하. 역시 대표님이시군요. 제가 바라는 것은 약소합니다. 다음 총선 때... 비례대표 자리를 제 세력에게 10석 더 주시면 됩니다.”
“10석! 이시원 후배님. 너무 욕심이 과하군요.”
상대의 요구에 나은민은 눈을 부릅뜨며 한 마디를 하였다. 이것에 이시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한희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희수는 팔짱을 끼며 생각을 한 후 이시원을 보며 말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10석은 너무 과한데... 5석이 어떻겠나? 그 정도라면 내가 내부의 불만을 무마시킬 수 있을 듯 한데...”
“5석으로는 부족하지요. 그럼 이렇게 하지요. 8석. 어떻습니까?”
“8석이라... 훗. 이거 장사 기질까지 아버지를 쏙 빼닮았구만. 알았네. 그리 하지. 나 같은 사람에게 각서 같은 것은 필요 없다는 것 알고 있겠지?”
“네. 이런 것으로 사기를 치실 분은 아니지요. 그럼 믿고 가겠습니다.”
이시원은 원하는 것을 쟁취하자 씨익 웃으면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갔다. 그런 이시원을 보며 나은민은 이를 바득 갈았다.
“3류 대학을 나온 멍청이 따위가 욕심이 많기도 하군요. 대표님. 비례대표 8석은 너무 손실이 큽니다.”
“허허. 대학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핏줄이지. 이시원 저 녀석은...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고, 또한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어. 이것 참 재미가 있어. 지금 대통령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거의 받지 못한 바보인데 말이야. 하나는 호랑이 밑에서 태어난 고양이이고, 하나는 용 밑에서 태어난 용이로군.”
“그 정도입니까. 그렇다면 당장 이시원 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묘수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묻어버리겠습니다.”
나은민은 전의를 불태우며 말하였다. 이에 한희수는 손을 들어 그를 말렸다.
“허허. 괜찮네. 제1야당인 민주당이 빌빌 거리는 지금 이 한희수의 유일한 정적은 저 친구라고 할 수 있어. 정치판에서 정적의 존재는 아주 소중하다네. 고인 물은 썩는다고 절대강자의 위치에만 있으면 권태감에 빠지고 머리는 늙게 된다네. 저런 친구가 하나 있어주는 것은 내 두뇌 회전을 위해서 아주 필요하지.”
“하하. 이시원을 스파링 파트너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군요.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그것보다 차승민... 그 친구는 지금 뭐하고 있나? 거기 찾아간 의원이 하나라도 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눈치가 없는 이는 국회의원이 될 수가 없지요. 아! 물론 차승민은 예외입니다만... 아무튼 1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은민은 실소를 터트리면서 대답을 했다. 이것에 한희수는 안쓰럽다는 얼굴로 말하였다.
“쯧쯧... 이시원과 함께 내 뜻대로 안 움직이는 유이한 케이스이지. 얼굴도 괜찮고 배우 시절에 평판도 좋아서 당 이미지 쇄신을 위해 특별히 영입했는데... 내 지시대로 얼굴마담 역할만 잘 했다면 꾸준히 국회의원으로 대우받으며 잘 살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사사건건 이런 멍청한 일만 벌이고 있으니...”
“하하. 그야말로 가관 그 자체입니다. 친일파 처단, 모병제, 최저임금 대폭 인상, 부동산 세금 대폭 강화, 사학 비리 처단 등등... 건드리면 안 될 것들만 건드리는 것도 재능이라고나 할까요.”
“이번 일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게 되면 좋겠군. 그냥 버리기에는 조금 아까운 감이 있어서 말이야.”
한희수는 악어의 눈물과도 같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마쳤고 나은민도 이제는 그가 슬슬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차승민은 이 정도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정의당 당사를 나와서 바로 경찰서로 향하였다. 김재훈 사건을 종결처리 한 그곳이었다.
“음? 조금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어디...”
문 밖에까지 느껴지는 기운에 김다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강력반 반장에게 따지듯이 말하는 40대의 여성이 보였다.
“반장님. 우리 그 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절대 자살을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요.”
“제수씨. 저희도 좀 이상해서 인산 시까지 내려가서 확인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정황이 너무 확실합니다. 관할 경찰서도 그것을 감안해서 자살로 종결처리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 할 권한은 없습니다.”
“정황이 뭐가 확실해요. 있는 것이라고는 워드 프로세서로 쓴 유서 한 장 뿐이고 그 내용도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상태로 산으로 올라가서 투신자살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자자. 제수씨.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살의 징후는 주변 사람들도 잘 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갑자기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형욱이도 그런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럼 충분히 오래 얘기하셨으니 그만 가시지요. 이봐. 밖으로 모셔 드려.”
“네. 형수님. 이만 가시지요.”
“흐흐흑...”
강형욱의 동료 형사들은 그의 부인 옆으로 몰려와서 그녀를 천천히 경찰서 밖으로 밀어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다니엘은 눈을 예리하게 뜨고 말하였다.
“뭔가 비슷한데요. 김재훈 자살과 말입니다. 같은 자살이고... 유서는 워드 프로세서로 만든 조악한 수준. 그리고 자살의 동기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관할 경찰서는 그럼에도 조기에 종결처리. 냄새가 납니다.”
“흐음... 이거 단순히 김재훈 사건에 대한 수사 자료 같은 것을 요구하려고 왔는데 뭔가 큰 단서를 얻은 느낌이군. 저 분을 만나봐야겠어.”
차승민은 그리 말하고는 울면서 걷고 있는 강형욱의 부인 앞으로 가서 섰다. 이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승민을 보았고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국회의원 배지를 보여주었다.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차승민이라고 합니다. 뭔가 억울한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제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헛. 안녕하세요. 배우 하셨던 분 맞으시죠? 감사합니다. 다 말씀드릴게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우리 그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강형욱의 부인은 차승민을 천사 보듯이 하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였다. 다소 두서가 없었지만 머리가 좋은 김다니엘은 이 모든 것을 들으며 정리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강형욱 자살의 의문만 보일 뿐 김재훈 사건과 연관을 지을 수는 없었다. 이에 김다니엘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