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강형욱 형사님이 떠나시기 전에 특별히 수사하셨던 사건이 있습니까? 만약 타살이 맞는다면 그 사건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사한 사건이요? 그게... 저에게 일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지만... 굉장히 큰 적과 싸우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아! 맞아요. 마약! 마약이라고 했어요.”
“마약...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하여 진상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피로하신 것 같은데 들어가서 쉬시지요. 뒤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의원님... 정말 감사합니다.”
차승민은 마약이란 단어에 눈을 번득이며 그녀를 돌려보냈고 그대로 경찰서 안으로 돌격하여 들어갔다. 이에 강력반 반장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누구신지...? 어디서 뵌 분 같기는 한데...”
“국회의원 차승민입니다. 이곳에 자살한 형사가 있다고 하던데...”
“네? 이거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이리 강형욱 형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 평소에는 아무도 오지 않더만...”
“제가 알기로 강형욱 형사는 죽기 전에 마약 사건에 대해 열정적으로 수사를 했습니다. 그 수사 자료를 받아갈까 합니다만...”
짜증난다는 듯이 말하던 반장은 차승민이 무언가를 짚으며 말하자 갑자기 안색이 변하였다. 그런 눈빛 변화를 놓치지 않으며 김다니엘이 지원사격을 했다.
“상식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 자살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는데... 대체 왜 서울의 형사가 그 시간에 인산 시로 간 것입니까? 그곳에 연고 같은 것도 없을 텐데...”
“그것은...”
반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에서 이를 보고 있는 파트너 형사에게 눈짓을 했고 그는 휴대폰을 들고 경찰서장에게 이를 알렸다. 그 전화를 받은 경찰서장은 이마를 짚으며 나은민에게로 전화하였다.
“차승민이... 강형욱 형사 처리 건에 대해서 캐고 나왔단 말입니까?”
“네. 정황을 보아하니 강형욱의 부인을 만난 모양입니다.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흐음~ 이거 차승민이 생각 이상으로 예리한 데가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이렇게 대처하십시오. 아무리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수사 자료를 무단으로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 말하면서 돌려보내고 이후 수사 자료를 확인하여 위험한 것들은 모두 폐기하십시오. 폐기 사유는 알아서 둘러대시면 될 것입니다.”
“그 정도로 될까요? 차승민 의원도 강형욱 만큼이나 꼴통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정도로 냄새를 맡았으면...”
경찰서장은 일이 꼬인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이에 나은민은 빙긋 웃으면서 의미심장한 어조로 답하였다.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에게는 특효약이 하나 있지요. 자기로 인해서 남이 피해를 보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강형욱 형사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군요.”
나은민은 거기까지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에 경찰서장은 직접 아래로 내려갔고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반장을 구원하며 대신 말하였다.
“의원님. 아무리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수사 자료를 이런 식으로 요구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국회의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국회를 통해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주시지요. 그럼 협조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자료를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겠다는 것인데 그게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그 수사 자료를 봐서 정보를 얻음으로서 의원님이 사적인 이득을 취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수사 자료는 쉽게 공개하지 않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세부적인 내용을 보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세부적이고 표면적이고는 저희가 판단하는 겁니다. 수사권을 존중해주시지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님이라면 말입니다.”
“수사권? 이렇게 대충 대충 하고 종결처리 해버리면서 수사권 존중 같은 말이 나오십니까?”
“의원 님. 말씀을 삼가시지요!”
경찰서장은 공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 나은민이 조언해준 것 이상으로 잘 받아쳤다. 이에 차승민의 논리는 막혔고 김다니엘은 이렇게 실랑이를 벌여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승민을 말렸다.
“의원님.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후우~ 어쩔 수 없군. 알았네.”
차승민은 약간 이성을 잃을 뻔하다가 김다니엘의 만류로 겨우 정신을 찾고 한숨을 쉬며 물러갔다. 그렇게 경찰서를 나온 김다니엘은 뭔가를 생각한 후 진언하였다.
“의원님. 일단 그래도 중요한 접점을 찾아낸 것은 큰 성과입니다. 김재훈의 사망과 강형욱 형사의 사망이 분명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둘 모두 마약과 관련이 있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방식으로 제거가 되었습니다.
제가 퍼즐을 맞춰보자면 김재훈은 스타넥 클럽을 다니면서 그곳의 마약 유통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강형욱 형사에게 고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스타넥의 사장인 방용진은 아버지 방태수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때문에 이 둘이 죽임을 당한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을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다니... 천하의 죽일 놈들이로군.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나? 김재훈의 홀어머니와 강형욱의 부인을 모아서 이야기를 맞춰봐야 하나?”
“그것도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것인데 김재훈이 자살하기 며칠 전에 이런 사건에 대해서 기사가 몇 번 나왔었습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아마 김재훈이라면 형사에게 고발을 하는 것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는 다 삭제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담당 기자를 찾기가 어려울 텐데...”
“제가 그 때 기자까지 유심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 언론이 소양 일보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찾아가서 알아볼 생각입니다.”
김다니엘은 생각의 속도가 빠른 듯 바로 답을 찾아내었다. 그 모습에 차승민은 내심 감탄하였다가 의문이 하나 떠오르자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기자들도 저 형사 놈들처럼 입이 무겁지 않을까? 삭제된 기사의 해당 기자를 알려달라고 한다면 절대로 알려주지 않을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볼 생각입니다. 최근에 사직하거나 이직한 기자가 있는지 말입니다. 같은 건에 대해서 열심히 기사를 올리던 자가 갑자기 그것을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은 셋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사망을 하였거나, 아니면 실의에 빠져서 기자 일을 그만두었거나, 아니면 큰 돈과 더 좋은 직장을 제의받고 떠났거나...”
김다니엘은 거기까지 말한 후 차를 운전하여 소양 일보 본사로 바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여성 기자 하나를 정하여 앞으로 가서 생각했던 질문을 했다. 젠틀하면서도 잘 생긴 김다니엘의 질문에 그 기자는 빙긋 미소를 지으면서 답해주었고 그는 감사를 표하며 소양 일보를 나와 차승민에게 보고하였다.
“안타깝게도 세 번째 케이스로군요. 돈과 높은 지위를 보장받고 영혼을 판 것으로 보입니다. 마장우라는 기자가 최근에 이 나라 최고 언론인 지송 일보로 스카웃되어 떠났다고 하는군요.”
“하아... 그럼 어지간해서는 입을 열려 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일단은 만나보아야겠지.”
차승민은 희망이 꺼져 가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애써 힘을 내면서 지송 일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안내데스크 앞에서 마장우 기자에게 제보할 것이 있다고 속여서 그의 위치를 알아내고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마장우 기자님.”
“음? 네. 들었습니다. 제보할 것이 있으시다고요? 그런데... 낯이 좀 익은데...”
“하하. 은퇴한지 2년 정도 되었다고 다들 바로 잊으셨군요. 어쩌면 배우 때 너무 부진했던 것일까요. 저는 전직 배우이자 국회의원인 차승민이라고 합니다.”
“아! 맞아. 그렇지요. 하하. 이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의원님이 대체 무슨 제보를...?”
마장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악수를 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차승민은 진지한 눈빛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1달 쯤 전에... 스타넥 클럽의 마약에 대해서 기사를 쓰신 적이 있으시지요?”
“네?”
스타넥이란 단어가 나오자 마장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태수가 보였던 그런 눈에 띄는 움찔거림이 아니었고 김다니엘은 예리한 눈으로 그의 표정 변화를 살피면서 다시 물었다.
“스타넥이란 이름을 직접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대해서 취재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정확히는 그곳에서 유통하고 있는 마약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금시초문이군요. 1달 전이라면 제가 소양 일보에 있었을 시절인데... 당시 저는 지송 일보로의 이직을 제안 받고 짐 정리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런 기사는 일절 쓰지 않았습니다.”
“흠... 그렇습니까. 그래도 혹시 생각나는 것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형사와 제보자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 그런가요? 뭐... 제가 그것과 관련하여 정보를 얻게 된다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중요한 걸음을 하신 것 같은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마장우는 정말로 미안한 얼굴을 하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주었다. 형사와 제보자가 죽었다는 말에 그의 눈썹 끝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것은 눈에 띨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김다니엘과 차승민은 잘못 찾아왔다고 보고 몸을 돌려 지송 일보 건물을 나섰다.
이에 마장우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키고 전화를 하였다. 이에 익숙한 목소리의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다름 아닌 나은민이었다.
“네. 나 의원님. 말씀하신 대로 차승민이 이곳에 다녀갔습니다.”
“하하. 역시 예상대로 노는군요. 그래서 제가 시킨 대로 답변을 하셨습니까?”
“네. 미리 알려주신 덕분에 잘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들도 아마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뭐 제가 감사하죠. 아무튼 뒤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일전에 올렸던 기사들은 모두 삭제되었으니 저들은 절대 마장우 기자님의 이름을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 그 사건은 모두 기억에서 지워주시면 됩니다.”
나은민은 마장우가 지시대로 잘 해주자 친절한 어조로 말을 마쳤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에 마장우는 무언가가 걸린 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 그런데 의원님. 강형욱 형사와... 김재훈은 정말로.... 자살인 것입니까?”
“네? 갑자기 그것은 왜 물으시는지...?”
“그저... 순수한 호기심입니다.”
“호기심? 호기심이라... 제가 기자님께 주제 넘는 충고를 드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말씀 드리자면 과도한 호기심은 명을 재촉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자기 명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의 명을 줄이기도 하는 법이지요.
지금 차승민이 하는 것이 딱 그 짝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럼 이만 끊도록 하겠습니다.”
“네, 넵. 죄송합니다. 그럼...”
나은민은 약간의 짜증을 드러내면서 전화를 마쳤다. 그리고는 약간 피곤한 듯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고 그런 그에게 수석보좌관이 다가서서 조용히 말하였다.
“의원님. 방금 보고가 들어왔는데... 잘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 좀 쉬어도 되겠군. 후우~”
나은민은 수석보좌관의 보고에 빙긋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부쳤다.
그 사이 지송 일보를 나온 차승민과 김다니엘은 차선책을 쓰기로 하였다. 김형욱의 부인과 김재훈의 어머니를 불러서 이 사건에 대한 아귀를 맞춰보는 것이었다. 김다니엘은 김형욱 형사와 김재훈 사이에 접점이 있다고 보았고 이들의 주변 사람의 기억을 잘 짚어본다면 뭔가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를 위해 김다니엘은 저번에 받아둔 전화번호로 걸었다.
“음? 이상한데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바쁜 일이라고 있으신가? 그럼 김형욱 형사의 부인 분께 먼저 해보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으음... 이것도 받지 않는데요?”
김다니엘은 의아한 얼굴로 답하였다. 그 순간 차승민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생각이 통한 듯 김다니엘도 차승민과 눈을 마주친 후 서둘러서 차에 탑승하였고 받아두었던 주소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곳은 김재훈의 어머니가 기거하는 집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더 이상 집이라고 보기가 힘들었다. 새까맣게 타버렸기 때문이었다.